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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해랑길 1코스(땅끝탑-송지면사무소)
여행일 : ‘22. 4. 23(토)
소재지 : 전남 해남군 송지면 일원
여행코스 : 땅끝탑→송호해변→황토나라 테마촌→송종마을→송지저수지→마련→소죽리→송지면사무소(거리/시간 : 14.9km/ 실제는 마련마을까지 11.55km를 3시간 5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 해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그 서해랑길이 시작되는 1코스를 걷는다. 8개로 이루러진 해남구간(131.3km)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하다. 주요 볼거리는 ‘땅끝마을’과 ‘송호해안’. 땅끝마을은 1986년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면서 세간의 입소문을 탔다. 90년대 초반에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되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 들머리는 ‘땅끝항 여객선터미널’(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강진·무위사 IC에서 내려와 목포방면 2번 국도. 잠시 후 월산교차로에서는 13번 국도. 해남·완도 방면으로 내려오다 남창교차로(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서 우회전하여 77번 국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땅끝마을’에 이르게 된다. 코스 출발점은 63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땅끝탑’이지만 차량의 진입이 불가능하므로 실제 트레킹은 여객선터미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서해랑길’은 해남의 땅끝마을에서 시작해 인천 강화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그리고 작은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때로는 썰물로 바닥을 훤히 드러내는 개펄을 따라 걷고, 때로는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을 따라 걷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은 이름 모를 작은 마을 앞에서 쉬어가도 그만이다. 이 길에서는 내륙 깊숙이 발달한 만과 아름다운 섬, 광활한 개펄, 인간의 삶에 풍요를 내어준 바다를 실컷 눈에 담게 된다.
▼ 1코스는 ‘땅끝탑’에서 시작해 송호해변과 황토나라테마촌을 지나 송지면사무소에 이르는 길이 14.9km의 둘레길이다. 산길과 농로, 마을안길을 따라 걷는 코스라서 어렵지는 않지만 ‘황토나라테마촌’을 지나면서부터는 주변 풍경에 변화가 없어 지루해진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마련마을까지만 걷고 나머지 구간은 택시를 이용했다.
▼ 여객선터미널의 옆. 널따란 광장에는 ‘빗돌’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란 글씨는 원로 서예가인 ‘장전 하남호’가 썼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땅끝’은 오른쪽 해안을 따라 한참을 가야만 만날 수 있다. 비의 하단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이유이다.
▼ 바닷가로 나가자 꼬맹이 바위섬인 ‘맹섬’이 얼굴을 내민다. 일출이 일품인 저곳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떼 지어 몰려드는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다, 두 섬의 사이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장엄하기 때문이다.
▼ 아래 사진은 상황설명을 위해 빌려왔다. 하지만 이런 사진을 찍으려면 1년에 딱 2번(2.15-22, 10.23-30) 기회에 맞추어 와야만 한단다.
▼ 또 하나의 볼거리인 ‘형제바위’가 얼핏 하롱베이의 ‘키스바위’를 닮아보였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특히 앞의 것은 야류지질공원(대만)의 ‘여왕머리 바위’, 즉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여왕(Nefertiti, BC1370-1330)’의 머리를 쏙 빼다 닮았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먼 바다에서 몰아쳐온 해풍과 파도에 시달리며 깎이고 닳은 해식작용의 결과다.
▼ 주차장 위에 있다는 ‘희망의 공원’은 선두대장의 뒤꽁무니를 따르느라 아예 들러보지도 못했다. ‘희망의 손’과 ‘희망의 종’이 대표적인 볼거리라기에 다른 분의 것을 잠시 빌려왔다. 두 손을 마주 보게 조각한 ‘희망의 손’은 땅끝을 찾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김용준 조각가의 작품이다. ‘희망의 종’은 미래의 희망인 사람과 나무를 형상화하여 사랑과 소망을 담았다. 이를 치면 희망이 다가온단다.
▼ ‘사자봉’ 방향의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계단을 오르면 ‘땅끝’의 지리적 현황을 적은 안내판이 반긴다. ‘신동국여지도’의 만국경위도는 우리나라 전도의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단’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으로 표현했다.
