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너머의 허구를 믿는 방법
오채현_시각예술가
팬데믹 이후 공연예술계에서는 영상 기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기록의 불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춤을 찍은 영상의 고유성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서울무용센터 댄스필름 워크숍에 참여한 오채현 시각예술가는 경험을 바탕으로, 극장의 프레임과 영상의 프레임에서 달라지는 허구성, 또한 댄스필름에서 프레임과 움직이는 신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안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렸을 적 과잉 치아가 나서 대학로에 있는 큰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검진을 받고 완전히 치료를 받기까지 3개월에 한 번씩 대학로를 방문했었는데, 갈 때마다 엄마와 함께 공연을 보고 버거킹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공연이 생각난다기보다는 정해진 날짜마다 외출하여 공포의 시간을 참아내고 나면 주어지는 맛있는 햄버거와 극장을 간다는 약속된 여정이 추억으로 남았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뭐든 보는 걸 참 좋아하게 되었고, 특히 무대 위의 말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극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된 관객으로서 습관이 되었다. 그것은 공연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혼자만의 의식이었으며, 그 시간을 온전하게 느끼고 기억해 가려는, 일종의 강박 같은 나만의 관람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근무하면서 촬영한 객석의 모습 ⓒ오채현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에 모든 공연예술 분야의 작업들이 영상으로 기록되거나 라이브 스트리밍의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연하게도 나는 그러한 시기에 극장 공연 촬영팀의 크루로 일하게 되었고, 그를 통해 무대의 정면뿐만 아니라, 극장의 다양한 공간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무대라는 장소에 대한 구조, 그곳에서 사라지는 환영, 나아가 퍼포먼스에 대한 경외와 애정을 더욱 갖게 만들었다. 본래 의심이 많고 외형적으로 세세하게 뜯어보기를 좋아하는 나는 문득 아무도 없는 텅 빈 객석 사이에서 서늘한 극장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소리 없이 빨간 불만을 깜빡이며 솟대처럼 길고 크게 서 있는 카메라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카메라의 모습들은 반복되는 촬영에 지루해져 있던 나에게 화면 속 극장의 미래와 무대 위의 공연을 기록하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실제 근무하면서 촬영한 객석의 모습 ⓒ오채현
무대라는 공간을 담기 전, 카메라를 통해 실재를 기록하고 그 너머를 실험해 보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먼저 살펴보면서 고민을 밀어붙여 보자. 앤디 워홀은 예술작품의 대량 생산을 통하여 전통적 가치와 희소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보게 만든 너무도 유명한 작가이다. 프레임 너머의 실재와 영상 매체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작가라 생각이 들지만 워홀은 1960년대에 무수한 실험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초기 영화 〈스크린 테스트〉(Screen Tests)(1964-1966)는 기록 영화에서 나타난 인물의 초상을 카메라라는 기계적인 형식의 반복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했다. 기존 앤디 워홀의 대량생산 방식이 가지는 작품의 개념과는 다르게 이 작업에서는 다양한 인물을 통하여 카메라라는 기계적인 보기의 방식 너머에서 인간의 본질과 초상 이미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앤디 워홀은 어쩌면 기계적 방식을 적극적으로 가져와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꿔 놓고, 누구보다도 카메라를 의심하면서 실재를 담아내고자 했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Andy Warhol, Screen Test: Jane Holzer [ST141], 1964 ⓒ2015 The Andy Warhol Museum, Pittsburgh, PA, a museum of Carnegie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사무엘 베게트의 〈Act Without Words I HIGH〉도 관련하여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작업이다.1 공간에 영상의 프레임을 마치 감옥처럼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어지는 상황들을 담은 유쾌한 영화인데, 그러한 카메라는 무대 위의 공간을, 그 위의 허구의 인간과 인간이 아니게 된 것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Samuel Beckett, Act Without Words I HIGH,1956
출처: https://youtu.be/Qb_eMMqUjTA
