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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틴속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도미노
새벽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거실 바닥에 고양이들 대변소변이 널려있고 고양이들이 제 다리에 붙어 배고프다고 낑낑 댔습니다.
미안해 미선아 쵸콩아...
아빠가 춤바람나서 저녁도 못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도 미리 못해져서...(고양이들은 모래바닥 화장실이 더러워지면 아무데나 마구 싸는 깔끔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참지...
쁘랙을 가는 길에 충무로에서 거진 쌀 한가마니가 되는 고양이모래를 사들고 하루종일 낑낑 들고다닌 저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 했는데 이 두 자식에겐 아직 못난 아빠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할 때
재빨리 제 방으로 뛰어가 컴퓨터를 켜고 Oblivion 을 틀었습니다. 반복재생으로...
오늘은 정말 하루종일 슬픈 날이었습니다.
쌓이고 쌓였던 슬픔을 이를 악물고 참았는데
집에 오자마자 터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가장 슬픈 탱고음악을 틀은 겁니다.
그래 슬픔은 탱고로 달래자...탱고로 승화시키자...
전 음악을 들으며
고양이 화장실의 오물들을 비닐봉다리에 넣고 물로 깨끗이 청소한 후
새로 산 뽀송뽀송한 모래를 깔아주고
거실 바닥의 오물들을 치우고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았습니다.
갑자기
이등병 시절 느꼈던 바로 그 수치심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아...쁘렉 가지말걸 그랬나...
전 바닥을 닦으며 오늘 하루 쁘렉에서 벌어졌던 일을 상기시켰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설레는 맘으로 쁘렉을 가다가 충무로에 들려 고양이 모래를 샀습니다.
왼편엔 21,000원짜리 소자와 오른편엔 34,000원짜리 대자가 있었는데
원래같으면 21,000짜리를 냉큼 집어 계산하고 빨리 튀어나오는데
탱고를 해서 저도 모르게 소자를 고를까 대자를 고를까
무게 중심을 왼쪽 오른쪽 왔다갔다 이동했습니다.
보다못한 주인은 제가 성큼 다가오며
"대자사는게 더 싸게 먹히는 겁니다!"
말했습니다.
그때 전 마치 땅게라처럼 뒤로 살짝 미끄러지며 " 좀 비싸서..." 하며 말을 흘렸습니다.
주인은 눈을 감더니 인상을 찌뿌리다가 저를 잡고 다시 당기며
" 현찰로 하면 30,000원에 줄게요..." 하며 말했습니다.
전 주인의 리드에 그만 따라가 결국 대자를 사고 말았습니다.
무거운 고양이 모래를 싫고 쁘렉에 가면서
쁘렉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연습실 문 앞에서 신발을 갈아신을 때 안에서 들리는 탱고음악과 사람들의 소란소리에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문을 연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의 레슨 시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테이블엔 맛있어 보이는 화려한 화채까지 만들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때 전 마치...
왕궁 무도회장에 온 신데렐라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의 왕자님은 어디 계시나...찾다가 순간 내가 땅게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구석에 모여있는 62기들이 보였습니다.
전 수줍게 그들 사이에 섰습니다.
반띵 사부님이 우리를 한 쪽에 데려가셔서 그동안 배웠던 것을 복습해 주셨습니다.
근데 전 반띵 사부님께 집중 못하고 사부님 너머로 화려하게 춤을 추는 사람들을 자꾸 부러운 눈초리로 보게되었습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두 흥겨운 모습이었습니다.
언제쯔음 나도 저런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생각하는 사이
반띵 사부님이 다같이 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동기 땅게라님의 팔을 잡고 자세를 잡았습니다.
한 주간 마인드콘트롤 한 것을 기억했습니다.
탱고영화, 탱고동영상, 탱고다큐멘터리, 여행프로 아르헨티나편 그리고 패션쇼 채널 - 쁘레따 뽀르떼 를 보며...
그래서 자신있는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한 발작 내딛자 마자 상대 땅게라님의 발을 밟았습니다.
다시...눈을 감고 마인드콘트롤을 한 후 앞으로 쭈욱쭈욱 자신감있게 걸었습니다.
또 발을 밟고 몸이 부딪히고 비틀비틀
깜짝놀라 눈을 떴을 때 땅게라님의 심기불편한 표정을 보고
심장이 오그라들었습니다.
반띵님이 제게 다가와서 자세와 걸음을 교정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인드콘트롤...
한발짝 내딛는데 이번엔 땅게라님이 꼼짝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감 있게 절 미세요."
