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촌 연출가를 추모하며
2022년 4월 28일 연극과 TV 드라마를 연출했던 유길촌(1938~2022) 연출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4년 전 유 씨어터에서 베푼 팔순잔치에 초대되어 만난 후 전화 통화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을 뿐
부고도 방송인들에게만 전해, 유 연출이 하늘나라로 간 것을 5월 초에야 알게 되었다.
소년시절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이웃으로 살았고, 당시 가명교회(현재 약현성당)에도 함께 다녔다.
대학시절 나는 나대로, 유 연출은 고려대학교에서 연극을 했고, 연출도 했기에, 서울대학교 연출도
부탁을 했었다. 당시에는 유 연출과 동창인 고대출신 나영세 배우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연출을 했다. 나는 이호철 소설가, 박영희 희곡번역가, 김지하 시인, 오태석 연출, 김승옥 소설가,
를 유 연출에게 소개했다.
1966년 TBC-TV에 시험을 보러 가는데, 마침 유길촌 연출이 찾아와 어딜 가느냐고 묻기에,
탤런트 시험을 치르러 간다고 이야기 하니까, 함께 가 구경해야겠다고 따라왔다.
TBC-TV에 도착해 신청서 접수를 할 때, 유호극장을 연출하던 황은진 PD와 허규 PD가 접수를
하며, 유길촌 연출을 보더니, "어이! 고대극회아니야? 여기 왜 왔어?" 하고 물으니, 유 연출이 "
박정기가 탤런트 시험치르는 것 구경하려고 왔어요," 하니까. 황 PD가 "잘 왔어, 우리가 현재
floor manager(무대감독)가 필요하니, 내일 당장 이력서 써가지고 오게."
나는 탤런트 시험에 합격했고, 유 연출은 공연제작부 무대감독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흑백 TV 시절이었고, 1969년 MBC-TV가 개국을 하자, 나는 MBC-TV 전속 계약 탤런트로,
유 연출은 드라마 PD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몇년 뒤 나는 사정이 생겨 방송을 그만 두었고,
얼마 안가서 칼라 TV시대가 다가 왔다. 유 연출은 MBC-TV에서 개국 -TV 드라마 '학 부인'을
비롯해 많은 드라마 연출을 했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혜숙, 이미숙, 이덕화 등 당대 톱 배우들이
출연하며 '역대 최고의 장희빈'이라는 찬사를 받는 '여인열전-장희빈'(1981년)도 연출했다.
또 임진왜란 발발부터 극복할 때까지 7년의 이야기를 그린 사극 '조선왕조 500년'(1985~1986년)을
연출했고, 장수 드라마 '수사반장'(1971~1989년) 연출진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최불암 주연의
수사극 '최후의 증인'(1987년), '부초'(1987),'애처일기'(1984~1985), '113 수사본부'(1973~1983) 등
여러 화제작을 만들었다. 또 MBC미술센터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전 EXPO 대형영상 총감독,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문화예술계를 이끌었다.
MBC 퇴임 이후에는 창동에 천막극장을 설치하고 마당극을 제작 연출했고, 성수대교 부근 현대건설
야적장에서 조광화 작 철안붓다를 공연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우인 유인촌 탤런트가 청담동에
연극 전용극장 유 씨어터를 개관하자, 최근까지 대표를 맡았었다.
유길촌 연출의 연출작품으로는 '이탈리아 밀짚모자' '시련' '살인 환상곡' '황금연못' 등이 기억에 남는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평생 좋아하던 연극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5월 4일 박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