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 수많은 밤을 추위 속에 견디며 산맥을 다 뒤져 호랑이 한 마리를 잡는 일과 시인이 수많은 시간의 고뇌를 씹으며 아름답고 적절한 시어를 찾는 일과 그 노고는 결코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문학사를 통틀어 보아도 추상어를 견딜 만한 인식과 삶을 가졌던 시인들도 김수영 시인을 비롯 몇 안 될 것입니다.
아래 시를 보면서 제 어설픈 눈으로도 진지한 고민들의 흔적과 자신의 삶의 태도와 새로움을 찾아가려는 예술가의 본능적 에너지를 꺼내고자 하는 곳 들이 눈에 잘 안 들어 오더군요.
내부에 가득한 어떤 것들을 아침에 눈을 뜨면 커튼을 밀어내는 햇살 같은, 혹은 흙을 밀어올리며 솟는 새싹 같은 언어나 이미지, 발견 등으로 꺼내어 지지 못 한 듯 보여져 아쉽습니다.
[피안 이라든지 붉게 뜨겁게 사랑할 순 없을까 라던지 황홀한 비트라던지 영원에 잇대는 이라던지 신명 나게, 함박눈의 은빛함성,경건하게 묵시의 퍼덕임 이라던지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지르는 바람의 울음] 또한 체험이나 상상을 통한 싱싱한 날것으로서의 느낌이 전혀 전달 되 오지 못한 듯 합니다. 이런 추상어들의 반성 없는 남발이나 스스로의 체험의 무게가 전혀 묻어나지 않는 전혀 새롭지 못한 이미지들을 보면서 님 께서 혹 언어들과 대충 타협을 해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 삶의 국면들 중에는 수많은 구체적인 사건들과 생각들이 전개가 될 것입니다. 삼십년을 넘게 살면서 그런 디테일한 기억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겠습니까.
직유를 쓰실 때에도 그 자리에 잘 어울리는 체험들이 분명 존재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들을 기억의 퇴적층에서 이미지를 캐내는 고고학자로 비유하는가 봅니다. 흔히 우리들은 시를 쓴다는 생각이 앞서서인지 평상시의 어법이나 말들처럼 자연스럽고 구체적인 사건과 형상으로 얘기를 하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시를 잘 써야겠다는 의식을 버리시고 힘을 빼시고 정말 자신의 영혼을 만지고 간 느낌들에 깊이깊이 침잠 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릴케의 말처럼 아름다운 시가 한 줄 찾아와 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전 개인적으로 제 시 평에 올려주신 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時, 空間이 분명한 이 시는 최소한 진실을 찾아갈 기본적인 실마리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진정 그러하셨는지 분명하게 보여지지는 않지만 [싱싱한 원시의 경의에 시름시름 몇 일을 알았다.] 라는 대목에서 화자가 대상과 많이 가까워진 심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시는 그래서 훌륭한 학벌이나 교육으로 해결이 안 되고, 대상과의 애정과 대신 앓지 않고서는 시에 감동이 묻어나지 않는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을 벌래처럼의 시에는 귀뚜라미..시에 비해 감정의 동요가 그만큼 작았던 것은 꾸며진 흔적은 보이는데 시인이 대상을 껴안는 것이 그만큼 협소해서가 아니 였나 생각이 듭니다.
무례하게도 제가 보기에 불필요한 부분은 빼 보았습니다. 그럼 앞으로 더욱 좋은 시 기대 하겠습니다.
-귀뚜라미의 울음이 사라졌다-
어느날 아침
사무실을 울리는 귀뚜라미의 울음이
이 공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의 수풀이 우거진 길을 따라
울고 있는 귀뚜라미는
가을의 염탐꾼인가
아니면 길잃고
무인도로 표류한
생명의 떨림인가
이 세속도시에서
울리는
싱싱한 원시의 경의에
나는 며칠을 시름시름 앓았다.
사흘째 계속되는
울음이 한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서히 잦아드는 숲길에는
귀뚜라미의 고달픔을 달래줄
가을 주막도
탐스런 배의 달콤한 유혹의
황톳빛 색채도
가지지 못했다.
나를 부르던
울음이 사라진
숲길에는
가을 벌레처럼-
靑夕
캐스터네츠 치며 발을 구르며
가을소나타를 튕겨볼 순 없을까
피안이 지는 노을을 향해
붉게 뜨겁게 사랑할 순 없을까
한갓 미물의 이름으로
무명의 촉수로 영원에 잇대는
가을 벌레 그 황홀한 비트처럼
신명나게 하지만 경건하게
이 가을을 두드려볼 순 없을까
가을의 주홍빛 피부를 이식하는
묵시의 퍼덕임 속엔
타클로마칸 사막을 가로지는
바람의 울음같은
얼은 마을을 감싸는
함박눈의 은빛 함성같은
벌레는 이 가을에
제생명의 목질을
마지막으로 켜고 있다
여름의 긴 인내가
갈대들의 서걱임 속에 사라진
낙동강 둔치 금빛 이랑 사이에서
축포처럼 터지는
벌레의 울음
수천년의 가을이 강되어
들판을 달린다.
한 길이었던 세상의 모든 길들이
낯선 피리의 리듬으로 만나 부르는
길들의 화답 속에서
서로 껴안고 스텝을 밟는
벌레와 나의 부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