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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강 삼협 크루즈
일시:2017년 8월 29일 화요일~9월 2일 토요일
탐방지:중국 중경, 풍도귀성, 백제성, 삼협, 삼협댐, 의창 등
2017년 8월 29일 화요일 인천공항 출발, 중국 중경 지앙베이 국제공항 도착
* 인천 공항 출발
새벽 3시 30분에 알람을 설정해 놓고 일어났다. 그리고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인청공항으로 향했다. 어제까지 비가 오고 바람 불고 궂은 날씨였는데 오늘은 해가 뜨고 화창한 날씨다. 상쾌한 아침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6시 30분에 미팅을 한 후, 비행기표를 티켓팅했다. 아시아나 OZ353 항공 오전 8시 40분 중국 중경행 비행기다. 중경에는 그곳 시간으로 오전 11시 30분 도착이다. 3시간 50분 소요된다. 시차는 -1시간으로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우리 부부의 좌석은 30A, 30B로 창가 좌석이다. 가방을 부치지 않고 탑승수속을 밟았다. 여행지인 중국 중경의 날씨는 우리나라보다 1개월 전으로 더 더운 여름 기온이다. 그래서 한여름의 가장 가벼운 여름옷을 가져감으로 가방이 가벼워서 기내에 가져가도 된다. 보딩타임 8시 15분이다. 7시 10분 게이트에 오니 벌써 비행기가 들어와 있다. 밝은 아침 햇살이 우리의 여행을 축복하듯 화사하다.
* 중국 중경 상공
중국 중경에 가까워진다. 상공에서 본 중경은 큰 강이 흐른다는 것이 특이하다. 곳곳에 나무도 울창하여 그 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구불구불 진풍경이다. 점점 시가지가 보이고 고층 건물들이 우뚝 우뚝 솟구쳐 오른다. 이제 강은 시가지 도심을 가르며 큰 규모로 흐른다. 저 강이 장강, 양자강임을 한 눈에 보여준다. 우리가 오늘 저넉에 승선할 크루즈 배가 저 장강을 유람한다. 도심의 강은 한 줄기로 흐르다 갈라져 두 개의 강을 이룬다. 강폭도 넓고 장대한 길이의 장강 강물은 중경을 관통하고 있음을 비행기 상공에서 알게 되었다. 또한 중경은 상당히 웅장한 도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중국 중경 지앙베이 공항 신청사 도착
중국 중경 지앙베이 공항 신청사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30분이다. 조금 덥다. 이 공항은 새로 확장한 신청사로 오늘 오픈했는데 오늘 우리가 타고온 아시아나 항공이 맨 처음 들어온 것이란다. 그러니까 우리가 최초의 손님이다. 그래서 공항은 한산하고, 입국수속도 금새 마쳤다. 공항에 중경을 안내하는 대형 전광판이 있다. 중식을 하기 위해 이동한다. 중국은 세계인구의 1/7인 국가다. 인구가 13억 4천만 명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다. 중경인구는 3천 3백만 명이다. 북경, 상해, 천진 다음으로 많아 4위의 도시다. 가이드로부터 중국말 몇 가지를 배웠다. 만날 때 안녕하세요는 니하우, 헤어질 때 인사는 짜이젠, 감사하다는 셰셰, 화장실은 시소젠 등이다. 이런저런 중국에 대한 공부를 하며 사천요리 중식식당에 왔다.
* 중경 사천요리 중식식당
중경 시가지에 내리자 햇살도 강열하고 기온이 상당히 높은 무더위다. 중경의 여름 최고 기온은 53도까지 오른다. 분지도시라서 그렇다. 오늘은 36도다. 날씨는 화창하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사천요리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식탁에 여러가지 요리가 나온다. 이번 여행 중 특식으로 먹는 맛있는 요리다. 식당 건물도 우람하고 주변 건물들도 상당히 웅장하다. 이것이 중국이라는 듯 큰 규모의 건물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 중경 가릉강 다리
중식 후 삼협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시가지에서 가릉강 다리를 건너간다. 주황색 사장교가 아름답다. 가릉강은 양자강과 함께 중경 시가지를 흐르다가 중경의 동쪽에서 만난다. 가릉강의 길이는 1,119Km다. 중국 양쯔강 상원 지류로 선박 통행이 가능한 강이다. 강변에는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중경의 최고층 건물도 있다. 야경은욱 아름답단다. 우리는 오늘 두 강 사이에 있는 지역을 탐방한다. 중경은 산지의 높은 내리막 길이 많다. 자전거는 사람이 메고 가야할 만큼 가파른 길이다. 그래서 중경에 오토바이는 있어도 자전거는 없다. 산지 길이 많아 대중교통으로는 모노레일이 많다. 가릉강변에도 모노레일 정차역이 있다. 가릉강 다리를 건너면 중경 도심이다. 중경 도심은 도로가 좁아서 버스가 주차하기 어렵다. 중경은 자동차 생산 1위 도시다. 오토바이 생산 2위 도시다. 산지 도시라서 오토바이를 많이 탄다.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택시로도 사용한다. 중경의 연료는 천연가스다. 버스의 연료도 천연가스다. 유채를 많이 재배하여 유채기름을 생산한다. 중경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보고 배운다.
