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의 발명-2】
아구스틴은 돈을 지원해 줄 테니 자기 나라에 와서 펜 공장을 지으라고 권유했다.
다음해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형제는 바로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가는 길에 파리에 들러 특허도 등록했다.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이들은 충분한 투자금을 받아 1943년에 볼펜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공장에서 처음 만든 펜은 성능이 좋지 않았고, 형제는 다시 펜의 설계를 고쳐야 했다.
두 번째로 나온 펜은 앞선 펜보다 조금 좋았지만 전국적인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이젠 자금까지 떨어졌다.
그러다가 아르헨티나에 주둔하던 한 미국 공군이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고도가 높은 곳에서도 잘 나오고 잉크를 자주 넣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펜에 열광했다.
그러자 미국 공군은 몇몇 미국 회사에 볼펜에 대한 설명서를 보냈고, 그중 한 회사가 시장을 독점하려는 생각에 비로 형제에게 50만 달러를 주고 미국에서 볼펜을 생산할 권리를 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시카고의 영업사원이었던 밀턴 레이놀즈는 아르헨티나에 휴가를 떠났다가 비로 형제의 볼펜을 몇 개 샀고, 원래의 특허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며 비로 형제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
그러고는 여기에 자신만의 개선사항을 덧붙여 독자적인 미국 특허를 따 냈다. 이후 레이놀즈는 자기의 시제품을 친구 프레드 짐벨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가문은 짐벨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그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 체인이었다.
짐벨은 이 상품을 판매할 영리한 마케팅 계획을 짰고, 1945년 10월 29일 뉴욕에서 새로운 볼펜을 팔기 시작했다.
한 자루에 12.5달러였던 이 볼펜은 당시 뉴욕에서 괜찮은 호텔방에 하루를 묵을 수 있을 정도로 값비쌌지만 판매를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5천 명이 몰려들며 준비했던 1만 개가 모두 팔렸다.
이때 몰려든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50명의 경찰이 파견될 정도였다.
이후 6주 동안 레이놀즈 인터내셔널 펜 회사는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800만 개의 볼펜을 만드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다. 레이놀즈는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기민한 사업 감각의 소유자였던 레이놀즈는 볼펜 시장에 곧 자기 회사보다 더 값싼 상품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1947년에 회사를 매각하고 남미에서 은퇴 생활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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