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며 먹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더러 이 말에 반박을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먹는 건 성욕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품성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근사한 이성을 자신의 곁에 둔
듯 한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다만 식욕도 성욕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거나 정도를 벗어나면
추하기 그지없어집니다.
남해를 여행하며 정말이지 그리웠던 것은 갓김치와 생물(生物)들이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굴이 생산되고,
갓김치를 남녘이라면 어느 곳이나 사철 담그는데 들어가는
음식점마다 이런 음식을 만날 수 없더군요.
한우의 본고장을 여행하며 한우 맛을 못 보는
거나,
봄부터 초여름까지 산나물이 지천으로 있는 고장에서 산나물
하나 맛을 못 본다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황당한 여정이겠습니까.
남해 여행은 이런 점이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마치 이번 여행에서 금산(錦山)을 스쳐 지나며 힐긋 처다 본 걸로 만족하고, 옛 사진이나 뒤적여 금산의 보리암을 찾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은
기억이 지배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해의 진산은 금산으로,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약속을 했던 “내가 왕이 되면 이 산을 모두 비단으로
덮어주겠다.”고 한 뒤 막상 왕이 되어 약속을 지켜려다보니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을 방법이 없었답니다. 결국 신하인 정도전의 묘안으로 이 산의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입니다. 그런 산을 스쳐지나야 했던 여정이 아쉬웠고, 어느 한 곳
제대로 머물러 둘러보며 편하게 사진을 촬영하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빡빡한 일정이 아쉬웠습니다.
첫날 점심은 자연산 회를 내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회덮밥이야 직접 초고추장으로
간을 맞추어 먹으니 그걸 탓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곁들여 나온 반찬들이 짠 탓에 제대로 반찬을 맛 볼
수 없더군요.
그저 회덮밥의 횟감만 집어 소주 몇 잔으로 속을 달랬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남도음식의
특징은 소금이나 간장 보다 맑은 멸치액젓을 주로 이용하여 간을 맞춥니다. 남도 분들이야 오래전부터 상대적으로 짠맛을 즐겼으니 대부분의 식당에서
짜게 내는 건 이해됩니다. 다만 주문을 받을 때 남도에 사는 분과 외지인들의 구분을 두어 간을 조절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틀째 되던 날 점심식사를 한 남해읍내의 ‘시골집’은 갓김치는 없었지만 생굴이 곁들여졌고,
서대구이와 꼬막을 내는 정성이 돋보이고 맛도
깔끔했습니다.
제 경험으로 미루어 이 집의 음식이라면 어느 고장
사람이라도 그리 불편하지 않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생각합니다.
남해읍내에서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시골집을 물어보면 대부분 이 집을
아시더군요.
또한 가까운 곳 대로변에 남해군에서 무료주차장을 운영하고
있기에 대형버스라도 얼마든지 주차가 가능합니다.
시골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식당과는 달리 가정집을 그대로 이용해서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식당을 선택하는 분들이라면 이 집은 그저
스쳐 지나칠 집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음식의 맛을 즐기는 분이라면 이 집은
무심코 지나칠 집이 아닌,
말 그대로 골목 깊은 곳에 숨어 있어도 기필코 찾아갈
맛집입니다.
근사한 솟을 대문을 달았다면 시골집이 아니라 기와집이나 대갓집으로 상호를
썼겠지요.
낮은 문은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간판도 시골집 이름 그대로 꾸밈이 없이 단출한
아크릴판으로 제작되어 상호와 전화번호만 있습니다.
동네 간판집에서 권해주는 글자꼴 그대로 간판을 만든 게
분명합니다.
비 오는 날이면 양철지붕을 후드득 두들기며 쏟아지는 빗소리가 감상적이게 들릴 거
같은 분위기의 ‘시골집’은 당장이라도 주름진 얼굴의 어머니가 달려 나오실 거
같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며 보니 마당도 그저 담장을
둘러치고,
몇 개 화분에 군자란이나 들꽃을 오밀조밀 키우며 살아가는
소담한 가정집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들께서 군자란이나 영산홍,
실란,
치자,
사랑초 같은 걸 시장에서 구입 해다 이리 키우곤
하셨지요.
시골집은 그런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일반 가정집을 약간만 손을 본 모양입니다.
방안에서 아버님이 기다리시다 한달음에 달려 나오실 거 같은
구조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난해하지요.
스스로 무엇이나 할 수 있음을 잊고 살아갑니다.
