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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5
"너 누구야?"
꼼짝없이 내게 양팔을 붙잡힌 그녀는
쏘아보는 듯한 내 눈빛에 한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대체 이 여자는 누구지?
하지만 그런 생각에 잠기는 것도 잠시
갑자기 고개를 휙! 위로 쳐든 그녀의 눈동자가 강렬하다 못해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어
내심 그녀를 쏘아보고 있던 난 놀라 눈이 휘둥그래 질 수 밖에.
"선배! 사랑해요!"
갑자기 그녀가 내 허리를 강렬하게 껴안았다.
에엑?!?!
축축히 젖은 셔츠 안으로 뜨거운 그녀의 손이 들어와 난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뭐야???!?!?!
놀라 심장이 미쳐 날뛰기도 전에..
그녀의 힘에 이끌려 난 뒤로 벌러덩 넘어갔고
그 위에 날 내리누르는 그녀가 정말 서슴없이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잠깐!!!"
내가 꽥!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그녀의 눈동자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셔츠의 앞섶이 풀어졌다.
얼마나 손놀림이 빠른지......언제 열였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꺄아아악!
비키니 브라를 들어 올리고는 서늘한 에어콘 바람에 노출된 가슴을 정말 당연하다는 듯
꼭 움켜쥐는 그녀의 손에
난 놀라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최대한 그녀가 더 진전을 못하도록 반항하고 있었지만..
이런 것에 문외한인 나와
너무나 익숙하고도 능숙해(?) 보이는 그녀의 싸움에서
우위는 당연히...그녀임에는 틀림 없었다.
항상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 한발짝 뒤에서 놀라는 나는
이미 정복당해 최후방..그것도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낭떨어지에서 겨우 반항하고 있는
패배한 전사에 불과했다.
"사랑해요! 사랑한다구요!!"
아...
이..이대로는..
그녀의 허벅지가 내 다리사이로 자리를 잡고 다리를 오무리지 못하게 하였을 때..
그녀의 손이 내 허벅지를 타고 그곳에 도달하기 직전에.
난 내 소중한 그 곳을 두 손으로 힘껏 방어하고는...
정말 절절한 심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잠깐!! 일단 네가 누군지 알고 나서 해야지!!"
내 말에 그녀가 잠시 움찔..
이..이 말이 ...머..먹힌건가?
사자 앞에 토끼가 된 기분으로..
난 눈물이 찔끔찔끔 날 것 같은 기분으로 꼭 감았던 두 눈을
그제야 아주 쬐끔...아주 쬐끔 떠 보니..
그녀가 여전히 이글거리고도 뜨거워 데일 것 같은 얼굴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럼..내가 누군지 알고 나면 ....... 하는 거죠?"
뜨악!!
하지만..일단 여기선 빠져나가야지.
일단..... 일단은..
"약속 하는 거죠? 내가 누군지 알면 하는 거예요."
왠지 지금 그녀에게 약속을 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해 치워 버릴 것 같은 오라가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난 아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약속했어요. 네?"
"으..응."
재차 내게 묻는 그녀의 목소리가 못믿어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내 힘없는 대답을 받고서는
마지 못해 내 위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몸을 일으켜 형편없이 벗겨지기 직전의 옷을 추스렸다.
스스로도.....저 미친 여자에게 강간당하기 직전이었다는 생각에 정말 등골이 오싹했다.
지금 이대로 밖으로 도주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런 내 마음을 아주아주 잘 알고 있는 듯 문 앞을 떡 하니 지키고 있었다.
내가 미쳤구나..
정말 아무나 하고 여행오는게 아냐
그것도 단 둘이..
아냐...셋이라도 둘다 사이코면 더 위험하네...
난 왠지 온다고 했다가 연락이 오지 않았던 미지의 여자가
그녀와 합심해서 이곳에서 날 범하려 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생각하니..
정말 ....너무 무서워 저절로 눈물이 나오려 했다.
일단 한 명이니까..
한 명이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야
침착하자.
호랑이 굴에 들어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잖아.
하지만.....너무 놀라 안드로메다까지 가 버린 내 정신은 좀처럼 이 곳으로 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일단 씻어야지. 너부터 씼어."
"같이 씼어요."
"아냐..먼저 해."
