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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남의 영화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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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게시판 스크랩 [연극]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 냉소와 절망, 철학과 야유의 혼재
휘나리 추천 0 조회 79 10.11.29 16:4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배우 명계남, 인간 명계남

 

“○○○이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별된다”.

한참 잘 나가는 조연배우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런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배우에겐 매우 영광스런 비유인데 기억에 의하면 최초로 이런 헌사를 받은 배우가 명계남이다. 1990년대부터 “명배우”로 통했던 그에게 따라다니던 말이다.

 

당시 그가 출연한 히트작을 열거하자면 많지만 그 중에서 직접 본 것만 나열하면

 

<그 섬에 가고 싶다>(1993),〈돈을 갖고 튀어라〉(1995)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6) <박봉곤 가출 사건>(1996), <꽃잎>(1996),  <정글스토리>(1996), <깡패수업>(1996),  <박대박>(1997), <홀리데이 인 서울>(1997), <똑바로 살아라>(1997), <초록물고기>(1997)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1998), <남자 이야기>(1998), <아름다운 시절>(1998), <자귀모>(1999),  <북경반점>(1999), <산전수전>(1999)  등 헤아리기 힘들다. 직접 보지 못한 것까지 합치면 배가 넘을 것이다. 항상 그의 연기는 여유가 넘치고 냉소가 가득했다.

 

 

영화〈돈을 갖고 튀어라〉(1995)의 한 장면, 저 때만 해도 김승우는 명계남의 조수로 출연했다. 

 

그러더니 '이스트 필름'이란 영화사를 차려 제작자로 나서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를 만들었다. 명계남은 영화를 만든 후 이창동과 바닷가에서 술에 만취된 채 함께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친구인 이감독을 ‘세감‘(세계적인 감독의 줄임말)이라 불렀다 한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그해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로 제16회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1997)을 시작으로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으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고, 결국 칸 영화제에선 ‘밀양’(2007)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후 이번엔 ‘시’(2010)로 각본상까지 받았다.

 

일찍이 이창동 감독의 역량을 알아보고 그는 예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붓솜씨는 명계남체로 불리울 만큼 일가를 이루고 있다. 옛날로 치면 고도의 기예와 풍류까지 겸비한 선비다.

 

 

명계남의 붓글씨

 

명계남의 서화

 

한참 영화인으로 잘 나가던 그가 영화와 거리가 생긴 건 2000년 총선 이후부터로 기억한다. 지역감정에 맞서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부산에 출마한 정치인 노무현이 낙선하자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이 결성되면서 배우 문성근과 함께 그는 항상 소수파인 노무현을 위해 앞장섰다. 그만큼 영화는 멀어졌고 스크린에서 그를 볼 기회는 줄어들었다. 그는 또 예언한 것이다. “된다” “소수도 다수의 거짓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결국 2002년엔 기적같은 선거결과가 나왔다.

 

그 해 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시리즈 부산편이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렸을 땐 오후시간 짬을 내어 갔었다. 그때 입구에서 오렌지색 자켓을 입고 새카맣게 햇볕에 그을린 모습으로, 입장하는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한표를 호소하는 그와 만났다(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그와 악수하며 약간의 인사를 했지만 당연히 기억 못하리라.. ㅜㅜ

 

작년 2009년 5월, 2002년의 그때처럼 그는 봉하마을 빈소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2002년 6월의 그 얼굴은 웃음과 희망과 의지로 가득찼지만 이날은 울고 있었다. 늙은 사나이의 눈물이 주는 진심은 천근의 무게로 가슴에 전해졌고 아직도 그 눈물은 닦이지 않는다.

 

 

 

2009년 5월. 빈소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한 시민의 사진촬영 요청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포즈를 취해야만 하는 배우의 숙명일 것이다.

 

대통령선거 후엔 알다시피 정치판의 전면에서 물러났지만 일부 신문(일부지만 메이저급)들은 끊임없이 그를 상처주고 공격했다. 싸움을 피하지 않은 그의 삶은 소리없이 힘들어졌고 그토록 온 마음을 쏟았던 ‘노무현’마저 우리 곁을 떠나자 그의 울분은 하늘에 닿았으리라. 그런 그가 독재자를 조롱하는 연극을 한다는 건 자연스럽다. 그의 삶이 녹아 있는 연극이 아닌가.

