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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하르간즈에서 뉴델리역
아침 6시 20분 델리역에서 떠나는 보팔행 기차를 타기 위해 다섯시에 일어났다.
비록 세 시간도 못잔 잠이지만 침대에 누워 두 다리 뻗고 잤다고 오랜 비행과 낯선 곳에서의 피로가 가신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물이 좋은 지 얼굴도 매끄럽다. 물론 수염은 안 깍는다. 왜 인도에선 그래도 될 것 같아서
여기서 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전국으로 떠나는 기차의 출발역이 가깝다는 것이 빠하르간즈에 많은 여행자들을 묵게 한다. 빠하르간즈는 역앞에 형성된 쪽방촌이라고 보면 딱이다.
서울역 앞에 양동이 있고 청량리역 앞에 오팔팔이 있듯
뉴델리역 앞에는 빠하르간즈가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는 메인스트리트는
잠들기 전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다.
짜이와 통밀빵-짜파티인지 뭔지 아직 파악이 안됨-을 파는 흰수염이 멋진 아저씨와
역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행렬이 죽음의 거리 같았던 이곳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역시 새벽은 뭔가 희망적이게 한다.
인도에 왔으니 당연히 한잔해야지.
얼마냐고 물으니 한잔에 5루삐란다.
우유를 끓이다 홍차가루 조금 설탕 듬뿍 넣고 생강이나
다른 향신료로 마감을 하면 짜이가 된다.
소주잔 보다 조금 큰 컵에 따라 줘 감질나지만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별똥궁으로 일행을 부르러 가는데 몇 분이 반대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방향을 알려주고 호텔로 가니 모두들 분주하다.
모여서 짜이 파는 아저씨 쪽 일행과 합류하고 인원을 파악하니 두 명이 빈다.
내가 조장을 맡고 있는 조원이다.
‘어째 이런 우리 조가 ! 아~ 첫날부터 사고를 치는구나!’
아직 별궁에서 안 나왔나 뛰어가니 그 어느 곳에도 없다.
종업원 말로는 모두 다 나갔다고 한다.
혹시 하고 그 둘이 묶었다는 삼층까지 올라가 봐도 난장을 치룬 빈 방일 뿐이다.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을 일은 없고, 아까 그 사람들처럼
분명 반대편 방향으로 간 것 같은데.......
어찌 될지 몰라 일행에게로 돌아오니 역으로 갔을 지도 모른다며 일단 역으로 이동하잔다. 돌아다니는 릭샤를 잡아타고 쫒아 가면 될 것 같았는데.
기차가 출발할 때 까지 안 오면 남아야 하나 어쩌야하나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걸어가는데 뉴델리역으로 갈수록 혼잡함이 말이 아니다.
노숙자들이 온통 점거한 역 앞을 뚫고 구내로 들어간다.
인도 역은 개찰구가 따로 없다.
모든 검표는 열차 내에서 이루어진단다.
플랫폼에 짐을 부리고 스님과 둘이서 길 잃고 헤매는 어린양을 찾으러 나선다.
역사를 벗어나자 저 멀리서 역을 앞에다 두고 다시 돌아가려는 두 명의 여인이 보인다.
반가움에 크게 소리쳐 부르니 하얗게 질린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기차역을 물어물어 그 무거운 짐 지고 얼마나 바쁘게 달려왔는지 안 봐도 뻔하다.
배낭을 받아들고 일행한테로 돌아가니 모두들 반가이 맞는다.
그런데 재회의 환호성이 그치기도 전에 인도스러운 소식이 바로 이어진다.
기차가 세 시간 연발이란다.
델리발 보팔행 사답띠 기차는 뉴델리가 출발역인데도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을 터인 데 인도니까 하고 그냥 넘어간다.
인도인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또 뭐라 한다고 뭐가 해결되겠으며 내가 알 수나 있겠나
몇 편 보지 못했지만 인도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빠른 장면 전환이었다.
한순간 전혀 다른 장면으로 휙 휙 바뀌어 토막토막 난 것 같은 느낌
결국 전체가 이어지지만.
역구내방송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연속이었지만 방송멘트 전과 후에 들어가는
효과음은 인도영화처럼 강렬하다.
‘짜잔 사답티가 세시간 연발하겠습니다. 짜잔 바라나행 기차가 들어오겠습니다. 짜잔~’
효과음에 주의는 집중되지만 반복되어 들리는 짜잔 소리에 정말 짜잔 하고 돌 뻔 했다.