생각해 보니..어느새 그녀가 내게 말을 높이고 있었지만..
어째 그게 더 무서웠다.
"왜요? 저 샤워할 때 도망가려구요?"
그녀의 눈에 왠지 불꽃이 번쩍 이는 것 같은 착각이...;
"그..그럴리가 있어?ㅎㅎ"
어색하게 웃는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려왔다.
"샤워실에 같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그럼.... 네가 누군지 이야기 끝낼 때 까지 나한테 손대지 않기로 .....
약속하는 거지?"
"녜"
너무 쿨하게 대답해서
더 ...... 더 못믿어웠지만..내게 선택의 여지란 있을까..
"그..그럼 2층으로 가서 옷 갖고 내려올게."
2층으로 가서 문 잠그고 사이코 여자가 있다고 경찰에 신고해야지..
"세탁기에 세탁 다 되어 건조까지 된 옷 있잖아요?"
"딴...딴거 입으려 했는데..."
"남는 속옷 또 있어요? 브라 2개다 여기 들어간 걸루 아는데..?"
"......"
하는 수 없이 난 그녀의 찌를 듯한 시선을 받으면서 정말
오른 팔과 오른 다리가 같이 나가는 듯 어색하고도 어정쩡한 발걸음을 주방으로 돌려
한켠에 마련된 드럼 세탁기에서 내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제 것도 챙겨 줘요."
"으..응."
왠지 흉기만 안 들고 있지
납치 강간범이랑 같이 있는 것 처럼 무서워.
난 손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난 내 옷가지랑
그녀의 옷가지를 챙겨
그녀의 삼엄한 경계하에 같이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옷을 벗었고
그녀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난 애써 외면한채 먼저 샤워를 마쳤다.
"욕조에 물 받아서 들어가 있어요."
"으...응."
나보다 작은 그녀였지만..
아까 완벽히 그녀에게 제압당했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남았던지..
아니면 그녀에게 한 순간에 당할 뻔 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었던지..
어쨌든..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무릎을 가슴깨로 당겨
양 팔로 감쌌을 때야
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너무 놀라 여전히 심장은 팔딱팔딱 뛰고 있었고
차마 그녀를 바라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침착해야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위험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
난 떨리는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아 진정이 될 때까지..가만히 물의 파동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욕조로 들어왔다.
저번과 다른 것이 있었다면..
내 앞에 앉는 것이 아니라..
나와 마주 보는 자세로 수도꼭지 쪽으로 앉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그녀와 어떻게 샤워실을 나왔는지
얼마나 긴장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물기를 닦아내고
속옷과 옷을 입고 나니...
제법 정신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식탁에 앉아요.
우리 아침도 안먹었잖아요.
일단 식사부터 해요."
난 말 없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식탁에 앉았고
그녀는 날 연신 홀깃 거리면서 간단하게 식사를 차렸다.
어제 해 놓은 밥솥의 밥과
김치 찌개와
남아 있던 삶은 문어와
약간의 야채.
그래..일단 먹고 ..
배가 고프면 도망칠 힘도 없으니까..
그러면서 힐끔힐끔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도무지 얼굴이 낯익지 않아
대체 어디 후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내 후배 맞긴 한 걸까..
그래도 밥 한공기를 뚝딱 먹고 나니..
제법 정신이 또렷해져서..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면 어떻게 방어를 할지..
어떻게 도망칠지 아주 찬찬히 나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야기라도 들어보는 거야.
아까 같았으면 정말 너무 무서워 도망치기에 급급했겠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고 나니..
걍 이대로 가 버린다면 왠지 평생 궁금해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조용히 설겆이를 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난 물끄러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그녀 바로 옆에 놓인 커다란 주방용 칼이.....
전혀 상관 없지 않았다는 정도..
그녀와 나는 거대한 통유리로 아까 우리가 놀았던 해변이 고스란히 비추고 있는
맑은 햇살 앞 통유리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거실 쇼파에 앉아 있었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쾌적한 실내를 유지해 주고 있었지만..
어째 자꾸만 갈증이 났다.
난 그녀가 타서 내 앞에 둔 커피를 단 숨에 원샷하고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는..
왠지 아까의 전투력을 상당히 상실하고 있는 듯해 보여
내심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방심할 순 없지.암.
