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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다양하다. 몇 사람이 모여 이에 대해 토론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고,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다보면 언성도 높아지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더구나 한국 교회는 남선교회, 여전도회로 부르고 있어 선교와 전에 이해가 남녀 평등의 문제까지 나오게 되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끌려가고 만다.
그러므로, 현대 선교 신학을 두 진영의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으로 관찰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1. 전도와 선교라는 말의 뜻
먼저 우리가 먼저 선교와 전도의 원래 적인 의미를 찾아봄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자. 선교란 본래 라틴어의 missio를 번역한 말로 파견이나 사명이란 뜻을 지닌 말이다. 전도는 헬라어의 evangelion을 번역한 말로 복음 또는 기쁜 소식이란 뜻이다. 이 원래의 의미에 따라서 전도라 할 때는 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로 선포하고 비 기독인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동시에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전도는 신약시대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말로 현재까지 거의 의미 변화 없이 사용되고 있는데, 주로 동일한 언어권이나 문화권에서 수행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선교라는 말은 중세의 프란치스칸 수도원(Franciscan Order)에서 처음 사용하였는데, 그곳의 수도사를 '선교사'라고 부른데서 라틴어의 missio 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이 때 선교사란 말은 초대 교회의 사도의 개념과 같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 말이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성직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선교사(보냄을 받은 자)"라는 명칭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개념이 얼마 후에는 그 의미를 상실하였는데, '선교사'라고 불리던 수도사들도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정체와 교리를 선전하고 확장하는 일을 했다. 아직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영향 아래 있지 않는 다른 나라에 나 지역에 가서 교회의 교권 신장을 위해 나선 신앙의 용사들을 선교사라 부르게 된 것이었다.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무너져 가는 로마 교회의 기틀을 회복하려는 일념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선교의 개념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도 그대로 나타나 '타락한 신자들을 교회로 다시 불러모아 신앙을 회복 시켜 주는 일을 선교라 생각하여 사회의 여러 문제는 정부의 할 일이요, 교회는 심령의 일만 취급하는 것으로 위축시켰다.
18세기 이후의 선교는 대개 외국 선교를 의미하는데,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못한 곳이나 덜 알려진 곳에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곧 선교였다. 즉, 사람들을 교회로 모아다가 회개시켜 세례를 베푸는 일을 선교의 지상 목표로 삼고, 비기독교 국가나 사회에 그리스도교를 심고 조직하는 일만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또 실천해 온 것이다. 전도자를 해외에 파송하여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복음적인 사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러한 지리적이고, 전통적이며 고전적인 개념은 교회 안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어 별다른 비판 없이 사용되었다. 신약 성서에서도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마28:18)이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이 복음의 전파가 예루살렘에서 그 주변으로 전파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로마 제국에서의 선교도 이웃 나라로 확대해 가는 형태이었으며, 신대륙 발견 이후 근대적인 선교 운동도 기독교 천하였던 서구에서 비기독교 지역인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성장시키는 사역이었다. 기독교 권과 비기독교 권이 확연히 구분된 시기에 형성된 선교의 개념은 저절로 지리적인 개념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2. 복음주의 선교 이해
1) 개신교 초기의 선교사들의 선교 원칙
