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빽'은 통하지 않아
1998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나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제의를 받아 감독으로 옮겨갔다. 레알 마드리드를 거의 1년 동안 지휘하면서 성적도 매우 좋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그 해 12월 도쿄에서 열린 도요타컵 대회(세계 프로축구컵 대회)에서 우승했다. 도요타컵은 코파아메리카(남미)우승팀과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 단판 승부로 세계 최강 프로팀을 가리는 권위 있는 대회였다.
내겐 진작부터 도요다컵을 꼭 안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1988년 PSV는 우루과이 몬데비데오를 상대로 2대 1로 앞서다 경기 막판 89분에 동점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연장 접전을 펼쳤지만 결국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PSV는 아깝게 졌다.
레알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그 도요타컵 대회에 나가게 되어 감회가 컸다. 스페인 기자들은 내게 도요타컵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내가 27년 동안 간직해온 콧수염만큼이나 의미가 크다고 답해 회견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나는 우승하면 콧수염을 깎겠노라고 공언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우승했고. 나는 기자들과 맺은 약속을 지켰다. 이후 콧수염을 다시 기르지 않았다. 사실 콧수염을 기른 것은 젋은 시절 장난기 넘치는 팀 동료들 때문이었다. PSV아이트호벤에서 뛰던 1971년 여름, 우리 팀은 필립스 광고를 찍느라 인도네시아에 갔다. 귀국길에 고국 팬들에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콧수염을 기르기로 했던 것이다.
그 후 콧수염을 간직해온 세월과 함께 불편도 커갔다. 담배를 피울라 치면 콧수염에 담배 연기가 배 불쾌한 적도 많았다. 나는 잘됐다 싶어 레알 마드리드 우승과 함께 콧수염을 깎아 버렸다.
레알 마드리드가 도요타컵 대회에서 우승하기는 처음이었다. 감독 개인에게도 큰 업적이었고, 레알 마드리드로서도 큰 성공이었다. 시즌도 아주 잘 굴러갔다. 그러나 1999년 3월부터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더니 결국 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단초는 간단했다. 구단 고위 관계자 아들이 하필 레알 마드리드 선수였다. 이 고위 관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자기 아들이 주전 선수로 뛰게 되기를 희망했다.
이전 감독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그 선수가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았다. 자기 뜻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그 아버지는 여기저기 불평을 하고 다녔다. 구단 사람들도 그를 옹호하는 쪽과 나를 두둔하는 쪽으로 갈렸다. 나중엔 내게 직접적인 압력이 들어왔다. 난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 구단은 내분에 휩싸였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사임하는 게 제일 속 편했다.
만약 내가 요구에 응했더라면 자리는 보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내 양심에 어긋났고, 내 원칙을 꺾어가면서까지 일한들 그 일이 즐거울 리 없었다. 내가 팀을 책임지고 전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차라리 해고되는 편이 나았다.
나는 오로지 축구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싶었다. 다른 정치적 요인이 끼여든다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감독으로서 내리는 최종 결정은 오로지 축구에 의해, 축구를 위해 축구를 통한 결정이어야 한다는 게 내 신조다. 만약 내가 일하는 환경이 나를 얽맨다면 나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없고,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면 올바른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구단 고위 관계자 아들을 데리고 팀을 꾸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기는 생리적으로 싫었다. 그러면 내가 현실과 타협하는 꼴이고, 나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그만두고는 몇 개월을 쉬었다. 마드리드에 살면서 가끔 네덜란드 TV의 스페인 리그 해설자로 활동했다. 가끔은 유럽 축구를 중계하는 카날플러스(Canal+)TV에도 해설자로 얼굴을 내밀었다.
세비야에 있는 레알 베티스 구단이 감독직을 제의해왔다. 베티스 구단의 성적이 부진하자 감독을 시즌 중반에 해고한 직후였다. 몇번 거절하다 남은 시즌만 맡아달라고 간청해서 동의했다. 하지만 팀이 워낙 엉망이라 성적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나는 1999년 시즌부터 다시 TV해설자로 나섰다. 당시 나는 네덜란드와 스페인을 오가며 생활했다.
------출처 히딩크 자서전------------------------------------
안타 깝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죠 사퇴를 하지안앗으면 한국의 4강신화는 없을꺼같다는.......
첫댓글 그 당시 피구의 바르셀로나한테 3대0으로 져서 사퇴했습니다..이런 결과도 무시하면 안되죠
히딩크 자서전...사서 읽어봐야제....
근데 솔직히 레알마드리드 같은 명문팀이 설마 구단고위관계자 아들이라고해서 그를 주전으로????혹시 그 선수 라울 아닌감??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