"그래서 어디 후배야?"
".......세*여고...."
"고등학교 때? "
너무 아득한 때 후배란 말에 난 내심 놀랐다.
그 때 후배라면 .......얼굴을 잊어먹을 만도 했지만..
아무리 내 뇌세포의 주름을 비집고 들어가 보아도..
육상부 후배도 아니고...
걍 친하게 지내는 학교 후배도 아니고...
몇 안돼는 내 교우 관계 속 사람들을 하나하나 애써 기억해 보았지만
도저히 도저히 그녀와 매치되는 인물이 없었다.
".......전혀 기억 안나세요?"
그녀의 얼굴이 너무 서글퍼 보여 난 조금 더 노력해 보기로 했지만..
정말 도저히..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고
너무 슬퍼 보이는 그녀의 옆 얼굴에
난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애써 기억해 내려 미간만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던지..
난 스스로 기억해 내기를 포기하고는
그녀를 따라 창 밖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를 아는 것으로 보아 후배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만으로 그녀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사이코는 아닌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인 것도 사실이었다.
설마....선배를 어떻게 하겠어.
알아 보면 다 아는 사이일텐데..
난 내심....서울로 올라가면 희에게 전화라도 걸어 한 번 물어봐야 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희는 고딩 땐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나와 고교 동창이기도 했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오면서 급격히 친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서 나도 조금 놀랐지만..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는 병맥주 두개를 들고 와
내 앞에 한개를 척하니 두고
그녀가 한 병을 따서 단 숨에 원샷을 하더니
그녀가 말을 꺼냈다.
"선배를 처음 봤을 땐요..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요.
우리 수업할 때 간간히 육상부 연습하는게 보였었거든요.
점심 때 혼자 육상복 입구 운동장 뛰는 사람이 사실 눈에 안 띌리가 없잖아요?
어떤 애들은 선배가 일부러 남의 눈에 띌려구 튈려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두 그런 줄 알구 처음엔 좀 별로인 눈으로 봤는데..
자꾸 보다보니 자꾸만 시선이 가더라구요.
왠지 안보이면 허전하고..."
그 당시 난 육상이 내 미래 직업이 될 줄 알았다.
그렇게 잘 하지도 못하면서 마냥 열심히 하다보면 점점 성장하지 않을까
뭐..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시기였던 거지.
"근데 어느날 당번이라 아침 일찍 오게 되었는데..
선배가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도 혼자 뛰고 있더라구요.
진짜 그 시간엔 아무도 없어 ..
저 혼자 불 켜고 올라가는 날이었거든요."
그녀의 망연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련히 그때가 떠올랐다.
어째서 그땐 그렇게도 고집불통이었을까..
그렇게 일찍 갈 필요도 전혀 없었는데도..
난 어머니가 날 일찍 깨우지 않았다면서 늘 짜증을 내고는
일찍 일어나서 챙겨주시는 아침도 먹지 않고 나서는 날이 태반이었다.
그대로 나와 운동장을 뛰었다.
노력은 절대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땐..
"그게..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에요.
저 사람은 절대 남들 눈을 생각해서 뛰는 게 아니구나...
이런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때 난...무엇과 싸우고 있었던 걸까..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나 치열하게 열심히 였던 것일까..
"전요 뭐든 그렇게 열심히 하는 성격이 못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선배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사실 선배..그렇게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잖아요?"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에 난 조금 울컥하기도 했지만.
조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뒤론 뭐..."
여전히 창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그녀였지만..
잠시 머뭇거려 난 홀깃 그녀를 슬그머니 훔쳐 보았고.
내가 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몹시 부끄러운 듯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다시 벌떡 일어나서 냉장고로 가서
이번엔 양주 째 들고오더니
자기와 내 잔에 얼음을 넣고 따라서
내게 권하지도 않고 먼저 한 잔을 원샷했다.
이야기를 하는데 제법 용기가 필요한 듯 했다.
몹시 소녀처럼 보이는 그녀가
변태 사이코에서 갑자기 몹시 귀여운 소녀처럼 보이기 시작해.
나도 손을 뻗어 그녀가 만들어 놓은 양주 잔을 들고 조금씩 목을 축였다.