* 중경 삼협 박물관
중경 삼협 박물관은 이번에 우리가 4박 5일 동안 크루즈 배로 여행하는 양자강 지역의 모든 절경을 미리 보는 축소판이다. 삼협 박물관과 인민대례당은 아주 가까이 마주보며 나란히 있다. 중경시청도 도변에 있고 중경을 상징하는 나무도 시청 곁에 있다. 삼협 박물관에 들어서니 긴 계단이 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박물관 앞에는 양쪽으로 오목, 즉 검은 탄으로 변한 나무가 세워져 있다. 실내로 입장하여 전시물을 관람하였다. 이곳 삼협 박물관은 중경과 삼협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지난 2006년에 개장했다. 10개의 주제관으로 구성되어 양쯔강 문명을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양쯔강댐 공사로 수몰될 위기에 놓인 문화재 전시가 주를 이룬다. 특히 양쯔강 유역 삼국지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실제 인물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세계 최대의 댐인 삼협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는 1,087개 지역 중 752개 지역이 중경에 속하는데, 이 지역의 문화재 보호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중경을 중심으로 장강 유역의 문화재 약 15만 점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하여 2006년에 개관하였다. 삼협박물관은 2000년 9월 27일 중경중국삼협박물관(重慶中國蔘峽博物館)으로 설립 결정되었다. 삼협문화재보호의 장기적인 요구와 중경시박물관의 개조는 삼협지역과 중경지역문화재의 표본의 보호, 교육 방송, 과학연구의 공익사업기구 사회주의문화교육사업의 주요한 사업이었다. 중국삼협박물관은 전 세계가 주목한 삼협수리관개 주요공정의 산물이다. 삼협공정으로 수몰된 지역의 1087곳의 문화재 중 752곳이 중경지역이었다. 이 752곳의 문화재 중 지상의 문화재가 246곳, 지하 문화재가 506곳이었다. 전국 68개 연구소가 중경에서 발굴계획을 수립, 진귀한 문화재와 표본들을 얻었다. 1997년까지 장비묘와 석보채보호등이 진전을 이루어 냈다. 중경에서 대형 박물관의 설립은 삼협문화재 보호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중국삼협박물관 내부는 여섯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시실, 소장고, 사회교육실, 과학연구 및 행정 사무실, 종합서비스구역, 그외 휴게실로 이루어져있다. 세계 최대의 댐인 삼협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는 752개 지역이 중경에 속하는데, 이 지역의 문화재를 위해 중경을 중심으로 장강 유역의 문화재 약 15만 점의 유물을 전시하였다. 삼국지 인물 동상도 보고, 무덤 석관도 보고, 문인들의 동상도 보았다. 삼협은 경치가 좋아 문인들이 많이 왔고 그들이 남긴 시가 바위 등에 많이 새겨져 있다. 또한 삼협댐 건설로 인해 이주해야 했던 주민들이 자신이 머물던 지역의 흙을 한줌씩 쥐고 떠나는 모습이 있다. 가슴 아픈 정경이다. 모두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마주 선 인민대례당을 조망했다.
* 중경 인민대례당
인민대례당은 북경 천단고원을 모방해서 지은 건출물이다. 중경 인민대표들이 사용하는 회의실이다. 내부는 출입금지 되어잇다. 그래서 우리는 삼협 박물관 앞에서 조망하는 것으로 탐방했다. 인민대례당은 중경시 서부에 위치한 중경시의 대표적인 중심건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의 자태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선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기옷은 고대풍격을 모방한 동방건축으로 중국 현대 건축물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대례당 정문에는 화려한 채색의 비루가 있는데, 기둥 안으로 새로 걸설된 규모의 웅대한 인민광장이 들어서 있다.그곳은 고민족의 건축군으로서, 건축채색과 선의 모양이 전통 건축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삼협 박물관은 높은 위치에 있어서 인민대례당이 내려다 보인다. 넓은 광장에 우람한 풍채 앉은 건물은 둥근 지붕과 아름다운 색상의 조화로 장엄한 비경이다. 주변은 중경의 높고 낮은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중경시의 공산당 우두머리 대표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그 만큼 중국 중경의 막중한 업무가 수행되는 곳이다. 삼협 박물관에서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나오며 중경 시청도 다시 보고, 시청 곁에서 보호되고 있는 중경시의 나무인 시목도 보고, 또한 인민대례당 정문도 보았다. 잘 가꾸어진 숲 공원으로 진입문이 있다.