최초의 개신교 선교 운동의 주창자들이었던 독일의 경건 주의자들의 선교도 초기에는 매우 포괄적이었다. 1706년 인도에 도착하여 개신교의 최초의 선교사인 지겐발크(Bartholomew Ziegenbalg)와 플뤼차우(Henry Plutschau)는 다섯 가지의 선교 원리를 중심으로 사역하였다. ① 교회와 학교를 병행해야 한다. 모든 신도들이 성서를 읽도록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② 성경은 원주민의 언어로 번역하여 읽게 한다. 지겐발크는 타밀어를 배워 1714년 신약 성서를 완역하였고, 구약의 룻기까지 번역하였다. ③ 복음은 원주민의 정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기초로 해야 한다. 원주민의 의식 구조와 문화에 맞추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주민의 종교와 문화를 연구하면서 선교하였다. ④ 선교의 목적은 명확히 개인의 개종에 둔다. ⑤ 가능한 빨리 원주민의 지도자를 가진 인도 교회를 출연시켜야 한다. 위의 다섯 가지 선교 원칙을 보면 선교사들이 개인구원이나 교회 개척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으나 초기의 경건주의 자들의 선교는 상당히 사회 봉사도 겸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2) 윌리엄 케리의 선교 원칙
근대 개신교 선교의 개척자이면서 위대한 세기를 열었으며, 해안 선교시대를 시작하고, 놀라울만한 사랑과 희생을 보인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1793년 인도선교사가 에 가서 1834년 현지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한 40년의 긴 선교생활에서 5가지의 기본 원칙을 따라 선교했다. ① 정치적 상황이 허락하는 한 많은 지역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광범위하게 전도하였다. ② 성서를 원주민의 말로 번역하여 선교하였다. 그의 선교 30년 동안 신구약 성경이 6개 언어로, 신약이 23개 국어, 10개의 언어로 성경의 일부를 번역하였다. ③ 교회를 세워 영국 침례 교회와 연관을 갖게 하되 거기에 종속시키지 않고 현지 교회와 선교회가 일체가 되어 사역하도록 하였다. ④ 기독교 복음만을 구원의 진리로 확신하였으나, 원주민의 언어뿐 아니라 사고 방식과 습관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 이방 종교는 마귀의 기만으로 보았다. 그러나 힌두의 생활양식과 관습에 대한 와드의 책(1806년)과 산스크리트 문법책은 기념비적인 공로였다. ⑤ 가능한 빨리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여 그들과 동역하도록 한다 윌리엄 캐리의 선교 활동의 단계를 간단히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개척 단계 - 부자 관계(부형적) 단계 - 동역 단계 - 참여 단계
3) 삼자 원칙
기독교 지역인 유럽에서 비기독교 지역으로 가서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육성하는 것이 선교의 골자로 형성되어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영국의 헨리 벤(Henry Venn)이나 미국의 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같은 선교 운동가에 의해 3자 원칙이 주창되었다. 런던 교회 선교 협회의 간사인 헨리 벤은 1854년 선교의 목표를 자치적(self-governing)이고, 자립적(self-supporting)이며, 자기 번식적(self-propagating)인 교회의 성립을 말하면서 동시에 선교부의 안락사를 말했다. 선교부가 일단 교회를 세우면 그 선교부는 그 지역에서 없어져도 좋다는 것으로 선교사는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으로 가고 그들이 세운 교회는 성령의 지도 아래 교회의 모든 기능을 발휘하도록 내버리는 것을 말했다. 벤과 엔더슨은 독립적으로 활동했으나, 실재로 동일한 기본 원리에 도달하였다. 에드슨은 선교사의 사명을 복음을 전파하고 개종자들을 교회 안에 모아들이는 것이다고 주장하면서 선교사는 언제든지 복음 전도자여야지 목회자나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를 활용한 무디의 부흥 운동이나 해외 학생 자원 운동이 일어나 영혼 구원 위주로 더욱 편중되게 되었다. 무디는 자주 설교에서 이 세상을 난파당한 배로 비유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선(교회)에 태우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고 했으며, 학생 자원 운동도 이 세대에 세계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무디 이전까지의 선교에 대한 개념은 매우 넓었고, 기독인의 사회에 대한 책임까지를 수용하였는데, 왜 무디는 영혼 구원을 주된 목표로 삼았을까? 1873년부터 영국에서 부흥운동을 시작하여 1899년까지 계속하였으니, 그 기간 전에 있던 몇 가지의 일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즉,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과 1861-65년 사이의 남북 전쟁, 1854년과 1870년에 카톨릭 교회의 마리아 무흠 잉태론과 교황 무오설등 이러한 여러 이유들과 미국 내에서의 청년들의 타락한 생활 그리고 과학의 발전 등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대한 후견인으로서의 종교적 역할을 거부하면서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니면, 비기독교 세계에서 선교사들이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기독교 세계에서는 영적인 타락의 양상을 보고 개인 구원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장신대 이형기 교수의 다음 말은 이러한 변화를 추측하게 한다. "18세기에는 이성을 계시로부터, 자연을 초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철학을 교회와 신학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계몽주의 운동에 맞서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과 영미 계통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과 선교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무디와 해외 학생 자원 봉사단의 성격이 개인 구원에 많은 비중을 두기 시작한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구원에 강한 영향을 받은 선교 단체들이 에딘버러의 국제 선교 대회의 성향에 반대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4) IFMA 와 EFMA
