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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교양으로 읽는 《구약성서》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읽고 또 가지고 있는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며, 가톨릭·기독교·이슬람교의 기본 경전이고, 《구약성서》는 동양에서 유교나 불교만큼 서구 문명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양대 산맥 중 헤브라이즘의 뿌리다. 시와 소설, 회화, 조각, 건축, 고전음악, 영화 등 수많은 문화의 모티프, 이미지, 상징들이 《구약성서》에서 빌려온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다비드상〉이런 것들 모두 그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교를 갖지 않았으므로 《구약성서》를 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고 《성경》도 그저 겉핥기로만 읽어본 적이 있을 뿐이다.
제목을 「교양으로 읽는 구약성서」라고 하였으나, 저자 자신도 “고전으로 한 번 읽어보려다가도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 지루해서 책장을 덮어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고, 그 이유를 유대민족의 신화와 전설, 고대 근동지역의 역사와 지리, 까다로운 신학적 문제, 예언, 유대민족의 오랜 관습, 문화, 유대인 특유의 언어와 비유, 상징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구약성서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가능한 쉽게 이야기로 풀어 쓰면서 동시에 구약에 담긴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저자 이범선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신학·서양철학·역사학을 공부하고 조직신학을 전공했으며, 히브리어·그리스어·라틴어 등도 익혔다고 한다. 서울서 7년간 부목사로 일하고, 10년 전에 삼성감리교회에서 13년째 목회자로 재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그대로 재직하고 있다면 그곳에서만 23년째, 목회자로 30년째라는 이야기가 된다. 여러 권 책을 집필하기도 했으나 그것들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역사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달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서 팔레스타인의 가나안과 이집트의 홍해 입구로 이르는 지역을 ‘비옥한 초승달지역’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은 예로부터 문명의 요람이었다. 이곳에서 인류 최초 문명인 수메르 문명(기원전 4000∼2300)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수메르 다음은 아키드 – 우르 - 아시리아 제국을 거쳐 카시크 왕조 – 신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 페르시아 – 그리스 – 로마 –동로마제국(비잔틴)에 이어, 오늘날의 서구 문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가로세로 15㎝쯤 되는 점토판에 자신들이 발명한 설형문자(쐐기문자)로 신화를 비롯한 일상사를 기록했는데, 현재까지 발굴된 것이 10만 개가 넘는다. 수메르는 천문학(지구 자전·공전과 태양계의 9개의 행성, 춘추분·동지·하지, 별자리 등), 신화와 종교, 태음력과 별자리에 따른 달력, 의학과 약학, 역청(콜타르)을 이용한 건축법과 조선술, 도로와 토목, 고층 건물의 건축법, 학교와 교사, 도서관, 우편제도, 세금과 마차(중국도 독자적으로 마차를 발명했지만 수메르보다 후대이다), 여인들의 화장품, 심지어 삼류소설까지 발명했다.
농사를 지었던 수메르인들은 자연계의 경이로운 요소들을 신적인 존재로 여겨 하늘의 신이며 신들을 왕인 ‘안’(아누)과 대지와 공기의 신 ‘엔릴’(主신 아르두크), 물과 지혜의 신 ‘엔키’, 전쟁과 농업의 신 ‘니누르타’죽음과 부활을 관장하는 ‘두무지’(담무즈), 태양과 정의의 신 ‘우투’, 달의 신 ‘난나’, 비와 천둥의 신 ‘이슈쿠르’, 질병과 죽음을 다루고 저승을 관장하는 ‘네르칼’같은 남신(男神)과 엔릴의 아내이자 공기의 신인 여신(女神) ‘난릴’과 풍요와 전쟁과 사랑을 관장하는 ‘이난나’, 대지의 여신 ‘난후르사그’까지 주요한 12신들을 믿었다. 이 신들은 가나안을 거쳐 이집트로 건너가 신화에 영향을 끼친 데 이어, 내용이 보태지거나 각색되어 키프로스, 크레타를 비롯 지중해 여러 섬을 지나 그리스로 유입되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신들이 섞여 있으며, 올림포스 12신도 수메르 신화의 모방이다.