* 중경 시청과 시목
중경 삼협 박물관과 인민대례당을 탐방하기 위해 오가는 도로변에서 중경 시청과 중경시의 대표격인 나무로 보호받고 있는 시목을 보았다. 중국 국기가 펄릭이고 있다. 덤으로 본 것이어서 더욱 기쁘고 흐뭇했다
*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이곳은 중국에 있는 마지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 나는 상해 마당로의 임시정부청사도 가족여행으로 가 보았다. 이곳은 상해보다는 큰 규모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여 기대를 가지고 왔다. 건물은 아파트 사이에 좁은 문이 보이고 주변에 나무들이 몇 그루 서서 싱그러운 풍경이다. 입장문 앞에 오르니 '부정시림국민한대'라는 문구가 문 위에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서부터 읽어야 하는 한문식 표기다. 입장은 검색대를 거쳐야 하는 철저한 절차를 거쳐 통과했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설과 유적, 유물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감사한 절차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5년 1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마지막 청사이다.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흥구공원 의거를 계기로 일본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서 항주, 가흥,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지를 거쳐 중경에 도착하였다. 1940년 중경에 정착한 중경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하에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운영하였고 군사위원회를 두는 등 군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1년에 도시개발 계획으로 인해 청사존립의 위기가 있었지만, 국내 대기업이 힘을 모아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1995년 마침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상해의 임시정부청사에 비해 규모는 약 12배에 이르고 내부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95년 8월 11일에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상해 임시정부청사의 초라한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이곳은 임시정부청사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건물들은 계단식으로 층층이 양편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다. 제5호실까지 꽤 큰 규모의 임시정부청사다. 전에는 이 주변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지금은 주위에 고층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그리 높지 않다. 첫번째 관람한 방은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이다. 즉 역사자료를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라고 해석하면 될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대형 태극기가 벽면에 부착되었고, 그 앞에 김구 선생님의 흉상이 먼저 반긴다. 그리고 그 당시 먼 이국에서 애국활동을 하던 선열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타국에서 우리 조상님들의 애국과 충정 족적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그 방에서 나와 계단을 걸어서 오르며 여러 방들을 보았다. 외무부, 재무부, 국무위원 회의실, 문화부, 선전부, 김구 주석실 등에는 책상과 의자, 당시의 전화기, 그리고 야전침대까지 갖추어져 있다. 김구의 침실에는 아담한 침대가 놓여있고, 그가 사용하던 가구들이 조촐한 모양으로 가신 님을 기리고 있다. 연회실, 접견실 등 많은 방들이 이곳의 규모가 컸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외무부, 재무부, 국무위원 회의실 등은 당시 임시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방명록에 사인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을 밝게 이끌어 주신 애국열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017. 8. 29 한국의 시인 松花 김윤자(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라고 기록하였다.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도 사인하고, 일행들도 몇 분이 사인을 했다. 오늘 대한민국이 있음은 이토록 눈물겹게 나라를 지켜온 조상님들 덕분이며, 우리는 대를 이어 대한민국을 잘 지켜나아가야 한다. 조국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했던다. 지금 우리는 모두 애국자의 심정으로 훈훈한 가슴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에 충실하여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노력할을 다짐하며 조상님들의 숨결이 고인 소중한 터전을 떠나왔다.
* 중경 홍애동 건물 비경
홍애동은 가릉강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주변 풍경이 비경인데, 홍애동 건물은 아슬한 높이의 고풍스런 건물로 더욱 빼어난 비경이다. 홍애동은 중경의 대표적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중경의 쇼핑중심 지역인 해방비 거리에서 도보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번화가답게 도로에는 차들이 많이 왕래하고 이곳을 찾은 국내외 탐방객들로 가득 메우고 있다. 건물의 구조가 매우 독특하다. 산비탈에 기대어 만들어진 중경전통 건물 양식인 조각루 형태의 건물이다. 조각루란 건물 앞 부분이 허공에 돌출되어있는 우리나라의 한옥 처마 형태를 말한다. 홍애동은 2,300여년 전 중경에 살던 조각루 나무기둥에 나무판을 깔고 살던 곳이었다. 산간지역에 살고있는 묘족, 장족, 토가족 등 중국 소수민족들의 전통 가옥 양식인 조각루 형태를 본따 지은 것이다. 바위 절벽에 매달린 집로 인하여 홍애동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이름 만큼 홍애동 건물은 외형적으로도 수려하고 고풍스런 비경이다.
* 중경 홍애동 건물 내부의 상가와 가릉강 풍경
홍애동은 2005년에 중경시 정부에서 제정한 중경 관광발전 중심산업으로 선정되면서 2,300여년 전의 모습을 복원하여 총 12층의 건물높이로 절벽에 상가를 지어 관광, 쇼핑, 문화체험 등 다양한 관광을 할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현지인들을 12층 절벽아파트라고도 부른다. 현재는 상가, 식당등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3, 4층만 관람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가니 기념품들이 가득 채워진 상가였다. 다시 4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은 먹거리를 파는 상가들이 가득하다. 우리 부부는 상가들을 둘러보고 강이 잘 보이는 발코니로 갔다. 가릉강 다리가 보이고 중경 시가지가 잘 보인다. 가릉강은 북쪽 강이고 양자강은 남쪽 강이다. 이 지역은 두 강이 만나는 곳이며, 또한 중경의 모습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곳이다. 홍애동 건물 바로 곁에는 연못과 동상이 세워져 있고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작은 규모지만 아름다운 공원이다. 홍애동 건물 처마끝 곳곳에 홍등이 길게 늘여져 있다.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란다. 홍애동을 나와 가릉강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가릉강 가까이 가서 강과 중경 시가지를 조망했다. 강과 만난 중경 도시가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리고 도로변에서 다시 본 홍애동은 건물이 하나가 아니고 계속 이어져 뻗어나간 큰 규모의 건축물들이다. 현대풍의 시가지 건물 사이에서 고전의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자태의 건축물이다.
* 중경 전통요리 훠궈 석식 만찬
오늘 저녁식사는 특식으로 중국 전통요리인 훠궈다. 우리나라의 신선로 같은 그릇에 불을 피우고 쇠고기, 돼기고기, 양고기, 생선, 야채 등을 익혀서 먹는 샤브샤브 훠궈 요리다. 맥주와 음료까지 제공되는 푸짐한 석식 만찬이다. 모든 음료와 요리 재료가 무한 리필이다. 우리의 테이블 팀들은 매우 식사를 잘 하여서 많은 요리재료들을 요청하여 넉넉하고 배부른 식사를 하였다. 아주 맛있고 풍성한 식단으로 중국의 음식에 대한 진수를 다시금 느껴본 흐뭇한 시간이었다.