▼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맹섬횟집 앞 느티나무도 범상치 않다. 나무 아래에 연인들을 위한 맞춤형 그네까지 만들어놓았다. ‘바람도 맛있는 땅끝 해남’이란 부제를 달았다.
▼ 마을을 벗어날 즈음 모노레일 승강장이 나온다. ‘땅끝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6분, 걸어서는 40분 정도 걸린다. 내 기억으로는 9층 높이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훌륭했었다. 해남 앞바다는 흡사 커다란 호수 같았고, 그 위에 보길도·노화도·추자도 등 수많은 섬들이 겹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 조망을 즐긴 다음 나무계단을 이용해 ‘땅끝탑’으로 내려오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코로나 펜데믹의 여파가 이곳까지 미쳤던 모양이다.
▼ 승강장 앞 광장에는 포토죤을 만들어놓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위해 찾아 온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땅끝은 새로운 출발점에 선 사람들에게 결의와 다짐의 기회를 준다. 사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상급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는가 하면, 새해 새 희망을 다짐하는 장소로도 애용된다.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데는 결단코 땅끝만 한 곳이 없다.
▼ ‘땅끝탑’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모노레일 승강장. 그런데 ‘땅끝탑’의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떡하니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정비(땅끝탑 촬영을 위한 경간이 짧아서 이를 개축한단다)를 위해서인데, 2022년 6월에 새로운 조망시설이 갖춰질 예정이라고 한다.
▼ ‘땅끝탑’도 세월의 무게를 거스를 수는 없었나보다.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를 헐고 그 자리에 스카이워크를 짓는단다.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기상(기존의 것은 뱃머리에 서서 바다를 응시하는 항해왕자 엔리케를 연상시켰었다)보다는 최근의 트렌드인 스릴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여기서 팁 하나. 아래 사진의 뱃머리에서 오른쪽으로 10여m 떨어진 곳의 튀어나온 바위가 한반도의 실제 ‘땅끝’이란다. 아무도 알아채주지 않는 저 바위가 이 땅의 진정한 끄트머리이자 시발점이다.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북위 34도17분21초.
▼ 길은 한마디로 잘 닦여있다. 보도블럭·보드·황토 등 지형에 맞춰 길을 내었는가 하면, 탐방객들의 건강을 위해 ‘발 안마 길’까지 만들었다. 파고라나 정자를 지어 쉼터를 겸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 시판을 읽으면서 걷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해남문학회 회원들의 작품을 게시했는데 그 숫자가 만만치 않다.
▼ 바다에는 철부선이 오간다. 땅끝항과 노화도(蘆花島)의 산양항 사이를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웬만한 파도나 해무에는 지장을 받지 않는단다.
▼ ‘땅이여! 기의 문을 여소서’라는 시비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땅끝 기가 뭉쳐 있는 곳/ 바다와 육지가 처음 만나는 곳/ 그곳에 서다/ 태초 때부터 숱한 사연을 간직한 이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었던 곳/ 아~ 땅이여! 하늘이여!/ 문을 여소서/ 땅끝은 끝이자 시작이다/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희망/ 그 희망이 이뤄지는 곳…> 이 얼마나 주옥같은 글귀들인가?
▼ 시비에서 계단을 오르자 길이 둘(이정표 : 땅끝탑↑ 130m/ 전망대→ 400m/ 땅끝마을↓ 500m)로 나뉜다. 오른편의 나무계단은 사자봉 정상의 전망대로 연결된다. 서해랑길의 출발점인 땅끝탑은 물론 직진하면 된다.
