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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3) 族譜와 小說冊 難易度를 四級(千字) 超過 漢字 낱말 數로 봅니다 (14)
大學 同期인 小說家가 電話를 했다. 딸이 結婚한다는 것이었다. ‘곧 할머니가 되겠네’라고 弄談을 던졌더니 그 親舊 말이 ‘그러게 말이야, 늙었지 뭐’였다. 어린 時節에는 설날에 떡국을 두 그릇 먹으면 두 살 먹는다는 말을 듣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두 그릇을 먹곤 했다. 그런데 이제 설날에 떡국 먹기가 머뭇거려진다. 知人의 父母 葬禮式에 다니던 나이에서, 只今은 親舊의 子息 結婚式에 갈 나이가 되었건만 해 놓은 일 없이 나이만 먹는 것이 寒心스럽다. (3)
先親의 祭祀가 있어서 故鄕 先山에 갔다. 절을 올리고 잠깐 앉아 先親에 對한 記憶을 더듬었다. 先親과 關聯해서 많은 記憶이 있으련만 어떻게 된 것인지 일만 하던 先親의 모습만 떠올랐다. 땀내 나는 作業服, 시커멓게 그은 얼굴, 밤늦도록 帳簿 整理를 하면서 珠板알을 튕기던 거친 손마디, 그것이 全部였다. (5)
얼마 前 딸이, 大學 卒業하자마자 바로 結婚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를 놀리려고 딸이 弄談으로 한 말인 줄은 알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내 딸만큼은 아빠 곁에 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結婚해서 家庭을 꾸리고 自身의 일을 하면서 딸도 엄마가 돼 한平生을 살아갈 것이다. 딸에게 아빠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記憶될까. 물어보나마나 뻔한 對答이 돌아올 것이다.
딸이 初等學校 다닐 무렵, 나는 文人들과 討論한답시고 每日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근 보름을 그렇게 보내고 어느 날 맨 精神으로 일찍 들어갔다. ‘아빠 왔다’하면서 딸의 방門을 열자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짓궂게 웃으면서 ‘누구신데요?’ 하는 것 아닌가. 그때 着實한 아빠가 돼야겠다는 決心을 했건만, 그날 以後 이날 이때까지 새벽에 들어가는 짓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에 對한 딸의 記憶을 어찌 물어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요즘 달라진 게 있다면, ‘카카오톡’에 家族 채팅방을 열어 자주 對話를 한다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文字와 이모티콘을 섞어 對話를 나누다 보니 왠지 以前보다 딸과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費用도 들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問題가 터졌다. 스마트폰을 紛失해 버린 것이다. 애타게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結局 새로 購入할 수밖에 없었다. 以前에 주고받던 內容들을 볼 수가 없어 몹시도 허전했다. (2)
이番 설에 偶然히 族譜를 들춰 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몇 十 卷 되는 族譜를 펼쳐 두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글字를 짚어가면서 ‘南平文氏’族譜를 說明하던 先親의 모습,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듣고 있는 까까머리 中學生의 모습, 겨울 칼바람을 녹이는 뜨끈한 房구들, 며느리가 울면서 쫓겨나는 連續劇 ‘旅路’의 한 場面이 마치 어제처럼 鮮明히 떠올랐다. 그때 그 時節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 先親에 對한 罪스러움과 그리움 等이 겹치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1)
族譜를 精誠껏 닦으면서 생각했다. 딸이 結婚하기 前까지, 아니 結婚한 後에도 冊을 膳物해야겠다고. 내가 아는 것이 小說뿐이니 좋은 小說冊을 사서, 冊을 膳物하는 날짜, 冊을 읽고 느낀 點, 冊을 살 때의 내 近況을 적은 葉書를 同封해 膳物하는 것이다. 내가 族譜를 싫어했듯이 딸도 小說 內容이 自身의 世代 感覺과 맞지 않는다며 小說冊을 싫어할지 모른다. 그래도 훗날 小說冊을 들춰보다가 아빠에 對한 記憶을 떠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 (2)
스마트폰을 紛失했을 때 카카오톡으로 나누었던 모든 對話들이 아무것도 記憶나지 않았다. 아마도 스마트폰을 새것으로 바꿀 때마다 所重한 記憶이 다 사라져버린 듯한 妙한 氣分을 맛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只今도 내가 간직하고 있는 族譜에서는 先親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딸도 내가 膳物한 冊을 오래오래 간직하지 않겠는가. (1)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딸이 내게 ‘누구신데요’라고 묻던 때처럼 나에 對한 記憶이 안 좋은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떠올리기 싫은 記憶을 남겨주는 아빠는 아빠가 아니지 않은가. 해서, 늦었지만 올해부터는 따뜻한 記憶을 남겨주는 아빠가 되도록 改過遷善해야겠다는 決心도 한다. (1)
【 서울 】 140211 [열린世上] 文興述 서울女大 國文科 敎授 文化評論家
(國漢混用文普及會 kukhanmoon@korea.com)
---- ② 한자 골라 쓰기 연습용 한글전용 페이지. ----
(3423) 족보와 소설책 난이도를 4급(천자) 초과 한자 낱말 수로 봅니다 (14)