* 크루즈배 승선 중경 야경
저녁식사를 마치고 크루즈 배에 승선하기 위해 강변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오후 7시까지 승선해야 한다. 장강 즉 양자강 강변에 오니 중경 도심의 불빛 조명이 찬란한 강에 배가 정박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장강 크루즈 배는 5성급으로 양자 골드 황금 7호다. 금요일에 출하하는 배는 길이가 150m, 1700만톤, 최대 승선정원이 570명, 215캐의 캐빈이 있다. 우리가 승선한 화요일에 출항하는 배는 길이 134m, 11250톤, 최대 승선정원이 450명, 196개의 캐빈이 있다. 운항코스는 중경에서 의창까지다. 장강 크루즈 배는 이런 5성급 배 32척과 조금 작은 배 8척으로 합하여 모두 40척이다. 긴 계단을 걸어서 내려와서 배를 만나 승선했다. 우리 부부의 선실은 8403호실이다. 4층 3호실이다. 배가 저녁에 출항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내일 아침에 출항한다고 한다. 와이파이는 2층 로비와 5층 바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스마트 폰의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이곳에 와야한다. 선실 발코니에서 보니 중경의 야경도 대단하고, 장강을 왕래하는 크고 작은 배들의 밤 풍경이 여러가지 색상의 불빛 조명과 함께 비경이다. 중경의 야경이 대단히 아름답다. 중경은 3,200만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에서 가장 큰 직할시이다. 사천분지의 동남부에 있으며, 장강과 가릉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중국 서남지구의 중요한 공업기지이다. 1997년 8월에 전국 4대 직할시 중의 한 곳으로 지정되었다. 역사가 오래되고 고대 파국의 도읍지였던 중경은 교외에 자연 풍경지와 역사적 명소가 매우 많다. 중경은 산성(山城)이라 불릴정도로 산과 언덕이 많다. 중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자전거나 인력거를 이 곳에서는 볼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경은 동쪽으로 호북성, 호남성과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귀주성, 복건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북쪽은 사천성과 연결되어 있다. 중경은 쌍중 경축(雙重嘉慶: 경사가 겹친다)란 뜻으로 '충칭'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항일 전쟁 중 1938~1945년에 중국국민당 정부의 소재지였다. 면적은 스위스의 2배 정도이고 인구는 서울인구의 3배 정도다. 13개의 행정 구역으로 구성되어있고, 면적당 인구로는 세계 최대의 도시이다. 사계절이 분명하고 자원이 풍부하며 교통이 발달되어있어 많은 관광객과 비지니스맨들이 찾는 곳이다. 기후는 아열대 계절풍 기후로 연중 비교적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편이다. 겨울철에는 1월 평균기온이 7℃일 정도로 혹한은 없으나 습도로 인해 체감온도는 무척 춥게 느껴진다. 여름에는 7월 평균기온은 25℃이나 최고 온도가 44℃까지 오를 정도이다. 중국 3대 찜통 도시로 불리는 중경,무한,남경 중 하나다. 산도시(山城), 화로(火爐)도시, 그리고 안개(霧都)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역사가 오래되고 고대 파국의 도읍지였던 중경의 교외에 자연 풍경지와 역사적 명소가 매우 많다. 삼협 수상 운수선의 시발점이며 수많은 삼협 유람선의 시발 및 종착 항구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1876년 개항되었고,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외국과의 통상항구로 개방되었다. 또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동굴, 온천, 협곡 등이 많다. 반도 모양으로 튀어나온 바위산을 깎아 세운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국민정부의 수도가 되기도 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로부터 옮겨가 있기도 했다. 충칭에 근대적 공업이 들어선 것은 1938~45년이다. 철강 생산, 석탄 광업, 기계·농기구·군수품·트럭 제조, 화학약품·비료 생산 등의 공장이 있다. 면직물·견직물·종이 생산 등 경공업이 더 우세하며, 동부지역의 교역과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국민정부의 수도가 되기도 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로부터 옮겨가 있기도 했다. 충칭 시 자체는 구시가지로 예전에는 성벽과 성문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현재는 이름만이 남아 있는 시가지와 그 인근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범위한 충칭 대도시권은 12개 현과 수많은 소도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충칭은 온난다습한 기후이다. 친링 산맥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어 온난한 기후가 유지된다. 겨울에는 거의 혹한이 없고 결빙되지 않으며, 여름은 무덥고 습하다. 충칭의 대기오염은 중국 내 어떤 도시보다도 심각하다. 수많은 공업도시들과 교외 마을들이 생겨나 시의 범위를 넓히고 구시가지의 인구밀도를 완화시켰다. 현재는 현대적 아파트 건물 및 상가들과 전통적인 가옥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충칭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충칭 도서관과 충칭 시립박물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이 도시의 주요교통수단은 3륜택시·자전거·버스이다. 가공삭도가 가파른 산을 타고 놓여 있다. 또한 항구는 운송량이 많은 수운교통을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많은 철도 노선과 광범위한 도로망이 충칭을 다른 도시 및 성들과 이어주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중경에 대하여 그리고 삼협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갈 것이다.