갑자기 생긴 세 시간의 공백은 그만큼의 자유 시간을 의미한다.
물론 그 뒤의 시간을 차용하는 것이지만.
인도여행 가기 전에 수도 없이 들었던
‘상황을 즐겨라’
는 말은 이럴 때를 대비하여 준비한 말이었다.
우선 역 주변을 구경하기로 한다.
무거운 짐을 모두 들고 다닐 수 없어 일부는 남아 짐을 본다.
짜잔 소리를 뒤로하고 역을 벗어난다.
역 앞 맞은편이 빠하르간즈 입구다.
그 밤과 해오름 전 축생지옥 같았던 그곳도 태양이 비추고
사람들로 북적이며 시장이 서니 정말 딴판이다.
이런 것이 짜잔 하며 장면이 바뀌는 인도영화 같은 것인가?
사람에 시선이 쏠려 바닥의 쓰레기도 안 보인다.
사람이 흉함을 가리는 가장 좋은 장식이다.
그 건너편으로 건너기 위해서는 과감함이 생명이다.
어느 누구하나 먼저 서주는 이 없고 신호등 횡단보도는 더더욱 없다.
온갖 종류의 자동차가 다 다니는 길이 만드는 최대한 혼잡을 이용해
그 빈틈에 자신의 몸을 푹 찔러 넣어야한다.
빈틈에 박힌 쐐기가 파고들면서 틈을 더 벌리듯
길을 건너니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골목이 보인다.
먼저 아침을 먹기로 하고 그 쪽으로 방향을 트니 식당마다 자기 집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주위를 살피다 가장 안쪽 집으로 들어간다.
그 집에는 음식 사진을 붙여 놓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도음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림이라도 봐야할 것 같아서다.
식당에 들어서니 일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다.
현지인이 먹고 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니 일리란다.
일단 그것을 시켰다.
그림을 보니 빈대떡 같이 생긴 것이 있어 보니 마살라도사와 우따팜이다.
그것도 시켰다.
일리는 빵 몇 개에 커리 세 가지가 식판처럼 네 구역으로 분리된 접시에 담아서 나온다.
요리 하나당 가격이 대략 20루삐니 우리 돈으로 오백원이면 한 끼가 해결된다.
커피와 짜이도 시켜 같이 먹으니 약간 향이 있는 듯 했지만 먹을 만 했다.
인도사람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니 나도 한 번 시도해봤다.
식당에는 손을 씻게 시설이 되어있다.
김밥 말거나 초밥을 말 때도 맨손으로 말고, 음식 맛은 손맛이라고들 하는 데
손으로 집어먹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라이스를 시키지 않아 손으로 먹는 게 어렵지 않았다.
다음에는 라이스도 손으로 시도해봐야겠다.
일행 중에 한분이 앞집에서 만들고 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럼 먹어야지.
사러가니 공갈빵처럼 부푼 것을 잡아 신문지-한국 같으면 납중독에 걸린다고 야단나겠지만-에 차곡차곡 싸니 푹 꺼져 한국 호떡처럼 된다.
거기다 옥수수 콩 등이 들어있는 뜨끈뜨끈한 카레(한국 카레와 맛이 가장 흡사했다)는 비닐봉지-아 환경호르몬의 압박-에 담아준다.
이것이 아침에 먹은 것 중에서 가장 맛났다.
아침을 흡족하게 먹고 나니 앞으로 인도에서의 생활에 자신감이 생긴다.
역에서 기다릴 사람들을 교대해주기 위해 식당을 나선다.
역구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아침을 먹고 마음이 편해졌는지 새벽에 혼쭐이 난 조원이 같이 과일을 사러가자고 한다. 다시 역을 나와 길 건너 과일가게로 갔다.
계절이 그래서인지 열대과일보다는 석류, 바나나, 사과와 오렌지, 구아바등이 있다.
석류도 먹는 다는 것을 인도에 와서 첨 알았다.
1킬로에 40루삐하는 인도산 석류와 70루삐하는 카불산 석류가 있는데 카불산이 덩치가 더 컸다.
과일상 말로는 카불산이 맛이 좋다는데 덩치 큰놈이 카불산인지 그리고 그게 가격이 더 비싸야 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주인의 말을 들어줬다. -나중 경험으로 봐선 바가지 쓴 것 같았다.
