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긴 왜 울어 -7-
엄마의 규칙과 기대는 내 진을 다 빼놓았지만, 엄마에게서 벗어날라치면 혼자 알아서 놀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두 가지 충동이 분열된 채로 지냈다. 어느 날엔 결국 엄마에게 꾸중을 듣는 것으로 끝나는 타고난 선머슴 기질에 따라 행동했다가, 다음날엔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안깐힘을 쓰는 식이었다.
가끔씩 부모님은 아이를 봐주는 사람을 불러서 나를 맡기고 외출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의 장식품을 모조리 쟁반에 담아 싱크대로 가져가서 주방용 세제로 하나하나 조심으스레 씻는 뒤에 키친타월로 잘 닦아두었다. 장식품들이 놓여 있던 선반의 먼지도 훔치고, 유리로 된 부분은 원덱스를 뿌려 깨끗이 닦았다. 그런 뒤에 최선을 다해 기억을 짜내어 장식품을 원래 있던 자리에 진열해놓았다. 엄마가 돌아오면 따뜻한 칭찬으로 보상해주기를 고대하면서.
이 청소 충동은 내가 티끌만큼이라도 버려진 기분이 들면, 어린 나의 상상력에 고문을 가한 작은 사건이라도 있을라치면 나도 모르게 행한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나는 부모님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두려움에 시달렸고 악몽도 자주 궜다.
우리 집에 강도가 들어와 부모님을 살해하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두 분이 외출했을 때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두 분에게 자동차 사고가 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성미 급한 아빠가 페리 스트리트 다리에서 앞차를 추월하려다 다리 아래 월래밋강으로 떨어지고, 수압 때문에 차문이 열리지 않아 탈출도 못하고 익사하는 꿈을 반복해서 꿨다. 매주 먼지 털이로 걸레받이 청소를 하고 나면 엄마가 기분좋아하던 걸 떠올리면서, 엄마가 돌아왔을 때 집이 더 깨끗해져 있으면 다시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외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리라 믿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엄마를 회유하려는 나의 처량한 몸짓이었다, 언젠가 라스베이거스로 가족 여행으 갔을 때 부모님은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려고 몇 시간 동안 나를 호텔방에 놔두고 나간 적이 있었다. 혼자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방을 치우고, 부모님의 짐 가방을 정리하고, 수건으로 가구를 구석구석 닦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두 분이 돌아와서 내가 한 일을 봐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지,
나는 바퀴 달린 어린이용 침대에 앉아 방문만 노려보며 있었다. 오직 두 분의 얼굴이 기쁘게 변하는 모습을 보겠다는 생각에, 내일 아침이면 청소부가 와서 치울 거라는 생각 따윈 꿈에도 하지 못한 채로, 돌아와서 아무런 변화도 감지하지 못하자,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방안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면서 내가 한 착한 일을 일일이 알려주었다.
나는 늘 그렇게 빛을 발할 기회가 또 오기를 필사적으로 기다렸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이리저리 궁리하면서,그러던 차에 문득, 한국 음식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모녀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할 뿐 아니라 엄마가 나를 인정하게 만드는 순수하고 한결같은 원천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제대로 꽃을 피운 건 서울에 여행 간 어느 해 여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