수메르, 이집트, 가나안의 신화와 종교는 후일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신화와 종교로 인해 강하게 충돌하게 되는데, 이런 충돌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진입하면서 시작되었고,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서 대대로 종교투쟁을 벌인 까닭은 가나안 신들이 자기들의 하느님이 아닌데다 가나안 종교를 ‘윤리 없는 물질주의 종교적 변형(우상숭배)’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민족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철저하게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이집트의 신화와 종교 체계를 거부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종교는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제1장】창세기
《구약성서》는 〈창세기〉로부터 시작된다. 창세기, 처음이라는 뜻이고 기원전 3세기 중반(기원전 25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70명의 유대인 학자가 그동안 전해져 오던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의 성서》에 기원한다. 〈창세기〉에는 우주 만물과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1∼11장은 우주 만물의 시작, 12∼50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인 ‘아브라함’에서 증손자 ‘요셉’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선민사상을 형성해 왔는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1장 천지창조는 여섯째 날에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고 하여 인간인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내려준 이야기다. 2장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이브)’, 3장은 ‘잃어버린 낙원’, 4장은 ‘카인과 아벨’에 대한 것으로, 세 편이 한편의 이야기로 《구약성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수메르인들은 질병도 없고 죽음도 없는 불멸의 낙원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악과가 있다고 보았는데 선과는 이익이 되지만, 악과는 독이 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경고다. 하느님은 사람을 노예나 기계가 아니라 지성을 갖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인격으로 만들었다고 보았다(창세기 1:26) 하느님이 보았다는 말은 《구약성서》를 만든 저자들이 하느님을 대신해 그렇게 보았다는 것이다. 유대 전통에는 반은 사람, 반은 짐승의 모습을 한 초자연적 존재가 많은데, 유대인들은 이 존재를 하느님을 보좌하고 성스러운 장소를 지키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신성시했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조형물이 발견되고, 이집트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도 그것이다. 신을 보좌하는 수호신이 있다는 믿음은 고대에 존재한 사고방식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어느 날 “야훼께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하고 외쳤다. 동산에서 쫓겨난 뒤 처참하게 무너진 다음에 맞본 복이었다. 첫째 아들은 ‘카인’(얻다) 이었고, 둘째는 ‘아벨’(헛것, 허무)이었다. 카인은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양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카인이 예물을 바쳤음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카인의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문제아였던 카인은 들판으로 아벨을 불러내 동생을 죽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느님의 저주나 처벌을 받아야 함에도 카인은 오히려 부자가 되고 왕이 되어 교만하기만 했다. 하느님을 등지고 떠난 카인과 후손들은 날로 번창하고 불어나 노아의 홍수 시대에 이르고, 아담과 하와는 두 자식을 모두 잃고 비통하게 지내다가 셋째 아들인 ‘셋’을 낳고 위로를 받는다. 이후 기록은 아담의 후손 족보로서 아담의 후손과 카인의 후손이 두 부류로 나뉘어 세상에 퍼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진화론과는 전혀 맞지 않은 내용이다.
《구약성서》에 전하는 홍수 이야기는 이미 수메르 신화에서 전해오던 이야기다. 그리스와 이집트, 중남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하고 우리나라에도 전하는 이야기다. 함안의 작대산 전설은 대홍수로 온 세상이 다 잠겼는데, 작대기만큼 남아 거기에 사람들이 피난해 살아남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런데 《구약성서》에는 홍수가 일어난 이유가 좀 황당하다. “땅 위에 사람이 불어나면서 그들의 딸들이 태어났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그 사람의 딸들을 보고 마음에 드는 데로 아리따운 여자를 골라 아내로 삼았다.”이것이 타락이고, 퇴폐라는 것이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차고 어려서부터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고, 하도 기가 막혀 후회하며 슬퍼하고 아파하다가 ‘내가 이러려고 정치를 했나?’가 아니라, ‘내가 이러려고 사람을 만들었나? 내가 지어낸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 쓸어 버리리라.’고 생각한 하느님은 자기 말을 잘 듣는 노아에게만 살짝 귀띔을 해 주어 살아남게 했다고 하는 이것이 하느님의 뜻인가? ….
그러나 《구약성서》에는 노아는 구원을 받은 것이고, 구원이란 것을 내내 반복하면서 ‘구원’이 곧 ‘하느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후에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아브라함(아부람)을 불러냈다.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름(召命)을 받고는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하는데 그가 떠난 곳이 바로 ‘가나안’으로 오늘날 분쟁의 씨앗이 되는 곳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 부름을 받은 뒤 25년이 지나 100살이 될 때까지도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이것은 당초 약속과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믿고 기다렸고, 마침내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그 아들은 금지옥엽이었지만 하느님은 이삭을 번제(燔祭-바베큐)로 만들어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이는 ‘하느님의 시험’이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진실로 믿고 사랑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아연실색했지만, 그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도리아 산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순식간에 아들을 붙잡아 장작불에 눕히고 비수를 치켜들었다. 공포에 질린 아들이 외쳤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세상엔 아버지가 없습니다. 주께서 내 아버지가 되어 주소서!”이에 아브라함이 “하늘에 계신 주여! 감사하나이다. 이삭이 주를 향한 신앙을 잃느니보다는 차라리 나를 못된 인간으로 생각하는 쪽이 낫습니다.”라고 중얼거리면서 눈을 질끈 감고 아들의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잡아 제물로 대신 바쳤다.
