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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의 열매를 받는 축복 (시127:3-5절)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입니다. “태의 열매” 는 바로 인생이 받은 자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성경은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그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있는 가장 값진 보물인 자녀들의 가치와 귀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백만장자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루종일 피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사는데 이 집 사람은 항상 놀아도 호의호식하고 있으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군.” 하며 불평했습니다. 그가 집에 도착하자 그의 아들들이 뛰어나와 그를 반가이 맞았습니다. 그 때 동행하던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 녀석들을 얼마나 주면 나에게 팔겠나.” 그러자 그는 대답하기를 “ 그 아이 몸 무게 만큼의 금을 준다 해도 싫네.” “아니, 왜? 이 아이는 적어도 40파운드는 되겠는데 금 40 파운드와 바꾸면 자네는 아까 그 백만장자보다 더 큰 부자가 될 텐데.” 그러자 그는 “억만금을 준다 해도 내 자식과 바꾸지 않겠네.” 라며 웃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자네는 조금 전에 불평했던 그 인정도 없고 자식도 없는 백만장자보다 훨씬 더 부자일세. 자네에게 이 보배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네.” 라며 충고해 주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태” 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욥31: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사13:18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애석하게 보지 아니하리라.
*창49: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머니 태에서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를 구별하였다고 했고, 바울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기를 택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관계하고 있으며 또한 잉태는 어머니의 즐거움이요, 기쁨이요, 사랑이며 여인의 복입니다. 우리는 영적 의미에서 여인이 자기 태에 잉태되는 아기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느끼고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 같이 신령한 생명을 수태하고 생산하는 신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령한 생명을 수태하게 될까요.
1. 구속의 체험이 확실해야 합니다.
수태란 모태가 아기를 갖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영적 원리로 적용할 때 성도는 주님과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우리를 주님께 중매한다고 했습니다.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성도는 주와 더불어 연합하여 한 몸이 된 결과 잉태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생명을 받아서 새 생명을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요, 우리는 그의 신부입니다.
*엡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잉태의 능력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내 자신이 구원의 체험과 구속의 은혜를 모르는데 어떻게 생명 잉태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느끼겠습니까.
확실하고 분명하게 구원을 받은 사람은 구원의 10단계에 대한 체험을 분명히 하게 됩니다. 구원의 10단계란 첫째, 예지입니다. 롬8: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나에 대하여 미리 다 아시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아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정입니다. 롬8:29절에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모든 것을 미리 정하신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소명입니다. 롬8: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라고 했습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십니다.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같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신 것같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중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나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셨습니다. 거듭남이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는, 회심입니다. 세상을 향하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여섯 번째는 칭의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롬8:30절에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믿고 확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일곱 번째는 양자입니다. 롬8:14-15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덟 번째는 성화입니다.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롬8:16-17절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거룩에 이르기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아홉 번째는 견인입니다. 롬8:24-25절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구원은 거룩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오래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열 번째는 영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롬8:18절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으며, 롬8:30절에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영화에 대하여 ‘면류관’이라고 표현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때까지 구원의 경주를 달려야 합니다. 이러한 단계의 체험을 하는 사람은 사죄의 의식, 구원의 의식, 내세의 의식을 갖게 되고 그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2. 영혼 구원의 사랑으로 불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새 생명, 새 신분을 얻어 새 사람으로 바뀌면 제일 첫 번째 현상이 자기 죄인 의식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세상에 대하여 세 가지 책망하시는데 그 첫째가 죄에 대해서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 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 중에 무슨 죄가 가장 큰 죄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죄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인데 그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신 구원의 하나님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죄인이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찬송을 부르는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이러한 고백적인 찬송이 눈물과 함께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현상은 구속의식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를 구속하셨다는 갈보리 사랑에 젖게 됩니다. 우리는 갈보리 사랑은 세 가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속죄 혹은 속량이라는 말은 구약 전체에 흐르는 단어입니다. 