2017년 8월 30일 수요일 풍도귀성(풍도현 귀신성), 봉연삼국 야외대형 공연관람
* 크루즈배 5층 카페 앞 갑판에서 본 풍경
오늘은 장강 크루즈 여행의 첫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에 대한 준비를 하며 설레는 마음이다. 오전 6시 30분에 모닝콜이 울렸다. 조식 전에 5층 로비에서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티타임이 있는데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남편 혼자 다녀왔다. 그리고 함께 6층 조식 뷔페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조식 타임인 오전 7시 30분이 아직 되지 않아서 오픈하지 않아 잠시 5층 카페로 갔다. 그곳은 와이파이가 실행되기 때문에 스마트 폰으로 카톡방과 메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카페 앞에는 배의 맨 앞부분 갑판이어서 밖으로 나가 풍경을 조망했다. 푸른 산과 산 사이의 장강을 따라 배가 나아간다. 강변에는 마을이 있고, 공장으로 보이는 건물들과 높은 굴뚝이 솟구쳐 오르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침 일출과 함께 비경이다. 바다의 크루즈 여행에서는 주로 망망대해가 진풍경인데, 장강 크루즈는 주변의 자연과 마을 풍경이 색다른 진풍경이다.
* 크루즈배 뒤 갑판에서 본 풍경
크루즈 배의 6층 후미 뷔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갑판에 나가보았다. 크루즈 배 후미에는 중국 국기가 펄럭이고, 그 바로 곁 갑판에는 아담한 수영장이 있다. 아동용으로 보인다. 강변 산자락에는 높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 어느 산간 도시의 마을을 지나가는 듯하다. 장강에는 크로 작은 배들이 주로 짐을 싣고 운반한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 크루즈배 4층 선실 발코니에서 본 장강 풍경
장강 크루즈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 중국 역사와 함께 해온 양자강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다. 중국 최고의 절경이라고 하는 장강 삼협과 삼국지의 유적지들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우리가 승선한 양쯔 골드 크루즈 (Yangtze Gold Cruises) 배는 장강삼협 크루즈 배 중에서 가장 시설이 좋고 최신식 배다다. 5성급 호텔 수준의 숙박 시설, 맛있는 식사가 함께 제공된다. 배를 타고 편안하게 쉬면서 삼국지 역사와 자연경관을 몸소 느끼는 크루즈로 장강 중에서 640Km의 삼협 구간을 자연경관과 함께 유적지들을 돌아보는 여정이다. 조식 후 약간의 여유가 있어 우리 부부의 선실인 4층 발코니에 나가보았다. 발코니에는 대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두 개 놓여있다. 장강, 우리가 말하는 양자강이 배를 이끌며 많은 풍경을 선사한다. 강물은 누렇다. 긴 길이의 강을 흐르면서 그렇게 된 것이란다. 가장 큰 특징은 강을 따라 여러가지의 물건을 실어나르는 크고 작은 배들이 쉼없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장강은 중국에서는 가장 긴 강이고, 세계에서는 세번째로 긴 강이다. 전체 길이가 6,300km로 중국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상해를 거쳐 바다로 흘러간다. 일찍이 중국에서 하(河)라는 글자는 황하[黄河]를 가리키고, 강(江)이라는 글자는 장강[長江]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그래서 장강의 남쪽을 강남이라고 부르고, 남부의 동해안 지역을 강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장강의 상류를 진사강, 민강 등이 합류하는 그 아래 지역을 천강, 옛 형주 지역을 지나는 장강의 중류지역을 형강, 그리고 그 하구 지역을 양자강[揚子江]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서양 선교사들이 양쯔강이란 명칭을 사용한 뒤, 오늘날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양쯔강이 장강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장강의 한 마디를 크루즈 배로 유람하며 중국에 대하여, 삼협에 대하여, 삼국지 역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갈 것이다.
* 크루즈배 5층 갑판에서 본 장강 풍경
오늘 오전은 크루즈 배가 계속 이동하는 관계로 자유시간이다. 5층 갑판에서는 장강의 정면을 볼 수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장강과 그 주변을 조망한다. 장강의 곳곳에는 다리가 있다. 지금 지나가는 다리는 매우 길고 아름다운 구조의 조형이다. 강바람이 머리칼을 흩날리며 긴 여운으로 지나간다. 장강의 물빛은 누렇다. 긴 길이를 지나면 저런 물빛이 된 것이다. 산과 강, 다리까지 아름다운 조화다.
* 크루즈배에서 본 유람선 영화
크루즈 배 3층 영화관에서 무료영화를 관람하였다. '유람선 사랑'이라는 제목인데 중국의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자막을 빛낸다. 그 남자의 아내와 결별 후 유람선을 승선했는데, 여자 승무원과 잠시 흔들리는 사랑을 하다가 여자 승무원의 도움으로 아내와 다시 사랑을 잇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중국어 영화로 말은 안 통해도 장면과 배우의 연기로 잘 해석되며 좋은 주제의 인상깊은 영화였다.
* 크루즈배에서 본 장강 선박 풍경
장강은 그 자체의 풍경도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장강을 따라 이동하는 배의 풍경 또한 진풍경이다. 크고 작은 배들이 물건을 실어나른다. 긴 화물선에 모래를 수북하게 싣고 우리의 대형 크루즈 선뱍 곁은 지나간다. 장강을 왕래하는 배들은 모두 저속운행이다. 우리의 배도 그렇다. 그래서 매우 안정적인 풍경으로 잘 감상할 수 있어 좋다.
* 크루즈배 6층 중앙 뷔페 중식식당
우리 일행이 식사를 하는 곳은 6층의 뷔페식당이다. 이곳은 VIP 식당으로 좀더 높은 가격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식당은 중앙통로의 계단으로 이어진다. 2층에도 대부분의 승객이 가는 큰 뷔페식당이 있다. 테이블은 지정석이다. 장강이 식당 곁에서 흐르고 산이 지나가며 고운 풍경을 선사한다. 풍성한 메뉴로 맛있는 식사를 하는 행복한 공간이다.
