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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 날, 애벌레는 사는 것이 참 재미없어졌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단조로울까? 기껏 초록색이나 갈색만 보일 뿐. 참 지겹기도 해.” 그에게 있어 삶이란 오직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 그리고 먹이를 찾아 기어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매달려 있는 일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나뭇잎 외에는 쳐다볼 겨를도 없습니다. 드높은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고 밝은 해가 비춘들 애벌레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지만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일도 워낙 몸이 느리고 굼떠서 쉬운 일 만은 아닙니다. 한 이파리를 다 갉아먹고 재빨리 다른 데로 옮기지 않으면 굶어 죽기가 십상이지요. 요사이 입맛도 없어지고 알 수 없이 만사가 시들해진 애벌레는 이사를 가는 것도 귀찮아졌습니다. 그러나 굶을 없는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해오던 습관대로 느릿느릿 무거운 몸을 추려서 다른 이파리로 옮겨가다가 그만 땅에 나둥그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젠 죽는가보다 생각하며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태 본 적이 없는 푸른 하늘과 여러 가지 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몸이 완전히 거꾸로 뒤집혀졌던 것입니다. 알 수 없는 황홀한 전율이 지나갔습니다. 아아, 이게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꽃들과 꽃들 사이로 무엇인가가 어지러이 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흰색과 노란 색의 무리들이 가벼이 춤을 추며 날고 있었습니다. 저것들은 무엇일까?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천사들일지도 몰라. “당신들은 누구세요? 천사인가요?”하고 그가 물었습니다.
“아니야, 우리는 나비라고 하지. 바로 너란다. 네가 바로 나야.” 애벌레는 그 말이 결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저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나라니, 아마 나를 놀리는 것이 틀림없어. 아니면 아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 이렇게 이상하고 휘황찬란한 세상은 현실이 아니야. 결코 실제일 리가 없어.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꿈과 환상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습니다. 몸을 이리저리 꼬집어도 보고 굴러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몸이 다시 본래 상태로 뒤집혔습니다. 여태까지 익숙했던 색깔의 세상이 보였습니다. 그는 크게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환상에 빠지면 안 되는 거야. 현실을 냉엄하게 주시해야지.
그러나 그 날부터 애벌레는 이상한 환청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자꾸만 귓가에 “네가 바로 나야”란 말이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먹는 일도 귀찮아졌습니다. 여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가 누구일까‘하는 의문이 줄곧 그를 괴롭혔습니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죽어 가는 것이 전부인 이런 삶이 점점 지겨워졌습니다. 아름다웠던 나비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 모습을 생각해볼수록 자신의 몸뚱이가 더없이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 본 광경이 꿈이나 환상이었다 하더라도, 그 황홀한 광경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어떤 힘든 일도 할 것 같았습니다. ’나비‘라고 하는 것들이 춤을 추면서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던 그 광경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일까? ‘그들이 곧’ 나라는 말은 결코 믿을 수 없었지만 그 모습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친밀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답답하여 다른 애벌레 친구들에게 그 일을 말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똑같이 그가 환상을 본 것에 틀림없다고 단언하며 잊어버리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가 자꾸 그 일을 얘기하자, 그에게 “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하며 그를 병원에 집어넣으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하는 놀이라야 한정되고 비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이나 다른 애벌레들의 실수를 놀려대거나 비웃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즐기던 온갖 놀이들이 도통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재미있어 깔깔대는 것도 그에게는 무의미해 보이고 먹는 즐거움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직 혼자서 그가 보았던 광경을 되새겨 보는 것만이 최상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점점 그는 자기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보아도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은 몸이었습니다. 더욱 고약한 것은 자신의 입에서 뱉어 낸 말이었습니다. 기껏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처를 입히고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수많은 말들이 모두 쓰레기처럼 악취가 났습니다. 자신은 이런 몸뚱이도 아니고 말의 쓰레기들을 만들어낸 마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입에서 뿜어 낸 말로 된 실로 몸뚱이를 모두 싸보았습니다. 그 실들을 전부 풀어내어 몸을 칭칭 동여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눈부터 싸매고 귀, 코를 막고 마지막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몸에 있는 구멍들을 모두 막아버리자 한결 자유로운 느낌이 왔습니다. 봤던 것이 환상이라면, 그 환상은 바깥에는 없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환상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만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그 환상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왔습니다.
눈, 귀, 코, 입을 모두 싸매어 밖으로 향한 구멍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자 먹고 자고 말하는 것이 저절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며칠 몇날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깊은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강렬한 힘과 같은 것, 알 수 없는 에너지 같은 것이 올라왔습니다. 그것은 자유롭고 세찼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 수가 없지만 다만 거역할 수 없고 한편으로는 몹시 가벼운 어떤 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느리고 무거운 몸뚱이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가벼움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니.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몸이 사라지는듯하면서 붕 뜨는 느낌이 왔고, 그를 칭칭 감고 있던 것들이 스르르 풀어졌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여태까지 맛보지 못했던 자유로움과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무언가 세찬 힘에 의해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새 몸에는 아름다운 날개가 솟아 있었습니다.
높게 위로 날아오르자 그토록 그리던 온갖 눈부신 빛들이 보입니다. 자신과 똑같은 여러 친구들이 기쁘게 손짓을 했습니다. “드디어 본래 네가 되었구나. 우리 모두 다 같이 꽃에서 꽃으로 사랑을 나르자”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그를 에워싸서 인도해 나갑니다. 나무와 꽃과 풀잎, 바람과 해가 모두 활짝 웃음을 터뜨립니다.
