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19보> - 집 구하기가 참 어려워
이번 학기는 학교 밖에서 거주하기로 했다.
맨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지난 학기처럼 영빈관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생활하기로 했다.
하지만 8월 중순쯤 학교에 등록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방이 없단다.
학생기숙사는 물론이고, 우리가 묵었던 영빈관과 학교 밖에 있는 또 하나의 영빈관에도 방이 없단다.
이유는 방학하기 전에 미리 다음 학기 수강신청을 해야 방을 배정받을 수 있는데 지금 신청해서는 방을 줄 수 없단다.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다.
며칠간 고민했다.
다른 학교로 가 버릴까?
학교가 어디 거기 한 곳뿐인가?
중국 전체로 따지면 수백 개나 될 터이고 상하이만 하더라도 무수히 많을 텐데···.
이왕 이렇게 된 것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허나 다른 학교도 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늦었던 것이다.
중국에 있는 사설학원에도 알아봤다.
만일 학원에 등록하면 숙소 문제를 해결해 주냐고···.
거기도 아니었다.
해결을 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원하던 방은 아닌 것 같았다.

(원룸 하나 계약하는 데 모두 12명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전부가 수수료 얻어 챙기려는 심사...)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기숙사 문제가 해결 안 되면 굳이 학교로 갈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지도교수님 자제인 최동일 사장은 베이징에서 3개월 관광비자로 유학을 하고 있다지 않는가.
나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숙소 하나만은 1년짜리로 원룸을 구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한 학기 살고 나면 내년 봄 학기엔 다래가 와서 살면 되니까.
우리 다래가 올해 일본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 1년을 마치고 나면 내년 한 학기는 다시 이곳 상하이에서 유학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모든 결정을 다 내렸으므로 이제 남은 것이 방을 어떻게 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지난 학기에 알게 된 상하이의 후배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두가 이번 학기는 방을 구하기가 참으로 어렵고, 방값도 엄청 올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리 자기네들이 알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단다.
방 문제는 어차피 우리가 가서 직접 봐야 결정을 할 수 있으므로 미리 어떤 방이 있다고 말을 해 줄 수가 없단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지난 학기에 학교 바깥에 사는 후배 방들을 가 봤는데 모두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상하이에 직접 가서 방을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상하이에 있는 대학 중 한국인 학생회 카페를 열심히 드나들었다.
이걸 통해 대충의 정보는 알 수 있었다.
원룸 한 달 임대료가 대략 2천 위엔에서 3천5백 위엔까지 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우리 돈으로 치면 한 달 월세가 35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하는 셈이다.
꽤나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지난 학기에 영빈관에서 우리 부부 두 명이 한 달에 3천9백 위엔 정도 지불한 것을 생각하면 좀 싼 편이었다.

(내가 사는 24층 아파트. 난 13층 원룸 사는데 매매가는 2억5천만 원이나 한다고. 에구, 무시라.)
그런데 상하이에 가서 방을 구할 때까지 며칠 묵을 방을 구하는 것이 또 문제였다.
다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관 좀 알아봐 달라고.
그런데 속속 전해오는 정보는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상하이 엑스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방이 잘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모텔급 여관이 하루 숙박에 3백 위엔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엑스포가 없는 평상시에는 하루에 150위엔 정도면 충분했는데 말이다.
이건 또 큰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방을 구하지 않고서는 여관비용으로 돈을 다 탕진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잠시 묵을 방을 구합니다.' 라고.
즉각 답장이 하나 올라왔다.
"복층인데요. 저는 위층에 살면 되니깐 아래층에서 마음대로 쓰시면 되겠습니다. 하루에 2백 위엔입니다."
한국인 여학생이 올린 답장이었다.
꽤나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감지덕지한 것이었다.
안 그러면 말도 통하지 않는 객지에서 여관 찾아 헤매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몇 번이나 확인하고 이메일도 주고받고 한 끝에 9월 9일 목요일에 드디어 상하이에 도착했다.
상하이 국제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는 예약한 숙소 주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는 대구에서 온 멋진욱이라고 하는데요. 거기 어떻게 찾아가면 되죠?”
“예? 누구라고요?”
“아니, 어제까지도 이메일 주고받았잖아요. 오늘 상하이에 도착해서 바로 전화하면 마중 나오겠다고요.”
“글쎄요. 생각이 잘 안 나는데요.”
아니,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람···.