그다음은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노래를 불렀다.’는 등으로 전개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 모래 같이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은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점령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왠지 모르게 들으면 들을수록 자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자인 이범선 목사는 “이로써 아브라함은 떠나고 탈출과 지향의 삶이 끝난다. 성서의 저자는 ‘모리아 산’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고, 오직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하느님이 바라는 믿음의 삶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삶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며, 출애굽 이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으로 집약된다. 이것이 구약성서 전체를 이해하는 틀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100살일 때 아내 ‘사라’와의 사이에 이삭(웃음)이 태어나지만, 그전에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의 배다른 형인 ‘이스마일’이 있었다. 이스마일은 아브라함이 86세, 사라가 76세 때에 그 나이 되도록 아들이 없자 사라가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과 동침하게 해서 낳은 아들이었다. 이복형제 둘이 사이가 좋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항상 어른 들이었다. 사라는 몸종이 낳은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이 못내 괘심했고 시기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져 아주 둘을 내쫓을 작정으로 아브라함을 설득했다. 이런 면에서 사라는 빈틈없는 여자고, 아브라함은 허술한 남자였다. 아부라함은 사라가 하자는 대로 해 하갈과 이스마일을 내쫓았다. 그후 사라와 아브라함은 이삭과 36년을 같이 살면서도 그토록 품에 안고 싶었던 손자를 보지 못한 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떠나고 말았다.
아브라함이 준 약간의 양식과 물 한 부대를 받아들고 고생, 고생하며 ‘세일 산’으로 들어간 하갈과 이스마일은 아들 열두 명을 낳고, 세일 산 일대를 호령하는 족장이 되었다. 이스마일은 하느님 말대로 아랍인의 조상이 되었다. 《구약성서》에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이 없는 하갈이라는 여종의 이야기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이방인도 하느님 보호 안에 있으며 그들과 살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려 한 것이 아닐까? “진리(道)는 땅강아지와 개미에게도 있고, 기장이나 피에도 있고, 기와나 벽돌에도 있으며, 똥이나 오줌에도 있다”고 한 장자(莊子)의 말처럼 하느님의 눈에는 온 세상 모든 것이 소중한 것으로 하길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하느님에게 바쳐지려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이삭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삭의 시대는 별사건 없이 아버지처럼 하느님 은총을 기리고 산책이나 하면서 평범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도 늦게까지 자식이 없었는데, 그런 그의 기도를 들었는지 하느님이 아들을 점지해 주셨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나. 첫째는 털북숭이여서 ‘에서’라고 이름 짓고, 첫째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하여 둘째는 ‘야곱’이라 했다. 아들이 태어나자 집안에 풍파가 일기 시작했는데 이삭은 그런 일에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덤덤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좋든, 나쁘든, 일이란 안달복달한다고 될 것이 아니며 그저 하느님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동생 야곱이 형에게 주어지는 장자(長子)자리를 빼앗고,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자, 화가 난 에서가 동생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안 야곱은 형을 피해 멀리 외삼촌 집으로 도망쳤다.
모든 것에 분노하고 실망한 ‘에서’는 집을 나서 큰아버지 이스마일이 계신 세일 산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큰아버지를 이어 부족장이 되고 후일 에돔 부족의 시조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에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야곱은 콩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권리를 빼앗고 아버지까지 속였지만, 그는 어떻게든 복을 차지해 영도자가 되려는 꿈과 야망이 있었다. 야곱에게는 그 집념이 무서웠고 약점이기도 했다. 단테의 〈신곡〉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야곱의 꿈에 하늘까지 닿은 층계 위에 천사들의 무리가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층계를 오르려고 지상에서 발을 떼는 이가 아무도 없다. 진실한 사랑이 은총의 빛에 의해 불이 붙으면 더욱더 불꽃이 강렬해진다. 오, 인간이여, 위로 날아오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으면서도 왜 이다지도 연약한가? 순한 바람결에도 하나의 지는 나뭇잎과도 같이 떨어지다니!”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베고 잤던 돌베개 위에 기름을 붓고, 하느님만 섬기며 살겠다고 서원했다. 그러자 마음이 안정되고 거룩한 힘을 대면할 때에 받는 경이로움으로 충만해졌다. 그후에 야곱은 하느님의 사도가 되었다.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쳤던 야곱은 외사촌 누이들과 결혼까지 했지만, 외삼촌 집에서 20년이나 머슴살이를 한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형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꿈에서는 천사와 씨름을 하고, 엉덩뼈가 부서진 상처를 입었으나 하느님으로부터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는 신탁을 받고 형으로부터 환대까지 받으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아내 라헬이 둘째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숨을 거두고, 아버지 이삭마저 세상을 떠난다. 훗날 이스라엘 민족이 아브라함이나 이삭, 요셉이 아닌 야곱과 동일시 한 것은 믿음과 욕심의 경계선에서 평생 수난 속에 살면서도 하느님을 버리지 않았던 야곱의 아슬아슬한 생애와 그렇게 살아온 자기들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야곱이었다.