"그 뒤론..선배를 보기 위해 저두 새벽처럼 등교 한거 ..모르셨죠?
늦잠이라도 잔 날이면 정말 선배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너무 억울해서
눈물까지 났었다니까요.
덕분에 지각도 거의 없었구 학교 가는 것도 즐거웠어요.
새벽이랑 점심때...
그렇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선배의 넘치는 에너지가 제게 전달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평소 선배 모습도 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뭐 틈 날때 마다..
선배가 보이는 곳 주변을 서성였어요.
그래도 좀 나았던 건..
선배는 늘상 가는 곳을 거의 반복적으로 가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먼저 가서 기다리면 여지없이 나타나곤 해서..
뭐...그렇게 티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죠.
하지만....좀 티가 나긴 했을 거예요. 교복이 달랐으니..뭐 어쨌든.
근데....어느 순간 새벽 연습을 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침 일찍 등교해도 선배가 안 보여서...
늘 그렇게만 봐 오던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막상 보이지 않으니 보고 싶어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수업도 눈에 안들어오고..
혹시 다치기라도 해서 못뛰는 거 아닌거 걱정도 되고..
몇날 몇일을 정말 ......정말 잠도 못자고 고민고민 하다
결국 몇일 앓아 눕기 까지 했어요.
그러다 결심 했죠.
그래 직접 가서 물어나 보자.
무슨 일이라도 있냐구..
근데..... 막상 어찌어찌 선배를 선물 뒷편으로 불러내고 딱 마주하고 나니...
............
교복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난 선배가....
너무너무 멋있어서..
이성을 잃고 그만 고백을..;;"
그녀가 여기까지 이야기 했을 때 갑자기 내 뇌를 스쳐가는 한 장면ㅇㅣ...
설마..
"그....그 중딩?!?!?!"
내가 입을 쩍-벌리고 눈이 휘둥그래지다 못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지자...
그녀가 차마 내 시선을 바로보지 못하고 양주를 비워내는데..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오른 것이 멀찍이 앉은 내게 고스란히 보였다.
중간에 교복이 다르다는 말을 했을 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우린 학년 별로 조금씩 교복 모양이 다른 것으로 학년을 구분하는 것이 있는 학교였으니까..
그렇다곤 해도 그녀가 같은 계열의 운동장을 같이 썼던
중학교 학생일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못했다.
.우와...조숙해 조숙해.
난 그 때 연애..이런거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그 땐 내가 고2 가 거의 끝나갈 때였다.
고 3이 되면 난 어차피 가망 없는 육상을 그만두고 진지하게 부모님과 이야기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가기 위해
학업에 조금이라도 매진하기로 했다.
육상은 죽기 살기로 했으면서 사실 공부엔 그닥 취미가 없어 늘상 어려워했지만..
이미 육상을 포기한 지금
그래..딱 1년만 죽기 살기로 공부만 해 보자.
이런 심정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고 3 될 때까지 해도 그만이었지만...
바로 다음날 부터 난 육상 연습을 그만두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기 위해 사물함을 열어보니
왠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선배.
야자시간에 잠시 시간 좀 내어 주세요.
8시에 매점 뒷편에서 기다릴게요."
반듯반듯하고 깔끔한 글씨체.
누굴까?
아무래도 육상을 하다보니 간간히 학교 선 후배들에게 고백받은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대충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무시해도 그만이었지만..
이 추운 날 어두운 그곳에서 하염없이 날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자를 하다가 8시가 되어가길래
난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와서
매점 뒷편으로 갔다.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선배라고 한 걸 보니..후배인 듯 한데..
1학년?
혼자 그녀에 대해 상상하고 있는데..
매점 뒷 편에 홀로 조용히 서 있는 자그마한 아이는...
세상에....같은 계열인 중학교 학생이었다.
그녀의 교복을 보고 내가 깜짝 놀란 것을 그녀는 몰랐을 테지..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내 모습을 보고는 망연히 날 바라보던 그녀가.
내가 그녀 가까이 서자.
다짜고짜.
"선배. 사랑해요. "
아주 큰 소리로 우렁차게 외친 것이었다.
난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에 너무나 놀라서
그녀를 끌고 조금 더 으슥한 곳으로 더 들어갔다.
나도 놀랐지만..
