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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내시의 신앙모범
사도행전8:26-40
오늘도 은혜가 풍만한 주일 아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만큼 건강을 허락해주셔서 예배의 자리에 오르게 하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천국에서 영원한 소망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고,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에 우리 성도들이 다함께 모여 예배하는 가운데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사명을 주셨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 가는 저 영혼들을 사망의 길에서 구해 내라는 것입니다.
1. 빌립의 순종과 헌신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빌립을 통하여 몇 가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먼저 죽어져 가는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각 순종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영혼의 필요를 볼 줄 압니다. 26-27절 말씀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빌립은 지금 사마리아 성에서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빌립을 따르는 사람도 많아졌고, 표적과 능력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빌립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빌립이 가야할 그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입니다.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험에 맞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하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은 사람이 없는 광야입니다. 그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볼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이유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였지만 순종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빌립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광야인 가사로 내려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에디오피아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있는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성령께서 또 빌립에게 말씀합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이 병거로 가까이 가라"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이 사람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이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한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 빌립으로 하여금 한창 부흥하고 있고, 성공하고 있는 사마리아라는 사역지를 떠나게 하였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인 가사로 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 에디오피아 내시의 구원과 세례
에디오피아 내시는 구원받고 세례받아 빌립과 헤어지고 난 후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로 성경에 그 내시는 다시 언급되지 않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디오피아 내시가 구원을 받고 고국에 돌아가서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서 에디오피아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놀라운 것은 이로 인해 시편68:31절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시편68:31절은 예언적인 구절인데 이디오피아의 복음전파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만약 빌립이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늦장을 부렸다면 이 전도의 기회는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에 예언된 말씀이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축복의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그 사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쓰임받는 축복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깨어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귀중한지 우리는 상상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한 영혼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빌립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데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였습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9절에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기쁘게(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가사에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한 사람을 구원시키고 또 성령이 빌립을 인도하였을 때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가사에서 32Km 떨어진 아소도에서 여러성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고, 그리고 96Km를 복음을 전하며 여행하여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사도행전 21:8절에 보면 2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가이사랴에 살면서 전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조건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고, 2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사역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여러분의 얼마나 적극적이고, 열정적입니까? 처음에는 열심이였는데 지금은 그 열심이 식었습니까? 전에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었는데 지금은 식었습니까? 전에는 자원하는 심령으로 열정적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였는데 지금은 그 열정이 식었습니까? 주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게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에게 있었고, 목자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는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혼을 향한 적극적이고도 열정적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3. 복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빌립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에디오피아 네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주신 기회에 그 영혼을 구원받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에 대해 알았기 때문입니다. 35절입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리켜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노라.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여러분 주위에 전도해야 할 영혼이 있습니까?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있습니까? 빌립의 마음처럼 그 영혼을 구원하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분명한 복음을 알고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안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 복음을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습니까? 처음 예화를 통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쉰들러에게는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을 통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의 리스트가 있습니까? 지금부터 늦지 않습니다. 우리의 리스트를 만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야 합니다. 영혼에 대해 적극적이고 열정적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체험한 후 사마리아에 내려와 많은 역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들린 자가 고침을 받을 뿐아니라, 마술사 시몬과 같은 큰 고기도 낚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빌립은 인간적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그는 기적을 낳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무능한자를 유능하게하고 낮은 자를 높이시기도하며 무지한 자를 지혜롭게도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임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27절)에 보면 에디오피아 재무장관인 내시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려 왔다가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유대인에게는 이방인이요 에디오피아에 사는 내시가 어떻게 예루살렘에 유월절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평민이 아닌 한 나라의 재무장관이 말입니다. 성서 해석자들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왕상10:1;10)에 보면 에디오피아의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한 일이 있으므로 그때 성경을 가지고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거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4. 예배를 사모하는 에디오피아 내시
에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인 내시는 예루살렘에 와 유월절 예배를 드리고 다시 자기 나라인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길이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에서 중요한 사건은 내시가 덜렁거리는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마차 위에서 성경을 읽었으며 이를 본 빌립이 성령의 지시로 내시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내시는 (사53장)을 읽었으나 그 뜻을 알지 못하므로 빌립에게 물었으며 빌립은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었음을 해석해 주므로 내시가 큰 은혜를 받고 빌립에게 세례를 받으므로 주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며,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쉬는 날도 아니요 노는 날도 아닙니다. 무엇하는 날입니까? 하나님께 예배라는 날입니다. 어떻게 예배하는 날입니까? (요4:24)에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에디오피아의 재무장관인 내시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자동차를 타고도 아니요, 기차를 타고도 아니요, 비행기를 타고도 아니며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사막 길로 1200 마일을 왔다가 또 1200 마일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시는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사모하는 사람인가 하면 마차를 타고 사막 길 1200 마일을 왔다가 가는 사람입니다. 옛날에 우리믿음의 선배들, 어른들은 동내에 교회가 없어서 십리밖에 있는 교회를 걸어서 다녀본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은 1200 마일 밖에 있는 교회를 자동차가 아니라 마차를 타고고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교회에서 먼 곳에서 다니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본문에 내시는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적당히 예배를 드릴수도 있었겠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1200 마일을 달려 온 것은 단순한 예배만을 사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함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 곳에서나 예배를 드리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에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성전 사모하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1200 마일을 달려가서 예배를 드리는 내시가 너무너무 피곤해서 예배 시간에 졸지는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졸았을까요? 안 졸았을까요? 저는 절대로 졸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1200 마일을 달려와 성전에 들어서니 너무너무 감격스럽고 기뻐서 눈물이 펑펑 쏘다 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예배를 사모하고 성전을 사모하는 사람은 예배시간이 감격스러워야 합니다. 말씀이 꿀같이 달아야하고, 찬송을 부를 때에는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나거나, 날려고 하는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5. 성경을 가까이 하는 내시