* 풍도 부두 하선
원래 일정은 오전에 풍도귀성을 오후에 석보채 탐방이었는데, 중경에서 배가 늦게 출항하여서 중식 후 풍도귀성만 탐방한다. 12시 55분까지 2층 로비에 모여서 하선한다. 배가 강 가운데 정박하여서 임시 만든 강 위의 통로를 따라 육지로 올라간다. 장강 강변에 아득한 100여 개의 계단이 놓여 있다. 긴 계단을 따라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 풍도 귀성 입구
풍도 귀성 입구에서 풍도마을을 조망했다. 이곳은 양자강이 삼협댐을 건설할 때 수몰 위기로 주민들을 마련해준 마을이다. 13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삼협댐 건설로 60m의 수쉬가 상승했다. 귀성의 건물은 기와, 벽돌 한 장마다 번호를 매겨서 그대로 복원하였다. 웅장한 풍도 귀성 건물 입구에 백무제의 동상이 서 있다. 백무제 동상은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 주는 귀신이다. 장강삼협 유람선이 처음으로 정박하는곳이다. 배 선착장에서 부터 따라온 상인들이 많다. 날씨가 상당히 덥다. 상인들은 주로 부채와 모자를 판다. 건물 안으로 입장하였다. 이곳을 통과하여 풍도 귀성까지 400개의 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가마꾼도 있다. 가마는 280개 계단까지만 올라가는데 중국돈으로 800원, 한화로 16000원이다. 중국동 1위안은 한화의 200배다. 그래서 중국동 수치에 200을 곱하면 한국돈으로 환산된다. 본격적으로 귀성을 오르는 숲길로 접어 들었다. 숲 속 긴 계단을 따라 더위를 이기며 힘겹게 올라간다. 귀한 명소를 거저로 볼 수 없다는 메시지로 받으며 천천히 한 걸음씩 올라갔다.
* 풍도 귀성
숲 속 긴 계단을 걸어서 오르니 풍도 귀성의 건물이 있다. 죽어서는 풍도 산다는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아주 크고 우람하고 깊은 뜻이 담긴 중국의 유적지다. 염라대왕을 만나고, 구신이 붙지 않도록 '흥하'하며 외치면서 문지방을 넘어 갔다. 건강을 빌며 넘는 문(좌), 재물을 빌며 넘는 문(우), 생시의 죄를 심판받는 문(중앙)이 잇는 곳에서 마음대로 선택하여 넘어가라는데, 나는 중앙의 문을 택했다. 그 동안 잘 살았으면 잘 넘지만, 그 동안 잘못 살았으면 발목을 붙잡아 넘어진다는 문이다. 나는 두 귀신이 칼을 들고 지키는 중앙의 심판의 안 넘어지고 잘 넘었다. 물론 재미난 이야기를 붙였을 뿐 전혀 사실의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아주 익살스런 통과문이다. 이곳 풍도 귀성은 모든 것이 귀신과 연관된 건물이고, 글이고, 이야기들이다. 유교와 도교문화를 한 몸에 모은 민속문화예술의 보고이다. 전해오는 말로 이 곳은 사람이 죽은 뒤 영혼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중국 신곡(神曲)의 고향으로 불린다. '이승에서 세상을 웃고 영혼은 풍도에 내려않네'라는 이태백의 시가 귀신의 도시 풍도를 더 유명하게 했다. 그 후 명∙청 때 소설의 과장을 거쳐 풍도는 더욱 신비한 곳이 됐다. 사람이 살았을때 지은 죄가 있으면 죽은 후에 죄값을 치른다는 교훈을 주는 사찰이다. 가이드는 서늘한 유모어로 우리를 웃기며, 긴장시키며,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걷는다. 귀신은 그림자가 없고, 신발이 없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의 신발을 빼앗으려 한단다. 그래서 그림자가 없는 사람, 자꾸 넘어지는 사람을 만나면 귀신을 만난 거라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계단이 끝나고 산 옆구리를 돌아 계속 오른다. 남편이 175Kg의 검은 반원 모양의 돌을 볼록한 돌에 올려 놓으면 바람을 안 피운 거라는, 그런 시험대의 공간도 있다. 어떤 중국인 남자가 아내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올려놓는다. 산 정상에는 도교와 불교 사원이 모여 있다. '기'라는 동물이 있는데 뿔이 2개, 머리가 1개, 엉덩이 1개, 다리 1개인 상상의 동물이다. 여러 가지 귀신에 대한 속설이 서려 있는 성이다.
* 풍도 귀성 정상에서 본 풍경
풍도 귀성 정상에 오르니 양자강 너머로 풍도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풍도는 삼협댐 건설로 이주해야되는 주민들을 위해 다시 조성해준 도시다. 산정에는 노란 색상의 동상이 오롯하게 앉아있다.
* 풍도 귀성 망향대 주변
망향대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형상으로 지어져 있다. 망향대는 살아서 소원을 못 빈 자가 올라가서 소원을 비는 상상의 건물이다. 그 곁에는 염라대왕을 만나는 사원이 있다. 그 앞에는 볼록한 돌이 있는데 그 돌에 발을 한쪽만 올리고 설 수 있으면 잘 살아온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죄를 지은 것이라하여 모두들 발을 올려 보았지만 불가능하다. 이것도 웃자고 해 놓은 것이다. 이곳은 모든 건물도, 모든 설치물도 사후 세계를 조성해 놓은 것들이어서 그렇다. 풍도 귀성은 재미있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한 체험을 많이 하며 죄 짓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유적지였다.