말을 꺼낸 자기도 놀랐는지
얼굴이 벌겋게 되어 있긴 했지만..
아주 강렬히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난 내심 놀라고 있었다.
"공부나 해 쬐끄만게."
평소 같았으면 나긋나긋하게 말 해서 돌려 보냈을 테지만..
그녀의 행동에 놀란 난 나 답지 않게 몹시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말 해 놓고서야
그녀가 울음이라도 터트리면 어쩌지..하면서 걱정이 생겼지만..
내 말에 입을 꾹 다문 그녀는...
"그럼 한가지만 말해줘요."
"뭔데?"
당돌할 정도로 강렬한 눈으로 날 올려다 보는 그녀였기에
나도 내심 그녀가 무슨 질문을 할지 궁금했다.
"왜? 왜 육상을 그만둔 거예요?"
"아..아아......"
너무 의외의 질문이라 조금 맥이 빠졌다.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왠지 자기가 더 분하단 듯 그제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쬐끄만 녀석이..
그제야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도 되지 않는 다면 깨끗이 포기하는 것도 있는 거야."
"전 절대로 선배 포기 안해요!"
".......지금은..공부나 하셔."
난 그녀의 머리를 툭툭 쳐 주고는
빙글 돌아 교실로 돌아왔다.
그 뒤로 그녀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뒤로도 전혀 내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당돌할 만큼 부딪혀 오는 그녀의 눈동자.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나와 함께 다니는 무리들이 전혀 눈치 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야... 재 또 널본다."
"우와. 아주 잡아 먹을 듯 보고 있는데..?"
"눈만 봐도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야."
"눈으로 널 범하고 있어."
"널 투시하는 것 같아. 하교할 때 조심해."
그 아이가 나에게 고백한 것에 대해 친구들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건만..
어느 순간 부터..친구들은 장난반 호기심 반으로 이상한 이야길 내게 해 대기 시작했다.
최소한 내게 호의를 품은 어린 저 아이를 보호할 의무는 내가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야! 너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저 쥐방울 만한 거 이야기 하면
진짜 나한테 쳐맞는다. 응?"
평소에 별로 가타부타 말을 않는 나이지만..
한 번 이렇게 말 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끝장을 볼 때까지 상대를 괴롭히는 성격이 있단 것을 아는
내 무리 사람들은 그 이후 그 꼬맹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꼬맹이가 내게 시선을 거두지도 않았지만..
나 또한 그것에 반응하지도 않았다.
그 때 짧은 단발머리에 통통한 볼살을 갖고 있던 그..몬생긴 중딩이..
이 여자라니..
하긴 벌써 5-6년 전 이야기 이기도 했고..
한창 변하기 시작할 나이이기도 하지만..
이건...완젼 변신 수준이잖아..
난 그녀를 힐끔 거리면서
도저히 매점 뒷편에서 두 손을 마주 쥔채
당돌하게 날 바라보던 통통하던 꼬맹이와
그녀를 당췌 매치 시킬 수가 없었다.
쿡쿡..생각해 보니 그때도 우렁찬 성대를 갖고 있었구나..
난 그때 생각이 나서 쿡쿡 웃음을 흘리고 있었지만..
미간을 구긴채 너무 진지한 그녀의 옆 얼굴을 보고는
억지로 정말 억지로 웃음을 참고는 다시 양주에 입을 대었다.
그녀가 다시 자기 잔을 원샷 하고는 또다시 스스로 자기 잔을 채웠다.
"전요. 선배.
저두 선배 잊을 줄 알았어요.
근데..선배 졸업하구 나서 가슴이 너무 허전한게...
정말 ....... 세상 사는 낛이 없더라구요.."
"풉!"
꼬맹이가 세상사는 낛이라니...
난 너무 웃겨 웃음을 흘리고 말았지만..
그녀가 노여움에 가득찬 눈으로 날 째려 보았기에
난 고개를 숙이고 억지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선배랑 비슷한 사람이랑 사귀기도 했구요.
막막 잠자리도 가졌었는데...
어째....
선배 생각이 더더 나는 거예요.."
공부 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귓구녕이 막혔나...
자..잠자리를 가져? 것두 마구...?..;;
참 세상 말세구나..
