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안정. 좀처럼 떨치기 힘든 관념, 아니 본능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하루에도 십 수번 씩 상처주고 상처받는 생활에서, 게으름과 성실함이 몇 번이고 교차하는 마음가짐과 행동가짐에서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나다움’의 원천. 나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스스로의 일관성없는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상태. 그러나 또 다시 생활의 쳇바퀴 속으로 노출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고 항상 해 왔던 대로,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 그리고 몇 시간 후 다시 안정을 찾으며 자위하는 나. 이런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미워했던가.
심리적 안정의 가장 큰 몫은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이 수업을 들으면서, 보는 것(Seeing)이 실제로 무엇을 보게 하는 것인지 알았다. 지식을 섭취할 때는 그것들과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고전음악 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음악들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담배라는 거대한 사냥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가로질러 사라졌고, 소유욕을 버린 순간 아무것도 줄 게 없어진 여자친구를 놓아주었다. 나는 과거에 살지 않는 것이 무엇이며, 항상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경우와는 달리, 심리적 안정에 얽매이지 않는 상태는, 쉽게 체득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자신을 쫓는 사냥개를 보게 되고, 그것을 저 멀리 사라지도록 내버려두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지성이리라. 지성은 최소한이며, 무조건반사에 가깝다. 그러나 그저 사냥개가 사라지도록 내버려둔 이후, 즉 고통이 사라진 이후, 무엇이 남는가? 나에게 순간순간 다가오는 현실,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넘어, 내가 그것들과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고 여러차례 반문했었다. 나는 과연 현실을 살아가며 ‘해야할 일’ 또는 ‘하고 있는 일’ 등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고, 그 고통을 저 멀리 보내버리는 것을 전부로 여겨야 하는가.
그러던 중, 수 십분 전, 나는 한 가지 엉뚱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 내게 ‘현재를 산다는 것’이 ‘과거를 쫓아낸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뿌리깊은 이유. 순간 시간이 더디 느껴졌다. 누군가 내 갈비뼈를 통채로 발라낸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것은 십 수년 간 내 몸이 체득한 ‘시간관념’이었다. 대체 이게 뭔가. 고통없는 상태라고 생각하던 저변에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던 사냥개가 ‘시간관념’이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시간관념. 너무 엄청나다. 너무 크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얼마나 조급했는지. 내 마음 속에는 시계가 하나 있었는데 그 시계는 몇 시간이고, 몇 십 시간이고, 나에게 ‘찰나적인 조급함’으로 축소되어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항상 조급했다. 내가 얼마나 조급했는지 모른다. 도저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급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애초에 ‘올바른 시간관념’이란 것은 없었다. 시간은 애초에 실체가 없다. 시간은 현재이다. 시간은 저 높은 곳에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공간과 함께 존재한다. 사실 나는 시간의 주인이었지만 시간의 노예로 살아왔다. 시간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내가 깨어있는 그 현재들을 가리키는 것 뿐이다.
나는 새삼 내가 하루에만도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급하거나 여유롭거나 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뿐이다.
無시간성(Timelessness)-(2)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 공간에서 비롯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시공간에서 비롯되는 나의 모든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과거와 기억,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현재의 환상과 미래로의 부담 등등... 얼마 전 그 저변에 도사리고 있던 26년 묵은 사냥개 ‘시간관념’을 보게 된 이후, 나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운동장 같은 트랙 속에서 저만치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사람에서, 시간 위를 주시하고 지켜보며 걸어가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도 일상이라는 것은 대단히 많은 색깔과 다채로운 성향으로 이루어진 무수히 많은 사건과 계획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것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사회화(Socialization)’을 통해 습관적이고 과거 귀착적인 처세술의 연속으로 극복하기 마련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아주 오랜 허상의 실체, 그러나 생각보다 상당히 알아채기 힘든 ‘시간관념으로부터의 부담’의 끊임없는 소모적 행위들에 무뎌져 있었다.