1910년 에딘버러에서의 세계 선교 대회 이후에 신학 성향에 이의를 가졌던 몇 몇 독립 선교회를 중심으로 1917년 프린스튼에서 초교파적인 해외 선교 협의회(The Interdenomination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 IFMA)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9세기의 경건주의 적인 선교 운동을 벗어나려는 에딘버러 대회를 반대하여 근본주의 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 에큐메니칼 노선을 지지하는 단체와의 협력과 교제를 거부하였다. 처음에는 7개의 독립 선교회로 출범했으나 점점 그 회원 수가 늘어나 보수적인 복음 주의자들의 대표적인 선교 협의 기구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모든 선교회원들이 복음적 교리와 역사적 기독교의 표준을 고수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직 전해지지 않는 지역에 복음을 전할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60년 시카고 대회에서는 선교에 대해서 "지상 명령에 대한 순종과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였다.
이 IFMA의 보수적인 노선에 불만을 품고,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의 진부한 신학 논쟁과 잦은 교회 분열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를 가진 온건한 복음 주의자들의 연합의 필요성에서 NEA를 1943년 창설하였다가 다시 1945년에 복음주의 선교 협의회(Evangelical Foreign Missions Association, EFMA)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신학적인 포용력을 가지고 오순절파까지 수용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로는 신학적인 큰 갈등 없이 협력하면서 복음주의 선교 운동을 주도하는 양대 산맥이 되었다.
이 국제적인 협력기구와 함께 살펴보려는 것은 교회 성장 운동인데, 이 운동은 맥가브란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선교에 중심이 되는, 그리고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제자와 그의 교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교회 성장의 중심은 복음 전도이다. 잃은 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5) 휘튼과 베를린 선교 대회
1966년 휘튼의 선교 대회는 IFMA와 EFMA가 공동으로 후원하여 열린 세계 선교 대회인데, 이 대회는 WCC의 선교 대회를 보면서 복음주의자들도 일치된 방향과 신학 확립의 필요성을 긴박하게 느껴 소집되어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은 성서를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유일의 권위있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선언한다. 복음적 사명을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복음은 우리 시대의 모든 종족과 언어와 국가에 전해져야 한다.
이 복음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고찰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천명한다. ①첫째 문제는 종교적 혼합주의인데, 기독교의 진리의 유일성과 궁극성을 부인하는 종교 혼합주의는 성서에 계시된 기독교적 진리를 다른 종교나 사상체계의 교리나 생활과 결합 혹은 화해시키려 한다. 선언문은 종교적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폭로한다. ② 둘째 문제는 새로운 만인 구원설인데,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에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까지도 화해된다는 이론을 배격한다. 그러므로 제2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많은 변화가 카톨릭 교회에 있다고 해도 '우리의 훌륭한 자매'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③ 사회적 관심에 대해서도 논의하여, 오늘날 사람들이 당면하고 있는 커다란 사회 문제에 복음주의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선언한다. 인종간의 평등, 인간의 자유, 모든 형태의 사회 정의와 인류의 복지가 전 세계를 통하여 이루어져야하고,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이 일을 위해 분명하게 일어서야 한다. 낭비적이고 불필요한 경쟁은 피해야 한다.
