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성
출생 1944년 11월 13일
신체 키161cm
출신지 경상남도 진주
직업 변호사
학력 서울대학교
경력 2004년 국제환경상 심사위원
2000년 2월~2001년 자민련 부총재
양 력: 1944년 12월 27일
음/평: 1944년 11월 13일 여자
시 일 월 년
@ 乙 丙 甲
@ 丑 子 申
丁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대운: 역행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86 76 66 56 46 36 26 16 6.9
대운 시작: 6세 9월 27일
현재 나이: 65 세(08년 무자년)
현재 대운: 午
70년(27세) 사법시험 합격, 73년 연수원 졸업, 가정 법원 판사 시절에 남편 만났으나 남편은 거짓말쟁이로 결혼 한 달만에 미국으로 출국하여 전화만 가끔 걸려오고 귀국 안함, 그 때 임신하여 첫 아이 출산,
결혼 3년 만에 미국으로 가서 남편 만남, 그때 둘째 아이 임신, 이미 그때 남편은 다른 여자와 미국에서 살림을 하고 있었음. 결혼 5년 만에 이혼, 만 32세 때 이혼, 79년에 변호사 개업,
개업 후 한 달 만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법률 상담, 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 야당이던 민한당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 진출, 당선 후 당시 목사였던 고 김동익 목사를 국회 기도회에서 만남, 1983년(39세)에 결혼함,
김동익 목사는 41세에 자식이 셋, 97년 2월 같이 성지 순례, 98년 4월 1일에 신장암으로 김동익 목사 사망,
98년 8월에 뇌출혈로 쓰러짐, 이후 우울증을 앓음. 그 후 믿었던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그동안 모았던 재산의 대부분을 잃음.
큰아들 미국에서 거주, 결혼함, 작은 아들 내외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근무, 황씨는 40대부터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음. 김목사는 정력이 좋았다고 함. 자리를 피할 정도로.
황산성 변호사는 경기여고·서울대 법대 졸업, 20대 판사 임용, 30대 국회의원 당선, 40대 장관 취임했는데요.
80~90년대 법조계와 정치계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한 그는 성공한 여성의 대명사로 여겨졌고,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국회와 법조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카리스마와 입담으로 여성 파워를 과시했던 황산성이 사별한 두번째 남편과의 애틋한 추억을 공개했다.
황산성은 11일 KBS 2TV '남희석·최은경의 여유만만'에 출연해 첫번째 결혼과 이혼, 두번째 결혼과 사별, 우울증 경험 등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고백했다.
그중 10년 전 사별한 두번째 남편과의 각별했던 만남과 추억을 공개하며 웃었다 울었다 하며 회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첫번째 결혼을 한 뒤 결국 부부생활을 실패로 끝내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황산성은 국회의원 시절 기도회에서 사별한 두번째 남편과 만나게 됐다.
주변 사람들 모두 결혼을 반대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에 언니를 보내 만남을 성사시킨 황산성은 먼저 프러포즈를 해 1983년 결혼에 골인했다.
유명한 국회의원과 목사의 결혼은 결혼식 당일 교통 정체가 일어날 만큼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늘 자신의 몸 보다 황산성의 건강을 챙겨왔던 남편은 1998년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 충격으로 황산성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남편은 잃었지만 추억만은 잃고 싶지 않다는 황산성은 남편이 살아생전 아끼던 양복 두벌을 옷장에 보관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남편의 체취를 느끼곤 했다.
함께 찍은 사진들 역시 하나도 치우지 않았고, 남편이 꿈에 나타날 때마다 달력에 “꿈”이라고 기록해 두는 등 사망한 남편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드러냈다.
또 이날 방송에서는 성공한 여성의 표본으로 일컬어져 왔던 황산성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실패했다고 평하며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자신이 겪은 어려움 등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김동익 목사 (1942년 10월 1일 - 1998년 4월 1일)
양 력: 1942년 11월 9일
음/평: 1942년 10월 1일 남자
시 일 월 년
@ 丙 辛 壬
@ 寅 亥 午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대운: 순행
申 未 午 巳 辰 卯 寅 丑 子
89 79 69 59 49 39 29 19 9.8
대운 시작: 9세 8월 19일
사망 나이: 57 세
사망 대운: 辰대운
1942년 경남 하동군 김희용 목사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탄생, 부친은 40여년간 목회, 조부 김선명은 호주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전도사로 활약, 진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 사학과 졸업,
대학시절에 새문안교회에 4년 간 다님, 대졸 후 ROTC로 군제대, 이후 장로교 신학대학원 진학, 1972년 목사 안수를 받음, 바로 유학하여 피츠버그 대학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 받음,
벤더빌트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으로 박사학위 받음, 귀국 후 연세대학교로 출강, 포항 제일교회에서 5년 간 시무, 81년 4월에 새문안 교회에 청빙을 받음, 이후 사망 시까지 새문안교회에서 목회자로 근무.
결혼하여 3명의 자식 출산, 이후 상처, 1983년에 황변호사와 재혼, 98년 4월 신장암으로 사망.
첫댓글 황변호사는 유대운과 미대운에 남편 잃음....김 목사는 병신합수격...수의 묘고인 진대운에 사망...위글은 여성동아에 연재된 것을 발췌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