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 현종 공적비
소재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 295
대한민국 1호 ‘삼양라면’ …‘불닭볶음면’으로 제2 부흥기
[‘중꺾마’로 위기극복…장신(長新) 기업을 찾아서] ⑦-삼양식품
1963년 국내서 첫 라면 제조·판매…올해로 62년째 운영
한국식 라면 스프 개발하고 60년대부터 해외시장 개척
2010년대 들어서는 불닭볶음면으로 제2의 부흥기 맞아
[이코노미스트 라예진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농심이 아니다. 1963년 탄생한 1호 라면은 삼양식품이 선보인 ‘삼양라면’이다. 창업주인 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한국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한 라면 사업은 어느새 온 국민의 먹거리로 자리매김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2조 원이 넘는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오늘날 세계 각국에 수출되며 K-푸드 확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 중심에 삼양식품이 있다. 삼양라면은 환갑을 넘긴 국내 대표 장수 식품일 뿐 아니라 ‘불닭볶음면’이란 히트 상품으로 전 세계 85개국에 수출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랜 역사뿐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장신(長新)기업. 라면의 원조 삼양식품이 그려온 발자취는 어떤 모습일까.
삼양식품은 1961년 세워진 기업으로 62년 역사를 자랑한다. 라면 사업을 본격화한 것은 1963년이다. 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당시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국내에서 최초로 라면을 출시했다. 출시 이후 1965년 정부가 국가적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쌀 이외 여러 잡곡을 섞어 먹는 것) 장려 정책을 펼쳤고 삼양라면의 판매율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라면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삼양라면은 당시 판매율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에서 전수한 라면 맛이 아닌 한국 사람 입맛에 맞춘 한국식 라면을 새로 개발하기 위해 1966년 삼양식품 실험실을 발족한다. 이 실험실은 연구실로 확장하며 한국식 라면 스프 개발이 시작됐다.
라면 맛이 한국식으로 자리잡히면서 삼양라면은 1966년 11월 240만 봉지 팔리던 것이 1969년에는 월 1,500만 봉지가 판매되며 매출이 급증했다. 60년대 삼양라면 매출 신장률 추이를 살펴보면, 해마다 최저 36%에서 최고 254%까지 폭발적인 증가율을 나타냈다.
한국식 라면수프가 첫 번째 삼양식품의 혁신이라면 두 번째 혁신으로는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삼양식품은 1969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 라면 150만 불 어치를 수출했다. 이후 60여 개 나라에 라면을 수출했고, 1972년에는 동남아 지역 등 수출액 250만불을 돌파했다. 이때 기록을 보면 삼양라면 매출액은 141억 원으로 국내 재계순위 23위를 차지했는데, 당시 소비자가격이 22원이었음을 참작하면 약 7억 봉지가 팔린 셈이다.
세 번째 혁신으로는 국물 라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라면 제품인 불닭볶음면을 개발한 것이다. 삼양식품은 전국 유명한 불닭, 불곱창, 닭발 맛집들을 탐방하고 세계 여러 국가의 고추를 연구하며 한국식의 ‘맛있게 매운 소스’ 개발에 몰두해 지난 2012년 4월에 지금의 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제품 개발에만 약 1년이 소요됐고, 이 기간에 매운 소스 2톤, 닭 1,200마리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불닭볶음면은 출시 초기 국내 매출은 월 7억~8억 원 정도로 시작했지만, 중독성 강한 매운맛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3달 만에 매출이 배로 증가했다. 인기는 계속돼, 출시 1년 만에 월 30억 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삼양식품의 주요 제품으로 떠 올랐다.
이후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에 이은 치즈불닭볶음면, 불닭볶음탕면, 커리불닭볶음면, 핵불닭볶음면, 까르보불닭볶음면 등 불닭시리즈 제품을 지속해서 출시하며 볶음면 제품의 인기를 확장했다.
라면의 한 카테고리로 확장한 불닭볶음면은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을 책임지는 글로벌 제품으로 꼽힌다.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중 80% 이상이 불닭 브랜드에서 발생할 정도로 해외시장에서 인기가 많다. 불닭볶음면의 수출이 급증하면서 삼양식품은 매년 창립 이래 사상 최대의 실적을 갱신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