1966년 베를린에서 열린 복음화를 위한 대회는 "한 민족, 한 복음, 한 과업"이란 주제 아래 세계와 교회에 있어 복음 전도의 위치를 재고하였다. 이 대회는 WCC가 소홀히 다루고 있는 복음전도 문제를 이 대회에서 교회의 가장 긴급하고 소중한 과업으로 천명했다. 이러한 세계 복음화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평신도들이 직업 전선과 세속 생활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6) 로잔 언약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는 복음주의 선교 신학이 분명히 나타났다. 신학적으로는 복음적인 입장에 분명히 섰고, 성서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복음 전도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전도라는 차원에 있던 복음주의 신학을 선교라는 차원으로 눈을 넓힌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스토트(John R. W. Stott)는 선교를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활동'이라고 개념을 정리하면서,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나와야 하고 그것을 본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대회는 선교를 복음 전도와 사회적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활동을 복음 선교의 동역자로 인정한다는 것이지 대치할 수 있는 것이나, 우선 순위를 바꾼다는 것은 아니다.
로잔 대회가 천명한 로잔 언약 중 4항의 복음전도의 본질을 보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성경 말씀에 따라 죽었다가 살았으며, 모든 믿는 자에게 죄의 용서와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는 복된 소식을 전함이다. 세상에 들어가 사는 기독인의 생활은 전도에 꼭 필요한 요소이며, 기독인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을 설득하여 하나님 앞으로 개인적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5항의 사회적 책임에서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이 상호 배타적이라고 생각에 유감을 표하면서 복음 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가 모두 기독교인의 임무임을 확인했다. 6항의 교회와 복음전도에서는 모든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모든 세계에 전할 것을 요청하면서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 목적의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이 선택한 수단이다. 제 10항 복음 전도와 문화에서는 교회는 그리스도에 뿌리를 박고 그 주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형성된다. 그러나 문화는 언제든지 성서에 비추어 시험되고 판단되어야 한다. 흔히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복음과 더불어 자기네 문화를 수출해 왔었다. 그리고 교회는 성서의 종이 아닌 문화의 종이 되기도 했다고 반성한다. 제15항 그리스도의 재림에서는 선교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가 계속되어야 할 것을 천명하였다.
7) 마닐라 선교 대회 - 제 2차 로잔 대회
로잔 대회는 하나의 운동이 되어 계승되어 왔다. 1989년 마닐라 대회에서는 1차 대회 이후 선교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확인하고 찬양하는 대회로 마닐라 선언문을 통해서 로잔 운동의 선교 신학과 정신을 확인해준 대회였다. 이 선언문은 모든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주님 오실 때까지 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 2부의 12개의 선언 중 우리의 논점과 관계된 문항을 살펴보면, 2항의 오늘을 위한 복음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 길을 주셨다. 회개하고 그를 믿는 자에게 살 길을 주셨다. 이런 복된 소식은 담대히 선포되어야 한다.' 3항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서는 '이 다원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전해야 한다.' 다른 종교가 복음의 대치물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서 상대주의, 혼합종교를 배격한다. 4항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서 '복음 전도의 주된 관심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모시게 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과 선한 사업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5항 복음 전도자이신 하나님 '하나님 자신이 전도자이시라는 말은 그분 없이는 복음 전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항에서는 하나님은 인간인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이를 위해 평신도를 훈련할 필요가 있다. 7항 완전한 증거는 변화된 삶이다고 했다. 8항에서는 개 교회의 중요한 책임은 복음 전파다. 10항은 복음 전도의 환경을 살피고, 복음과 상황의 균형이 필수적이다고 했다.