스스로 불성실함에 자주 일을 그르침을 모르고 남 탓을
하지요.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잘못되어진 대부분의 일들은 내가
부족하고 성실하지 못한 탓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밥집 하나도 제대로 하려면 철저하게 그 일에 몰두하고 전력을 다해 배우고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해도
3개월을 넘기지 못합니다.
제대로 음식을 내는 밥집이라면 근사한 꾸밈은 필요 없는
일입니다.
손때 묻은 기둥 하나로,
거기에 걸린 빛바랜 珠簾(주렴)
하나로 그 역사를 증명하고 그 자체로 꾸밈이 되는
것이니까요.
남의 이야기 귓등으로 흘려들어도 좋은 게 있고,
진정으로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밥집을 하는 이들 중에 상당수는 너무도 많이 타인의 말을
집중하여 망치는 걸 보게 됩니다.
더러는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도 흘려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쁨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어질기에 이런 구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약 된 방으로 들어서니 반찬들이 먼저 차려지기
시작했더군요.
자리를 잡고 앉자 이내 밥과 국,
다양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도가니에 든 걸 막걸리로 착각했었는데 맛을 보니
숭늉이더군요.
이 집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숭늉을 막걸리로 오해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안내를 하시는 (주)플로인의 함경숙 대표는 외투를 벗어 놓으면서도 다른 분들의 자리 배정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남해군의 조혜연 해설사님은 개인 그릇에 숭늉을 나눠주고
계시는데 역시 블로거인 김효니님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으시군요.
시골집의 차림표입니다.
기본 상차림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고,
몇 가지 특징적인 요리들이 곁들여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일행이 먹은 음식은 ‘진짓상’으로 제법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상이 좁을 정도로
차려지더군요.
김효니님은 12월 20일 경에 책이 출간된다 하십니다.
◀ 김효니님의 책 출간 안내와 ‘누나야 여보 할래’
3탄을 곧 연재하겠다는 알림이 있는 김효니님의 블로그 링크입니다.
책제목은
‘누나야 여보 할래’라 하는 책의 제목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먼저 이 제목을
‘남과여(blog.joinsmsn.com/kic2806)’를 연재 하시는 강춘 선생님께서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 김효니님의
블로그 ‘앤의 그림일기(blog.joinsmsn.com/dndkorea)’를 보며 강춘 선생님을 떠 올렸었는데 역시 두 분
인연이 깊으시더군요.
그림의 선이 강춘 선생님의 그림과 많이 닮지 않았나요? 같은 일러스트 작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강춘 선생님과 김효니님은 정말 맑고 순수한 면까지도 그대로 닮았습니다. 모르는 이들에게 부녀간이라고 소개를 하면 그대로 믿을 정도로
말입니다.
가끔 김효니님의 블로그를 들어가 글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 한 조각 슬며시 걸린 걸
느끼게 됩니다. 강춘 선생님의 작품에서 만나지는 인생의 진정한 통찰과 성찰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는 또 다른, 젊고 솔직한 새대가 지닌 밝음이
압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들 모르게 아파하는 이야기들이 예의 바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김효니님과 여행기간 함께
걸을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겸손하고 싹싹한 미인으로 사진을 촬영해도 거부감
없이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시골집에서도 사진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효니님을 모델로 저는 촬영을
해야겠습니다.”고 하자 웃어 보이십니다.
남해를 여행하는 동안 저는 끝까지 그저 무덤덤히 대답을 했었습니다. 앤의 그림 일기와 ‘누나야 여보
할래’를 가끔 보았다는 정도로만 말입니다. 처음 만나서 아주 오래 알던 사람처럼 대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물론 저야 별로 그런 거 게의치 않고
살아가지만 상대에 따라 강한 경계심을 품는 분들이 더러 계시기에 조심스러웠던 겁니다.
밥상을 촬영한 사진이 거의 없는데 이나마도 노출이 너무 많이 되어 하얗게
촬영되었습니다.
실내에서 적정노출을 잡으려면 셔터스피드를 느리게 놓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삼각대가 필수인데,
3일 아침 호암갤러리 앞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리며 두고
내린 탓에 이런 결과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기사분이 일찍 알았다면 그 자리로 돌아와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지금 찾을 방법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조만간 이전에 사용하던 수준은 못 되겠지만 다시 하나를
장만해야 하겠지요.
이 삼각대가 없다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들꽃이나 풍경,
특히 야경을 촬영하기 어렵습니다.
모두 부주의한 제 탓이려니 생각합니다.
첫댓글 감사......
배고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