하지만 전
걸음도 꽝, 무게중심도 꽝, 자세도 꽝, 매너도 꽝 이었습니다.
심지어 오늘은 교통사고도 두번이나 났습니다.
다른 춤을 추시는 선배님들과 꽝!
두번째 교통사고는 대형사고 였습니다.
제 파트너 땅게라님의 구두 뒷굽이 다른 땅게라 선배님 발등을 밟고 말았습니다.
아...죄송합니다. 혹시 이글을 읽고 계시면 용서해주세요.
너무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그때 전 당황해서 머리가 하애져 멍하니 서 있었고 제 땅게라님이 얼굴이 빨개져서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죄송하다며 굽신거렸습니다.
잠시 휴식시간을 틈타 전 스리슬쩍 연습실에서 나왔습니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터벅터벅 길을 걸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어느 모임 사람들이 소란을 떠는 술집앞을 지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녀와 나시티를 입은 청년들이 줄을 선 클럽앞을 지나...
누구는 담배를 피고 누구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뽑는 분주한 편의점을 지나...
사람들의 파도에 어느덧 휩쓸려 흘러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홍대앞의 커피빈이었습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
모두가 행복한 표정인데 왜 나만 불행한 느낌일까...
즐기려고 시작한 건데...이게 뭐지...
무능력한 남자가 된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
온라인에선 그래도 인기가 있잖아...그래 연습실에 얼씬도 하지 않고 온라인 땅게로로만 존재할까...
그래도 일반 클럽가서 흥청망청 부비부비 하며 노는 것보다 탱고는 숭고하지 않는가...
창밖의 외제차를 탄 저 젊은 청년은 자신이 능력있는 남자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것이 정작 자신의 능력일까?
돈많은 아버지의 능력 아닐까?
커피를 마시며 이 생각 저 생각하는 동안 점점 멀어지는 탱고의 세계...
여기서 포기하면 이보다 더 힘든 일이 많은데 그것 역시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 루저로 살 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 탱고도 못하면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평생 고양이하고만 살게 될거야...
여자의 맘도 헤아리지 못하는데 무슨 '女心 도미노'인가...
전 다시 발걸음을 연습실로 돌렸습니다.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싸부님께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 62동기들과 싸부님이 어디있었냐 연락해도 왜 안 받냐고 걱정해주셨습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뻔했습니다.
그래 난 혼자가 아니야...
모두 연습을 진행하는 동안 전 풀이죽어 앉아있었습니다.
플로어 위보다 거울 쪽에 붙어있는 검정의자가 너무나 편했습니다.
반띵사부님이 제 옆에 앉으셔서 친절하게 좌절하지 말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전 물었습니다.
"땅게라는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재미가 있을 듯 한데 도대체 땅게로는 무슨 재미로 탱고를 추는거죠?"
반띵사부님 놀라시는 눈빛이 이제 2주 배운 녀석이 그런 걸 질문하다니...하는 표정이셨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조근조근 말씀하셨습니다.
"도미노...남자의 사명은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거야. 남자는 여자가 진정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기쁜거란다."
전 그때 플로어에서 춤추는 땅게로 선배님들을 얼굴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매우 심취해 있고 어떤분은 정말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 땅게라만 기쁜 게 아니라 땅게로도 기쁜거구나...깨달았습니다.
하지만
6년전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3년간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함께 보라카이를 가기로 한 날 공항에 나타나지 않은 그녀...
결국 홀로 4박5일간 보라카이에서 지냈던 기억
어딜가나 신혼부부, 연인커플 뿐...
스킨스쿠버 하다가 산소통을 띠어버리고 싶었던 충동...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전화도 문자도 씹던 그녀에게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유학갔던 첫사랑이 돌아왔어요. 전 그 사람과 다시 시작할래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Good bye"
그후로
여자만 보면 사랑의 마음보다 증오의 마음이 불탔습니다.
복.수.하.고.말.거.야.
그래서 제가 쓰고 있던 탱고영화 시나리오는
땅게로에게 버림받은 어느 땅게라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탱고여신이 되어 돌아와
탱고로 복수하는 영화였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복수하는게 왠지 치졸해 보여서 성을 바꿔봤습니다.)
영화 제목은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인'
디도싸부님께 시나리오 얘기를 했더니 디도님 놀라시며
" 탱고로 복수를요? 그건 불가능해요..."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의 제 마음 상태론 탱고를 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띵님이 그런 제 심정도 모르시고 다시 연습을 진행시켰습니다.