8) 복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사회에 대한 책임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주의 선교에서 교회의 사회적 인식이 변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로잔 대회를 기점으로 그 전에는 교회가 가지는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했지만 로잔 대회와 마닐라 대회를 거치면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전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 구원이냐 사회에 대한 기독인의 책임이냐 에서 양자 택일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컨실리아 라인에 대해 개인 구원을 강조하였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영향을 미치는 곳이 교회뿐이라는 편협한 생각이 만유의 주나, 사회나 역사의 주인으로서 주님을 망각하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한 일에 관여하는 것처럼 여기는 오해 때문에 스스로를 사회에서 분리시키고 초연하게 대처한 결과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 선교의 여러 가지 여건의 변화, 즉, 식민지 통치의 종식과 여러 면에서의 서구의 패권 약화, 원주민의 토착 문화와 종교의 부흥의 영향으로 복음주의의 선교 신학이 영향을 받아 왔다. 이러한 노력이 로잔 대회의 결실로 나타났다. 이 로잔 대회에서 비 서구 대표들이 반수를 차지하였고, 이들의 의견과 발언이 강화된 대회였다. 결과적으로 서구의 신학을 비판하였고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로잔 대회에서는 지금까지의 입장-성서의 권위 강조, 그리스도의 유일성, 전도의 필요성 등-을 그대로 견지하면서 교회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매우 심각하게 주창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신학적 견해의 변화는 존 스토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주의를 끄는 것은 로잔 언약 5항에 나타난 것 같이 지금까지의 신학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성서적인 선교관이 지상 명령에 근거한 복음 전도와 사회.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모두 기독교인의 임무임을 확인했다. 이러한 입장은 컨실리아 라인의 사람이 사용한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과 흡사했다. 특히 제2차 로잔대회는 마닐라 선언에서 이러한 변화된 선교 개념을 더욱 심화시켰는데, 4항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서 '복음 전도의 주된 관심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모시게 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과 선한 사업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하면서 선교의 개념을 하나님 나라을 이루기 위한 복은 전도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우선 순위에서는 전도를 먼저 취해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은 변함이 없다.
3. 컨실리아 라인의 선교 이해.
컨실리아 라고 함은 교회 연합을 향하는 협의체를 말하는데, 컨실리아 라인의 선교 개념은 하나님의 선교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1950년대부터 널리 사용되었는데, 삼위 일체 하나님의 외부를 향한 선교 활동을 서술하는 말로 서방교회의 신학으로 오래 전에 정립된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시고, 성부와 성자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성령을 보내신다" 오래 전 이미 2세기 때부터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등의 교부 때부터 구원 역사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의 활동으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이 논의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금세기에 열렸던 최초의 국제 선교 협의회총회에서 교회와 선교 사이의 긴장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1) 세계 교회 협의회의 발전
(1) 세계 교회 협의회가 창립되기까지
세계 교회 협의회는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제 1차 총회를 갖고 태어났으나, 그 이전의 여러 세계 대회를 통해 선교에 대한 개념과 함께 에큐메니칼 운동이 발전되어 왔다. 교회 연합의 당위성을 갖고 "세계 복음화"를 이상으로 모인 1910년의 에딘버러 대회에서는 복음화를 위한 책임이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 주어졌고, 이 일을 위해 좀 더 긴밀한 연합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런 복음 전도와 함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희망적인 분위기의 에딘버러 대회는 1921년 국제 선교 협의회를 세우는 기초가 되었고, 1차 세계 대전의 참혹함과 세속주의가 교회에 밀려드는 때에 1928년 예루살렘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선교와 관련하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광범한 논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영혼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 조직이나 경제관계도 관심을 갖길 시작한 것이다. 1938년 인도 마드라스의 IMC 대회의 주제는 '교회의 세계 선교"이었으며, 온 세상을 위한 모든 교회의 사명으로 선교를 인식했고, 교회의 존재 목적이며, 모든 교인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선교를 인식하였다. 특히 교회가 감당할 선교는 사회적인 책임이 강조되었고, 타종교와의 관계를 규정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을 마친 후 1947년 캐나다의 휫트비에서 전쟁을 경험한 세계에 대한 교회가 당면한 거대한 필요성을 인정하고 "기독 인으로써 우리는 굶주리거나 빈궁한 이들, 곤궁에 처한 이들을 섬길 의무가 있다. 우리는 불의와 압제를 제거하려는 모든 운동을 지지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한다.
