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 6~10
할렐루야! 오늘 수요예배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작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하늘길이 막히면서, 국내에서 러시아 지역은 동해항에서 카페리를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습니다. 동해항 국제여객선터미널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동해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국제 카페리호 '이스턴드림호'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러시아를 오가는 국제 카페리호는 매주 5~6백명 가량의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7월 말부터 여객 운송이 재개돼 왕래하고 있습니다. 걸리는 시간은 23-25시간 정도입니다.
어제 김재근 장로님 자부 되는 최미화 사모님이 남편 목사님이 몇년전에 심근경색으로 천국가시고 난 후, 영천에 전원교회 모든 것 정리하고, 남편 목사님의 뒤를 이어 주님의 부름심에 복음 사역자로 나섰습니다. 송해 공원 위에 김흥동네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되지 목뼈 감자탕을 먹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보내준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11일)여름 단기선교 일정으로 보름 정도 러사아 브라디보스토그에 선교하러 갔습니다. 전쟁 중에 위험한 상황이지만, 전쟁중에 아들과 아빠를 잃은 유가적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러시아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청소년들에게 한글공부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출국했습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선교여행은 크게 1차/2차/3차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구분은 후대 신학자들의 연구한 결과이지, 성경에는 번호나 숫자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1.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2~3“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2~3) 바울은 무작정 선교여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예배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들었고, 그들은 한 번 더 금식하고 기도하며 바울을 파송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안디옥 교회가 보냈다고 하지 않고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행 13:4)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은 성령 충만했습니다.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 13:9, 52) 성령충만한 바울이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거짓 마술사를 제압했고,(행 13:6~12)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 없는 자를 걷게 했고(행 14:8~10), 말씀에 큰 능력이 있음을 보았고,(행 13:12, 49) 여러 고난 중에 쓰러지지 않았으며,(행 14:3, 7, 22) 많은 사람들을 회심케 했습니다.(행 14:1, 21)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 충만했으며, 성령으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여러분은 무슨 힘으로 하십니까? 배운 세상 지식의 힘입니까? 해볼 만큼 해본 세상의 경험인가요? 아니면 가지고 있는 재물(돈)의 힘인가요? 지식, 경험, 재물(돈),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고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온전한 ‘에너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는(요14:26)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감당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절, 4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1, 4)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힘주시고 함께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사도행전 15장 후반부부터 나옵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행 15:40)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때 동행했던 바나바와는 의견 충돌이 있어 헤어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해도 의견이 맞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결혼 할 때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하셨나요? 물론 그런 분들도 있겠죠.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하늘의 별을 따다 주겠다는 말을 믿고 결혼 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서, 마음에 들어서 결혼했는데 ‘그때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지, 내가 왜 그랬을까’하면서 참고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람끼리의 마음도 맞는 것 같지만 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동행했지만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때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때 많은 성과가 있었던 소아시아 지역(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다시 방문하길 원했습니다. 목숨 걸고 복음 전하여 세운 교회들을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행 16:4~5) 사도행전에 “그래서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돌아다니며, 모든 교회를 튼튼하게 하였다.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교회들은, 그 믿음이 점점 더 튼튼해지고, 그 수가 나날이 늘어갔다.”(새번역, 행 15:41, 16:1, 5) 했습니다. 그렇게 2차 선교여행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본문 6~7절에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행 16:6~7> 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바울이 가고자 했던 길을 막으셨습니다. 바울의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품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고 해서 …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더 튼튼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분명 그것은 선한 의도를 가진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더 큰 뜻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고자 했던 길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흔히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악기 연주자가 기막힌 연주를 한다 해도 기본적인 음악적인 지식이 있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훌륭한 연주라고 느끼고 감동받습니다.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술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어야 그림을 볼줄압니다. 그런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음악회나 연주회에 가도 졸립다고 하고, 미술 전시회에 가서도 재미 없다고 느낍니다.아무리 훌륭한 천재적인 연주자가 연주해도 그것을 듣는 청중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야구, 축구, 골프, 미식축구 같은 스포츠도 규칙을 알아야 이해되고 응원하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고,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 139:1~3) ‘살펴보셨다, 아신다’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펴보시고, 아시고, 좋은 길을 보여주신다는 믿음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했습니다. 우리가 선한 뜻을 품고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한 일도 때로 하나님이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데 있습니다. 하면 할수록 평안을 깨고, 가정의 화목이 흔들리고, 교회의 평안을 깨고, 주변 사람과의 좋았던 관계도 끊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늘어간다면 그것은 분명 사탄의 방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하며, 좌절하여 넘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살전 2:18) 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실 수도 있고, 사탄이 막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막으신 것이라면 비록 지금은 당황스러울지라도 점차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결국엔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4. 바울의 계획, 하나님의 계획
‘막힘’당함은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8절부터 그 내용이 잘 나옵니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행 16:8~9)바울은 밤에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냐’는 바다 건너 유럽 대륙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그 환상을 본 뒤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가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10)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을 돌면서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유럽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는 내 생각/내 고집/내 판단/내 경험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길 원하는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5절에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약 4:15)했습니다. 바울이 환상을 통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듣고 마게도냐로 향했듯이 우리가 주의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교회가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교회가 연약하지만 이런 일들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돈 많이 벌어서 선교하는 일에 쓰고, 하나님의 나라 일에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는 일에, 선교하는 일에, 교회가 하는 일에 힘이 되게 내 일터를 축복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일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복음화, 지역의 복음화, 선교지와 선교사님들 위해 기도하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에 더 크게 쓰임 받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