야곱은 젊어서 외삼촌 ‘아반’의 딸인 ‘레아’와 ‘라헬’과 결혼해 자식을 여럿 낳았지만, 베냐민을 낳다가 죽은 둘째 부인인 라헬을 몹시 사랑했다. 레아에게 아들이 여섯, 라헬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아들이 요셉(더하기). 작은아들이 벤냐민. 야곱은 둘째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들들을 사랑했지만, 이복형들은 그것을 시기했고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팔려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요셉의 나이 17세쯤이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돈 몇 푼에 자기를 팔아넘긴 형들을 본 요셉은 절망에 빠졌다. 가슴 가득한 공포와 두려움, 죽은 어머니와 동생 벤냐민, 그리고 아버지가 떠올랐고,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고 고생만 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신은 하느님의 뜻과 계획대로 살겠다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상인들은 요셉을 이집트 파라오 황제의 경호대장이던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아넘겼다. 요셉은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 얼마동안 보디발의 종노릇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세상만사가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성실하고 잘생긴 요셉은 출세했지만, 지나치게 빠른 출세가 화를 불렀다. 보리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 허구한 날 요셉은 안주인을 피해 도망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여자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상대의 옷을 챙겨두었다가 남편이 돌아오자 그 옷을 보이면서 음해했다. 보리발은 요셉을 감옥에 처넣었다. 나락에 빠졌지만 하느님의 뜻이려니 하며 모든 일을 하느님께 맡기고 참아냈다.
노예생활과 감옥에서 각고의 10년을 보낸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몽해 주면서 황제의 마음을 얻어 이집트 총리가 되고, 황제 파라오의 주선으로 제사장의 딸 ‘아세낫’과 결혼도 했고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장차 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로 큰아들 ‘므나세’는 ‘잊게 하다’는 뜻이고, 작은아들 ‘에브라임’은 ‘갑절로 열매를 맺게 하다’는 뜻으로 이름에서 요셉이 겪은 마음고생을 말해준다. 나중에 이복형제들과 와해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스라엘)을 이집트로 불러 같이 살면서 하느님을 축복했다. 요셉과 형제들은 아버지를 가나안 땅 조상 묘지에 묻었다. 요셉은 히브리 인간상의 영원한 본보기로서 믿음, 고난, 인고, 지혜, 승리의 상징으로 겸손하고 덕스러운 인격의 소유자였다. 요셉은 하느님이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이룩한 전형으로서, 자신의 복을 혼자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이에게 나누어주어 구원하는 사람, 하느님의 복을 세상 만인에게 끼쳐주는 자로 기억되고 있다.
【제2장】출애굽기·민수기((出埃及記·民數記)
나는 둘 다 처음 듣는 말이고 어렵게 느껴진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집트어 음운인 애급이 변해서 애굽이 되었고, 민수기는 ‘∼의 광야에서’를 뜻하는 말로 여러 개의 수(數)를 말한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후손들은 모두 70명에 달했는데, 이들이 계속 이집트에서 살았다. 요셉과 그의 동기들은 모두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번성하게 살았다. 그들은 이집트 땅에서 350년(추정) 넘게 태평성대를 누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센’이라는 지역에 살았는데, 지중해 연안 나일강 하류 삼각주로써, 고센은 농사와 목축이 잘 되었다. 이 때문에 후손은 요셉이 죽은 뒤에도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집트 백성이 되어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느님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조상과 심지어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면서 모든 행운이 이집트의 신들이 내려준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오래전에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때가 다가왔다.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왕이 새로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는 것인데, 새로운 파라오가 요셉의 치적을 모조리 부정하고 이스라엘이 누려온 모든 혜택을 박탈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아버린 것이다. ‘파라오’(큰집이란 뜻)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하고, 백성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이라고 여겼다. 제정일치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최고의 제사장이기도 했다. 이집트의 발전과 안정된 문화는 파라오로 인해 창설되었고 절대적 권위로 이루어졌다. 이집트에는 기원전 14세기 ‘아멘호테프’라는 파라오가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받드는 종교 개혁을 단행해 전통적인 신들과 종교를 강제로 일소하는 독재정치를 펴다가 내쫓긴 사실이 있는데, 그 후 그의 업적은 철저히 부정되고 말소되었듯이 이집트는 이전 ‘사적’을 철저히 부정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요셉의 치적도 여기에 해당한 것이다.