▼ 길을 나선지 20분 만에 ‘땅끝탑’에 도착했다. ‘백두대간의 시작이자 끝’인 땅끝마을은 그 자체가 한반도 최남단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돛을 펼쳐놓은 것 같은 삼각뿔 모양의 ‘땅끝탑’이다. 북위 34도17분21초, 걸어서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곳이다. 전에는 그 옆에 놓인 나무계단을 이용해 해안가로 내려설 수도 있었다. 지금은 비록 눈요기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 서해랑길(1코스)의 시작점인 땅끝탑은 ‘땅끝 천년숲 옛길’, ‘코리아트레일(구 삼남길)’ 등 여러 걷기 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각각의 둘레길을 안내하는 표지판과 리본이 설치되어 있다. 참! 서해랑길과 남파랑길이 이곳에서 갈라진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땅끝 해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널따란 평야나 바닷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해남 땅은 끄트머리까지 산맥이 치닫는다. 그 산맥을 따라 내놓은 걷기 길이 ‘땅끝 천년숲 옛길’이다. 총 52㎞의 옛길을 정비해 땅끝길(15.5km)과 미황사역사길(20km), 다산·초의교류길(15.5km) 등 3개 코스로 나누었다.
▼ ‘코리아트레일(구 삼남길 : 옛 사람들이 땅끝마을에서 한양으로 가던 길을 재현해놓았다)’ 안내판은 땅끝마을 주변의 탐방로를 소개한다. 하지만 민간이 만든 이 트레일은 6개 광역시도와 27개 시·군·구를 통과한다. 정약용 등 역사 인물들의 유배길이자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옛길인 갈재와 누릿재를 넘어 11곳의 향교, 13곳의 전통 5일장, 6곳의 양조장 등을 경유한다. 또한 숭례문(국보 1호) 등 100여 곳의 역사 유적지와 함께 아름다운 마을길·농로·숲길·탐방로 등 다양한 길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연결했다.
▼ ‘서해랑길’ 이정목(땅끝탑에서 23m지점)을 기준삼아 트레킹을 시작한다. ‘땅끝탑’부터는 보드워크(Boardwalk)와 오솔길을 번갈아 걸었다. 탑까지 오면서 먼 바다를 바라봤다면 이후부터는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 모양새이다. 걷는 사람도 뚝 끊겨버린다. 서해랑길이나 땅끝산책로가 아직은 입소문을 덜 탄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우리에겐 더 좋은 환경이 되었다. 집사람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게 어디 그리 흔한 일이겠는가.
▼ 삼천리금수강산 이야기를 읽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남한의 광역지자체뿐만 아니라 까맣게 잊고 살던 북한의 도(道)까지 더했는데, 남한과 경쟁이라도 하듯 특별시(평양)·직할시(개성·남포)로도 모자라 황해도와 함경남도, 평안북도는 아예 둘로 나눴다. 이중 함경남도에 나뉜 양강도를 게시해본다. 백두산이 속해있는 도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접해 있다. 두 강이 흐른다고 해서 ‘양강도(兩江道)’가 되었단다. 소재지는 ‘혜산시’이며, 유적지로는 갑산읍성, 삼수읍성의 4개 문루 중 하나인 조일문, 망화루, 괘궁정, 중흥사 등이 있단다.
▼ 탐방로는 ‘갈두산(葛頭山)’을 에둘러가는 모양새이다. 그러다보니 모퉁이를 만나기도 한다. 그중 하나를 돌아서자 바위벼랑 위에 전망대 하나가 걸터앉았다. 전망대로 연결되는 길은 거의 잔도(棧道) 수준. 처마에 들어붙은 제비집을 연상시키는 전망대와 함께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 서해랑길과 동행하고 있는 이 길은 ‘땅끝 산책로’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그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듯 곳곳에 전망대를 들어앉혔다. 첫 번째 만남은 ‘사자끝샘 쉼터’. 대(臺)를 바다를 향해 내어 만들어 전망대를 겸하도록 했다. 지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을 세워두는 친절도 놓치지 않았다.
▼ 쉼터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 왔을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 바다에는 전복·다시마·미역 양식이 한창이다. 열을 맞춰 떠있는 궤와 붉고 하얀 부표가 양식장임을 말해준다.
