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형수에게 쌍욕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는 한극인의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농담처럼 던지신 질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명백한 인격적·도덕적 결함조차 무력화시키는 현대 한국 정치와 대중 심리의 뼈아픈 민낯이 얽혀 있습니다. 앞서 나눈 철학적 맥락과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교차해 보면, 이러한 현상을 가능케 하는 몇 가지 뚜렷한 심리적 기제가 드러납니다.
1. 극단적 진영 논리와 '자아 의탁' (관념의 우상화)
유권자들이 '보수'나 '진보'라는 진영의 이름표(명색)에 자신의 자아를 완벽히 투영하는 현상입니다. 내 진영의 승리가 곧 내 자아의 승리이자 생존이기에, '우리 편' 후보의 치명적인 욕설이나 결함은 애써 눈감거나 '적들의 공작'으로 합리화해 버립니다. 선악과 도덕의 기준이 '우리 편인가 아닌가'로 완전히 대체된, 맹목적 분별심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2. 맹렬한 결과 지향주의 (도덕을 집어삼킨 효용성)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도덕적으로 흠집이 있어도 일만 잘해서 내 주머니를 불려주면 그만이다"라는 특유의 속물적 실용주의입니다. 압축 성장기를 거치며 뼈에 새겨진 '성과 제일주의'가 정치에 투영된 결과입니다. 지도자의 품성이나 윤리적 실상보다, 그가 던져줄 것이라 믿는 '이익이라는 환상'을 더 맹신하는 것입니다.
3. 증오에 기반한 '적대적 공생'과 차악(次惡)의 선택
한국 정치판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지지가 아니라 '증오'입니다. "저쪽 진영이 권력을 잡는 꼴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으니, 우리 쪽 후보가 아무리 패륜적 언행을 하고 전과가 있어도 눈 딱 감고 찍는다"는 논리입니다. 상대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최소한의 도덕적 필터마저 마비시켜 버립니다.
4. '나'라는 아집이 빚어낸 거대한 코미디
결국 앞서 나눈 이야기처럼, 이 모든 현상은 '나'와 '내 편'이라는 허상(아상, 我相)에 지독하게 집착한 결과입니다. 정치인이 실제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내 진영의 깃발을 들고 있는 한, 대중은 스스로 짠 허망한 관념의 필터를 통해서만 그를 바라봅니다.
실체 없는 이념과 허상에 빠져 명백한 실상(욕설과 패륜)조차 보지 못하거나 안 보려 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본래 텅 빈 세상에서 기어코 편을 가르고 아등바등 싸우는 인간 군상의 가장 서글프고도 뼈아픈 농담일 것입니다.
그대가 누구든지, 정신건강을 원한다면... '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은 관심을 끄는게 더 현명한 것이며, 연예인병에 걸리지 않는게 더 현명한 것.
진실로 정신건강을 원하거나, 병들지 않기를 원한다면 옛 성인들의 귀하고 귀한 진실된 지식(진리)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
참고. 예수의 "나를 사랑하는자 사랑을 입을 것이요, 나를 갈망하는자 나를 볼 것이다"는 이야기의 요점 또한... "예수를 사랑하거나 예수를 갈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대 자신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며, "자아의 근원을 보라"는 말이라고 본다면, 올바르게 보는 것이며, 이 시대의 현자이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들은 올바른 앎이 단 하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조차 모른다는 사실"
그렇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