《구약성서》에는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한 시기 파라오를 대개 ‘람세스 2세(기원전 1290∼1223년)로 보지만, 67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한 람세스 2세는 이스라엘에게는 ‘히브리’란 용어를 써 그들을 강제동원하여 여러 건축공사를 시켰는데, 오늘날 잘 알려진 ‘카르나크’신전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85년 속주인 팔레스타인(가나안)으로 원정을 떠났다가 1269년 평화조약을 맺고 그곳의 공주와 결혼하기도 한 파라오였다.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이 처음 이집트로 간 시기가 기원전 1448년,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430년으로 보는데, 따라서 야곱이 이집트로 간 것은 기원전 1878년쯤이다. 그리고 기원전 1292∼1190년에 람세스 2세 때에 이집트를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왕권 강화와 국민통합을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이 ‘희생양 찾기’다.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왕이 새로 왕이 되었다”고 한 것은 이런 정치적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방 민족인 이스라엘은 손쉬운 희생양이었다. 〈출애굽기〉에서 히브리, 히브리인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히브리는 ‘떠돌아다니며 사는 사람’즉 ‘나그네 살이’를 뜻한다.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인들은 언제라도 자기들을 배반하고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요셉조차도 가나안 땅에서 노예로 팔려 온 히브리 중의 한 사람이었고, 이집트 땅에 발붙여 사는 이스라엘 동족들은 히브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태평성대가 끝나자 야곱(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때부터 100년 가까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혹독한 채찍질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강대국 속에서 고난의 운명적 상황과 주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자기들이 누린 혜택이 사실 조상 한 사람을 잘 둔 덕택이었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것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몰랐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기회를 보아 손을 써야겠다’고 한 파라오에 의해 이스라엘은 그동안 누려온 모든 자유와 권리는 빼앗기고,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2010년에 이집트 가자지역 피라미드 옆에서 4천 년 전의 한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무덤에서 나온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에게는 일정한 봉급을 주고 농토개간, 전승 기념사업 등을 시켰지만, 노예들에게는 입에 풀칠할 정도로 식량을 공급하고 노동을 착취했다고 적혀 있었다. 히브리들과 전쟁포로 들은 당연히 노예였다. 그런데 이렇게 강제노동을 시켰음에도 히브리들의 인구가 자꾸만 늘어났다고 하는데, 그것은 파라오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 자손이 태어나면 아이를 죽여버리는 정책을 취했는데 결국 적군이 되어 나중에 이집트를 침입할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이 무렵에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는 야곱의 아들 중 하나인‘레위’의 후손이었다. 잘생긴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모세 어머니는 석 달 동안 몰래 숨겨서 아이를 키웠지만, 더이상은 어렵다고 판단해 하늘에 아이 운명을 맡기기로 하고 아이를 갈대밭에다 버렸다. 아이는 파라오의 딸(왕녀)에게 발견되어 키워졌고, 공주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고 하면서 아이 이름을 ‘모세(건지다)’라고 짓고 양자로 삼았다. 그래서 모세는 이집트 궁정에서 호화롭게 교육받고 자랐다. 황실 자녀들이 배우는 모든 교육을 받아 박식해졌고 특히 법률과 종교와 역사에 눈을 떴다. 나중에 이스라엘 법률과 종교와 문화가 모두 모세를 거쳐서 나온 것을 보면 그렇다.
