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왕의지명수배이유
영국의 왕과 왕의 측근들은 그를 체포하기위해 유럽으로 스파이들을 보 냈지만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10년 동안 붙잡히지 않았다. 이 조용한사람이 무슨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영국의 지명수배 명단 첫머리에 놓였단 말인가?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삶이 거룩함의 모델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의 유일한 죄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1500년대의 영국은 단하나의 교회: 로마가톨릭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교회는엄청난부와권력을소유하고있었다.정부는 교회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체적으로 법을 집행하도록 허용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내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을 돕기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가난해서 빈민굴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교황을 대표하는 월시추기경 (Cardinal Wolsey)은 500명의 종들을 거느리고 궁전에서 살았다.
영국에 있는 모든 성경은 라틴어로 씌어 있었다. 그리고 교회의 허락 없이 성경의 어떤 부분이든지 번역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을 일반인들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성경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게 되면 교회의 가르침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영어로 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땅과 재산과 생명을 잃게 된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교회와 정부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감히 영어로 주기도문이나 십계명을 가르치는 남자나 여자들은 즉시 화형에 처해졌던 것이다.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드디어 신약성경 번역
윌리엄은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림이었다. 그는 젊은 청년시절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가 사제가 되기 전에 언어와 논리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일곱개 언어에 능통한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마음으로 불타게 되었다. 사람들을 가르치는 많은 사제들이 라틴어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했다.
옥스포드와 그 후 캠브리지에서 공부를 마친 후, 그는 부유한 가정의 가정교사가 되었고, 마을교회에서 설교하게 되었다. 윌리엄은 우리가 행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그의 설교가 그 지역의 지도자들을 분노케 하자 그는 런던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주교의 승인을 얻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후 출판하려고 노력했다. 주교는 그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윌리엄의 설교를 좋아하는 한 부유한 사업가가 그를 돕기로 했다. 그는 윌리엄에게 독일로건너가 그곳에서 번역작업에 매달리라고 충고를 했다. 그 후 윌리엄은 그에게 인쇄 된 사본들을 보낼 수 있었고 그는 그것들을 곡식주머니에 넣어 영국으로 몰래 들여오곤 했다.
윌리엄은 지칠 줄 모르고 헬라어 신약성경을 번역하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각각의 단어를 주의 깊게 선택하였다. 비록 그가 영국인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를 시용하긴 했지만, 거기에는 시와 같은 아름다움과 리듬이 있었다.
윌리엄의 신약성경이 영국에 도착하자 수요가 너무나 커서 다른 인쇄업 지들이 점점 더 많은 인쇄본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사형 위기 속에서도 다시 구약성경 번역착수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격분했다. 그들은 윌리엄의 성경을 소지한사람이면 누구든지 체포하고 투옥시키고 사형에 처함으로써 그에 맞서 싸웠다.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윌리엄은 구약성경 번역에 매달리면서 이곳저곳을 자주 옮겨 다녔다. 한 번은 어느 만취한 인쇄업자가 그를 찾기 위해 파견된 스파이들 중 한 사람 앞에서 그에 관해 이야기했다. 윌리엄은 아슬아슬한 때에 그 소식을 듣 고서 자신의 소중한 번역본들을 가지고 가까스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책들을 쓰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헨리 8세 왕이 좋
아하는 책도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Obedience of a Christian Man)’ 이라 이름 붙인 그 책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하나님의 법을 거스리도록 요구하지 않는 한정부에 복종하라고 권고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헨리왕은 왕의 이혼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교황과 싸고 있었다. 그들의
논쟁이 심각해져 가면서 왕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고 교회는 점점 약화되어갔다.
이혼한 후에 왕은 믿음 때문에 추방된 영국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윌리엄은
다소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 무렵에 그는 헨리 필립스(Henry Phillips)리는 한 젊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영적인 것들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하는 체 했다. 윌리엄은 그를 도와주었으나
필립스는 윌리엄을 덫에 걸리게 하였고, 결국 윌리엄은 체포되고 말았다.
4개월 동안 윌리엄은 벨기에의 브뤼셀 근처에 있는 차가운 지하 감옥에 쳐 넣어졌고
누구의 방문도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선한 태도가 간수 에게 너무나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그 간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러나 윌리엄은 마침내 하나님의 대적자인 이교도로 정죄되어 교수형에 선고되었고,
1536년에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 시키는 니무에 묶일 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주여, 영국왕의 눈을 열어주소서!“
윌리엄 틴데일의 기도는 놀랍게도 응답되었다.
그의 죽음직후에 한 친구가 성경을 인쇄하여(윌리엄의 번역본전부를 포 함) 헨리 8세에게 바쳤다.
그것은 박해 없이 유포되도록 허용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 되었다.
나중에 윌리엄의 번역본은 1611년에 왕에 의해 공인된 킹 제임스 성경어법의 90% 이상을
제공했다. 윌리엄의 번역본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첫댓글 할렐루야! 원어를 최초 번역한 순교자 틴데일의 피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분의 영향으로 우리가 지금 귀한 성경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생명을 다해 말씀의 생명줄을 후손들에게 남겨주신 윌리엄 틴데일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귀한 종을 세우사 암흑시대를 뚫고 빛을 전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도 눈뜨게 하소서...
처음 위의 분을 알게 된 것은 만화 "교회를 부탁해"에서 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 위해 주소 붙입니다^^
http://heavenlyspy.com/bbs/board.php?bo_table=eccle&wr_id=341&page=1
이렇게 위대한 종들 덕분에 오늘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