▼ 탐방로에는 데크와 흙길을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흙길이 기본. 길을 내기 힘들 정도로 비탈진 곳에는 데크로 길을 만들었다. 두 번째로 만난 쉼터는 ‘당할머니 쉼터(갈산마을 당할머니의 얘기다)’. ‘학도래지 쉼터(천연기념물로까지 지정될 정도로 많은 학이 찾아왔었단다)’가 뒤를 잇는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 조금 더 걷자 사랑의 메신저(messenger)라는 ‘연리지(連理枝)’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50-60년쯤 묵은 ‘때죽나무’가 만들어낸 걸작인데,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있는 여느 연리지와는 달리 이곳은 오른쪽 나무줄기와 왼쪽 나뭇가지가 붙은 게 조금 특이하다.
▼ 연리지의 고사는 후한 말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됐다. 효성이 지긋하기로 소문난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3년 동안을 옷도 벗지 않은 채로 간병을 했다. 어머니가 죽은 다음 옹의 집 앞에 나무 두 그루가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면서 가지가 서로 붙더니 마침내는 한 그루처럼 되었단다. 그래서 연리지라는 단어는 원래 효심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다정한 연인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은 당나라 시인 백락천(白樂天)에 의해서다. 백락천은 당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장한가(長恨歌)라는 장대한 서사시로 읊으며, 당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연리지’를 빌어 노래했다.
▼ ‘달뜬봉 쉼터(중리마을의 샘과 뒷산을 소재로 삼았다)’에 이어 나타난 ‘댈기미 쉼터’는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곳이니 사랑이 성사되길 빌어보라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둥글둥글 크고 작은 돌들이 깔려있다는 ‘댈기미 해안’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돌을 주워 사자봉을 향해 소원을 빌면서 바다로 던지면 된단다. 단, 주변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또한 이곳의 조약돌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건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 저 어디쯤에 ‘댈기미 해안’이 있다고 했다. 그 해안에는 ‘소원돌’이 이 세상 소원의 숫자만큼이나 많다고 했다. 저마다의 소원이 다른 것처럼 그 소원을 품은 돌들도 그 색깔과 모양이 제각각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찾아보지는 못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다. 자갈밭에 누워 파도에 떼밀려 돌 구르는 소리. 저마다 품고 있는 소원을 말하듯 또르르 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 잠시 후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오토캠핑리조트↑ 2.1㎞/ 전망대→ 0.7㎞/ 땅끝탑↓ 0.6㎞)에 닿았다. 탐방안내도는 이곳을 ‘자갈밭삼거리’로 적고 있었다. ‘댈기미 해안’ 근처에 위치한 삼거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찾을 수 없었다.
▼ 이후로도 몇 개의 쉼터를 더 만난다. ‘사자포구 쉼터(미황사의 창건설화가 서린 포구 얘기다)’와 ‘불무청 쉼터(송종마을 골짜기에 있었다는 대장간이야기이다)’와 ‘난대림 쉼터(갈산마을의 난대림)’ 등 땅끝마을 주변의 볼거리들이 빠짐없이 나열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37분. 산비탈을 따르던 탐방로가 임도로 내려선다. 군부대 앞 작은 공터에는 농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젊은이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 군부대 앞에서 숲길이 끝나고 대신 황톳길(일부는 시멘트 포장)이 펼쳐졌다. 황토가 깔린 구간은 짧지만 강렬했다. 부들부들한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지는 듯했다.
▼ 이후부터 길 찾기는 리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주황색과 노란색 리본이 한 쌍을 이루는데, 둘레길 곳곳에 촘촘히 매달려 있어 길 찾기에 많은 도움을 준다.
▼ 그렇게 10분쯤 걷자 ‘땅끝 바다낚시터 & 글램핑’이 얼굴을 내민다. 낚시를 활용하는 새로운 레포츠 분야로, 남해바다를 베개 삼아 글램핑을 할 수 있어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라고 한다.
▼ 낚시터 앞바다에는 양도(羊島)가 두둥실 떠올랐다. 염소를 방목하던 섬이라는데, 육지(해남)에서 건너뛰기 한번이면 이를 거리지만 완도군(군외면 당인리) 소속의 유인도이다. 서너 명의 주민이 전복양식 등을 하며 살아가는데, 물이 나지 않아 생활용수를 해남 땅에서 길어다 사용하고 있단다.