모세는 40살이 될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그 나이가 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신약성서》〈사도행전〉에 따르면 “그의 마음에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의 사정을 살펴볼 생각이 났다”는 내용이 있다. 이때부터 고뇌 속에서 지냈는데 어느 날 공사장 옆에서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히브리를 공사 감독관이 죽도록 두들겨 패는 것을 목격하고는 광기가 발동해 감독관을 때려죽였다. 모세는 살인자가 되었다. 이에 그는 미디안 땅으로 도피해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딸들을 도와준 대가로 그들 집에 머물게 되면서 큰딸 ‘시뽀라’와 결혼도 하고 아들이 태어나자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하면서 아들 이름을 ‘나그네’를 뜻하는 ‘게르솜’으로 지었다. 그렇게 4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시나이반도’는 뱀처럼 꾸물거리고 시뻘건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불타는 듯이 달궈진 곳에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남기가 힘들고,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 바싹 마른 해골이 되고 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멀리 능선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신의 자비니, 인생의 숭고함이니 하는 것은 공허에 불과하고 활활 타오르는 신의 분노와 한없는 적막감과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이스라엘 종교는 이런 곳에서 탄생했다. 자연히 법과 윤리가 발달하였으며, 신의 분노와 심판을 말하는 직선적 역사관을 지닌 종교다. 어느 날 모세는 양 떼를 몰고 광야 깊숙한 곳에 있는 ‘호렙’산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바위에 앉아 ‘무함마드’가 동굴에서 ‘읊으라’는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도로 삼겠다는 자신은 능력 없음을 말하고 다른 사람을 찾도록 부탁까지 했다. 하지만, 소명→거부→구실 및 변명→설득당함→복종의 순으로 설득돼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모세는 장인과 가족들에게 산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튿날 이집트로 가서 형인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만나 하느님의 계획을 전하고 파라오를 찾아갔다.
파라오의 반응은 냉정했다. 오히려 이스라엘 내부는 분열이 발생했고, 억압정책은 혹독해졌으며 수년 동안 이어졌다. 파라오에게 모세가 요구한 ‘이스라엘의 해방’은 억지로만 보였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아니었다. 자기를 부른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이집트도 다스린다고 선포한 것이었다. 파라오는 “저들이 일하기가 싫어서 ‘우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고 떠들고 있으니 전보다 혹독한 일거리를 주어라.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시켜 허튼소리에 귀 기울일 겨를을 주지 마라”(출애굽기5:7)고 하고는 노동의 강도를 높였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한 대로 파라오는 고집을 부리고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이집트에게 열 가지 재앙이 내려졌다. 여기서 강조한 것이 ‘하느님의 주관적 권능과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악한 체제의 죄에 대한 심판’인데, 인간이 만든? 하느님이 정말 그런 심판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서의 저자는 하느님의 초월성은 세상에 창조와 질서를 세우는 행위로 나타나고, 내재성은 인간의 인격과 자유를 소중히 여기며 구원하는 행위로 나타난다고 보았고, 하느님은 이런 본성을 통하여 죄를 심판한다고 보았다.
이집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행위 첫 번째 재앙은 ‘피’로, “모세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강 물을 내려치자 강물이 모두 피가 되었다”는 것이다. 죄 없는 무수한 히브리들에게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피로써 복수한다는 개념이다. 강물이 피로 변하자 우물을 파는 등으로 이집트인들은 아우성을 쳤지만, 파라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가 이집트 천지를 뒤엎은 것인데 마치 이집트 전체를 놀려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파라오는 눈도 꿈적하지 않았다. 다음은 세상천지에 이가 들끓게 했고, 파리가 들끓어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다섯 번째는 집짐승을 모두 죽게 했고, 피부병과 우박과 메뚜기, 어둠을 차례로 내렸다고 하고, 열 번째는 모든 맏이는 죽게 했다고 한다. 파라오의 맏아들을 비롯해 계집종의 맏이에 이르기까지 죽음으로써 전무후무한 곡성이 터졌다고 한다. 이때 죽음의 천사가 대문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모두 건너뛰었다고 하고, 여기서 ‘넘어가다’라는 뜻의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월절’은 히브리력 첫 달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축일로서 매우 중요하게 지켜져 왔다. 매년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를 말한다.
아무튼 열 가지 재앙은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과 하느님의 해방행위를 기억하게 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삼아 평등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룩하길 바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히브리들의 나라는 이집트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신학적 의미구조는 이후 이스라엘 역사 내내 강조된다. 모든 인간의 해방과 자유,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라는 것이 열 가지 재앙 이야기에 담긴 보편적 가치이고 진실로서 오늘날에도 필요한 문명사적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성서에는 이스라엘 해방과 탈출에 관한 일들 모두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둠을 뒤로 하고 빛을 향해 나간다는 것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때에는 이스라엘만 탈출한 것이 아니었다. 이집트에 거주하던 잡식구들도 따라나섰다. 통일된 종교와 문화를 가지지 않았던 그들은 온 세상 찌꺼기들로 혼합 민족이었다. 물론 중심은 야곱의 후손들이었지만, 이제 이들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져야 할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했다. 파라오가 추격해올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분명하지 않았고, 가나안 땅이 어디에 있는지, 거기는 무주공산으로 그냥 입성할 수 있는지,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끄는 ‘세키나’와 함께 한다고 생각했는데 세키나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임마누엘’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라오 군대가 전차 600대를 앞세우고 진격해 왔다. 차라리 노예로 사는 것이 나았으리라는 원망이 봇물 터지듯 했다. 모두들 모세를 원망했다. 모세는 당황했지만 당당했다. 두려운 때에도 두려움을 모르고 싸우는 것이 계급장을 단 사람이 할 일이다. 여차하면 쿠데타가 일어날 위기에 모세는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밤 중에 하늘을 우러러보던 모세에게 하느님이 말했다. “너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한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이집트 군인들이 해변에 죽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느님이 자신들을 구원해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훼를 두려워하며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적었다.