(2) WCC 창립 이후
1948년 WCC 총회가 결성 된 뒤에도 IMC는 따로 존재하여 교회와 선교가 개별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 교회와 선교의 일치를 위한 노력이 19612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 3차 세계 교회 협의회에서 두 기구가 연합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구적인 일치보다는 그 배후의 신학적인 중심이 교회와 선교의 일치가 선교의 새로운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교회와 선교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똑같은 실체의 다른 면이란 논리가 발전된 것이다. 이런 개념의 1952년 빌링겐 대회 때부터 교회의 선교적 의무가 논의되었다.
호켄다익(Johannes C. Hoekendijk)은 종래의 선교관을 교회 중심의 선교관이라고 비판하고, 교회는 '이 세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적 활동의 도구이며 이 세상에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전도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고, 이 메시아는 곧 선교사이며 그가 오셔서 샬롬을 이루신다. 개인의 구원 외에 평화, 온전함, 공동체, 조화 정의를 교회가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와 선교의 일치에 관한 신학적인 정립은 여러 가지 점에서 선교 개념에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다. 교회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탁받은 그리스도의 선교의 연속으로서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시작되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참다운 의미에서 교회라는 의미이다. 종래의 선교는 외국 전도라는 좁은 의미에서 넓게 이해하면서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관심을 둔 개념이다. 선교를 전도에 국한하는 것에서 모든 인간에게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선교라는 것이다. 이런 선교는 기독인과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 실현을 목표로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개념은 로마 카톨릭 교회도 제2공의회를 통하여 확인하였다.
에반스톤 대회(1954)에서는 선교를 WCC의 중심 과제로 삼고 복음 전도를 교회 전체활동으로 보았다. 여기서 사용된 전도는 선교와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을 전도의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1961년의 뉴델리 총회는 IMC와 통합되면서 54년 IMC 웰링겐 대회에서 채택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WCC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중심 선교 개념으로 발전해왔다. 분과 보고서는 증거, 봉사, 일치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증거란 선교와 전도의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 오늘의 상황이 변화되었으므로 선교도 새로운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방법이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변하거나, 구원하는 사랑의 복음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복음을 듣지 못하게 막는 세속적인 원인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에 동참하여 복음에의 길을 예비해야 한다.
1963년의 멕시코 대회에서는 교회를 부르셔서 구속사업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교회 밖에서도 일하고 계심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타종교와의 대화가 심각하게 다루어진다. 제 4차 웁살라 총회는 선교의 갱신을 위해 인간화의 개념이 추가되었고, 73년의 방콕 대회는 구원을 하나님의 충만하심에서 보이는 참된 인간성 회복으로 보면서, 이것이 영혼과 육체의 구원이며, 개인과 사회의 구원이며, 인류와 신음하는 피조물의 구원이다고 하여 구원을 위해 사회 참여는 불가피한 조치이며, 해방을 위한 폭력의 사용도 논의되어야 했다. 1975년부터 WCC 총회는 선교 신학이 발전하는 시기라기보다는 수정 보완하는 시기였다. 75년의 나이로비 총회는 온 교회가 전 복음을 온 세상의 전인에게 전해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확인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80년의 멜버른 대회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을 매우 심도있게 다루었고, 83년의 벤쿠버 총회는 타종교와의 대화에 진일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선교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1960년대 이후의 선교 신학의 중심이었는데,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벨링겐 대회에서 부터였고, 교회의 도구로서 선교를 오해하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 선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호켄다익(J.C.Hoekendijk)은 "교회 중심의 선교 정신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릇된 중심을 맴돌아 타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선교의 출발점이요 목표 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현상적인 표현 방식일 뿐이다."고 하면서 선교가 하나님에게 속했음을 강조하면서 교회 중심의 선교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선교하시는 하나님으로 그리고 마침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이루시는 분으로 말하면서, 선교는 이 샬롬을 가져오게 하는 것을 선교로 보았다. 또 하나님의 선교는 종래의 선교는 교회의 도구라는 생각을 교회가 선교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즉, 하나님- 사도직-세상이라는 도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면서 교회는 선교의 기능이다고 한다.