 

서론이 길어졌지만 나는 명계남을 보기 위해 이 연극에 갔다. 미리 트윗으로 그에게 "아큐 각하가 부산으로 이감되면 면회 가겠다"고 약속한 바, 세상으로부터 갇혀버린 그를 면회가는 심정으로 갔다. 한편의 드라마가 되어버린 그의 삶과 2002년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손잡았던 그 느낌을 기억하며… 혼자 보긴 아까워 몇 분을 초대했다. 평소 ‘가마골 소극장’을 사랑하는 소박한 모임인데 가마골 외의 이런 연극은 처음이다. - 연극 시작 전 무대에서 여균동 감독이 "저기 뒤에 기관원처럼 생긴 분"이라고 놀릴 정도로 우리 일행의 표정이 딱딱했나 보다. 

 

극의 시작

 

극장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노란 봉투를 준다. 알려진 대로 후불제니깐 나갈 때 양심껏(?) 넣어라는 의미. 얼마를 넣어야 되나 은근히 고민되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자리는 계단식이라 불편했다. 이런 열악한 공간에서 공연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부산이구나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여균동 감독이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작품설명을 하는데 먼저 두 가지의 오해를 풀어드린다며 말문을 연다. 

 

 

여균동 감독

 

“이 연극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데, 의심할 필요 없습니다. 맞습니다.“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 ” 

두 번짼 노 전 대통령의 추모극이 아니냐는데 노대통령이 아닌 다른 특정인을 추모하는 겁니다.“ 연속해서 웃음이 터진다.

“빠른 시일 내에 진짜 추모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역시 기대한 대로 신나는 야유와 풍자가 예고된다. 

 

여감독(여배우이기도 하다)이 퇴장하자 스크린에 밥 딜런의 "I shall be released" 가 가사와 함께 흘러 나온다. 극의 성격을 알리는 분위기 조성으로 적합하다. 곡이 끝나니 불이 꺼지고 잠시 적막… 조명이 들어오자 사내가 누워있다. 명배우가 등장하면 박수를 치려고 잔뜩 별렀는데 이런, 그 어둠 사이로 소리없이 나왔구나… 그렇게 환영할 겨를도 없이 연극은 시작되어 버렸다.

 

신들린 듯한 명배우의 열연과 감동, 철학과 야유의 혼재

 

그리고 명배우의 막힘 없는 대사와 열연. 혀를 내밀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무대를 휘저으며 미친듯이 몸을 내맡긴다. 대사 속엔 술자리에서나 가능한 적나라한 표현도 들어 있고 철학도 섞인다. 어디가 대본이고 애드립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빠르다.

 

 

 

 

이 작품 속의 인물은 권력에 굴종하고 변화의 의지가 없는 국민을 조롱하는 독재자 "아큐" [원래 ‘아큐(阿Q)’는 중국 문학의 거장 '루쉰(魯迅)'이 소설〈阿Q正傳〉에서 우매한 중국인민을 빗댄 단어]의 모습과 명계남 자신의 실제 모습을 공연과 연습상황으로 섞어서 보여준다. 현실풍자는 연극으로, 연습상황은 여감독과의 대화로 표현하였다.

 

아큐의 입장에서 정치 권력과 비겁하고 아둔한 국민을 실컷 조롱하고 풍자한 다음 중간중간 여감독이 등장하면 현실로 돌아와 배우 명계남의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그 등장하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그땐 명배우도 분노에 지쳐 절망과 냉소에 빠진 초라하고 힘없는 배우로 바뀌고 둘은 다투기도 위로하기도 한다.

 

“도저히 못하겠어 씨발 우리끼리 이래 봤자 무슨 소용 있어”

“문성근이는 찬바람 맞고 길거리에 저리 다니는데 나도 차라리 걔 옆에 서 있는 게 낫겠어”

그러자 여감독의 위로가 감동적이다.

