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전문적인 식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우연히 두 편의 영화를 거의 같은 시기에 봤기에 어떻게든 한 저울 위에 올려놓고 싶었을 뿐이다. 뭐든 비교부터 하려 드는 기자의 직업병쯤으로 봐줬으면 한다. ‘적벽대전’은 1편에 이어 2편을 지난 설에 봤고, ‘워낭소리’는 주말에 봤다. 둘 다 입소문에 끌렸지만 보기를 잘한 것 같다.
장르나 성격으로 치면 둘은 전혀 다른 영화다. ‘적벽대전’은 제작비만 800억 원(아시아 영화사상 최고)이 든 전형적인 블록버스터고, ‘워낭소리’는 2억 원이 채 안 든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다. ‘적벽대전 2’가 개봉 24일째인 어제까지 관객 260만 명을, 개봉 한 달째인 ‘워낭소리’가 63만 명을 각각 동원했다. 63만 명이면 한국 독립영화사상 최다 기록이다.
프리랜서 PD 이충렬 씨(43)가 감독한 ‘워낭소리’의 주인공은 소다. 경북 봉화에서 평생 농사만 지어온 최원균 할아버지(81)의 마흔 살 된 소의 마지막 3년의 삶이 영화의 전부다. 그런데도 관객은 눈시울을 적신다. 최 노인과 소의 30년 동행(同行)이 끝나는 순간,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소에게서 최 노인이 워낭(소의 턱에 단 방울)과 코뚜레를 풀어주며 “좋은 데로 가거래이” 할 때,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한다. 고단한 우리네 삶에 문득 스며든 온기(溫氣)였을 터.
‘적벽대전’은 ‘영웅본색’으로 유명한 우위썬(吳宇森·63) 감독의 작품이다. 삼국지의 백미인 적벽대전을 어마어마한 물량과 량차오웨이(梁朝偉) 진청우(金城武) 장전(張震) 등 중화권의 톱스타들을 총동원해 박진감 있게 그려냈다. 1, 2편 모두 전투장면이 압권이다. 할리우드를 넘어서 보려는 야심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에 의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분출된 ‘중화(中華)의 힘’이 이번엔 우위썬에 의해 스크린에서 폭발하고 있다.
‘적벽대전’에 홀로 맞선 우리 소
그런 ‘적벽대전’에 소 한 마리가 홀연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주인을 닮아서 다리를 절뚝거리고, 힘이 부쳐 수레를 끌다가도 몇 번씩 쉬어야 하는 늙은 소다.
최 노인이 소를 팔기로 결심하고 우시장에 끌고 가는 날 아침, 소는 쇠죽을 먹지 않는다. 눈물만 흘린다. 소인들 오늘이 무슨 날인 줄 모를까. 최 노인은 소를 시장에 끌고 가지만 값을 후려치거나, “이런 소를 누가 사겠느냐”며 핀잔을 주는 상인들 탓에 그냥 돌아오고 만다(실은 팔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또 한 번 콧등이 찡해진다.
‘워낭소리’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김영진 교수는 “‘워낭소리’가 ‘사람’에 관한 얘기라면, ‘적벽대전’은 ‘사람을 부리는 얘기’”라면서 “수십만 명이 (전장에서) 장난감처럼 죽어나가는 얘기보다 소 한 마리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의 얘기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 했다. 전자가 인본주의(人本主義)라면 후자는 패도(覇道)쯤 된다는 얘기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씨는 “죽도록 일만 하는 할아버지와 소의 모습이 불황 속에서 힘든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워낭소리’에서 “한국영화의 출구를 보았다”거나, “역시 한국적인 콘텐츠라야 통한다”거나 하는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말은 죽은 소에 대한 예의도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저 소와 최 할아버지가 보여준 소통과 우정을 오래 새기고 싶을 뿐이다. 소는 가끔 워낭을 흔든다. 할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고 소가 뭘 필요로 하는지 안다. 말 못하는 짐승과도 저렇게 통하는데, 우리는 이리 막히고 저리 닫혀 있다.
말 못하는 짐승과도 소통하는데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진청우)과 주유(량차오웨이)가 10만 연합군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 감응하고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워낭소리’를 관람했다. 감독과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도 했다. 박형준 대통령홍보기획관은 “문화 콘텐츠가 점차 중요한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어서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워낭소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열악하기 그지없는 독립영화의 제작 환경을 생각하면 대통령의 관심은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대통령이 산업의 차원을 넘어 ‘워낭소리’에 담긴 진정한 교감과 소통의 의미를 먼저 헤아렸기를 희망한다.
대통령의 귀와 가슴에선 워낭소리가 오래도록 들리고 울려야 한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