▼ 잠시 후 도착한 갈산마을에는 커다란 ‘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바닷일 나가는 뱃사람들이 무탈을 빌며 제를 지내던 당집(‘갈산할매’를 모신다)까지 있단다. 하지만 둘레길 나그네들이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낚시터가 전부일 따름이다. 참고로 갈산마을 앞바다는 ‘울돌목 물살도 울고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살이 세다고 한다. 또 ‘죽음의 고비’를 뜻하는 ‘사재끝’이 땅끝에 있어 제를 지내야 안심하고 지날 수 있었단다.
▼ 갈산마을은 방풍림으로 후박나무를 심었나보다.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바닷가를 향해 도열해있는데, 수십 아니 수백 년은 족히 묵은 듯 그 굵기가 장난이 아니다.
▼ 마을 앞 팽나무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둘레를 장정 두엇이 팔을 옆으로 뻗어야 할 만큼 굵은 팽나무가 흡사 뒷짐진 수호신처럼 길가에 늘어서 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매는 신령과는 자못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 마을안길에서 서해랑길의 두 번째 ‘이정목’을 만났다. 시점과 종점을 화살표로 나타낸 다음, 그곳까지의 거리를 적었다. 화장실의 위치와 거리까지 표시한 독창성이 돋보이는 시설물이다.
▼ ‘코리아 트레일’의 표식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정방향은 진녹색. 역방향은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반면에 서해랑길의 방향 표시는 정방향을 노란색, 역방향은 군청색으로 하고 있었다.
▼ 드넓은 마늘밭을 지나면 고갯마루 언저리에서 유럽풍의 가옥(땅끝 방갈로펜션)을 만나고, 고개를 넘자 이번에는 ‘땅끝 오토캠핑장’이 얼굴을 내민다. 카라반과 ‘데크 및 파쇄석’ 사이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송호해수욕장을 앞마당 삼을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캠핑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 캠핑장을 스치듯 지나치면 ‘송호해변(松湖海邊)’이다. 해변에는 해수욕장이 들어서있다. 너비 200m에 길이가 2km나 되는 백사장을 지자체에서 그냥 내버려두었을 리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수심이 얕은데다 경사까지 완만하다는 데야... 아래 사진은 해변의 끄트머리쯤에서 만난 포토죤이다.
▼ 송호해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울창한 해안방풍림이다. 백사장 뒤로 나이가 100년도 넘는 소나무 약 600여 그루가 들어서 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전라남도기념물(제142호)로까지 지정되었을 정도다. 하긴 오죽했으면 지명까지 ‘송호(松湖)’가 되었겠는가. 소나무가 많다는 것에 더하여 바다가 호수같이 잔잔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라니 말이다.
▼ 해변을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도 만만치 않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섬에서부터 멀리 그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는 섬까지 아기자기한 바다 풍경이 멋지다.
▼ 해변에는 디자인(솔방울이 매달려있는 것이 송림을 의식한 듯)이 예쁜 분수가 만들어져 있었다. 기발한 발상이지 싶다. 물놀이를 마친 뒤 따로 샤워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은가.
▼ 오랜 세월 강한 바닷바람을 맞았을 텐데도 소나무는 여전히 늠름하다. 하지만 개중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도 있었다. 바다를 향해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 간조 때문인지 백사장은 너른 모래운동장으로 변해있었다. 그 백사장에서 아이들과 아빠가 웅크리고 앉아 무엇인가 하고 있다. 평화로우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풍경이다.
▼ 송호해변의 끝에 위치한 보건진료소의 뒷산으로 올라가 생태탐방로를 따른다. 생태라는 이름에 걸맞게 울창한 숲이 만들어내는 터널을 내내 걷게 된다.
▼ 송호해변에서 땅끝황토나라테마촌까지 이어지는 생태탐방로는 ‘꼼지락 캠핑’이란 부제를 달았다. 꼼지락거리며 걸어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숲이나 바닷가 또는 황톳길에서 꼼지락꼼지락 놀며 실컷 웃다보면 힐링은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겠는가.
