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 10일.
서울 올라온지 일주일 째이다.
서울 올라오는 차 트렁크에 멧돌호박 하나 넣었다.
서울 올라오는 날, 서해고속도로 화성휴게실에서 쉰 뒤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순간 대형카고에 부딛쳐서 내 차 왼쪽이 부셔졌고, 렌트 카에 실려서 서울 잠실 자동차수리센터에 맡겼다.
내가 시골 올라올 때 쌀 반 자루(20kg), 멧돌호박 한 덩어리를 실었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아내는 '택시 불러서 옮겨야겠네요'라고 말했다. 자동차를 수리센터에 맡긴 뒷날에 아내는 택시로 호박도 가져왔다.
멧돌호박. 아직 채 익지 않았다.
아내는 시골집 윗밭에서 부추 두둑의 풀을 뽑으면서 거리척거리는 호박넝쿨을 잘못 건드렸다. 이제 익기 시작하려고 노르스름한 빛깔을 띈 호박 꼭지를 떨어뜨렸다.
서울 잠실 아파트 거실에 놔 두었더니만 날마다 누리끼리하게 변색한다.
내가 오늘 오후에 '저거 깎아서 먹지'라고 말했더니만 '예'라고 대답했던 아내가 말을 보탰다.
'혹시 오늘 아들내외가 오면 주고 싶네요. 며느리한테 어제 담근 김치, 멧돌호박을 나눠주면 좋아할 거예요' 하면서 아들내외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온다고 했어?' 물었더니만 아내는 '전화도 안 했어요. 호박 하나 준다고 잠실 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설익은 호박 하나.
펑퍼짐한 여편네의 엉덩짝 만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지난 9월 6일 세 돌 생일을 보낸 손녀, 이제 21개월째로 접어든 손자를 키우려면 아무래도 먹을거리가 늘 딸릴 게다. 어린애들인데도 입성이 좋아서 많이 먹는다고 한다.
'혹시 며느리가 오거든 쌀 반 푸대 주어.'
큰아들과 며느리는 입이 무척이나 짧다. 그런데도 손녀와 손자는 어린애인데도 밥을 많이 먹는단다.
할아버지인 나로서는 쌀 푸대를 주는 재미가 솔솔하다.
쌀은 서해안 시골집에서 서울로 가져 온다. 임대농사 짓는 동네사람이 방아 쪟서 우리 집에 가져 온다.
시골에서는 쌀 한 가마(80kg) 가격은 102,000원. 논 주인과 남의 논을 빌려서 벼농사 짓는 농사꾼도 모두 쌀값에는 심드렁하다. 1kg 1,275원짜리 쌀 농사를 짓은 농사꾼은 오죽이나 속이 상할까? 농사 지어도 별로 남는 게 없는 현실이 무척이나 그렇다.
이런 사정이 있는 쌀이기에 나는 정이 더 간다. 내 아들 며느리 손주들한테 나눠 줄 수 있기에 나는 쌀이 좋다.
일요일 저녁인 지금까지도 아들네한테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영어 잘 해야 하는 직장으로 옮긴 탓일까. 큰아들은 쉬는 날이면 무척이나 더 피곤해 했다.
자식인 어린 딸과 더욱 어린 아들한테도 시달릴 터이고.
오늘은 틀린 모양이다. 내일에는 설익은 멧돌호박 껍질을 벗겨서 호박국으로 먹어야겠다.
올 호박농사는 실패했다.
올 봄 모종 200포기를 심었다. 내가 서울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바람에 잡초가 극성을 부려서 모종은 풀속에 갇혔다. 풀에 덜 갇힌 모종은 줄기와 넝쿨을 길게 늘여뜨렸지만 늦여름철 잦은 장맛비에 호박꽃이 수정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애호박이 별로 눈에 띄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번 8월 말경에 시골로 내려가서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도 늦가을에 조금은 걷어들였으면 싶다. 펑퍼짐한 여편네 엉덩이같은 호박으로 겨울철 간식했으면 싶다.
지난해 가을(8월 말, 9월 초)에는 크고 작은 호박 80여 통을 걷어들여서 식량했다.
올해에는 그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많이 걷어들였으면 싶다. 더러는 남한테도 나눠주고.
나는 건달농사꾼, 엉터리농사꾼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병균과 해충, 풀을 잡고 뽑아내야 한다. 제충제와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농사짓는다. 자연농법, 태평농법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정말로 수확량이 보잘 것없는 농사방법이다.
농작물에는 정말로 다양한 병균이 많이 침투하고,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벌레도 많이 낀다. 특히나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아열대성 해충이 바람타고 유입하고,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농작물에 묻어서, 외국산 사료에 알이 묻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농약 안 치는 땅에 마구 번지게 마련이다.
어디 병균과 해충뿐이랴? 눈에 보이지 않는 외국 잡초 씨앗이 수입사료 등에 묻혀서 자연스럽게 농사 짓는 땅에 번졌다.
수시로 농약을 처질러야 하는데도 나는 전혀 농약 치지를 않았다.
'덜 먹지 뭐'하는 자연생태 농법, 태평농법이었다. 건달농사꾼답게.
더우기 나는 시골집에 잠깐씩만 머물고 대부분은 서울에서 살았기에 시골 내 텃밭은 피해가 더욱 심했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농작물은 해충과 잡초에 늘 치이게 마련이다.
