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토스카나 여정의 거점으로 삼았던 피렌체를 아침 8시 45분 떠나 오베베 열차로 볼차노에 낮 12시 도착했다. 지난해 12월 둘이 합쳐 47.8유로에 결제했다. 짐을 역 짐 맡기는 곳에 5유로씩 주고 맡겼다. 바로 근처 버스 터미널에서 오르티세이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이곳은 이탈리아 영토이긴 하지만 독일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 해서 Bolzano와 Bozen, Ortisei와 Urlich를 병기하는데 어떤 표지에는 독일어 Urlich만 표기한 것도 있어 사전 공부를 게을리했던 난 여러 차례 헷갈려 했다. 두세 번 물어 정확한 시간을 다짐받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르티세이행 버스는 두 편으로 집친구는 여러 차례 갈아 타야 하는 170번 대신 350번을 점찍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게 나은 선택이었다. 오후 5시 28분 출발해 오르티세이에 6시 27분 도착했다. 일요일에는 서너 군데를 덜 들르는 것 같았다. 막차는 7시 30분에 있었고 170번은 8시 30분까지 있었지만 가급적 어둡지 않을 때 숙소를 찾자는 것이 아내 생각이었다.
5시간을 벌었다. 터미널에서 걸어 500m쯤 떨어진 레논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이왕이면 산 풍광을 보며 점심을 들자는 생각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꼬마 기관차 같은 것이 기다리고 있어 올랐다. 케이블카나 열차나 실버 연령층이 90%, 주민들 10% 정도다. 열차칸을 둘러보니 관광객 중에는 우리가 가장 젊은 축이다. 비수기인 데다 산을 찾는 이들이 굳이 레노나 소프라 볼차노로 불리는 이곳 마을들에 오를 일은 없는 듯했다. 우리야 오르티세이 숙소에 너무 훤한 낮에 들어갈 이유도 없고 해서 예고편 삼아 오른 것이었다.
꼬마기관차 내린 곳에서 만년설을 보며 10분쯤 걸으니 열차 여행의 갑갑함이 씻겨나갔다. 풍광 좋은 곳에 레스토랑이 있어 늦은 점심을 들었다. 호텔 베멜만스 레스토랑인데 여직원은 5분 안에 주문하지 않으면 주방장 집에 간다고 사람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압박했다. 28.3유로(라구 구이 9유로, 까르보나라 9유로, 400mm 맥주 유로, 4분의1 와인 2.6유로, 아메리카노 1.5유로, 카푸치노 2.2유로)가 나왔다. 호텔 간판을 달아 바가지를 쓸까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푸르른 하늘, 솜털 같은 구름, 먼 산의 만년설, 푸르른 녹초지 등등 사실 이곳에서도 대단한 풍광을 즐겼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가 본 것은 세체다 산군의 뒷모습이었다.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다. 오르티세이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본 것들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했다.
오후 4시 30분쯤 케이블카 타고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엄청난 급경사를 내려갔다. 난 사진 욕심을 조금 더 부려 더 멀리 나아갔다가 조금 늦게 갔더니 아내가 화가 난 듯했다. 케이블카를 아내가 통과하자마자 닫히는 바람에 이산가족이 됐다. 터덜터덜 터미널 앞에 이르니 아내가 한국인 젊은 여성 둘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4시반 버스가 오지 않아 초조해 하고 있었다. 트렁크 찾아 돌아오니 그들은 오르티세이 떠나고 없었다.
우리는 여유롭게 기다리니 정확히 버스가 왔다. 이탈리아 대중교통은 생각 밖으로 정확해 놀라움을 안겼다. 이 사람들, 노 프라블럼을 입에 달고 살아 시간관념이 분명치 않을 것 같은데 버스는 정확히 출도착 시간을 지켰다.
오르티세이의 첫 인상은 마터호른 아래 동네인 체르마트와 무척 닮았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중간을 가르는 개울과 데칼코마니를 찍은 듯한 양쪽 산자락의 집들, 그리고 개울 위쪽에 살짝 모습을 비치는 첨봉 등이 그랬다.
집친구는 터미널 바로 앞 숙소를 생각했는데 난 부러 산을 조망할 수 있는 조용한 숙소를 골랐다. 인터넷 지도를 보니 언덕배기를 300m쯤 올라야 하는 것으로 나와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버스에서 내린 뒤 트렁크 끌고 언덕배기를 오르며 걱정이 현실화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아득바득 올라 찾아간 호텔은 훌륭했다. 처음에는 개울 쪽으로 난 방을 주지 않고 왜 알페 디시우스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는 몬세우 쪽 비탈을 바라보는 쪽을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방을 바꿔달라고 할까 했다. 그런데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려고 외출하면서 개울 쪽 문을 열어본 순간 엄청 시끄럽다는 것을 알았다.
마을은 고요했다. 비수기란 점을 절감하게 했다. 편의점 등 상점들은 오후 7시에 모두 문을 닫았다. 편의점 여직원은 매장에 손님이 일부 보이는데도 우리의 입장을 거절했다. 그나마 주류판매점에 들러 생수 한 병을 산 것이 다행이었다. 빵집 하이티에 들러 빵 둘을 4.9유로에 사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저녁은 개울 건너 캐스케이드란 곳에서 들었다. 34.8유로(피자 10.8유로, 200mm 맥주 2.7유로, 400mm 맥주 4.8유로, 리조토 16.5유로). 리조토가 짜고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 흠이었다. 저녁 들고 호텔 돌아오니 피곤이 몰려와 씻고 얼마 안돼 잠 들었다.
사진설명 위부터. 3일 아침 오르티세이 마을 풍경. 오른쪽 수림 뒤로 사스룽고가 빠꼼히 얼굴을 내민다. 볼차노 버스터미널의 350번 버스 시간표. 매표하는 아주머니 둘과 여러 차례 묻고 답해야 했다. 굉장히 친절했다. 돌로미티 산군과 거점 도시들의 위치 파악을 위한 혜초여행사 개념도. 볼차노 레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마을에서 바라본 만년설. 나중에 보니 오르티세이 알페 디 시우스에서 올라 돌아본 스킬리아르 뒤쪽 모습이었다.다음 3편을 보면 스킬리아르 연봉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첫댓글 잘 읽고 있네. 우리 내외가 자유여행으로 가기엔 좀 무리인 듯. 어쨌든 고맙네.
나도 잘 읽고 있다. 영수증 모아서 비용 정리하느라 수고가 많네. 그냥 대략만 해라. 물가도 오를 텐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