땅게라와 다시 아브라소를 시키셨습니다.
속으로 '앗 전 준비가 안되있어요! 안되요!' 하다가
저도모르게 즉흥적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땅게라님이 칭찬해주셨니다.
"바로 그거예요. 아까보다 훨씬 박력있고 자신감 있어졌어요. 제가 저절로 뒤로 밀려나잖아요."
전 그 땅게라님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
땅게라를 벼랑끝 낭떠러지로 몰고가는 상상.
아...
땅게라님이 칭찬하시며 계속 해보라고 하셨지만 도저히 죄를 지을 수 없기에 손을 풀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 말고도 풀이 죽은 땅게로 동기들이 멍하니 서있는 모습과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땅게라 동기들이 보였습니다.
시간은 가는데 지금 우린 뭐하고 있는걸까...비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연습이 끝나고 뒤 풀이 때
제가 탱고음악을 들으면 눈물이 나온다는 말을 하자
반띵 싸부님이 절 기특한 눈으로 보시며 "바로 그거야! 그래 탱고엔 애환이 있는거야!" 하며 맞장구 쳐주셨습니다.
전 말했습니다. " 제가 춤을 너무 못춘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요..."
뒤풀이가 끝나고 모두가 헤어질 때
마리오님이 잠깐 차한잔 하자고 제게 청했습니다.
단둘이 탐앤탐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탱고에 대해 수다를 떨었습니다.
마리오님은 제게 "어떻게 하면 잘 출 수 있을까?" 물었습니다.
그때 전 인민재판을 시작했습니다.
"마리오 동무 오늘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압니까?"
마리오님, 눈을 꿈뻑꿈뻑 하다가 " 스텝? "
전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 틀렸습니다! 진정한 잘못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에 몰입하고만 있다는 겁니다!
땅게로의 의무는 땅게라를 만족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린 우리의 실수만 생각하고 좌절하느라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땅게라를 멍하니 서있게 만들었습니다!"
마리오님은 순간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었습니다.
요즈음 성당을 열심히 다니시는 마리오님은 탱고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나를 버리고 상대를 위하는 삶..."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저는 마리오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탱고엔 그리스도의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마리오님, " 도미노! 우리 기도하자! 희생정신을 깨닫고 탱신이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우리 둘은 하나의 심장 네개의 손이 되어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마리오님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둘은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마리오님이 탱고 판에서 슈퍼 마리오라고 불리기를, 제가 도미노 슈퍼 슈프림이라고 불리기를...
마리오님, " 도미노! 우리 최고의 땅게로가 되자! 탱고의 고지에 도달하여 춤 못추는 땅게라를 앞에서 끌어 올려주자!"
도미노, "그래요! 땅게로는 땅게라를 가리면 안되요. 조만간 귀여운 후배 땅게라들이 들어올테니 우리가 이끌어줘요."
그때 갑자기 마리오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마리오, " 근데 도미노... 우리가 기껏 실력을 키워줬더니 그녀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어쩌지? "
도미노, " 어떤?"
마리오, " 선배...저 이제 선배랑 안출래요. 다른 땅게로랑 춰보고 싶어요. 선배는 그냥 선배로 남아줘요...그리고 우릴 떠나면?"
도미노, 마리오: 아.......
첫댓글 대박!
홍기님이 말하던 그분이군요.. 긴글 잘안읽은데... 다 읽어 버렸단.. 나도 잠시 눈물이 핑~!!
잘읽었습니다~~~ 핑핑핑!!!
아 이분 너무 잼있네요 ㅎㅎㅎㅎㅎ
ㅡㅡㅎㅎㅎㅎㅎ
드디어 알았네요, 땅게로이시군요...ㅋ // 땅고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시네요~
아..빵터졌네요...계속 올리시길...
쁘레따뽀르떼를 보며..ㅋㅋㅋㅋㅋㅋㅋ 홍대앞 커피빈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놓고 생각하신 대목에서 그 어떤 찡함이 있었어요~~ 글이 참 깨알같고 좋군요~!!
이분이 부디 연재 계속 올시시길..홍기오빠는 연재 발견하는 즉시 퍼오시길 ^^
대박!(2)
도미노님 옆에 계신 분이 궁금해요 땅게로가 땅게라를 만족시켜줘야 된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와닿기는 한데, 땅게라가 땅게로를 만족시켜야한다거나, 탱고란 둘이 같이 만족하는 거다 이런 것이 실현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