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이란 용어가 있다. 새로운 정보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론이나 세계관, 그리고 확신하고 있는 정보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다. 쉽게 말해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명제를 이미 확증해 놓고 그 확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반복하고 그 증거를 찾는데 몰입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면 A가 B와 C를 대할 때 이미 B로 확증해 놓고는 C를 중요하게 의미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B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런데 이 확증편향이 좋은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결정적인 맹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판사들도 이 확증편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하여 재판에 들어가기 전 수사기관이 제공한 증거를 미리 보지 못하도록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를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확증편향은 모든 생각의 오류들의 아버지이다. 일반적으로 확증편향에 빠지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과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일명 ‘확인되지 않은 증거’라고 부른다)는 일체 받아들이지 않고 걸러내게 된다.
대체적으로 건강·처세술과 관련된 책들이 확증편향 위주로 서술된다. 예를 들어 ‘명상은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라면서 케케묵은 이론들이 나열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책을 쓴 영리한 저자는 그 이론을 입증할 사례들을 산더미처럼 풀어놓는다. 그러나 그 반대의 증거, 다시 말해 명상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명상을 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한 줄도 싣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그런 책들의 함정에 빠지는지 비참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확증편향은 인간의 무의식중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믿고 있던 어떤 신념이 허점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마치 자신이 확신하는 신념 앞에 소음 장치를 한 보호막을 세워놓고 있는 것과 같다.
최근에는 SNS가 발달하여 확증편향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댓글 등을 달면서 유대감이 증대된다. 자신들의 의견과 반대되는 이야기는 ‘왕따’를 시켜서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점점 더 같은 생각을 가진 서클(circle) 내에서만 활동하게 되고, 이런 성향이 확증편향을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