▼ 앞서가던 사람들이 나무계단을 오른다. 군 시설물로 사용하던 벙커를 개조에 ‘전망대’로 꾸몄다. 벙커의 상부에 난간을 두르고 벤치를 놓아 쉼터까지 겸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망대 위로 올라가보는 것까지는 사양하기로 했다. 조금 전 송호해변에서 간식으로 준비해간 막걸리를 마셔버렸기 때문이다.
▼ 벙커는 규모가 꽤 컸다. 초소 근무(병장 제대지만 한국군에서는 6주 밖에 생활해 보지 못했다)를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문이 6개나 되는 걸로 보아 최소한 분대 단위는 머물렀을 것 같다.
▼ 걷는 게 다가 아니고 읽는 재미도 있다. 나무의 이름과 특징을 적은 안내판을 곳곳에 세워놓았다.
▼ 하도 많아서 모두를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그동안 궁금하게 여겨오던 나무(까마귀쪽) 하나를 머릿속에 담을 수 있는 행운도 있었다.
▼ 그렇게 15분쯤 걸었을까 탐방로는 다시 바닷가로 내려선다. 이때 좀 특이하게 생긴 방파제(바닷쪽에 별도의 방파제가 있다)가 얼굴을 내민다. 아까 생태탐방로에서 본 지도에는 저 시설을 ‘독살(石防簾)’로 적고 있었다. 돌로 담을 쌓은 뒤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방식 말이다. 그런데 저렇게 견고하게 만든 독살은 난생 처음이다. 거기다 둑과 둑 사이의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고기는 어쩌란 말인가.
▼ 이곳의 바다도 역시 양식시설로 꽉 차버렸다. 외형으로 보아 전복과 다시마를 기르는 모양이다. 참! 이쯤에서 의문점 하나. 해남의 3대 브랜드 상품 가운데 하나라는 ‘김’ 양식장은 왜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나머지 둘(딱 10만석만 한정 생산하는 땅끝햇살 쌀, 당도 높은 건강식품 해남황토 고구마)이야 내륙에서 기른다지만 말이다.
▼ 바닷가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 ‘땅끝 황토나라테마촌’이 자기도 있단다. 2만7천 평(87,740㎡)이나 되는 너른 부지에 들어선 이 시설은 숙박과 체험을 함께할 수 있는 황토문화체험센터와 수변공원, 천연잔디구장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최대 6인까지 지낼 수 있는 대형 카라반을 비롯해 250석 규모의 오토캠핑장은 소나무 숲속과 바닷가에 잇닿도록 설계됐다.
▼ 가족단위 여행에 최적화된 시설은 ‘땅끝 해남을 리폼하다’라는 주제로 설계됐단다. 해남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황토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자연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그래선지 들어선 건물들이 하나같이 빨강 일색이었다. 거기에 숲과 바다를 덧입혔다고 보면 되겠다.
▼ 야영사이트(숲속 캠핑장) 지역의 다람쥐(대나무로 만든 조형물)는 도토리를 주워 먹느라 부산하다. 참! 작년엔가는 이 캠핑장에서 ‘반려견과 함께하는 생태캠핑’이 열리기도 했었다. 저런 콘셉트(concept)를 바탕으로 행사를 기획하지 않았을까 싶다.
▼ 탐방로는 황토나라테마촌을 잠시 빠져나오기도 한다. 작은 포구(송호항이라고 했다)로 내려섰다가 해안도로를 따라 ‘땅끝해안로(국도 77호선)’로 나간다. 그게 싫으면 꽃밭으로 치장된 테마촌의 안길을 이용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 황토나라테마촌을 빠져나오자 ‘송호마을’ 표지석이 반긴다. 오른편은 1코스의 거리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이용하는 단축코스로 송호해변으로 연결된다. 이정표(송종마을회관 1㎞/ 송호리사무소 0.8㎞)는 탐방로가 송종마을회관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 ‘땅끝해안로’를 따라 송종마을로 향한다. 걷는 도중 부티를 내려는 듯한 ‘밀양박씨 세장산’과 어마어마한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눈에 담기도 한다.