원래의 뜻 자체가 값을 지불하고 건져낸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노예로 팔렸으면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이유는 반드시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우리가 속량된 것은 무엇이라 했습니까.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속량하러 오신 분임을 알리셨습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속량의 값은 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갈보리의 그 날은 결코 맑은 날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어두운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를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호13: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자동차로 여행을 떠났는데 벌 한 마리가 열린 창을 통하여 들어왔습니다. 아들은 겁에 질려 질겁을 합니다. 아들이 벌에 쏘일까 봐 아버지는 천천히 벌을 손에 잡아 쥐었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는 벌을 다시 놓아줍니다. 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 다닙니다. 아들은 놀라서 야단합니다. 아버지 왜 벌을 도로 놓아주어요. 그때 아버지가 하는 말이 ‘아들아 겁낼 것 없다 내 손바닥을 보아라. 벌침이 여기 있지 않니’ 하시며 벌침이 박힌 부어오른 손바닥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사망의 독침을 자기 손에 받으셨습니다. 이제 사망의 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오늘은 죄책이 있어도 갈보리의 사랑 안에 살기에 그 죄가 우리를 죽이지 못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영화 ‘콰이강의 다리’ 는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포로로 잡힌 영국 군대가 강물 위에 기차선로 작업을 합니다. 하루는 일이 끝나고 도구 조사를 하는데 공사용 삽이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누군가가 삽을 태국군에게 팔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목숨을 살려준 천황폐하에 대한 불경죄에 해당합니다. 삽을 팔아먹은 놈은 앞으로 나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습니다. 권총을 빼어든 헌병이 모두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맨 첫 줄에 서 있는 한 사람을 겨냥했습니다. 그때 영국 군인은 모두 앞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일제히 “내가 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화가 난 일본 헌병은 한 군인을 욕하고 총으로 머리를 강타합니다. 피투성이가 된 영국 군인은 자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를 메고 막사로 들어 온 사람이 삽을 헤아려 봅니다. 삽은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 일본 헌병이 잘못 헤아렸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죽으므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옆에는 두 명의 강도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말하기를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그 때 주님의 답변은 “아멘” 입니다. 강도의 기도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강도의 죄를 사죄하시고 낙원을 허락하셨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제 이슈는 “죄”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값은 지불되었고 남은 것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사죄입니다. 어느 농장에 사과나무가 가을바람에 다 쓰러졌습니다. 농부가 쓰러진 나무들을 보니 벌레들이 나무뿌리를 다 갉아 먹었습니다. 이웃집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 이제 어떻게 하려나. 그는 바로 대답합니다. “열매는 모으고 나무는 불에 태울 것이네” 우리도 이 농부처럼 살아야 합니다. 열매는 거두어야 하고 죄책은 불에 태워야 합니다.
세 번째 현상은 영혼 구원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위대함과 부요함과 신비로움을 알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아직도 불신앙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태 안에 새 생명을 잉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그토록 훌륭하고 귀하고 영예롭던 부모님이나 형제들, 친구나 친척들이 예수를 모르고 믿음의 밖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자연히 눈물과 사랑의 기도로 바뀝니다. 나의 힘으로는 안 되는 줄 알기 때문에 주님께 매달리고 기도합니다. 끈질기게, 끝까지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이 감동을 받고 스스로 신앙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철저하게 본이 되는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기주의는 버리고 상대를 위해,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겸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생활로 전도하고, 희생으로 전도하고, 봉사로 전도하고, 행동으로 전도하고, 입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전도가 된 영혼은 양육해야 합니다. 성경은 자녀 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렸을 때 교육하라고 합니다. 자녀는 태에서부터 가르치고 어렸을 때 가르쳐야 합니다. 새 가족부터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적 자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열매는 우리의 상급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그러므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항상 언제 어디서든지 가르쳐야 합니다.
*신11: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잘못된 일은 그때, 그때 깨닫게 해야 합니다.
*왕상1:6 그는 압살롬 다음에 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처 사라의 태는 거의 죽은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은 자와 방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이삭을 받고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 같이 수많은 생육의 자손을 약속받았습니다. 우리도 잉태하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에 감격하는 자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성경에 수태하지 못한 여인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그것은 여인으로서 축복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최하위라고 합니다. 금년 들어서 달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민족의 멸망이 가장 먼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교회는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믿음의 신자들은 모두 수태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골육지친으로부터, 친구와 이웃과 세계의 영혼을 복음으로 잉태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128:2-6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가 수태하는 힘을 얻고 영적 자녀들을 잉태하고 순산하여 번영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평생에 교회의 번영을 보며 영적인 자식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이러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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