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
권력, 애정, 증오, 침묵, 연대, 학대의 공간…
‘집’이라는 네 벽 안에 둘러싸인 공포와 경이로움을 담은 13편의 증언
여성, 작가,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복잡한 현실을 열어젖히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폭력에 맞서는 언론인이자 소설가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María Fernanda Ampuero(1976~ )의 첫 소설집 『투계Pelea de gallos』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우리는 그동안 종교와 국가와 군대 등 다른 모든 제도에 대해서는 신성성을 벗겨내 왔으면서 왜 가족은 여전히 신성불가침한 개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가족 안에 존재하는 은폐된 폭력을 보여준다. 그 은폐된 폭력은 아버지(남성)의 폭력이며 계급의 폭력이며 가부장적 사회의 폭력이다. ‘집’이라는 네 벽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추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는 현실을 이 책은 일관되게 까발린다.
신성시되어 온 ‘가족’을 파헤치는 건 불편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관념, 위선 속에서 상처받고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여성과 아이들 같은 약자이다. 일간지 『엘텔레그라포』는 이 책을 ‘가족과 연결된 공포와 폭력을 탐구하는 책’이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마초적 욕망에 종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처절한 탐구’라고 평했다. 이 책에 수록된 「수난」은 메리 셸리의 아이들상(2015)을, 「월남」은 코세차 에녜상(2016)을 받았고, 첫 소설집 『투계』(2018)는 출간되자마자 독자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호아킨 가예고스 라라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된 『투계』는 영어 · 이탈리아어 · 포르투갈어 · 그리스어 등 다수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네 딸은 괴물이야”
괴물이 되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끔찍한 현실
여성의 시선으로 뿌리 깊은 폭력과 불평등을 신랄하게 까발리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중심, 암푸에로의 첫 소설집
맡아줄 곳이 없어 투계꾼 아버지를 따라 다니는「경매」의 어린 소녀는 내장이 터진 닭을 보고 구역질이 일지만, 잠든 자신의 교복 치마를 들추던 아저씨들이 “죽은 닭의 창자와 피와 닭똥을 보고는 구역질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자신을 그 “창자와 피와 똥으로 범벅”이 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킨다. 이는 더러움으로만, 더 괴물이 되는 것으로만 여성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드러낸다.
「새끼들」「수난」「상중喪中」「다른」의 아버지, 할아버지, 오빠, 남편은 가장이라는 이유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쥐고, 자신의 규율에 어긋났을 때 서슴없이 폭력을 쓴다. 그리고 그 폭력은 다음 세대에 대물림된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오빠가 그 뒤를 잇고, 딸들은 그것에 순종하는 동시에 다른 약한 것들에게로 폭력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새끼들」의 주인공은 “남자들에게는 항상 네, 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고 권력에 굴복한 것이다. “사랑의 가장 나쁜 형태”라면서도 아빠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랐듯, 주인공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랑을 갈구함으로써 그 권력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집 저 집에서 벽에 던져져 깨진 값싼 유리컵처럼 나도 그렇게 깨지곤” 하면서도 “남자들에게는 항상 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자의 상처가 폭발할 때 비유는 필요 없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마초적 욕망에 종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처절한 탐구. 용감한 책일 뿐 아니라 끔찍하게 가슴 아프다. 『엘텔레그라포』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욕망에 지배되고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강요받는다. 「괴물」의 소녀가 황소라 불리며 “너는 어째 메르세데스처럼 얌전하고 상냥하고 고분고분하질 못하니”라는 타박을 받고, 「새끼들」의 화자가 “남자들에게는 항상 네,라고” 하듯이. 「상중喪中」은 이러한 여성상에서 벗어난 인물에게 가부장제가 어떤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준다. 무자비한 폭력은 제도적으로 자행되고 제도적으로 은폐된다. 어두컴컴한 축사에서 벌어진 그 모든 끔찍한 일은 마리아가 가부장제의 여성상에 반했기 때문에, 여성이 성적 쾌락을 탐했으므로 시작되었다. 가부장제가 행해온 뿌리 깊은 폭력과 여성 혐오 앞에서는 종교도 구원이 되지 않는다. “성인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성인”도 말뿐인 위선자이며, “남자에 대한 존중이 그 집안에 대한 존중”이라며 이 사태를 방관한다. 그가 말하는 “믿음이란 단어는 이미 혀 속에서 똥 맛”이 날 뿐이다.
작가는 과감하게 성경 속 여성 막달라 마리아를 재해석하여 예수의 수난사를 다시 쓰기도 한다. 「수난」에서 “너”는 “고독 속에서 물과 돌과 모래를 지배하는 법”을 배운 마법의 힘을 가진 여성이다. 그런데 “아무도 너를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모든 기적은 “너”에 의해 행해졌으나 모든 공은 “그”가 가져간다. 이는 가부장제의 역사에 대한 비유, 남성에 가려져 기록되지 않은, 능력이 있어도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아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역사에 대한 비유이다.
「다른」에서는 일상과 가정의 모든 것이 남성의 욕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너”의 쇼핑 카트에 담긴 물건을 통해 보여준다. “너의 카트”에는 자신의 것이 아닌 욕망이 가득하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반복되어 온 “너의 선택”을 돌아보는 행위 자체로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처럼 ‘반항적인 영혼’들의 목소리를 직조해내는
동시대 작가는 언제나 환영할 수밖에”
이 책은 인종과 사회적 계급에 따른 차별, 빈부 격차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열네 살의 가사노동자 나르시사는 몸집도 크지 않고 나이도 돌보는 아이들보다 고작 두 살 많은 것뿐인데 인생을 4백 번은 산 사람처럼 보인다.(「괴물」) 부자들은 웨이터들의 “갈색 피부가 자기들의 흰 식기에 닿는 게 싫어서” 흰 면장갑을 끼게 하며, 심지어 원래 이름은 “코로소”인데, 고용주가 멋대로 부르다 이름이 “코로”로 굳어지기도 한다. (「코로」) 학교도 못 가고 아픈 남동생을 돌보는 가난한 소녀는 단 한 번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남동생을 돌볼지 않고 만화영화 한 편을 보고 싶어 “동생의 울음소리가 묻”히도록 더 크게 웃는다.(「그리스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러나 신랄하게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해체하는 암푸에로는 페이지마다 문화 ‧ 정치 ‧ 사회적인 요소들을 낟알 낟알로 떨구어 내면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낸다. 그러나 암푸에로의 주인공은 피해자로 남지만은 않는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서라도 자신을 지키고, 압제자가 힘을 잃었을 때를 기다려 복수하거나, 저주 인형을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잊었던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전환기를 열고, 그리고 많은 경우 꿋꿋이 생존함으로서…… 암푸에로의 주인공들은 살아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명백한 잔인성에 맞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투쟁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들은 비단 라틴아메리카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의 양상과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구 반대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함께 분노하고 심장이 뛰는 이유일 것이며, 이러한 순간의 발견이 다른 문화를 만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