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는 겨울과 봄 사이의 추위라기 보다는 '봄과 겨울 사이'의 전도된 추위다.
기지개를 켜고 신학기를 맞는 어린 학생들이 가벼운 계절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나선다.
여자들의 치마 길이는 짧아지며 스타킹을 벗은 맨살의 다리가 성급히 나타나기도 한다.
칭칭 동여맨 목에서 어른들은 막 목도리를 풀려고 하는 찰나였다.
도시의 봄은 자연보다도 먼저 이렇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올해도 여지없이 봄을 시샘하는 찬바람이 깐깐하게 불어온다.
찾아오던 봄은 놀라 멈칫댄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샘'이 꽃의 시간을 역전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스툴(stool)은 등받이와 팔거이가 없는 의;자를 말한다.
등받이가 없는 이 의자의 모양새는 그 심플함을 통해 두꺼운 옷과 목도리와 장갑과 스타킹을 벗은
도시의 봄 여성 느낌을 풍긴다.
발음도 기품있게 가볍고 모던하다.
스툴
의자는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큰 영향을 받기도 하고,
신경을 쓰기도 하는 가구 중 하나다.
스툴은 디자인적 영감 차원에서 가장 예민한 모양새를 지닌 의자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다는 것은 최소한의 프레임을 통해 기능적 요소와 공간적 여백을 미적으로
조화시켜야 하는 이중 과제를 드러낸다.
집안에서 스툴이 눈에 띄는 장소가 어딘지를 생각해 보는 일은 흥미롭다.
아마 무심한 남자들은 바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화장대 앞이다.
그런데 왜 스툴이 화장대 앞에 앉은 의자로 사용될까.
스툴은 '불편하다'는 게 이유가 아닐까.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화장대란 '화장', 꾸미는 (장식하는) 자리이다.
의식적이든 기계적이든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미의식'을 각성하고 표현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미의식이란 본래 실용성과 무관한 '포즈'를 취하는 자리에서 나온다.
포즈는 '형식'이다.
멋있는 포즈와 형식을 만들려면 어딘가에 기대는 바 없이 자기 뼈대만으로 몸을 곧추 새우고 견뎌야 한다.
물론 바깥에는 이 견딤의 고통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우아한 백조'가 물밑에서는 발길질을 하느라 바쁘다는 얘기는 "미'에 대한 오래된 진실을 담고 있다.
'불편을 감수하는' 자리가 곧 미가 출발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김소월의 애뜻한 서정시, 모차르트의 화려한 협주곡, 고흐의 싱그러운 풍경화가 탄생하는 과정에서도
이 목숨을 건 처절한 '발길질'은 예외가 아니다. 함돈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