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英 새 총리, 42세 인도계 수낵… ‘최연소-첫 非백인’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총리
선거사무실 나서는 수낵 영국 총리로 확정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오른쪽)이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을 위한 후보 등록 하루 전인 23일(현지 시간) 런던 자신의 선거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내각책임제인 영국은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런던=AP 뉴시스
정치와 경제 모두 초유의 혼란에 빠진 영국의 새 총리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사진)이 확정됐다. 올 들어서만 세 번째 총리다. 42세의 수낵 전 장관이 총리가 되며 영국 첫 비(非)백인이자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다. 그러나 전임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감세 정책의 대실패로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는 등 영국이 세계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은 데다 막대한 부채 등 구조적 위기가 여전해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4일(현지 시간) BBC에 따르면 수낵 전 장관이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에 단독으로 후보를 등록했다. 보수당은 “수낵 전 장관이 차기 당 대표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트러스 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힌 지 4일 만이다. 수낵 전 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영국은 위대한 국가이지만 엄청난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경제를 바로잡고 보수당은 통합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날 보수당 의원 357명 가운데 수낵 전 장관을 지지한 의원은 최소 192명으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이날 오전 보수당 의원들의 지지표가 한꺼번에 몰렸다고 BBC는 전했다. 혼란한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반영됐다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당 대표 후보로 등록할 수 있는 요건은 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 확보다. 유력한 당 대표 경쟁자로 거론되던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전날 “당이 통합되지 않으면 잘 이끌 수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재무통’ 수낵 “英경제 바로잡겠다”… 고물가-경기침체 해결 험로
트러스와 달리 재정건전성 강조… ‘감세안 쇼크’ 뒤 재평가 받아
재산 1조원, 프라다 신발-양복 즐겨… 부인 해외소득 세금 안내 구설도
野 “조기 총선을” 협조 여부 의문
“경제를 바로잡겠습니다.”
영국 총리로 확정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은 보수당 대표 경선 전날인 23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이렇게 밝히며 초유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재무장관 출신 ‘경제통’ 수낵 전 장관이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시달리는 ‘영국호’를 이끌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명품 프라다 입는 인도계 ‘금수저’ 엘리트
영국 첫 비(非)백인 총리인 수낵 전 장관은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종교는 힌두교다. 케냐에서 태어난 인도계 의사 아버지와 탄자니아에서 출생한 인도계 약사 어머니를 뒀다. 1960년대 영국으로 이주한 부부는 1980년 수낵 전 장관을 낳았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와 헤지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그는 2015년 의회에 입성했다. 2020년 보리스 존슨 내각 재무장관으로 발탁되며 ‘존슨의 남자’로 통했지만 올 7월 ‘파티게이트’로 존슨 전 총리가 사퇴 위기에 몰리자 가장 먼저 장관직을 던져 존슨 전 총리를 압박했다.
부인은 인도 정보기술(IT) 대기업 인포시스 창업자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인 디자이너 악샤타 무르티다. 그와 부인의 재산은 약 7억3000만 파운드(약 1조1886억 원)나 된다. 그럼에도 부인이 해외 소득 관련 세금을 내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 수낵 전 장관도 명품 프라다 양복과 신발을 착용하고 비싼 펠로턴 자전거를 타고 다녀 눈총을 받았다. BBC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노동자 계층 친구가 없다”고 말해 서민이 처한 경제 위기를 제대로 체감해 해결하겠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수낵 전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재정을 신속하게 풀어 일시 해고자를 지원하는 등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와 경선할 때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하면서 긴축 재정과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를 통한 성장 정책을 “동화 같은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의 발언은 세계 금융시장 혼란을 일으킨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안 쇼크’ 이후 재평가되고 있다.
○ 고질적 경제난과 야권의 총선 요구 직면
시장은 앞서 그가 총리로 유력하다는 소식에 반응했다. BBC에 따르면 지난달 말 감세안 쇼크로 5.17%까지 치솟은 영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4일 오전 3.9%대로 떨어졌다. 미국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도 올라 이날 오전 1.13달러대에서 거래됐다.
감세 정책을 뒤집은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도 전날 수낵 전 장관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헌트 장관은 31일까지 의회에 제출하는 내년도 예산안에 고소득자 대상 ‘부자 증세안’을 포함한 200억 파운드(약 32조7600억 원) 규모 증세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신뢰 추락 및 고물가와 성장률 둔화라는 위기의 근본적 해결은 난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영국 경제성장률을 0.3%로 전망해 4월 전망치(1.2%)보다 더 낮게 예상했다. 또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1%로 영국중앙은행(BOE)의 가파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앙투안 부베 ING 선임 금리 전략가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투자자들은 차차 영국으로 돌아오겠지만 그런 일이 빨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기 총선을 주장하는 야권이 신임 내각에 제대로 협조할지도 의문이다. BBC에 따르면 앤절라 레이너 노동당 부대표는 “아무도 수낵을 (총리로) 뽑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