필자는 최근 서울무용센터에서 진행한 댄스필름 워크숍에 참여하여,2 공연 영상을 기록하던 촬영팀으로서의 경험과 프레임에 대한 의심을 바탕으로 이번 워크숍에 참여하며 몇 가지 댄스필름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무대 공연을 기록하는 방법으로서 영상 매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을 이용하여 가상의 세계 속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을 감각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옆자리에 함께 앉아있는 누군가를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속 시원한 대안을 찾지 못한 지금은, 차라리 다른 장르로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무대를 바라보는 프레임에 대한 의심을 하기 전에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관람객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관람객들은 객석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자신들의 시선을 가늠해 보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러닝타임이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조금 더 가까이서 빠르고 큰 움직임들을 따라가 볼 것인지, 조금 멀찍이서 무대 위에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볼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된 영상은 프레임 안에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선의 선택권을 전부 빼앗아 버린다. 객석과 무대 간의 거리감, 대상과 배경 간의 띄어쓰기 그리고 빛과 소리 등 모든 선택과 감각들은 압축되고 간편화되어 관람객 혹은 시청자에게 제공된다. 모공까지 보일 것만 같은 고화질의 움직이는 픽셀은 아무리 더 작고 빠르게 움직일지언정 인간이 느끼는 감각이라는 속도는 따라 잡지 못한다. 아래의 사진은 이러한 영상이라는 프레임에 따라 시선의 선택권이 자유롭지 못함에 대한 것을 무대 위의 조명(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해오던) 퍼포머를 프레임 안에 각기 다른 방법으로 위치 시킴으로서 보여주고자 한 퍼포먼스 실험 영상의 작업 중의 일부이다.
작업 중인 실험 영상의 스틸 사진 2022, 안무: 오지은 ⓒ오채현
두 번째 실험으로는 퍼포머인 무용수가 자신을 담고 있는 카메라의 네모난 프레임을 정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그것을 말 그대로 몸으로 감각하는 과정을 안무화한다면 색다른 댄스필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보았다. 무용 공연처럼 움직임이 주된 작품을 촬영하다 보면 카메라가 신체를 따라가고, 혹여나 놓치게 되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 다시금 신체가 프레임 안에 안정적인 구도로 위치하도록 만든다. (물론 모든 무용 기록 영상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처럼 맹목적으로 신체를 따라가야만 하는 프레임이 아닌 안무가가 프레임을 인지하는 과정과 그 과정의 움직임 자체가 춤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 마킹하는 과정을 통하여 카메라 프레임을 보여준다.
2. 마킹을 기준으로 그 안에서만 움직임 안무를 보여준다.
3. 무용수는 중간중간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
작업 중인 실험 영상의 현장 사진 2022, 안무: 오지은, 사진: 윤지희
카메라로 기록된 것들이 실재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나 극장이라는 공간에서의 계속해서 휘발되는 것들을 담고자 하는 노력은 헛된 일 인지도 모르겠다. 기록에 대한 고민으로서 어떠한 대상이 매체로 담겨지는 순간 실재는 허구가 되고, 허구의 인물은 실재를 바라볼 수 없다. 영상화가 되면서 무대라는 환영의 공간은 기존의 허구의 이야기들은 또다시 기록이라는 매체와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온다. 이제는 비대면의 시간들이 가고 서로의 눈을 조금 더 가까이 마주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찾아오는 중이다. 극장에서도 더 이상 띄어 앉기보다는 낯선 사람과의 스침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익숙해지고 곳곳에 반가운 얼굴과 이름들이 보인다. 극장의 멸망을 걱정했던 필자로서는 이런 상황에 안도함과 동시에 앞으로 또다시 찾아올 수 있는 예측불가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떠한 장소에서 함께 모여 허구의 이야기들을 사랑하고, 그러한 만남이 가능한 미래 극장과 기록의 방법들을 함부로 상상해 보는 것으로 작업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오채현_시각예술가팬데믹 이후 공연예술계에서는 영상 기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기록의 불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춤을 찍은 영상의 고유성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서울무용센터 댄스필름 워크숍에 참여한 오채현 시각예술가는 경험을 바탕으로, 극장의 프레임과 영상의 프레임에서 달라지는 허구성, 또한 댄스필름에서 프레임과 움직이는 신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안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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