어린 것들이 더 무서운 세상이야..;;
난 말 없이 양주를 홀짝이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대학 가구 나서 선배 정말..잠시 잊었었어요.
대학 생활이 나름 재미도 있었구..
선배의 모습이 너무 많이 투영되던 고등학교가 아닌 새로운 세상이라서
선배 생각이 덜 나긴 하더라구요..."
"근데..날 어떻게 찾은 거야?"
".........선배 아이디로..."
"응?"
"선배 아이디가 runtop0927 이잖아요.
그거...마지막 육상 경기 날짜잖아요..
졸업 앨범에 선배 이메일 적혀 있는거 찾아 봤었거든요."
여기서 조금 부끄러워하는 그녀였지만..
어째 난 조금 놀랐다.
그 아이디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이 아이디에 대해 묻지도 않았기에..
그저 못다한 육상에 대한 미련이 고스란히 남은......그 ...의미를....run top 9월 27일.
"여행 사이트에 선배 아이디가 눈에 확! 들어왔는데...
정말 설마 설마 했었다니까요..."
그..사이트에 닉네임 옆에 아이디가 떠 있었나 보다.
아무래도 그랬는지 아닌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똑같은 아이디를 쓸거라 생각지 못했지만..
혹시나 해서....쪽지 남겼었어요.
근데...운명 처럼.....번호가 왔더라구요.
저 그날 부터 몇일동안 선배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느라..
몇일 그냥 보내고
막 용기내서 문자 보냈더니 바로 다음날 보자구 하더라구요.."
이젠 고개를 푹 숙이고 목까지 벌게진 얼굴을 들지 못하는 그녀가..
제법 새삼스러워 보였다.
"쪽지 내용이 뭐였지.....
혹시...... 애인이랑 헤어졌다는 그거?"
"맞아요!"
걍 기억나는 쪽지라곤 그것 밖에 없어 그렇게 말했건만
내가 기억하기라도 하는 것이 정말 운명의 끈이라도 되는 양
갑자기 고개를 훅! 들면서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변화에
난 적응하는 듯 못하는 듯 정신이 없었다.
어디에..장난을 맞추어야 하는지..참.
감정 기복이 하늘을 찔렀다 땅으로 꺼지기를 반복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조금 안스러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잠깐..그 그럼. 너 몇살이야?"
"내가 고2때....중학생이었으면.."
"슴하나요."
"에엥?"
"그..그럼 심리치료사는 뭐야?"
"앞으로 될 예정이예요. 제가 26세 땐 아마도...?"
"하아...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니.."
"말 했으면..선배가 저 안데리구 왔을 거잖아요."
그...그건 그랬다.
"저 알구 있다구요.
선배 후배들한테는 엄격하고 빡빡하게 굴면서
선배들한테는 엄청 싹싹하게 군다는 것을요."
"그...그랬나?"
"크윽...제가 선배보다 한 살이라도 빨리 태어나지 못한게 얼마나!!
정말 ..얼!마!나! 억울 했는지 아세요?"
"뭘..뭘 억울해. 젊으면 좋지..."
그렇게 말 하면서 스멀스멀 그녀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기에
난 조금씩 뒤로 물러나 앉으면서 말을 잇고 있었다.
아까만큼 무섭진 않았지만.....그래도...
눈을 반짝이는 그녀는....무섭지 않을리가..
그러고 보니..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몇일 동안 휘둘린 것도 모자라서..
언니..언니라면서 꼬박꼬박 존대까지 하고..
정말 먹힐(?) 뻔 하기 까지 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자고 ...
수갑에 묵이질 않나...
갑자기 울컥 하는 것이 아닌가?
"야! 너 그럼 선배 말 듣고 공부나 할 것이지?
뭐? 막막 잠자리를 가져?
이 콩알만한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 그래서 뭐야? 내 책임이란 거야? 뭐야?
야..너 S대라도 갔으면 내가 생각해 봤을지도 몰라.
난 하나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거든!"
흥!
사실 S대는 일부러 턱을 올려 걍 내뱉은 말이었다.
그것에 그녀가 좌절이라도 하길 바라면서..
사실..학벌을 따질 군번이 아닌 나니까..
난 울며 겨자먹기로 겨우 1년동안 최선을 다해 졸업하긴 했지만..