(방 하나. 두 명이 자기엔 너무나 작은 침대... 한 달 뒤 벗씨가 오면 나는 바닥에 자야...)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사기를 치는구나.
그것도 어린 여학생이 어른을 상대로.
아니 한국인들끼리 이국타향에서 서로 돕고 살지는 못 할망정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어디 있나 싶었다.
배신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며칠 동안 그렇게나 많이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저 소개까지 자세히 해 드렸는데 모른다니요?”
“아, 깜빡 했네요. 이제 생각났어요. 제가 정신이 없네요. 그런데 어쩌죠? 방이 없어요. 저도 오늘 이사를 나왔고, 그 방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렸어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까지만 해도 자기 집에서 묵는 동안 내가 방을 구하는 것조차 도와준다고 한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외국에 나오면 사람을 믿지 말고 조심해야 된다는 하나의 경각심을 불어넣어 준 해프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과외선생님을 소개해 준 한국 남학생에게 연락을 취했다.
자초지종을 다 설명하고 나니 수업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더니 급한 김에 싸구려 방을 하나 구해 주었다.
하루에 90위엔.
달랑 침대 하나만 들어가 있는 조그만 방이었지만 아까 여학생에게 당한 기분이 이 남학생으로 인해 다소 만회가 되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방을 구하러 다녔다.
중국인 부동산 소개소를 비롯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소개소까지 꼬박 이틀을 찾아다녔다.
모두 계산해 보니 일곱 집이나 보았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룸이면 침대가 놓여 있는 방 하나에 거실 하나다.
그리고 주방과 화장실이 있고, 샤워기, 세탁기, TV, 에어컨, 냉장고에다가 장롱, 식탁이 딸려 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집의 위치, 방 크기, 가구나 시설의 노후화, 아파트의 층수, 엘리베이터 유무에 따라 가격이 또 천차만별이었다.

(거실이 하나. 32평 아파트의 거실만 하다. 여기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달 후부터는 벗씨와 함께 살아야 할 공간이므로 결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실시간으로 한국에 있는 벗씨한테 소식을 전했다.
내가 본 방마다 일일이 전화로 설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전화로 자세히 설명을 한들 직접 눈으로 안 본 이상 어디 잘 판단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수 없이 나 혼자 결정해야 했다.
일단 집이 깨끗해야 한다.
고층 아파트로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한다.
주위 환경이 좋아야 한다.
학교와 가까워야 한다.
집 가까이 할인매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집에 가스가 들어와야 한다.
등등이었다.
그리고는 말이 통하는 한국인 부동산 소개소에다 매달렸다.
방값이 비싸도 좋으니 오늘 중으로 무조건 구해 달라고.
궁하면 통한다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날씬한 20대 중반의 한국인 아가씨한테서 반가운 소식이 왔다.
내가 원하는 방을 드디어 찾았다고.
그 아가씨가 바로 한국인 부동산 소개소 사장이었던 것이다.
위치는 푸단대학과 가까운 우쟈오창(五角场)의 근처 4년 된 24층 아프트 중 13층.
계약기간 1년에 한 달 월세 3천4백 위엔.
보증금은 한 달 월세만큼.
소개 수수료는 한 달 방값의 35%.
그리고 오늘 저녁 바로 계약가능 등이었다.
저녁 6시가 되자마자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트렁크를 끙끙대며 끌고는, 나를 대변해 줄 중국인 과외선생님과 그 과외선생님을 소개해 준 남학생과 함께 현장으로 갔다.
상대편은 집주인인 여성과 한국인 부동산 소개소 사장, 그리고 몇 번을 거쳐 소개를 해 줬는지 대여섯 명의 또 다른 중국인 소개소 직원에다가 청소 아주머니까지 도합 12명이나 모였다.
아파트 그것도 조그마한 원룸 한 번 계약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하여 내게 큰 걱정거리였던 집 문제가 드디어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에궁, 이제 마음 푹 놓고 잠이나 좀 자야겠다.
2010년 9월 10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첫댓글 엄청 고생하셨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고생한 얘기를 전화로 전해들으니 제가 따라가서 걸거적거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던지...헤헤
9월 10일에 올린 글에 10월 8일에 댓글을 달려니 쪼매 미안.....방학 때 우리가 얼굴을 봤던가요??? 몸에서 멀어지니 사연도 멀어지네여. 타국에서 고생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픕니다요.. 모쪼록 만학의 열정과 기쁨을 간직하시길.....
비오는 날 오토바이에 뒤에 실려 집 구하러 다닌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것도 전형적인 중국의 지저분한 모습을 그대로 다 봐가면서... 에궁 고생시러버~ 그래도 본인이 그렇게도 원하던 유학생활이니 재미있답니다.ㅎㅎ
중국에서 새로 마련한 집에서 자--알 지내지요? 한달도 넘게 서로 떨어져 있다가 욱대장이 요새는 쬐깨 신상이 편하겄네여. 암튼 대단한 두 부부, 힘내고 열심히 살랑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