3) 선교의 과제: 억압에서 해방과 인간화
선교의 개념이 하나님의 선교로 잡혀 가면서 1960년대 후반에는 선교의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심각해졌다.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교회 존재론적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으로 개신교회는 점점 더 사회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차원적 복음 전도에서 다차원적인 사회 선교를 교회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세계적인 사회-정치의 상황이 선교의 과제로 반영되고 그것이 개념화되어서 신학적인 사상으로 변화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회의 불의와 부정으로부터 압박과 가난으로부터 이의 원인이 되는 죄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러 오신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인간을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활동에 동참해서 인간의 해방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인간 해방을 위한 활동으로서 선교를 이해한다. 구원의 역사를 교회 안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과 전 우주의 구원이란 차원까지 선교의 과제를 삼는다. 이 모든 교회의 투쟁을 인간화를 위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들을 모든 교회가 다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호켄다익과 맥가브란의 논쟁을 보면 두 라인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호켄다익과 멕가브란의 논쟁
1950년 호켄다익은 국제 선교 평론에 발표한 '전도의 요청'이란 글에서 전통적인 복음 주의자들의 선교관과 선교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즉, 전도의 주체가 메시아이므로 전도의 목표는 유대인들이 메시아에게 거는 기대와 같은 샬롬이어야 한다. 이 샬롬은 개인 구원 이상의 것으로 평화, 통전, 공동체, 조화, 정의 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교파선전과 교회 개척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인 선교는 거부되어야 한다. 선교와 교회는 동일한 것이 아니고 최악의 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동시에 이상적인 선교는 샬롬의 선포로서 케리그마, 샬롬의 삶으로서의 코이노니아, 샬롬의 겸손한 표현으로써 디아코니아를 포함하는데 현재 교회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했다.
이상과 같은 호켄다익의 비판에 대해 맥가브란은 핵심적인 전도라는 제목으로 호켄다익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발표하였다. 케리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가 교회의 이상적인 요소라면 동의하나, 선교의 요소라면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서 불완전한 교회나 선교 활동을 통하여 선교가 수행되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교파선전 위주의 선교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았다. 또한 교회 개척이 선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고 보며 복음이 실재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전도나 선교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선교는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오게 하고 구원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호켄다익은 침묵으로 답했다.
이 두 사람의 논쟁은 두 라인의 선교 신학을 잘 대변한다고 하겠다. 즉, 두 사람 다 선교의 개념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사회에 대한 기독 인으로서의 책임을 말하고 있다. 또 하나님의 선교라는 입장에서도 거의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교회 개척이 선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는 맥가브란의 주장과 선교의 목표를 샬롬이라 정의하여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호켄다익은 그 우선 순위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맥가브란은 선교는 우선은 복음 전도이고, 호켄다익은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본 것이다.
복음주의자들도 선교를 하나님의 선교로 이해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전도와 사회적인 책임 수행으로 보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단지 이 양자간의 우선 순위에 대한 논쟁이 있을 뿐이다. 다음의 주장은 1989년 마닐라 대회의 주장이다.