본문(28절)에 보면 < 돌아가는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 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 우리를 본문을 볼 때 내시는 항상 기회만 있으면 말씀을 가까이하는 신앙인이 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도가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시는 덜렁거리는 마차위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마차가 흔들려서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가운데서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말씀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내시와 같이 성경을 가까이하고 늘 상고하여야 합니까? (딤후3:15-17)까지를 보면 <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 < 모든 성경은 하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육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이 말씀을 인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책망도 받아야하며 떠 위로도 받아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시가 성경을 읽고 있을 때 누구를 보내 주셨습니까? 빌립을 보내 주셨고 그는 빌립으로 하여금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해 주셨고 빌립에게 세레도 받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만일 내시 성경을 읽지 않았다면 빌립을 만나는 축복의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 축복이 찾아오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30절)에 보면 내시가 (사53장)을 읽는데 그 의미와 뜻을 모르고 읽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의 지시를 따라 빌립이 내시에게 가까이 다가가 < 읽는 것을 깨닿느뇨 >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31절)에서 내시는 말하기를 < 나에게 가르쳐주는 지도자가 없으니 어찌 깨닿을 수 있느뇨 >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 빌립이 그의 마차에 함께 올라 내시에게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이사야 53장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요 그가 곧 예수이며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내시는 이 말씀을 읽기는 읽었지만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몰랐습니다. 내시가 어떤 사람입니까? 내시는 일국의 재무장관입니다. 그런데 그는 겸손하게 낮아져서 빌립에게 가르침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빌립은 내시 앞에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명예도 지위도 재력도 없는 평민입니다. 그런데 내시는 겸손히 빌립에게 배움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시에게서 겸손하게 배우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범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 까지 겸손하게 열심히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내시의 겸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는 겸손히 빌립에게 배우다가 큰 은혜를 받았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시의 모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그는 예배를 사모하는 자요, 그는 성경을 늘가까이 하는 신앙인이요, 그는 겸손하게 배우는 신앙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여러께서도 에디오피아 재무장관 내시와 같이 예배를 사모하며, 성경을 가까이하며, 겸손하게 늘 배우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시가 읽던 성경구절이 이사야서 53장 7절과 8절 말씀입니다. 메시아(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미리 예언한 말씀입니다. 빌립이 전도하는 이때로부터 무려 700년 전에 이미 예언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700년 전에 이미 예언된 이 말씀을 하필 이때 이 사람이 읽고 있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메시아 예언입니다.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어가는 중에 특별히 이 부분에서 눈이 탁 멈췄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고민하던 시점에 빌립과 탁 만났다는 것은 얼마나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이 사람이 누구인가?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4-35절) “이 사람이 과연 누구냐?” 내시의 질문은 상당히 예리합니다. “이분이 누구냐?” 이 질문이야말로 구원으로 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냐?” 세상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빌립은 내시의 이런 좋은 질문을 받아서, 바로 이 말씀으로 시작하여 성경에 예언된 그분이 바로 예수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면 됩니다. 빌립은 어느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훈련된 사람이었다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니까 내시가 믿게 되어 반응을 보입니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6절) 이렇게 복음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빌립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이 내시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단을 한 것입니다. 물이 있으니까 바로 세례를 받겠다고 나옵니다. ‘아무도 내가 세례 받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즉 세례를 받아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표시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적극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37절에서 “없음”이라고 읽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한글성경에는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37절이 어떤 사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빌립이 말하기를 ‘당신이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내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습니다.’” 이 사람은 세례문답을 아주 확실히 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받기 전에 반드시 모든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의 믿음을 간증하고 공식적으로 신앙고백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이 사람이 국가의 최고위층이었으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를 따라온 수많은 부하들과 수행원들이 있는데 당연히 그들 대부분은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가기 싫은데 억지로 온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이런 대가를 치르는 결단입니다. 대가를 치렀으면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5. 복음의 열매
이렇게 에디오피아 내시가 내린 믿음의 결단은 자신의 조국 에디오피아에 복음이 들어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에디오피아 지역에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 같은 국가 고위층 사람이 그 앞의 오아시스에서 공개적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는 믿음의 결단을 하기만 하면 그 즉시 어디에서나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예식이 있고 질서를 위해서 목회자가 세례를 교회에서 베풀게 되어 있지만, 이때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나 어디서든지 세례를 베풀 수 있습니다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38-39절) 세례 받은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계속 기뻐하고 찬미하며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내시에게는 진정한 구원이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춤을 추며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열심히 섬겨서 한 분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면 정말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목장에서 열심히 섬겨서 몇 년 만에 세례를 받을 때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런 순간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분은 자기를 그 동안 섬겨준 분들에 대해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데 바로 우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고, 이 예수님을 믿어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런 힘과 능력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듣는 사람의 자격을 따지거나 제한을 두지 않으시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유명하지도 않고, 신문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안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일꾼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변하고, 병든 자가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 가고,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회복되고 치유된다면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빌립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보내셨듯이 우리도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내게 지금 주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미루지 마시고, 바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 나를 사용하여 주십시오.내가 못가면 보내는 선교사가 되게해 주십시오!” 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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