대학 동기인 소설가가 전화를 했다. 딸이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곧 할머니가 되겠네’라고 농담을 던졌더니 그 친구 말이 ‘그러게 말이야, 늙었지 뭐’였다. 어린 시절에는 설날에 떡국을 두 그릇 먹으면 두 살 먹는다는 말을 듣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두 그릇을 먹곤 했다. 그런데 이제 설날에 떡국 먹기가 머뭇거려진다. 지인의 부모 장례식에 다니던 나이에서, 지금은 친구의 자식 결혼식에 갈 나이가 되었건만 해 놓은 일 없이 나이만 먹는 것이 한심스럽다. (3)
선친의 제사가 있어서 고향 선산에 갔다. 절을 올리고 잠깐 앉아 선친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선친과 관련해서 많은 기억이 있으련만 어떻게 된 것인지 일만 하던 선친의 모습만 떠올랐다. 땀내 나는 작업복, 시커멓게 그은 얼굴, 밤늦도록 장부 정리를 하면서 주판알을 튕기던 거친 손마디, 그것이 전부였다. (5)
얼마 전 딸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를 놀리려고 딸이 농담으로 한 말인 줄은 알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내 딸만큼은 아빠 곁에 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딸도 엄마가 돼 한平生을 살아갈 것이다. 딸에게 아빠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물어보나마나 뻔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딸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 나는 문인들과 토론한답시고 매일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근 보름을 그렇게 보내고 어느 날 맨 정신으로 일찍 들어갔다. ‘아빠 왔다’하면서 딸의 방문을 열자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짓궂게 웃으면서 ‘누구신데요?’ 하는 것 아닌가. 그때 착실한 아빠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건만, 그날 이후 이날 이때까지 새벽에 들어가는 짓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에 대한 딸의 기억을 어찌 물어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요즘 달라진 게 있다면, ‘카카오톡’에 가족 채팅방을 열어 자주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문자와 이모티콘을 섞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왠지 이전보다 딸과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비용도 들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졌다. 스마트폰을 분실해 버린 것이다. 애타게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새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주고받던 내용들을 볼 수가 없어 몹시도 허전했다. (2)
이번 설에 우연히 족보를 들춰 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몇 십 권 되는 족보를 펼쳐 두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글자를 짚어가면서 ‘남평문씨’족보를 설명하던 선친의 모습,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듣고 있는 까까머리 중학생의 모습, 겨울 칼바람을 녹이는 뜨끈한 방구들, 며느리가 울면서 쫓겨나는 연속극 ‘여로’의 한 장면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 선친에 대한 죄스러움과 그리움 등이 겹치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1)
족보를 정성껏 닦으면서 생각했다. 딸이 결혼하기 전까지, 아니 결혼한 후에도 책을 선물해야겠다고. 내가 아는 것이 소설뿐이니 좋은 소설책을 사서, 책을 선물하는 날짜, 책을 읽고 느낀 점, 책을 살 때의 내 근황을 적은 엽서를 동봉해 선물하는 것이다. 내가 족보를 싫어했듯이 딸도 소설 내용이 자신의 세대 감각과 맞지 않는다며 소설책을 싫어할지 모른다. 그래도 훗날 소설책을 들춰보다가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 (2)
스마트폰을 분실했을 때 카카오톡으로 나누었던 모든 대화들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스마트폰을 새것으로 바꿀 때마다 소중한 기억이 다 사라져버린 듯한 묘한 기분을 맛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내가 간직하고 있는 족보에서는 선친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딸도 내가 선물한 책을 오래오래 간직하지 않겠는가. (1)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딸이 내게 ‘누구신데요’라고 묻던 때처럼 나에 대한 기억이 안 좋은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남겨주는 아빠는 아빠가 아니지 않은가. 해서, 늦었지만 올해부터는 따뜻한 기억을 남겨주는 아빠가 되도록 개과천선해야겠다는 결심도 한다. (1)
【 서울 】 140211 [열린세상]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문화평론가
(오. 탈자가 보이시면 알려주십시오. kukhanmo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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