“성근이 형은 길거리가 무대고 형은 무대가 길거리야”

 

현실에 대한 풍자와 야유답게 순발력 있는 대사가 현재형으로 많이 들어 있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 카펫을 깔아주는 언론, 4대강 사업, 인사청문회, G20 정상회의, 대포폰, 천안함 사건에서부터 엊그제의 연평도 사건에 이어 국방장관의 경질까지 모조리 피해가질 않고 정치의 모든 아픈 곳을 건드리며 관객을 향해 퍼붓는다.

 

극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대본은 누가 쓴 것인지 묻고 싶었는데 손을 반쯤 들려던 참에 앞줄 관객들이 마구 질문하는 탓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이런 소심함ㅜㅜ). 더 이상 손 들 새도 없이 다른 이에게 명배우의 친필휘호 액자 선물이 전달되고 상황 끝. 무대에 내려가서 보니 맨 뒷좌석 내 자리는 조명땜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젠장, 그나마 반쯤 올라간 내 손이 보이지도 않았구나... 친필휘호 액자에 적힌 3인의 이름은 구속된다면 잡혀들어갈 순서대로 적었단다. 유머가 끝이 없다. ‘아큐 각하’와의 기념촬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영화처럼 찍은 스크린 장면도 특색이다. 화가 난 명배우가 삽을 들고 무대 밖으로 나가 버리자 스크린으로 바깥 장면이 연결된다. 영화감독인 여배우(?)의 특색을 잘 살렸다. 거기서도 역시 연극과 영화인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절망이 쏟아진다.

 

(명배우)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이래 봐야 뭐 해, 차라리 우리 벗는 영화나 찍자”

(여배우) “형, 단 한 명의 관객이 있어도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해”

 

두 사람의 예술과 우정이 깊이 부럽다. 저건 연극이 아니라 연극같은 실제 상황일 것이다. 그동안 명계남이든 여균동이든 영화에서의 부진(가장 최근엔 2008년에 개봉된 ‘기방난동사건’)이 떠올라 더욱 마음이 아팠다. 왜 관객은 이리도 냉정하단 말인가. 실은 나도 말할 자격은 없다. 비록 개인사정이 있었지만 당시 여균동 감독이 작품을 만든 것조차 몰랐으니깐…

 

명배우의 열연이 절정에 달할 무렵 그는 속내를 털어 놓는다. “내게 남은 건 이제 냉소와 절망밖에 없어” “씨발 노 대통령 5년 동안 난 아무 것도 못했는데 저쪽에선 다해 처먹는다고 지랄이고 이쪽에선 뭐라도 왜 안 주냐고 지랄이야”

 

 

면회의 끝과 아쉬운 작별

 

현실에 대한 풍자는 직설과 메타포가 혼재되고, 권력에 대한 분석은 학문과 철학이 들어있다. 쉽지 않은 저 많은 대사를 어찌 저리도 막힘없이 소화할 수 있단 말인가! 나중 일행끼리의 술자리에서도 회자되었지만 다들 경탄하였다. 비록 오랫동안 반복해 온 연극이라지만 그래도 저건 대단하다. 혼자서 1시간 이상의 무대를 쉴 새 없이 묘사하고 설명하고 관객을 설득하며 끌어갈 수 있는 건 명배우의 내공이 아니면 힘든 것이다.

 

이 연극은 일방적 시각에서 발언하고 철저히 정치적 당파성을 띠고 있지만 어느 정당만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연대를 주장할 뿐이다. 문성근은 길거리에서, 명계남은 무대에서 그렇게 나름대로 고함치고 있다. 

 

이 극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와 정 반대의 시각에서의 작품도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는 의견을 일행이 꺼냈다. 물론 우리끼리의 술자리에서다. 아큐 제작진이 이쪽 입장에서가 아닌 저쪽 입장을 담은 연극도 무대에 올려 서로의 관점에서 공감할 기회를 갖는다면 설득력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대중문화가 세상을 이끌고 깨치는 기능을 할진데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닌지?

