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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윅(John Wick) 시리즈의 철학적 고찰, 하이데거와 존재론적 의미]
1. 존 윅 소개
‘존 윅’은 2014년 처음으로 스크린에 걸린 액션 영화이다. 첫 영화 개봉 당시 우리나라에선 큰 인기를 끌지 못하다, 짧게 편집된 롱 테이크 액션 장면 등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며 3편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큰 줄거리로는 일찍 아내를 떠내보낸 전설적인 킬러 ‘존 윅’이 아내가 남겨준 강아지의 죽음을 통해 청산했던 과거 생활로 돌아오며 여러 인물들에게 총알을 선사하는 내용이다. 혹자들은 이 영화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간단한 스토리와 시원시원한 액션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자세히 따져본다면 이 영화 내에서도 큰 철학적 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시리즈 세번째 영화에서, 자신의 청부살인을 취소하기 위해 최고 회의의 장로를 찾아간 존 윅에게 장로하 질문을 하는 장면의 스크립트이다. (안타깝게도 위 장면은 아래 스크립트 바로 다음 장면)
장로: So tell me Johnathan, why do you wish to live?
(왜 그리 삶을 갈망하느냐, 존.)
윅: My wife, Helen. To remember her.
(내 아내, 단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단순히 복수에 미친 살인자였다면 나오지 않았을법한 대답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그가 지금까지 지겹도록 반복해왔던 행위가 아닌, 특정한 존재를 기억하기 위함이라 말한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존 윅’시리즈가 포함하고 있는 철학적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2. 하이데거의 존재론
하이데거는 20세기 초 철학의 대부이다. 그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존재와 시간’에선,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어떻게 탐구해 나가는지에 대한 과정이 정리되어 있다. 하이데거 이전의 철학자들은 경험 이전의, 선험적인 진리에 대한 궁리를 통해 자신이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있다 보았다. 반면, 하이데거는 경험을 통해 존재 내에 숨겨진 진리를 추출할 수 있다고,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역설한다.
여러 존재와 경험 (1)
그가 주장하는 바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 속을 살아가는 ‘현존재’이다. 이 때 현존재는 이미 밝혀진 여러 존재들과 마주하며 ‘경험’을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험에서 현존재와 마주하는 존재는 그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즉 단순 경험만으론 존재 진리, 나아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존재와 경험 (2)
때문에 반복되는 경험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일종의 무(無)의 감정을 통해 현존재는 ‘경악’과 ‘불안’을 느낀다. 이러한 침전의 굴레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경험들 속에서 회의를 느끼며 인생을 돌아본다. 이 때, 현존재의 생각이 죽음에까지 이른다면, 결국 ‘나는 왜 살지’와 같은 의문을 던지며 자신의 인지를 통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자아를 찾아가는 단순한 길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는 경험을 통한 1차원적인 ‘존재 망각의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나, 이를 넘어서 존재의 진리로 도달하는 것은 소수의 특별한 역사적 우연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다.
3. ‘존 윅’의 존재론적 의미
‘존 윅’은 세계관 속 불사의 전설적 킬러이다. 아마도 그는 전투 중, 누군가를 죽인다는 생각은 하겠지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 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행동엔 항상 망설임이 없다.
이러한 ‘존 윅’의 아킬레스건은 그의 아내이다. 그의 아내는 일반인으로 킬러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존의 적이 아닌 병마와 싸우다 일찍 생을 마감한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마땅히 누굴 탓하기도 힘든, 그런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남겨둔 강아지 한 마리에 아내를 투영하며 조용한 생활을 이어가려 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직까지 존이 ‘존재 망각의 경험’을 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경험, 잃었던 경험, 강아지를 키우는 경험…이는 모두 일차원적인 단순 경험일 뿐이다. 앞선 언급처럼 이러한 경험에선 존재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그는 나름의 평온한 생활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모든 상황은 그의 강아지가 죽으면서 시작된다. 아내를 투영해보던 강아지의 죽음은 존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제까지의 경험이 일차원적인 경험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쉽게 풀이해 가까스로 억누르던 슬픔이 터질만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전개는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러 사람을 죽이며 경악과 불안, 나아가 무(無)의 감정의 굴레에 빠져드는 존은, 그 이유가 단지 자신이 살기 위함이었지만 3편 중반부 사막 한 가운데서 죽음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이후 등장하는 장면은 장로가 그의 존재 이유를 묻는 씬이다. 이처럼 존은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는 그 순간이 가장 자유롭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을 따를 때, 이후 존이 최고 회의를 배신하는 '자유로운'선택을 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다. 즉, 영화 속 그의 이야기는 강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사람을 학살하는 단순 복수극이 아닌, 한 남자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처절한 사투로서 승화된다.
4. 한계
제작자의 인터뷰나 사전에 배포된 자료 등등을 살펴보았을 때, 그들이 이를 염두에 두고 존윅 시퀀스를 짜내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단지 어려운 것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금 딱딱하게 풀어낸 것이라 생각하고 이해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