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굴에 관한 사변(思辨) !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사람은 홀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 의해 살아지고, 그렇게 또 다른 사람을 살게 한다. 삶은 개인의 내부에서 완결되지 않으며, 관계 속에서 지속된다. 누군가를 살게 하고,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그 과정이 곧 인간의 삶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준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혼돈 속에서 하나의 동굴을 발견한다. 6·25라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발견한 그 동굴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다. 그곳에서 명준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고, 잠시나마 세계로부터 물러난다. 어떤 평자의 해석에 따르면, 이 동굴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읽히기도 한다.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밀실이면서 동시에, 개인에게 열려 있는 또 하나의 광장. 세계와 단절된 장소이자, 역설적으로 가장 근원적인 방식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명준에게 동굴은 그렇게 하나의 보호된 내부이자, 세계와 맞닿아 있는 장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인훈의 희곡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 등장하는 동굴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의 소설에서 유추해 본다면, 이 작품 속 동굴 역시 단순한 은신처나 과거의 기억을 상징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달내가 향하는 동굴은 그녀만의 밀실이자 광장이며, 동시에 어미의 자궁을 연상시키는 장소로 읽힐 수 있다. 보호받던 가장 오래된 공간, 그러나 다시는 완전히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곳으로 향하려 하는가. 왜 인간은 반복해서 그런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가. 이는 이성의 선택 이전에, 몸의 움직임에 가깝다. 인간이 어떤 장소로 끌려간다는 것은, 결국 몸이 그 방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세계의 조건을 먼저 감지하고, 그 조건에 반응하며 이동한다.
몸의 움직임은 공간의 성격을 바꾼다. 같은 장소라도 어떤 몸이, 어떤 방식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밀실이 되기도 하고, 광장이 되기도 하며, 자궁을 연상시키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공간은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몸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다.
인간은 그렇게 인연과 연결되고, 연결된 인연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도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삶은 항상 타인의 흔적 위에서 지속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게 하고, 또 그로 인해 사람으로 살아진다. 최인훈의 작품이 반복해서 묻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지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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