 

여균동 감독의 목소리가 저렇게 굵으면서도 부드러운 줄 몰랐다. 영화 속에선 그냥 목소리 좋구나 정도였는데 실제 들으니 성우를 능가한다. 조용히 말하는데도 뚜렷하게 기품있고 편안하게 전달된다. 그의 목소리만 듣는다면 여성 팬들이 줄을 설 것이다.^^

 

마지막 재판에선 여감독의 목소리로 판결문이 낭독된다. 아큐가 판결에 항의하며 차라리 차우체스쿠처럼 날 쳐 죽여라고 외치자 진짜 꽝…! 그 이후 상세한 묘사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한다. 연극의 중요 부분이므로… 

 

아큐 각하가 팬 서비스로 자신의 독재에 관한 '영업비밀’을 가르쳐 준다. “모두들 무대 뒤를 보세요” 그럼 다들 고개를 돌린다. “쉽잖아요, 권력은 국민을 저렇게 한방향으로만 보게 만들면 됩니다.” 우민을 빗댄 현답이다.

 

관객과의 대화가 끝난 후 명배우께 다가가, 저녁식사를 모시고 싶다니깐 약속이 있으시단다. 서울에선가 어디선 마친 후 관객들과 뒷풀이도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쉬웠다. 기다리던 ‘아큐각하’와의 면회는 그렇게 작별하며 끝났다. - 방금 트윗을 보니 뒷풀이를 못해 미안하단 DM이 왔네요^^

  

일행 중 가장 연장이신 선생님이 늦어시길래 못 오시나 했는데 앞줄에서 보곤 먼저 밖에 기다리고 계신다. 5명을 예약했지만 1명 불참으로 알고 나오면서 각자 1장씩 봉투를 4장만 넣었는데 부랴부랴 다시 들어가 1장의 봉투를 더 넣고 왔다(지금 생각해도 대견하다).

 

 

맺으면서  

 

이 연극은 보여주는 가상의 얘기면서도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둘을 조화롭게 배치한 여감독(배우겸 감독이자 감독급 조연)의 연출력이 세련되게 돋보인다. 본인 말에 의하면 〈가끔〉 영화감독이지만 부디 대박나는 영화 한편 멋지게 찍어〈항상〉영화감독임을 세상에 알리면 좋겠다(꼭 그렇게 되길 빈다!).

 

1인극의 특성상 등장인물의 단조로움이 자칫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 위험이 있어 특히 배우의 연기에 많은 걸 의존해야 하지만 연기가 아무리 좋아도 딱딱한 대사를 길게 늘어놓으면 당연히 듣는 이 또한 힘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의미 없이 자극적인 대사만 쏟아내면 작품성을 놓칠 수 있으므로 양쪽을 다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적절히 지루하지 않게 대화하고 야유하고 주장하고 깨우치고 이 모든 걸 잘 요리하여 보여준 명배우의 불꽃같은 연기와 여균동 감독의 연출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기획을 맡은 탁현민 교수의 재치 넘치는 노력도 어딘가 숨어 있으리라 짐작한다.  

 

참, 만약 벗는 영화를 찍는다면 벗을 사람은 명계남이 아니라 여균동이어야 한다. 실제 보니 근육질의 몸매가 어느 에로배우에도 뒤지지 않는다.^^  예전 〈맨〉(원제는 포르노 맨이었으나 심의 때문에 바뀐 제목 ; 1995)에서 벗은 모습을 본 것 같으나 기억은 희미하다.

 

 

공식적으로 인터넷에 올려진 명배우의 수상경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97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1997년 제17회 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 작품상

1997년 제35회 대종상 영화제 심사워원 특별상

2000년 제35회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000년 제37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2002년 영화발전공로 옥관문화훈장

2002년 제59회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

 

제작(대표작)

2005년  오로라공주 (Princess Aurora)

2002년  오아시스 (Oasis)

1999년  박하사탕 (Peppermint Candy)

1997년  초록물고기 (Green Fish)

 

 

공연에 소개된 Bob Dylan, "I Shall Be Rel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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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1.29 19:37

    첫댓글 다시생각해도 명배우님 정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 10.11.30 09:16

    이제는 자신을 생각하는 '명계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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