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의 관정(官庭)으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28절). 그러면서도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예수님을 고소하였습니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 몸을 부정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유월절을 앞둔 유대인들은 로마 사람인 빌라도의 관정에 들어감으로 몸을 부정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 고발하면서, 율법의 조항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합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온 시간은 새벽이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인 저녁식사를 마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가 밤중이었는데, 밤중에 예수님을 끌고 가서 대제사장들이 심문을 한 후에 빌라도에게는 새벽에 끌고 온 것입니다. 밤새도록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고초를 겪으신 것입니다.
새벽에 들이닥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고 물었습니다(29절).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행악자(行惡者)가 아니면 여기까지 끌고 올 리 없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30절). 예수님이 행악자이기에 고발하러 왔다는 말입니다. 행악자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카콘 포이온”(κακὸν ποιῶν)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카콘”(κακὸν)의 원형인 “카코스”(κακός)는 “악한”, “나쁜”, “사악한”, “해로운” 등의 의미가 있는 단어이고, “포이온”(ποιῶν)의 원형인 “포이에오”(ποιέω)는 “머물다”, “동의하다”, “저지르다”, “행하다” 등의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즉 악한 것에 동의하며, 악을 행하며, 악에 머물러 있는 자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행악자라고 정죄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였기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신성모독죄를 적용하려고 했지만, 그러한 죄명으로는 로마의 법정에서 다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행악자라고 고발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미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처형하려고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너희 법대로 처리하라”라고 말합니다(31절). 신성모독죄는 유대교를 믿는 이들 안에서의 문제이지, 굳이 로마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이라고 졸라댑니다. 이 말은 결국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말씀하셨던 대로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빌라도는 호기심에 의해 예수님께 이것저것을 묻습니다.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는데, 주님은 이러한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이 빌라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묻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때문에 그렇게 묻는 것인가?”라고 되물으십니다(34절). 빌라도는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니 별로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주님이 뭘, 어떻게 했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데리고 온 것인지를 묻습니다(35절). 그러자 예수님은 분명하게 주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36절).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씀은 이 세상의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속한 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37절).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38절). 그렇지만 거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더욱 진지하게 예수님께 진리에 관해 묻고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들었다면,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참된 진리를 빌라도에게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기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예수님을 심문했을 때,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38절). 그런데 이러한 무죄 선언도 여기까지만이었습니다. 무죄라고 하면서도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방임하였습니다. 로마의 백부장과 병사들이 예수님의 처형에 동참한 것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처형하는 일에 방임한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행악자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의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순전히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그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속죄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십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의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죄 때문에 행악자의 자리에 서셔서 우리를 위해 그 수모를 다 당하시고, 죽임당하신 주님이십니다. 이제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를 위해 친히 죄인의 자리에 서신 주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과 경배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