겨우 서울 내....4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너무 힘들어 정말 10년은 폭삭 늙는 줄 알았다.
점수 맞추어 들어간 과가 우연히....컴터관련이라..
추후에 그래픽디자이너 회사에 취직도 겨우..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턱걸이 인생이었으니까..
"후후훗..
저...S대 심리학과라구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낮게 웃고 있을때..
정말..내...이....경솔한 입을 꿰메어 버리고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그럴리가.."
겨우 내 입에서 떨어지는 말이라는게..
"제가..선배의 그 말을 정말 벽에 붙여 놓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
말도 안돼...
그러면서 막 사람들 사귀구 막 자구 그랬다구??
그럼 난 뭐야? 난 바보야?
왠지..알 수 없는 좌절감에 허우적 거리기도 전에..
그녀가 눈을 빛내면서
천천히..아주 천천히 다가왔고..
그녀의 눈빛은..이미 아까 수줍어하던 그녀가 아니었다.
"제가요.."
꿀꺽-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난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침을 삼키고 있었다.
어느새 내 코 앞까지 온 그녀는...
내 떨리는 두 손을 꼭 쥐고는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선배 생각하면서 갈고 닦은 기술을..
오늘 보여드릴테니까..
걱정 말아요. 훗!"
으흐흐흐흐흫....
라고 그녀가 낮게 웃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난 그녀의 눈빛에 꼼작도 하지 못한 채
완전히 압도되어...식은 땀만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자..이야기 다 들었으니 됐죠?
이 날을 위해.....
제가 그 동안 그런 시간을 보냈나 봐요.."
무..무슨 시간을?
아니 공부 잘하고...
아무나 하고 막 잠자리 가진게..
뭐가 그렇게 힘들었다구.
정말 힘들었던건 나야.
하기 싫은 공부 죽어라 하느라 머리털은 한움큼씩 빠졌지..
그러고도 겨우 턱걸이로 대학 가서는..
친구들이랑 지내느라 그 흔한 연애다운 연해도 못해보고..
지금까지 키스도 너랑 한게 다인데..
크윽..뭔가 진정 뭔가 억울해서 죽을것 같긴 한데..
이..이상황은..
"저....혹시 몰라서 이것 저것 많이 준비해 왔어요.
선배....처음이니까....
저한테 맡겨요. 걱정마시구요."
그녀의 눈에서 오롯이 진심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 흘러..
내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기에
난 사태의 심각성에 몸이 부르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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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유진의 앞날은..;;;
현주의 시점으로 바뀌게 되면...19금으로 여기선 연중될 가능성이 크네요.
아직은 정해진 바가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쿨럭.
아..그리고..주말엔 저도 쉽니다.
혹시나 기다리실까봐서....ㅎㅎ;;
첫댓글 아침부터 여러번 들락 날락 했습니다. ^^ 과연 유진은 어떻게 될까요? 다음편 기대됩니다.
ㅋ 여러번 ...우와 감가합니다
19세는 내게 자양강장제.
아직 어찌 될지 모르지만...ㅎㅎ; 글쎄요
눈으로 범하고있어ㅋ크ㅋㅋ큭ㅋㅋㅋㅋ킄ㅋㅋㅋ
ㅎㅎㅎㅎㅎ
으억!! 완전 재밌네에ㅛㅇ!!! 반전이네용 ㅋㅋㅋㅋㅋㅋㅋ 유진은 도대체 어케 될까요~ 자기보다 어린 후배한테 먹히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
글쎄 어떻게 되길 바라세요???
앗..주말에쉬신다니 기다릴뻔햇네요ㅠㅠㅋㅋㅋ 주말엔쉬셔야죠 뭐.....그러셔야죠.........ㅋㅋㅋ 아진짜반전이다 스물하나....ㅋㅋㅋ
ㅋ 슴하나라해도 님보단 많단거..;ㅋㅋ 아 왜이리 자꾸 놀리고 싶은지;;
19금 연중... 난 반댈세~~
ㅎㅎㅎ 좀더 많은 사람이 찬성한다면야.........;;;;ㅋ
이야 성공했네요 첫사랑일거 아니에요 고등학교때 좋아한 선배랑 된다는거 힘든데 잘읽었습니다^-^
첫사랑과 성공은 대부분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어릴 때라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