* 풍도 귀성 하산길에 본 풍경
산길을 따라 하산하는데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오늘 풍도의 날씨는 구름이 약간 있고 24도~34도의 기온이다. 강 건너 풍도 시가지가 보인다. 하산하여 산을 돌아보니 산정에 노란 머리의 커다란 동상이 오롯하다. 주변에는 상가도 아름답다.
* 풍도부두 크루즈배 재승선
다시 승선하기 위해 부두로 이동한다.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우는 모자를 하나 샀다. 중국 돈으로 10월, 한화로 2천원 매우 싼 가격이다. 모자에 얹은 하얀색 꽃이 참 예쁘다. 부채도 파는데 더위로 인하여 모자와 부채를 산 사람이 많다. 긴계단을 걸어내려가서 장강 가운데 정박하여 우리를 기다리는 배에 승선하였다.
* 크루즈배에서 본 장강변 풍도 풍경
크루즈 배는 풍도부두를 출항하여 장강을 다시 유람한다. 장강은 여름에는 홍수로 인한 피해 감소를 위해 수문을 열러 높이가 145m이고, 겨울에는 수문을 막아 높이가 175m다. 30m*34m 폭의 엄청난 물이 중국 동해로, 한국으로는 서해로 흘러간다. 장강 물 전체의 반 정도에 해당한다. 지금 지나는 곳은 강폭이 상당히 넓다. 여전히 물은 누렇고, 배들은 물건을 실어나른다. 그 강변에 우뚝 우뚝 솟구쳐 오르는 고층 아파들이 즐비하다. 모두 진풍경이다.
* 선장 환영 파티
선장 환영파티가 5층 카페에서 있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나와서 인사하고 샴페인, 와인, 과자, 과일 등 제공해 주며 환영한다. 선장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는 시간을 가졌다. 승무원들의 공연도 있었다. 장강 크루즈는 바다만큼 웅장하진 않지만 비슷하다. 승무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영어를 하기도 하고, 한국말을 하는 승우원도 있다. 승무원들이 20대 정도의 젊은 층이다. 식당도 우리 한국팀 30명은 6층 VIP 뷔페식당이다. 우리팀과 유럽팀 부부 한쌍, 중국인 한 가족이 전부다. 장강이 보이고 중국 풍경이 보이는 멋진 식당에서 최고의 메뉴와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먹는다. 오늘 바다의 크루즈 여행을 축소해 놓은 듯한 선장과 승무원들의 정성스런 환영 파티에 고맙고 감사했다.
* 봉연삼국 삼국지 공연관람 가는 밤길
저녁에는 석식 후 봉연삼국 연극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하선하여 버스로 이동한다. 원래는 석보채 탐방인데 시간 관계로 일정을 바꾸었다. 오히려 이 공연이 더 낫다고 한다. 기항지 선택관광 비용이 중화로 석보채 탐방도 290원, 봉연삼국도 290원 같다. 모든 일정이나 출발 시간 등은 안전을 위해 날씨, 강의 환경 그리고 항해관리의 허가에 따라 변경 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밤길을 달린다. 40분 정도 가야 한다. '충忠'이라는 도시의 마을을 지나간다. 충성하는 자가 많이 배출되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란다. 시골 산길로 버스가 간다. 오토바이도 보이고,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만든 택시 등이 많이 지나간다. 중국의 진풍경을 보며 간다. 공연장이 가까워지는지 거리에 봉연삼국 팻말이 많다. 이 마을에서는 1년 내내 이것을 공연한단다. 이곳에 오기 위해 밤길을 달리던 시간들, 중국의 한 도막을 그대로 보던 풍경들은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봉연삼국 삼국지 공연 관람
야외 대형 극장에서 대형쇼 <봉연삼국>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입장하였다. 수신기를 착용하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여 왔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의 평생사적으로 이저지는 줄거리의 공연이다. <봉연삼국>에서 봉은 위로 오른다는 뜻이고, 연은 연기, 삼국은 삼국지의 세 나라를 뜻한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물 위에서 공연한다. 말이 많이 등장한다. 공연이 모두 관우 이야기, 삼국지 이야기다. 무대가 잘 보이도록 드넓은 객석이 회전한다. 엄청난 일이다. 공중에 매단 줄에서 복숭아 꽃이 아주 많이 줄줄이 하강한다. 여자도 함께 하강한다. 복숭아 꽃은 도원결의를 상징한다. 그렇게 도원결의에서부터 연극은 시작되고 있다. 유비, 장비, 관우가 말을 타고 등장한다. 초선이 반달 모양의 기구를 타고 공중에서 하강한다. 유비, 장비도 등장한다. 70분을 공연한다. 엄청난 무대에 엄청난 인물이 등장한다. 조명, 물, 연기 등 대단한 구성이다. 감탄을 연발시킨다. 우리 부부는 앞쪽에 앉아서 관람하였다. 물이 솟구쳐 올라 객석으로 날려 오기도 한다. 시원하다. 관람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여 크루즈 배로 귀환하여 승선하였다.
* 봉연삼국 공연 관람 후 돌아오며 본 장강다리 야경
봉연삼국을 관람하고 배로 돌아오는 길에 본 장강다리의 야경은 장관이다. 붉은 빛 조명과 우람한 규모가 이것이 중국이라고 말하듯 웅장하고 찬란하다. 우리의 버스는 이 다리를 건너서 부두로 간다.
