1926년 한국에 온 나 애시덕(Miss Esther Larird)
선교사는 평생 처녀의 몸으로 한국 사람과 기쁨과
아픔을 나누며 살았다.
19세 때 결핵을 앓았던 그의 중점 사역은
결핵 사업이었다.
1954년 대전 시외에 세운 기독교 요양원은 그 열매였다.
600여 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고 나갔다.
청년 시절 입원 환자였던 최종수 목사의 회고담이다.
“나 선교사님은 요양소 병동에 오면 먼저 유머로
우리를 웃게 만든다.
한번은 파킨슨병으로 마비된 흔들리는 손으로
주사를 들고 와서는 주사를 놔 주셨다.
떨리는 손으로 놓는 주사가 겁부터 났으나 그 사랑에
감복하여 하나도 아프지도 않았다.”
나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묻히고 싶다고 한 달만,
열흘만,일주일만, 하루만, 더 미루다가 결국 미국
안식관으로 떠나갔다.
처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비록 몸은 미국에
있었으나 한국의 수많은 아들 딸들이 흰옷을 입고
추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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