▼ 탐방로는 ‘청우물산’ 앞(이정표 : 송종마을회관 0.5㎞/ 황토나라테마촌 0.8㎞)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해안으로 나간다. 차량이 질주하는 ‘해안땅끝로’를 피해 바닷가로 우회시키는 모양새이다. 이후부터의 사진은 둘레길 도반(道伴)들의 것을 빌려왔다. 카메라 조작을 잘못했던 탓인지 사진이 온통 흙색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 바닷가까지 나간 탐방로는 다시 내륙으로 방향을 튼다. 이때 송종마을 선착장이 멀리 보이는가 하면, 썰물 때마다 바닷길(주민들은 또 하나의 ‘모세의 기적’이라 부른단다)이 열리는 ‘증도’가 눈에 들어온다. 참! 그 뒤로 보이는 건 죽도(대섬)라고 했다.
▼ 그끄제(4.20)가 곡우(穀雨).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절기다. 선현들의 지혜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봄 가뭄에도 불구하고 들녘의 보리는 잘 익어가고 있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 송종해변도 역시 울창한 송림을 배경으로 삼았다. 하지만 텅 비어있는 게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지는 않았나보다.
▼ 바닷가를 스치듯 지나치자 이번에 송종마을(송호리)가 나타난다. 청우물산에서 농로로 내려선지 정확히 10분 만이다. 탐방로는 마을회관을 왼편에 끼고 도는 모양새이다. 마을안길을 지나도록 설계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난 그냥 도로(땅끝해안로)로 올라서버렸다. 볼거리 없는 골목길에 대한 매력을 잃었다고나 할까?
▼ 도로를 따라 300m쯤 걸었을까 탐방로가 다시 농로로 들어선다. 다만 이번에는 오른쪽이다. 이 구간(마봉·송종길)은 마련마을까지 이어지는데, 차량이 씽씽 달리는 국도(77호선, 땅끝해안로)를 피해 길을 에둘러 내놓지 않았나 싶다.
▼ 10분쯤 더 걸어 ‘송지저수지’에 도착했다. 소중산(236m) 자락에 들어선 저수지로, ‘상수원 보호지역’이라는 안내판겸 경고판을 매달고 있었다. 담수된 물을 정수장에서 처리해 마을에 공급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 저수지를 왼편 옆구리에 끼고 이어지는 길은 조금 지루한 편이다. 철망과 잡목, 산죽이 겹으로 쌓이면서 저수지를 보는 맛까지 없애버렸다. 저수지를 지났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경사 없는 길이라서 걷기에 편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고개를 넘는데 ‘달마고도’라고 쓰인 말뚝이 눈에 띈다. 달마산 아래 ‘미황사’에서 시작하는 달마고도는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을 주제로 2017년 개통한 둘레길이다. 생태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곡괭이·호미 등 사람의 힘으로만 1~4코스까지 총 17.74㎞의 길을 닦았단다.
▼ 송종마을을 출발한지 1시간. 송지면소재지와 도솔봉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마련마을’에 닿았다. 1코스의 종점인 송지면사무소까지는 아직도 4km쯤 더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무릎이 시원치 않은 집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이다.
▼ 마련마을 앞 삼거리에 서자 달마산이 조망된다. 이곳에 달마산에 대한 안내판을 세운 이유이지 싶다. 하지만 아랫도리가 잘려나간 탓에 완전치 못한데, 완성된 달마산을 보고 싶다면 ‘마봉2저수지’까지 조금 더 걸어야만 한다. 참고로 ‘달마산’은 달마대사가 머물렀던 숭산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송에서 표류해 온 배의 한 고관이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만한 땅이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 날머리는 송지면사무소(해남군 송지면 산정리)
송지면사무소 앞에서 택시를 내렸다. 서해랑길 안내판은 면사무소 앞 화단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스탬프보관함이 보이지 않는다. 서해랑길은 스탬프 대신 안내판 하단의 QR코드를 핸드폰으로 찍어 홈페이지에서 인증 받는 방식이란다. 번거로움이 싫어 완주 인증을 하지 않는 나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이겠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또 다른 나에는 꽤 낯선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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