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애들이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못 보고 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500년 전 남편의 정이 담긴 애절한 편지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의해 복원 공개됐다.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전반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한글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의미가 있다.
이 편지는 대전 유성구 안정 나씨 종중의 분묘 이장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남편 나신걸의 부인 신창맹씨 목관의 맹씨 머리맡에서 발견됐다. 이 편지는 당시 남편 나신걸이 함경도 군관으로 부임해 근무하던 중 고향에 있는 부인 맹씨에게 보낸 것으로 편지 뒷장에는 '회덕 온양댁'이라고 수신인이 적혀 있다.
본문 중에는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라고 부인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집을 그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바늘은 매우 귀한 수입품으로 알려져 있다. 편지글은 고어 한글로 정성스레 썼고 특히 16세기 사용되던 경어체 '~하소'라고 적어 부부가 서로 존칭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일명 원이엄마 편지(1586)에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이 절절히 흐른다.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서 아내는 서른 살에 급사한 남편을 애도하며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다"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나타나달라"고 애원한다.
조선시대는 남존여비 사회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아내가 상당한 결정권을 가졌다. 나신걸의 편지를 현대어로 옮긴 서원대 배영환 교수는 편지 내용의 대부분은 농사일, 노비 관리에 대한 당부다. 양반가 부인들이 집안의 대소사를 총괄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부부간 호칭도 평등하게 사용됐다. 16~17세기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자내(자네의 옛 형태)'라는 2인칭 대명사에 오늘날의 '하소'체 종결어미를 사용했다. 또한 '마누라'가 조선시대에는 아내에 대한 극존칭이었다. 19세기 흥선대원군이 청에 억류됐을 때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마누라' 호칭이 등장하는데, 이는 '대비(大妃) 마노라' 등 왕실에서 사용되던 호칭이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변한 것이다.
송귀근 국가기록원장은 부부의 날을 맞아 조선시대 부부의 정과 생활상을 담은 기록물을 복원했다며 조선시대 부부관계,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은 한지에 쓰인 이 편지를 초음파 봉합처리 기술로 복원해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도록 했다. 복원된 이 편지는 대전선사박물관에 보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