모세와 일행은 두 달쯤 행군하여 겨우 모세의 처가가 있는 ‘로비딤’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물이 떨어졌다. 백성들은 당장 목이 마르자 모세에게 불평했고 모세는 이번에도 지팡이를 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보였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를 붙들고 살았다. 이집트에서 탈출해 광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아내 시뽀라와 두 아들이 모세를 만나러 왔다. 장인은 양을 치던 사위가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지도자가 갈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모세는 장인의 이야기를 듣고 신앙과 인격, 정직성에 대한 조건을 실천하기로 다짐한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이 모세의 권위에 반발하기도 했는데, 미리암은 이스라엘 최초 여성지도자로서, 형 아론은 동생 덕에 제사장이 되었으나, 언제나 2인자였다. ‘가문의 영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론이 모세보다 성공한 사람일 수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에 도착했을 때, 하느님은 모세 일행과 70인의 장로들을 불러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율법을 일러주고 화합을 부탁해 제단을 쌓고 수송아지를 잡아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 그후 모세는 율법과 계명이 적힌 돌판을 받기 위해 산에 올라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이 아론을 부추겨 아론은 금송아지를 제단에 올려 숭배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변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가문을 지켰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계명이 적힌 돌판을 처음에는 깨뜨려 버렸기 때문에 없어졌지만, 두 번째 계약을 맺은 뒤에 홀로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아왔다. 누군가 만든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은 아주 중요하고, 그것은 이집트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절절히 깨우친 종교적·정치적·윤리적 이해를 열 가지로 집약한 헌법이자 대헌장이다. 이것을 일컬어 ‘아우구스투스’황제는 “열 줄 달린 현악기”라고 찬양했는데, 십계명을 잘 조율해 연주한다면 그들 역사에 언제나 선하고 조화롭고 평화로운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십계명의 전문(前文)은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로 시작하는데,
제1조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제2조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제3조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제4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제5조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라.
제6조 살인하지 못한다.
제7조 간음하지 못한다.
제8조 도둑질하지 못한다.
제9조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제10조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지 못한다.
단군 시조의 ‘3금법’만큼이나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러면서 이것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실천세칙을 적은 〈계약법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정의롭고 자유로운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였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제 이집트를 탈출한 지 2년 2개월 20일 지났다. 드디어 고대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그 땅은 그들을 위해 비워져 있지 않았다. 아멜락 사람과 가나안 사람들이 거기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분이 문제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주동자는 ‘코라’로 모세의 사촌이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정치를 독재라고 매도하며 반발했다. 설득해도 말이 통하지 않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혼란해지자 모세는 이스라엘 전체의 안위를 위해 ‘내기’를 제안했다. “내일 그대는 그대의 무리를 거느리고 야훼 앞에 나와라. 그대 일당과 함께 아론도 나타날 것이다. 사람마다 향로에 향을 피워 가지고 야훼 앞으로 나와야 한다. 자기 향로를 들고 나오면 향로는 이백오십 개가 될 것이다.”(민수기16:16)
이튿날 양쪽이 회막 앞에 나와 섰다. 그러자 하느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떨어져라. 내가 그들을 순식간에 없애 버리겠다” 그 말을 들은 모세와 아론이 땅에 엎드려 부르짖었다. “죄는 한 사람이 지었는데, 어찌 온 회중에 진노하십니까?”둘이 애원하자 따로 반란자들과 떨어지라고 하여 모세 일당과 코라 일당이 양쪽으로 대치하고 있을 때 갑자기 코라 일당이 서 있던 땅이 갈라지면서 가족들까지 모두 삼켜버렸고, 향로를 들고 있던 250명은 향로에서 나온 불에 타 죽었다. 이를 본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혼비백산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40년 방랑 세월을 끝내기로 하고 사해 동남쪽에 이르러 진을 치고 그곳에 거주하던 아랏족과 아모리족과 바산족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했다.