더우기 올해 날씨도 고르지 못하고. 기온은 예년보다 훨씬 따뜻해서 새로운 병균이 더 늘어났으며, 외국의 잡초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화분 매개충인 벌종류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토종 일벌이 자꾸만 줄어들고, 더우기 올해처럼 장맛비가 고르지 않고 지속되면 벌의 활동이 극히 제한되어 꽃이 수정율이 떨어진다. 이런 이유였을까?
꽃의 매개충은 벌뿐이 아니다. 파리, 나방이, 나비, 바퀴벌레 등도 역활을 한다,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이유였을까? 내 텃밭 속의 부추꽃에는 정말로 많은 나방이류가 날고 있었다. 노란 호박꽃에는 별로이고, 그 잘디잘은 흰 꽃인 부추꽃에는 왜그리 많이 날고 ,파고 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들 벌레류가 꿀만 빨아먹으면 좋으련만 어디 그렇냐?
중국 곤충인 붉은매미, 미국 곤충인 선녀매미는 식성이 정말로 지독해서 나뭇잎이나 나무 껍질조차도 순식간에 갉아 먹는다. 특히나 나무즙을 빨아서 왠만한 나무는 고사하게 마련이다. 한 아름드리 밤나무도 껍질에 독액을 뿜어서 금세 말려죽인다.
어디 날개 달린 곤충뿐이랴. 개미류도 지독하다. 외국 종인 개미류는 크기가 눈에 띄이지 않을 만큼 작은데도 엄청나게 사납고, 독도 강했다. 이 작은 벌레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이나 많아서 어린 나무 모종을 금세 죽인다. 나뭇 속을 파서 알 까고, 나무껍질을 갉아먹어서 벌레똥만 잔뜩 쌓이게 했다. 결과는? 그 큰 나무도 쉽게도 죽였다.
이런 피해가 정말로 싫다.
높은 나무가지에 농약을 살포하려면 무척이나 큰 농약장비가 있어야 하는데도 건달농사꾼인 나한테는 이런 장비는 없다. 그거 사려면 큰 돈이 들어가기에. 어쩔 수 없이 농약이 덜 들어가는 작물을 선택할 수밖에.
호박, 고구마, 감자 등이다. 농사 짓는 요령이 부족해도 얼렁뚱땅 농사 질 수도 있다.
고구마는 건달농사꾼이 짓는다.
5월에 줄기(순)를 2)~30cm 길이로 잘라서 두둑 흙속에 심으면 줄기에서 실뿌리가 나오고, 줄기에 고구마가 실낱처럼 매달려서 점차로 살이 찐다. 9월 말과 10월 초순에 냉해를 입지 않은 때에 캐면 큰 고구마를 먹을 수가 있다.
재배기술도 그다지 없어도 되고, 노력이 적게 들어가는데도 수확량은 무척이나 많고, 식용 활용 종류가 제법 많다. 이처럼 가꾸기 쉽고 유용한 고구마인데도 나는 올해 다 틀렸다.
올해 처음으로 멧돼지가 내 텃밭까지 내려와 고구마 줄기를 파서 뒤엎어버렸다. 뿌리에 아직 고구마가 매달리지 않는 7월에 말이다. 어디 멧돼지뿐이랴. 산에서는 고라니가 내려와 고구마 잎을 야곰야곰 베어먹었기에 잎 광합성을 망쳐버렸다. 뿌리는 멧돼지가, 잎사귀는 고라니의 밥이었다.
건달농사꾼인 나는 헛농사만 지은 꼬라지가 되었다.
올 농사.
내가 제대로 공 들인 바가 없으니 가을 수확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봄철에 호박 모종은 200포기 쯤이나 심었으니까 가을철인 9월 말이나 10월 초순에는 늙은 호박은 조금이라도 걷어들였으면 한다.
며칠 뒤, 선산 벌초하려고 시골 내려가면 텃밭 사정을 금세 알 수 있겠다.
아직은 찬서리가 내리는 절기가 아니라서 냉해를 입지 않겠지만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호박잎은 냉해를 심각하게 입을 것이다. 그 이전인 9월 말에 호박이 제법 많이 매달려서 어지간치라도 익었으면 싶다.
게으른 농사꾼이라도 호박을 수확해서 한 아름씩 가슴에 안고는 울안으로 들어오는 재미가 있었으면 한다.
서울로 가져와서는 손녀 손자 키우려고 애를 쓰는 며느리한테도 몇 덩어리 나눠 주었으면 싶다.
큰딸네, 작은딸네한테도 나눠주었으면 싶다.
이런 소박한 욕심이라도 지나친 것은 아니었으면 싶다.
2017. 9. 10. 일요일.
첫댓글 에구 ㅎㅎ...호박을 200포기나 심으셨다고요?
한 포기에 하나씩만 수확해도 200 개나 걷어들이겠오,
그걸 다 어쩌려고? 서울로 가져오려고 해도 트럭을 동원해야겠오
겨울 내내 호박을 먹어야겠구료 ㅎ
호박범벅 호박죽 밖에는 생각이 안나는데...호박밥(?)호박떡,호박엿,호박파이,호박전,...또 뭐가 있을까요?
거의 다 실패.
호박에 말뚝 박고, 호박 할로에 만들고, 호박 쳐서 말려서 가루 내어 분말로 활용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