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2 – 6. 24
[어린이 농부 제빵사가 되다-우리밀 3.6킬로그램과 발효빵]
달날에 어린이 농부들이 밀밭에서 거둔 토종 우리밀을 잘 씻어서 빻았습니다. 밀가루 3.6킬로그램. 양은 작지만 귀한 밀가루입니다. 발효빵 수업에 쓰일 밀가루이고, 부침과 지짐에도 쓰이면 좋겠는데 양이 작아서 빵 수업에 다 쓰일 듯 해요. 지난 겨울 앉은뱅이 밀을 심은 때가 떠오릅니다. 어린이 농부들이 길게 늘어서서 차례로 땅을 파고 밀을 뿌리는 장면은 언제 봐도 감동스럽습니다. 밀은 겨울농사 가운데 아주 효자 작물이긴 한데 점차로 양을 줄여서 심을 수밖에 없었어요. 까닭은 거두는데 시간이 많이걸려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길게 한 이랑만 밀을 심었었어요.
올 2월에 밀을 밟아주고 가랑잎을 주워서 덮어주는 일부터, 3월에는 웃거름을 주고, 풀을 잡고, 6월에 드디어 밀을 베고 털었으니, 어린이 농부들에게는 그대로 밀의 한 살이를 온 몸으로 겪어 본 셈입니다. 올해도 거두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밀을 가만두지 않아서 인데요. 그래서 보통 때보다 더 일찍 서둘러 밀을 거두었어요. 어린이 농부들이 가위로 밀 이삭만 잘라내기도 하고, 낫으로 베서 학교 마당에 가져다 놓고 말린 뒤에 손과 저마다 다양한 도구와 방법으로 밀을 털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을 햇볕에 바싹 말린 뒤에 잘 씻어서 다시 말리고, 동네 방앗간에 가져가서 곱게 빻았습니다, 밀 농사를 크게 하면 제분소로 갈 텐데 그만한 양이 아니니 방앗간이 제격입니다. 장흥에서 밀농사를 지어 빵을 굽는 농부제빵사가 알려준 방법인데 해마다 꾸준히 밀가루를 얻습니다.
이제 겨울 농사 결과물이 그대로 밥상에 오르게 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어린이 농부들이 제빵사가 되는 게지요.
불날에 드디어 어린이 농부들이 밀밭에서 거둔 토종 우리밀과 건포도 액종, 앵두와 오디 액종으로 드디어 발효빵 반죽을 했습니다. 액종은 발효빵 수업을 위해 지난주부터 마을에서 나는 앵두와 오디를 따서 만들었어요. 2학년 어린이들과 함께 액종이 잘 되는 건포도를 액종을 만드는 공부를 하고, 저마다 유리병에 만들어서 관찰하며 액종이 되는 걸 관찰했지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효모들이 뿜어내는 탄소 덕분에 유리병을 열었을 때 작은 병에서 모두가 놀랄만한 뻥 소리도 듣고, 드라이아이스처럼 하얀 증기가 올라오는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반죽을 할 때는 전자저울에 재서 계랑을 하며 셈도 해보고, 어제 빻은 우리밀의 고소한 냄새와 액종의 시큼함까지 손을 놀리며 나눌 이야기가 많습니다. 학년에 따라 교과통합으로 나눌 공부가 가득한 게 발효빵 수업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직접 생산한 밀가루이고 직접 만든 액종이니 더 신이 나는 공부일 수밖에요. 30분 마다 2차 접기까지 하고 저온숙성을 위해 냉장고로 들어갔습니다.
물날에 드디어 어린이농부들이 빵만드는 제빵사가 되는 날입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미리 저온숙성된 반죽을 꺼내놓고, 빵 속에 들어갈 곶감, 무화과, 건포도를 채비했습니다. 상온에서 충분히 발효시킨 뒤에 2학년 제빵사들과 마무리를 했어요. 저마다 기운대로 속 재료를 골고루 넣고 다시 발효를 기다립니다. 느림과 기다림이 천연발효빵인 셈입니다. 지지난해 만든 화덕에 구우면 좋으련만 불 때는 게 쉽지 않아 전기 오븐을 썼습니다. 미리 10분간 예열을 하고 어린이제빵사들이 저마다 빵에 마지막 모양을 잡고 무늬를 빵칼로 만들어 오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지켜보며 기다린 끝에 나온 깜빠뉴의 자태가 참 곱습니다. 이미 고소한 냄새가 학교에 가득합니다. 어린이들이 무슨 냄새냐며 달려와 물어요. “이 빵 우리도 먹을 거죠.”
어린이제빵사들이 만든 건포도액종, 오디액종, 앵두액종과 어린이농부들이 우리밀농사로 생산한 밀가루로 고소한 발효빵이 나왔습니다. 발효빵이 나오기까지 우리 어린이 농부들이 반 년 넘게 쏟은 정성과 시간, 흘린 땀은 어느 정도일까요. 빵집도 많아 언제든지 빵을 쉽게 살 수 있고, 부드럽고 단맛에 길이 든 세상이지만 투박하지만 고소함이 살아있는 발효빵을 만들어서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밀 농사를 지어서, 액종을 만들어서, 반죽을 하고 굽는 과정을 오롯이 경험하는 일은 한 번 제빵 체험하는 것으로는 담을 수 없는 배움이자 추억, 감성이 쌓여가는 삶의 교육입니다. 자립과 삶을 이야기 하지만 자본 도시 소비 사회에서는 아주 어려운 교육과정이고 주제학습이니 더 뜻이 살아납니다. 생산하는 삶, 땀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은 작지만 고맙고 소중합니다. 교실 안팎과 교과를 넘나들며 일하며 배우는 공부는 오래된 미래입니다. 어린이 농부들이 제빵사가 되어 구운 빵을 맛있게 먹습니다. 다음 주에도 발효빵 수업은 줄곧 됩니다.
첫댓글 인스턴트드라이이스트에 시판 밀가루로 만들어도 큰 일인데 직접 액종만들고 키워놓은 밀 빻아서 빵을 만들어 먹었다니 정말 엄청나네요. 자립에 대해서는 이만한 공부가 없겠습니다. 원래부터도 필요한 수업이었지만 코로나19로 매일 고민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보니 더 각별한 느낌이 가는 수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