이렇게 해서 가나안 땅에서 나라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역사는 전적으로 생존의 문제이면서, 야훼 하느님과 그곳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있던 ‘바알’신과 싸우는 투쟁의 역사다. 이집트 노예시절과 해방, 자유와 새로운 땅을 준 하느님을 기억하고 섬기는 것에도 달려 있었다. 〈민수기〉에서 모세가 세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주고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목적지인 가나안이 아닌 중간지대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데, 마지막 장면은 이스라엘이 영원히 길 위의 나그네라는 것을 상징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상징되는 세키나, 즉 할렐루야는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한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세키나 아래에서 머물고 떠나는 삶, 그것이 이스라엘이다.
【제3장】레위기·신명기(申命記)
〈레위기〉는 레위지파 이름에서 딴 것으로 와이크라(Wayyiqra, 부르시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종교의식, 예배,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기록한 책이고 〈신명기〉는 거듭하는(申), 명령(命)의 기록(記)으로 모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말을 요약해 들려주는 한 편의 긴 연설문 형식이다. “지극 정성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한 문장에 담을 수 있는 기록을 말한다. 이스라엘 종교도 다른 민족처럼 제사(예배)의 종교다. 제사는 1차적으로는 하느님 앞(天祭)에서, 2차적으로는 이웃 사이 성결을 목적으로 하는데, 목적과 의미에 따라서 번제(燔祭), 소제(素祭), 화목제(和睦祭), 속죄제(贖罪祭), 속건제(贖愆祭)등 다섯 가지가 있으며 동물이든 곡식이든 하느님께 바친다는 의미가 있다. 제사 관습에는 속죄일, 안식일, 안식년, 회년(7번의 안식년 다음 해)에 지내는 제사가 있고, 절기에 따라서는 무교일, 맥추일, 초막절 등에 지낸다.
일상에서의 성결(聖潔)은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구분하고 있는데, 까마귀는 모르겠지만 타조도 먹지 말라고 하고 있으니, 지금의 시각에서는 맞지 않다. 아마도 구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거나 다분히 경제적 이유 때문으로 대개 가나안 땅에 드물거나 없는 것들이다. 또 여자가 출산을 하면 33일 동안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한 것은 충분한 휴식과 건강을 배려한 규정일 것이다. 또 ‘십일조’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율법일 텐데, 이것은 무교절(유월절) 등과 같이 절기 규정에 포함된 것으로 소득 중 십분의 일을 바쳐서 제사장과 가난한 이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레위기〉에는 세 가지 덕목을 강조하고 있는데, 1)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2) 부당한 이익을 삼가라. 3) 상과 벌로서 경고하고 삼가게 하는데 ‘하느님께 순종하면 평화를 누리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명기〉에 담긴 이스라엘의 역사철학은 빈곤과 고난으로 점철되지만 《구약성서》를 통해 그들은 정신이 살아 있고, 참마음을 내어 인류에 공헌한 바를 자랑으로 여겼다. 고난을 통해 쥐어 짠 혼의 내력이 담긴 것이다. 윤리적 규범과 책임 있는 권위를 가진 공동체를 출현시키는데 필요한 그것은 대안적 의식, 대안적 사회 공동체에 대한 비젼으로써 내용의 몇 가지를 살펴보면 이렇다.
·과거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미래를 내맡겨라.
·우상 숭배하지 말라.
·십계명을 기억하고 지켜라.
·들어라, 이스라엘아! 오직 구원자 하느님을 사랑하며 순종하라.
·불복종에 대한 경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라.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의 마음속에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절로 먹고 살 수 있는 에덴동산 같은 곳이 아니다. 불굴의 의지로 이룩해야 할 마음의 복지(福地)다.
·이스라엘은 왕도를 지향한다. 패도인 파라오 정치가 아니다.
이집트 노예시절 태어나 석 달 만에 강가 갈대밭에 버려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동족을 위한 분노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모래 속에 묻혔던 열혈 청년, 그리고 양을 치며 숨어 지낸 40년, 알 수 없는 하느님을 만나 고난 당하는 동포들에게로 걸어 들어가 그들의 해방을 이끈 사람, 그리고 또 40년 동안 그 동포들과 같이 약속한 대로 목적지까지 데려온 비운의 지도자, 처절하고 고독하고 슬퍼서 오히려 찬란한 삶을 살았던 모세의 삶 자체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를 흠모하고, 그를 닮아가고, 지워지지도 않고, 지울 수도 없는 역사와 영혼에 새겨진 푸른 글씨, 그것이 바로 《구약성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