석류와 바나나를 사서 플랫폼에 돌아와 나눠 먹었다.
석류는 물이 많아 갈증해소에 딱이다. 석류를 먹으면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온다고 누군가가 말한다. 그래서 석류미인이란 말이 나왔나.
앞으로도 두 시간이나 더 남아 있다.
화장실을 가니 입장료로 2루삐를 받는다.
인도의 화장실은 공용시설이라도 누군가가 돈을 받는다.
안줘도 된다는데 남의 나라에서 안주고 버팅기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화장실에서 나와 길 건너 빠하르간즈 반대 방향 쪽으로 가본다.
뒷길로 들어가니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이발소도 있고 큰 가마솥 같은 곳에 기름을 넣고 아까 먹은 빵을 튀겨내는 집, 황토로 토기를 빚어 굽는 가마도 보인다.
뉴델리역 맞은 편 길에서 만나는 토기 가마가 참 색다르다.
길가에 나둥그는 황토 잔들이 모두 여기에서 구워진 것들인가 보다.
인건비가 싸서 종이컵보다 황토 잔이 더 싸게 먹힌 다는 말이 맞나보다.
오루삐나 10루삐짜리 짜이나 커피도 황토 잔에 담아주고, 마시면 바로 집어 던지니 말이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누군가는 이 잔을 기념으로 가져가려 했으니 인도의 희극이다.
아까부터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나뭇가지가 궁금했는데 아줌마가 나뭇가지를 들고 간다. 불러서 뭐하는 거냐고 물으니 이빨을 가리키면서 칫솔질 흉내를 낸다.
개당 5루삐란다. 입에 넣고 씹으니 쓴물 맛이 난다. 이 맛이 치약의 쓴맛이란다.
물이 많이 생기고 나뭇가지 끝이 금방 뭉개지고 갈라진다.
그 끝으로 잇몸 맛사지도 하고 이빨 사이도 쑤셔대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게 림이라는 나문데 이동 중에 칫솔이 없으면 이걸로 간단하게 칫솔질을 대신한다.
림을 입에 물고 씹으며 플랫폼으로 가니 대부분 일행이 근처 관광을 마치고 돌아와 있다.
씹고 있던 림을 꺽어 나눠주니 몇 몇은 같이 씹는다.
예의 그 짜잔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데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크락션 소리가 귀에 익어가듯 짜잔 소리도 귀에 익어간다.
짜잔 기차가 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짜잔
2007.11.25
첫댓글 청한님 수고에 감격한 조원이 있었지요^^* 저희들은 이렇게 인도를 앉아서 속속드리 대할수 있군요. 감사해요!!
짜잔 ~~왈왈 짜잔 나타 났습니다. 짜이잔이 딩구는걸 보고 제가 가져 오려 했지요 그게 무슨잔일까? ㅎㅎ 형님의 여행기가 어찌 쓰여질까 또 궁금해 집니다.
이그 정말 생각하면 완전 공포의 순간....포비와 나눔이 없어진줄알고....
짜잔~~그 소리가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나눔이도 익숙해졌다고 ㅋㅋㅋ 나눔이와 포비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왔을 때 그들의 공포가 실감이 났지요. 얼마나 놀랬을까?? 인도를 못 잊을거야 ㅎㅎ
가정이지만...기차가 제시간에 왔고 두 친구가 우릴 못 만났다면 정말 아찔했지요. 비행기에서 내려 델리를 떠날때까지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한 이틀지나고 나니까....적응이 되더라구요. 지금은 추억이어서 웃을 수 있지만.....전체 인솔을 책임지는 대장은 스트레스 엄청 받았지요.
기차가 늦게 떠나길 정말 다행이였네요~~청한님의 자세한 후기 실감나게 잘 읽었습니다~짜잔~다음역으로 출발~~^^
청한님의 적응력과 순발력이 부럽습니다.
하하하!! 짜잔행....정말 지금 기차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우리 오차로 가야지..언른! ㅋㅋㅋㅋ그리고 축생지옥...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네요..
4조는 봉사조~~!! 푸하하하하~~ 역시 짜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쩜 그렇게 짜잔~!! 하고 시작하는지...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델리역!! 짜잔~~~!!
95년도 12월 어느날 빠하르간지에 밤이 생각 납니다. 수화물이 도착하지 않아 추위에 떨며 잠못 이루던 밤, 그래도 여행자들이 머물기에 좋은 곳 청한님! 모든것들이 그리움 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