산재해 있는 현실이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비슷한 색깔을 지닌 것들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현실적 사건이나 계획의 조정을 통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너무 많은 일들이 항상 나를 괴롭히고 있기에, 제발 어디로든 여행을 가고 싶다든가, 어느 이름없는 절간에서 몇 년이건 명상에 빠져 보고 싶다든가...시간관념이라는 사냥개를 본 초기에는 얼마나 내가 쫓겨살아왔던가 하는 자성과 함께 이렇게 산재해 있는 현실을 일단 완전히 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조직해나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주어진 현실들에 대해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마치 거짓말같은 26년간의 시간관념과 그로 인해 지금까지 나를 몰아온 결과, 내 주위에 턱없이 높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였던 현실들은 생각했던 것 보다 매우 단순한 실마리들로써 풀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학문적 지식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지식과의 소통의 시작이듯이, 현실과의 소통 역시 그것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 이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공부해야만 하는 엄청난 양의 분야별 지식과, 논술 및 작문 능력, 토론 능력, 학업에 필요한 경제학적, 일본어학적 지식,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한 정력과 지식, 이 모든 것들에 필요한 시간들과 그와 더불어 해결해야만 하는 일상의 사건들은 사실 한 꾸러미 안에 존재하던 것도 아니요,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리던 삶의 과제도 아니었다. 내가 차례차례 그것을 찾아 관계를 맺고, 그것에 하나하나 몰입하고, 그것을 본질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정성을 들이느라 시간을 좀 더 할애하더라도, 어떤 큰 일이 일어나거나 현실이 침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나의 현실을 바라보고 그것 위를 걸어가면서, 나에 몰입하는 것처럼, 현실의 많은 일들에도 마치 나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처럼 쫓기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의 실마리를 잡고 엉킨 끈들을 더 많이 풀어낼수록, 나는 좀 더 명철하고 투명하게 현실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보는 것(Seeing)의 위대함
「걱정거리가 있으면 당신은 맹인(盲人)처럼 되고, 맹인처럼 되면 아름다운 저녁 놀의 광경도 볼 수가 없다.」크리슈나무르티의 알아채기를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한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클래식 음악(서양 고전 음악)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남다른’이라는 단어는 주위 사람들과의 상대적(comparative)기준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지금이 17-18세기의 오스트리아나 독일이라면 나의 관심은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되리라 본다. 중학 시절을 기점으로 시작된 음악 장르의 ‘편식’ 사실 클래식 음악의 ‘우월성(이것 역시 전적으로 주관적 논리)’에 기초한다. 다른 여타의 음악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화음 진행의 단조로움과 표현력의 결핍은 도저히 들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논리를 바탕으로, 나는 광활한 음악의 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장르는 서양 고전 음악 뿐이라는 나름의 ‘사상’ 속에서 살아 온 것으로 ‘추정’된다.
나의 ‘추정’이라는 단어에는 또 다른 전제가 붙는다. 거의 15년 이상을 이러한 확고부동 신념의 일변도를 고수해 올 수 있었던 근거는 나 자신의 ‘경험’이었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절대음감’과 ‘화성감’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음악이든지 듣기만 하면 악보로 옮길 수 있고, 바로 피아노로 칠 수 있으며, 그 음악이 사용하고 있는 화성과 리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일종의 ‘감각적 인지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들이 나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항상 ‘클래식이 아닌 것은 너무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천박하다.’, ‘인간의 내면과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려고 하는 진정한 예술로서의 음악은 이제 클래식 밖에 남아 있지 않다.’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러한 나의 신념은 항상 ‘천박하다’고 생각했던 너무나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쉬운 한 멜로디를 듣고 깨져 버렸다. 그리 특별한 음악도 아니었다. 친구가 동아리방에 틀어놓은 어느 뉴에이지 작곡가의 ‘자장가(Lullaby)'였다.
이후로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여러 잡다한 음악들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에나 좋아했을 법한 가요의 화음들, 재즈와 뉴에이지의 멜로디와 리듬들은 마치 새로운 음악 장르를 접하는 것 처럼 전과 같지 않은 가지각색의 느낌들을 안겨준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단순했다. 언제나처럼 메시지가 다양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표현방법은 여전히 단순하고, 화음의 진행이 단조롭고, 메시지를 표현해내는 기법이 화려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음악이었던 것이다.
나는 또 한 마리의 사냥개, 아니 그 몸집으로 따지면 중생대의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르스에 필적할 만한 관념의 채찍이 내 옆을 통과해서, 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20년 명맥을 이어간 쇠창살
올해 한국나이로 스물여덟이니, 거기에서 스물을 빼면 꼭 여덟 살이다. 엄마 손 잡고 처음으로 초등학교(국민학교) 입학식에 따라갔던 그 해 봄부터, 대학교 4학년인 지금까지 꼬박 20년을 ‘공부’에 바쳐 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까마득한 세월을 지식 교육만을 받으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쫓겨 살아왔다.
내 인생의 정신적·육체적 자유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족쇄는 아마도 공부가 아닐까 싶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 자체가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공부하기가 싫은 것은 아마 ‘노력’과 ‘좌절’의 연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이해하고 외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매 순간 싸워야하고, 책을 덮었을 때 잘 기억이 나진 않는 좌절을 수없이 맛보아야만 한다.
오늘도 기자가 되기 위해 신문을 탐독하는 나로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행정용어, 정치용어, 경제용어, 기술용어들을 보고 또 보고 되뇌인다. 반복하면 할수록 조금씩 조금씩 개념이 잡히는 듯 하지만, 실제로 ‘외운다’는 사냥개가 존재하는 한 학습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외워야 한다는 강박은 있지만 정작 내가 외우기를 반복하고 있는 그 개념들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없는 것 역시 느낀다.
