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등장하는 순간 김일성광장에 정렬한 수만 명의 군인과 수십만 명의 군중이 외치는 ‘만세’ 소리는 그야말로 천지를 진동시킨다. 수천 개의 고무풍선이 날아 오르고, 인민군 최고 간부들이 각 부대를 돌면 열병대원들은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고 힘껏 목청을 돋운다.
김일성 초상이 광장에 들어서면 일제히 ‘영접들어 총’(받들어 총) 자세를 취하고 이어 각 부대별 행진이 시작된다. 대개 김일성군사종합대학 등 각급 군사학교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근위제1보병사단을 비롯한 정예 부대들과 노농적위대 등이 따른다.
▶그때그때마다 규모나 진행 방식이 다소 달라지기는 하지만 북한의 군사퍼레이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대규모인 데다 횟수도 잦다.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설 선포식에서 처음 시작된 북한군의 열병식은 인민군창설일(1978년부터 4월 25일로 변경), ‘전승기념일’(7월 27일), 광복절(8월 15일), 정권수립일(9월 9일), 노동당창건일(10월 10일) 등의 ‘꺾어지는 해’(5년 주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열려 왔다. 지난 7월 27일 휴전기념일 50주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퍼레이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행사가 열리지 않아 김정일이 미국의 암살 기도를 우려해 취소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군사 퍼레이드는 때로 축제마당의 볼거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체제 내부의 단결과 국방력을 대내외에 과시할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애용하게 마련이다. 과거 소련과 중국도 그랬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중국에서는 지난 99년 건국 50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가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지만 84년 건국 35주년 기념행사 이후 15년 만에 열린 것이었다.
▶러시아에서도 2000년 5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10년 만에 군사퍼레이드가 부활했지만 축제 분위기가 강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7월 14일 혁명기념일에 군사퍼레이드가 벌어지는데 올해에는 과거의 적(敵)인 독일군이 유럽군의 일원으로 선두에 서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한국도 지난 93년부터 국군의 날 기념 행사를 대폭 축소하고 군사퍼레이드도 사실상 폐지했다.
▶각 국의 군사퍼레이드에서는 신형 군사장비의 등장이 주목거리가 되기도 한다. 1967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군사퍼레이드에서 공개된 후 73년 4차 중동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소련의 SA-6 미사일이나 90년 5월 공개된 러시아의 BMP-3 전투장갑차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북한의 9·9절 군사퍼레이드에서도 사정거리 4000㎞의 신형 미사일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북한이 군사퍼레이드를 하더라도 주변 국가들을 긴장시키지 않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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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흥(ohshlee) 등록일 : 09/09/2003 21:58:08 추천수 : 4
만약 예전처럼 한국에서도 국군의날에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진행시킨다면 분명 북한은 `전쟁분위기 조성'이니 하면서 트집을 잡을 것이다.하기야 한국에서는 주적개념도 없어졌으니 축제적인 군사퍼레이드로 국민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애국심을 북돋게 하는 일은 다시는 없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