우리 모두는 참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다. 인도의 요가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가는 인간 존재의 다차원적인 모든 요소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 심오한 깊이를 제공하고 있다. 지구의 자궁이라는 인도에서 태어난 요가는 세상을 물질성이라는 개념으로만 바라보는 서양의 과학이 도달하지 못하는 그 깊이에서 인간 존재의 내적 핵심이 어디인가 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우리가 삼차원적인 삶 안에 묶여 있을 때는 눈에 보이는 이 몸이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내가 느끼는 감각, 생각이 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갇혀 있을 때는 나는 바로 그런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허지만 인도의 요기들은 깊은 명상을 통해 자신이 바로 무한의식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냈다. 단지 그 의식이 몸과 마음이라는 속박에 갇혀 있을 따름이므로 그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사실 물질은 에너지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그의 상대성 이론에서 증명했지마는, 그는 몸이라는 물질성도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의식의 거칠고 개체적인 한 표현의 파동에너지는 몸이라는 물질성으로 나타나고, 보다 덜 거칠고 섬세한 표현의 파동에너지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인간 존재는 크게 신체적 층, 정신적 층, 영적인 층이 있다. 이 모든 층들은 전부 무한 의식(Infinite Consciousness)이 활동 에너지(Prakrti)에 의해 바뀌어 나타나진 상태들이다. 가장 바깥층에 있는 신체의 세포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나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먹는 음식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신체적인 측면을 위해서 우리는 아사나를 한다. 요사이 요가가 지나치게 신체적인 측면만 강조되게 된 것은 서양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다 물질적이고 외부지향적인 서양인들이 처음 요가를 만나게 되었을 때 요가의 깊고 넓은 세계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요가 자세(아사나)들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게 되고 아사나가 주로 강조되고 있는 하타요가를 처음 서양에 들여 온 것이 발단이 되어 하타요가가 마치 요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주로 모든 것을 서양으로부터 들여오는 우리나라 또한 하타요가가 요가의 주종을 이루게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몸은 마음의 기반이기도 하거니와 이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몇 개의 층으로 나뉘어 지고 있다. 마음의 가장 바깥의 층은 감각(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과 운동기관(손, 다리, 목소리 등)을 작동시키는 의식하는 마음(conscious mind)이다. 이 층에서는 외부 세상을 지각하여 조절하는 층이다. 예를 들어 누가 아이스크림을 보았다고 하자.(감각하는 것) 그는 먹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고 즉시 돈을 가지고 사러가거나(운동기관을 작동시키는 것) 혹은 먹고 싶은 것을 참는다. 우리가 보통 깨어 있을 때 사는 방식이다. 두 번째의 층은 잠재의식의 마음(subconcious mind))이다. 이 마음에서는 모든 기억을 저장해 두어 활용한다. 우리가 지식을 배울 때 이 층을 이용하여 학습을 배워나간다. 쾌락의 기억은 다시 쫓아가고 싶어 하고 고통의 기억은 버리려 하는 욕망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층은 기억과 욕망의 층이다. 보통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 층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층은 보통의 깬 의식이 활동하지 않는 잠자는 동안이 더욱 활발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꾸는 꿈들은 바로 이 층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서양의 심리학이나 정신과에서 주로 다루는 층이기도 하다. 그 다음 세 번째의 층은 초의식의 마음(superconcious mind)인데 이 마음에는 창조성, 직관, 그리고 가장 핵심인 영성(spirituality)이 있다. 이 층을 서양의 정신과학자인 구스타프 칼 융은 무의식(unconscious mind)이라고 불렀다. 칼 융이 이것을 집단무의식이라고 부른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모든 지식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안에 있는 정보는 개인의 두뇌에 의한 기억이나 경험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개인을 떠난 집단적인 종족, 인류 등에 대한 정보가 다 들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직관력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이 층에서 나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의식이나 잠재의식이 너무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이 층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받기는 힘들지만 가끔은 꿈에 영감을 얻는다든지 텔레파시에 의해 어떤 것을 예감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기도 한다. 이 층에 의해 예술가들이 창조력을 발휘하고 예언가들이 미래를 예지하기도 하고 영적 깨달음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다. 그 다음의 층에는 "황금 층"이 있는데 이 층에서는 순수의식과 사람 사이에 오직 엷은 베일만 있을 뿐이다. 마지막에는 어떤 마음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니르바나의 상태가 있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여행의 목적지는 마음과 몸을 넘어서 있는 나를 찾는 것이다.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어 그것들을 도구로 삼아 진정한 나를 만나야 한다. 진정한 나로 돌아가는 일, 이것만이 세상이라는 놀이터에 놀러 나온 우리가 가져야할 유일한 목표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만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참된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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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거의 20여년 전에 어느 요가잡지에선가 글을 부탁해서 바바의 요가심리학을 뒤져가며 쓴글이 우연히 나와서 여기다 실어본다. 하도 오래전에 쓴 글이라 감회가 새로와서 나도 다시 읽어보면서 간추려 보았다. 그 시절에 제법 이야기랑 요가사이콜로지를 적당히 베껴서 버물러놓아서 나도 내 솜씨에 조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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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언니가 쓰신 글이에요? 와 정말 놀랍네요 ...통찰력과 이해력과 표현력 등등 ...와 정말 어메이징!!!
그것도 20년 전에???
또 에고 팍팍 올라가는가 했더니 자나키가 또 쫑코를 날린다. "언니의 통찰력, 아난다 마르가, 바바덕분이지" 병주고 약주고 하는 자나키, 나도 그 눈치는 안다. 에고 에고하면서 에고하는 에고쟁이 샨티 이만큼이라도 사람만드느라 애쓰시는 바바 속!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요 ^^
늘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와우~~.
좋은 내용 고맙습니다.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