"복음 전도가 우선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복음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 나라를 설교하고 가르쳐야 하며, 나아가서 병든 자를 돌보고, 장애자들과 불이익을 당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구출해 내야 한다. 우리는 은사와 소명과 상황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복음과 선행을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논쟁 속에서 복음주의자들은 로잔의 합의에 의해 평상시에는 전도가 기본적인 과제이며, 상황에 따라서 사회적 책임 수행이 우선적 사역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선교가 전도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이 둘이 합하여 선교가 된다는 식의 사고에는 항상 우선 순위의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전도를 선교의 중심으로, 핵심으로 심장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5. 나의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해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성서와 전통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므로 선교는 복음이 입으로 증거 되고 다른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선교의 핵심이라고 믿어 왔다. 요즈음 선교에서 사회적인 책임을 말하고 있지만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고, 성도의 삶에서 복음과의 일치보다는 이중적인 삶에 대해 매우 너그러우면서도 교리적인 차이에서는 날카로운 대립을 보이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은 에큐메니칼에 선교 신학에서의 광맥이라 할 수 있다. 이 큰 흐름이 하나님의 선교는 매우 포괄적이고, 서구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제 3세계에서도 참여한 신학으로 더욱 진보가 있어야 한다. 세상의 형편과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분명히 삶과 선포로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과 전도를 중시하는 좋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편협하고 폐쇄적이지 않도록 사상의 지평을 넓히고 하나님 나라의 중심의 폭 넓은 선교관을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복음적인 삶이 나타나도록 삶의 실천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선교의 이해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것을 선교의 개념이 아닐까 감히 주장해 본다. 이때 전도와 사회적인 책임 사이의 우선 순위도 잠잠하리라 보여진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 선교의 목표요. 하나님이 원하시니 우리의 행동은 우리 사람이나 교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교이며, 그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시고 친히 다스리시는,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뜻에 거스리는 경향이 있는 죄에 속한 세상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듯을 이루어야 하기에 이들에 대한 이해 즉, 선교 대상자를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타자의 언어, 역사, 풍습 등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달하는데 봉사하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사랑에 감격한 우리가 그 구속과 사랑에 감격하며 하나님의 평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몸의 부활을 주시는 것이요, 사랑을 이루며 공의와 정의가 있는 샬롬의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느 것이 우선 이냐는 논쟁은 힘을 잃는다. 많은 율법의 조문을 다 지켜도 한 율법을 어겨도 범죄자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관심은 전인적이어야 하고 온전한 것이어야 한다. 뼈만으로 사람일 수 없고, 살만 가지고도 아니며, 뼈와 살만으로도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영혼만으로도 사람이 아닌 것 같이 샬롬의 세상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모든 삶과 증거가 선교라고 할 것이다.
도서 목록
1) Arthur F Glasser & Donald A. McGavran,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Grand Rapids, Michigan : Baker Book House,1983),
2) D. 맥가브란, G. G. 헌터. 교회 성장학. 박은규 역, 대한 기독교 출판사.1983년
3) D. 맥가브란. 교회 성장 이해. 한국복음주의 선교학회 번역위원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1987년
4) J. C. 호켄다익, THE CHURCH INSIDE OUT, 이계준역, 흩어지는 교회, 대한 기독교 서회, 1979년, 서울
5) R. C. Bassham, Mission Theology: 1948-1975 Year of Worldwide Creative Tension Ecumenical, Evangelical and Roman Catholic,
6) "The Manila Manifesto: Calling The Whole Church to Gospel to the Whole World", in The Whole Gospel for The Whole World: Story of Lausanne II Congreess on World Evangelization, Manila 1989, ed. by Alan Nichols,
7) 김영동, 최근 선교와 신학의 동향 및 문헌 정보 안내, 선교와 신학 1집. 장로교신학대학교출판부 1998년
8) 선교와 신학, 제2집. 장로회신학대학출판부.
9) 스티븐 니일, 홍치모 역, 기독교 선교사(史), 성광 문화사 1990년,
10) 이광순, 이용원 공저, 선교학 개론, 한국 장로교 출판사, 1993년, 서울
11) 이형기. "교회 성장과 선교,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 선교와 신학 3집. 장로교신학대학교출판부,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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