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효율은
과학적 체계를 갖춘 과정에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영성에서 효율을 거론함은
그 수련이
체계를 지닌 과정이라는
의미이지요.
영성이나 명상 등의 주제가 나오면
가장 어려운 문제가
하나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의식이 무엇이냐?' 라는 것이지요.
한편
의식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우리가 곧 의식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물고기가 물을 모르듯
우리도
의식에 관한 구체성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이 점이
명상이나 영성 수련에 큰 난제로
작용하지요.
영성 수련은
의식을 재료로 다루는 작업인데
그 재료에 대한 정보가
너무 미약합니다.
일반인을 위해
'의식이 무엇이냐?' 에 관한 설명을
비유를 통해 논해볼까 합니다.
이 설명은 비유이기에
이것을 자연 과학적으로 대입하는
실수가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영성 분야에서 종종 발생하는
유사과학으로
철학이나 영성을 혼탁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개념으로
의식을 설명하면
'고밀도의 단일 성분으로 구성된
유체流體' 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밀도와 성분이 등장하는데
이 요소(변수)로 인해
다양한 의식 상태가 발현하지요.
아무튼 의식은
물리/화학적으로
유체와 가장 흡사하고
경우에 따라
색,냄새,촉각,압력 등으로
인식 가능합니다.
이 인식은
세포 말단이 아닌
뇌의 해석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감각 인식이지요.
세포 신경계를 통하지 않은
직관적 감각이며
뇌과학의 입장에서
이것은
결코 신경계를 통한 인식에
뒤지지 않습니다.
숙련된 영성 수련자에게
의식은
안개나 구름같은
막연한 홀로그램이 아니지요.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고약한 물질을 다루고
요리사가
도마 위에서 식재료를 칼질하는
것과 동일한
실체성을 지닙니다.
영성 수련의 1차 목표는
유체인 의식에 단일성을 부여하고
밀도를 높이는 일이지요.
상용화를 위한 핵융합의 1차 목표는
실험실 상황에서
1억°C 이상의 초고온에
플라즈마를 400초 이상 유지하는
과제입니다.
이런 기초적 안정화가 있어야
24시간, 365일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같은 이유로
유체인 의식이
일정 수준의 단일성과 밀도에
닿아야
비로소
배경의식이 활성화됩니다.
이것이
사마디samadhi 상태이며
불교 철학적으로
본성을 본다는 견성이지요.
견성이든, 사마디든, 배경의식이든
초기엔
지속이 어렵고
밀도와 성분에 질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 현존한 경험은
우리의 모든 개념적 인식 체게를
뒤집어놓지요.
이 1차 관문을 지나야
영성에 관한
모든 이론적 설명이 정리되고
그 개념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며
자유를 얻게 됩니다.
남이 해준 음식에 의존없이
스스로
밥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것이
본격적 영성의 입문 단계입니다.
돌봄을 받아야 할 청소년이 아니라
독립된 성인으로서
설 수 있는 것이지요.
영성 수련에서
열정이 많이 강조됩니다.
예수는
"뜨겁거나 차갑지 않으면
뱉어버리겠다" 고 했지요.
이것은
차갑고 뜨거운 성질의 이분법이
아닌
명확한 입장이나 태도에 관한
열정을 가리킵니다.
불교 문화에선 유사한 상황에
'초발심'을 많이 언급하지요.
열정이 없으면
수련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나
그 과정엔
'효율'이 관건입니다.
1억°C 플라즈마를 위해선
엄청난 에너지의 투입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효율에 해당하는 기술적 요소가
결핍되면
에너지는 허무하게 낭비됩니다.
열정이
다가 아니지요.
종교에선
수련자의 윤리성을 강조합니다.
윤리성은
절대자의 비위를 거스러지 않으려는
'바른 생활'이 아니지요.
유체인 의식에
성분의 단일성을 높이는 작업이
윤리성입니다.
전통적으로
'순수' '정화' 라는 개념을 대입하지만
이 단어들엔
나름의 가치 평가가 진하게 물들어
있지요.
가치 평가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치 기준에 특정 문화의 편견이
깊이 배어있다는 점이
어려움을 낳습니다.
문화적 요소 이전에
영성에서 윤리성의 문제는
물리/화학적 차원으로
해결할 수 있지요.
신앙과 열정은
영성 수련에서 시작점이긴 하지만
이것이
결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단일 성분과 고밀도라는
효율의 문제가 중요해지지요.
의식의 단일성을 쉽게 풀면
'의식의 맑음'입니다.
잡다한 사념에 갇히면
맑음을 잃지요.
개념적 이분법에 깊이 물들어
있거나
사심私心이 있어
자기 중심성적 욕심에 붙들리고
중심없이
여러 자극과 견해들에 흔들리면
맑음은 사라집니다.
영성에서 윤리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신의 노여움을 사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 속에
갈등과 불안과 자기불신을 심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것이 맑음을 흐립니다.
윤리를 세워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의식의 '단일성'을 위해서지요.
원리를 모르면
종교는 미신입니다.
이제
단일화된 의식의 밀도를 올려야 할
차례이지요.
핵융합에서
1억°C라는 임계 온도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듯
영성 수련에서도
사마디 곧 배경의식의 활성화를
위한
임계 밀도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이 임계 밀도까지
지속적으로 그리고 간단없이
의식을 압축해야 하지요.
수련자에 따라
편차가 굉장히 심한데
누구에겐
한 두달이면 충분하고
누구는
1~2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임계 밀도에 닿지 못했다면
방법론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흔히
자질론을 많이 거론하지만
핵심적 장애는
방법론에 있습니다.
사마디를 위한 임계점은
천재성이나
특별한 인연의 가피가 필요치
않습니다.
대략 전체 인구에서
상위 60% 이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요.
지금까지
교단이나 전통이
우리를 지독한 선입관에 가두어
두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수 천년 우상을 팔아 장사를 했지요.
그들 또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들입니다.
그들 자신들도
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의식은 추상적이지 않으며
굉장한
감각적 재료입니다.
자신의 의식에 관한 통제력을
얻으려면
압축된 기간에
압축된 집중을 요구하지요.
봄나들이 하듯 설렁설렁 해선
결과는 없습니다.
"내 노력을 하늘은 알아주겠지!"
같은 낭만은 던져버려야
하지요.
영성 수련은
화학 실험실의 작업만큼
구체적이고
까다롭습니다.
효율이 없으면
실험에 투자한 연구비는
햇살 아래 이슬처럼 녹아나지요.
영성 수련에서
효율을 점검하는 항목엔
단일성과 밀도가 있습니다.
긴 수평선 홀로 고요하고
세상을 삼킨 아득한 창공
높은 권위 서로 밀쳐대도
아래서 빛나는 엉긴 밀도.
..260731小野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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