알아채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단지 생각 뿐인 인식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한다. 그러나 공부라는 외부적 명제에 대해, 그 부담감이라는 허상을 알아채는 것은 가능하나 그것이 없어진다고 해서 해야하는 공부 모든 것에 열정을 갖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만큼 학습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애착과 열정이라는 것은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다면 되도록 대상을 애착이 가는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해 오랜 시간 숙고해 본 결과 나름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되도록 그 일의 본질에 접근해서 하는 것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의 유래, 본질, 현실적 효용가치 등을 두루 섭렵하면서 그것이 우리 사회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대상이든지 그 가치를 따져보면 따져볼 수록 그 진가는 자연스레 드러나기 마련이다. 진가를 알려고 하고, 본질을 들여다 볼 때 비로소 나는 그것을 ‘공부’하고 있다기 보다 그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대상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내가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본질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대상은 나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정말 쉬운 개념이라도, 그것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연유를 알아간다는 것은 매우 새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이러한 ‘대상의 이해’는 그 대상과의 관계를 지향하게 되므로, 어떤 대상이라도 하찮게 여길 수 없게 된다. Life is Joy란 이런 것일까. 내가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이 나와 능동적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이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관계에 따른 기대치(期待値)의 망상
수많은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관찰은 대단히 흥미롭다. 직업에 따라, 성별에 따라, 가지고 있는 명예와 권력에 따라 다르다. 다들 어떤 특정한 ‘태도’의 옷을 부지런히 갈아입고, 그 옷이 남에게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지에 맞추어 자신의 태도를, 그것도 매우 순간적으로 바꾼다.
하루나절을 보내는 와중에도 이러한 태도의 급변을 수십 차례 알아챌 수 있다. 아침에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서, 장남으로서의 역할행동이 보인다. 이야기를 꺼내는 화제도, 그들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가운데 내게 풍기는 자식으로서의 역할행동은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다.
집을 나오면 경비아저씨에게 인사를 한다. 이 때는 한 건실한 청년이다. 인사성 밝고 씩씩하게 보이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얼굴을 맞대는 사람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성질도 분명 숨어 있다.
제일 재미있는 순간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태도는 절정을 이룬다. 특히 젊은 남녀들은 또래의 이성에게 무관심한 척 하려는 성질이 있다. 애써 서로 눈을 돌리거나, 몸이 닿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도 한다. 버스기사 아저씨의 태도도 매우 다이나믹 하다. 승객이 무엇을 물어보면 한심하다는 듯 쏘아붙이거나 아예 대답을 안 하기 일쑤다. 앞에 차선을 잘못 들어 정차해있는 차라도 있으면 사정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그러다가 동료 기사가 옆으로 지나가면 그 난폭하던 버스의 지배자는 어느 새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별 시덥잖은 얘기를 나눈 후 왠지 모를 득의만만함을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가면 본격적으로 나의 변신술이 시작된다. 선배 앞에서는 옛날부터 그래왔듯이 친숙하고 재미있는 후배의 역할을 했다가, 후배들 앞에서는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선배로, 강의실에서는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인 학생의 탈을 쓴다.
뭐 어떤 경우든 완전히 본질을 망각하고 모든 것에 습관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란 너무 오랜 세월 습관과 처세의 힘을 빌려 지속되어 왔다. 이것은 거의 무의식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관계로부터 만족을 느끼는 반면, 어떤 상황에서는 관계로부터 상처를 느낀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으로 말미암아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처세술이 체득된다.
그러나 알아채기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것들은 일정한 합의점을 향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알아채기란 애초에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수백차례 바뀌는 관계에 따른 나의 모습은 20년 이상의 명맥을 이어왔고, 이것들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본능과 같이 자리잡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들이 조금씩 일관성을 찾으면서 움직인다는 것은 무언가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늘 관계의 역할과 기대치의 망상속에 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해본다. 어느덧 이런 관계들은 하나 둘 ‘나’를 형성하고, 점차 지성을 감싸고 또 감싸며 Joy에 다가가기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알아채기는 어렵다. 그것은 항상 현실과 맞닥뜨리며 그 현란한 관계 속에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기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초반에 쓴 것들이 몇 개 누락되었습니다. 또한 강의 순서와는 조금 다르게 엮었습니다.
이번 주 '관계'에 대해 쓴 것도 올렸습니다만...여기에 대해서는 핀트가 좀 빗나간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듭니다.
^^* 저는 관계에 대한 수필을 쓰면서 조금 답답했던 부분이 있어서 안올렸는데, 강의듣고 나면, 한동안은 조금 다름은 겪게 되는듯... 위의 글 잘 읽었습니다...
수필 잘 읽었습니다. ㅋㄷ 님께서는 이 수업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계신다는 느낌이 팍 오네요 ㅋㄷ
강의 듣고 나면 '한동안'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