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여객기 세부서 활주로 이탈 사고… 공항 계기착륙시설 먹통-기체 이상 ‘겹악재’
돌풍 악천후속 세차례 시도끝 착륙
브레이크 고장나 수동으로 작동
173명 탑승… 인명 피해는 없어
대한항공 “기체결함 등 면밀 조사”
활주로 벗어나 풀밭에 멈춰… 승객들 비상탈출 23일(현지 시간) 대한항공 여객기(KE631편·A330-300)가 필리핀 세부 막탄 공항에 착륙하던 중 악천후와 브레이크 시스템 고장 등으로 활주로를 이탈해 비정상 착륙했다. 이 사고로 항공기 앞부분이 크게 파손됐지만 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 등은 모두 무사했다. 세부=뉴스1
23일(현지 시간) 대한항공 여객기(KE631편·A330-300)가 필리핀 세부 막탄 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막탄 공항의 계기착륙시설(lLS) 작동 중단과 악천후, 브레이크 시스템 고장 등의 ‘겹악재’ 속에서도 다행히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24일 국토교통부와 대한항공 등에 따르면 KE631편은 막탄 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를 벗어나 바깥쪽 풀밭에 멈춰 섰다. 두 차례 착륙 시도를 실패한 뒤 세 번째 만에 내린 것이다. 항공기에는 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이 타고 있었다. 국적별로 미국인이 64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인은 47명이 탑승했다. 기체 일부가 손상됐지만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측은 “항공기가 멈춘 후 객실 사무장의 지시에 따라 항공기에서 비상 탈출을 했으며 일부 승객들은 공항 내 진료소(클리닉)로 이동해 건강 상태를 확인했고 일부는 호텔로 향했다”고 밝혔다. 현재 사고기가 막탄 공항 활주로 22방향 끝단을 벗어나 정지해 있어 막탄 공항 활주로는 폐쇄됐다. 활주로가 정상 운영되는 대로 대체 항공편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보가 노탐(NOTAM·운항정보 공시)을 확인한 결과 막탄 공항의 ILS는 9월 2일부터 11월 2일까지 ‘U/S(Unserviceable·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확인됐다. ILS는 착륙 중인 항공기에 활주로 중심선 활공각 및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핵심 안전시설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막탄 공항은 또 레이더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조종사와 고도 등의 정보를 직접 교신하는 경우가 있다. 악천후 등의 발생 시 이착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은 ‘활주로 일부에 포트홀(Pothole·움푹 팬 곳)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공지까지 노탐에 떴다. 사고 당일 공항 상공에는 소나기성 적란운이 크게 형성돼 있었다. 이따금 강한 돌풍도 불었다. 시야가 몇백 m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KE631편 기장은 첫 착륙 시도에서 시야 확보가 어려워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는 복행(고어라운드)을 결정했다. 두 번째는 강한 하강 기류(윈드시어)를 만나 항공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을 정도로 강한 압력이 가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2차 복행 이후 유압 장치를 비롯한 엔진브레이크 계통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한항공은 “기체 결함 등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기장이 자동 브레이크 도움 없이 매뉴얼 브레이크(양발로 브레이크를 잡는 것)로 항공기를 직접 멈춰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기장은 “왼발과 오른발로 번갈아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기에 자칫 비행기가 뒤집히거나 활주로 옆으로 이탈할 수도 있다”며 “활주로를 지나쳐 ‘오버런’ 했지만 최선의 결과를 냈다고 본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이건혁 기자, 정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