2017년 8월 31일 목요일 백제성, 구당협, 소삼협, 소소삼협, 삼협댐선박갑문
* 크루즈배에서 본 장강변 마을 풍경
새벽 5시 50분에 모닝콜이 울렸다. 5층 카페에서 무료커피와 티 제공한다. 조식은 6층 뷔페식당에서 먹는다. 오늘 기온은 23~29도다. 구름이 끼는 날씨다. 높은 산자라가 아래, 장강변에 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 백제성 장강의 섬 원경
조식 후 하선하여 백제성 관광한다. 오전 7시 45분에 2층 로비에 모여서 하선하였다. 백제성은 양자강 안에 있는 섬이다. 섬과 연결된 다리로 진입하기 전에 백제성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 백제성으로 가는 장강 다리
장강 다리를 건너가니 다리 끝에 제갈량 동상이 있다. 백제성은 공손술과 연관 되었지만 후에 유비와 연관이 깊어졌다. 삼국지 인물 유적이 많다.
* 백제성 성문
백제성으로 오르는 산길의 계단이 360개다. 가마가 있는데 편도 중화로 80원, 한화로 16000원이다. 280개 계단까지만 오른다. 수신기를 착용하고 편한 신발로 걸어서 오른다. 백제성은 구당협 어구의 북안에 위치한 유적지이다. 백제성의 역사는 1700여 년 전의 동한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현존하는 백제묘의 주건물은 명∙청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백제성을 지세가 험악하고 역대 군사들이 서로 쟁탃하던 곳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유비 또한 이곳에서 임종을 맞이하며 제갈량에게 자신의 후사를 부탁했다고 전해진다.군웅의 한 사람이던 공손 술이 이곳에 왔을 때, 우물 속에서 백룡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한의 명운을 자신이 받게 되었다고 여겨 스스로를 백제, 그 성을 백제성이라 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백제성은 유비가 죽은 성으로 더 유명하다. 삼국시대 때 장비가 그의 부하인 범강과 장달에서 살해되어 그의 목을 가지고 오나라로 달아나자 유비는 형주의 탈환과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손권을 공격하였다. 이릉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백제성에서 유비가 '유비탁고'를 마친 후 죽는다. 제갈공명에게 후사를 부탁하면서 ' 자식이 무능하면 정권까지 넘봐도 좋다' 까지 한 유비탁고는 결국 제갈공명을 계속된 충성의 길로 이끌었고 유비와 제갈량, 두 사람의 이름이 덕의 상징으로 남았다. 역시 이곳도 삼국지와 깊은 연관이 있는 유적지다.
* 백제성에서 본 소삼협
360개의 긴 계단을 올라서 백제성에 올라오니 곁에 장강이 흐른다. '기성'이라는 한자의 입석돌이 있다. '기'는 복을 주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 돌비 곁에서 소삼협의 비경을 조망했다. 웅장한 산절벽이 치솟아 오르고 장강이 아래에서 묵묵히 흐르고 있다. 비경이다.
* 백제성 내경
다시 백제성 성문을 돌아와서 안으로 입장하여 많은 건물을 탐방했다. '시인의 성'이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많은 시인들이 이곳에 와서 시를 남겨서 그렇다. 촉한의 유비가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유명을 달리할때, 제갈량에게 자신의 후사를 부탁했던 고사로 유명한 곳. 장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BC 1세기경에 군웅의 한 사람이던 공손 술이 이 곳에 왔을 때, 우물 속에서 백룡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한나라의 명운을 자신이 받게 되었다고 하여 자기를 백제, 그 성을 백제성이라 이름 붙였다. 삼국시대인 3세기에 촉한의 소열제가 이 곳의 견고한 지세를 이용하여 오나라군의 침입을 막고 물리친 후 영안이라 개명하였다. 이 곳에는 유비, 제갈량 등을 제사지낸 묘당이 있고, 이백, 두보도 백제성을 읊은 시를 지어, 역사와 전설로 가득찬 성으로서 유명하다. 삼국시대 촉한의 소열제 유비는 이곳의 견고한 지세를 이용하여, 오군의 침입을 물리친 후 영안이라 개명하였으며, 이후 유비가 오에 패하여 도망가던 중 제갈공명에게 아들 유선을 부탁하고 숨을 거둔 장소이며, 성 안에는 유비 제갈량 등을 제사지낸 묘당과 관성정이 남아있다. 건물 곳곳을 돌아보며 백제성의 유적을 관찰해 보았다. 고픙스런 옛 면모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 백제성을 노래한 시인들의 글
역대 유명한 시인인 이백, 두보, 백거이, 유우석 등이 많은 시를 남겨 역사와 전설로 가득찬 곳이다. 이런 연유로 백제성은 '시성'이라는 또다른 칭호를 갖고 있다. 이곳은 한 벽면을 시비로 가득 채워져 있다. 대단한 풍경이다.
* 백제성의 삼협 바위절벽에서 나온 무덤관
전시관에 입장하여 유물들을 보았다. 삼협댐을 건설하며 발굴된 유적이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삼협 바위절벽에서 나온 무덤관이다. 바위 사이 좁은 공간에 아슬하게 올려놓은 무덤관이 그대로 재현되어 전시해 놓았다. 바라보는 눈조차 아슬하다.
* 백제성 독특한 뿌리의 나무
백제성에서 기이한 나무를 본다. 나무의 밑동에 갈라져 비틀어지며 오르는 뿌리가 진풍경이다. 한 그루가 아니고 한 군락를 이루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다.
* 백제성에서 하산하며 본 장강삼협
백제성에서 하산하며 장강과 소삼협의 풍경을 보았다. 성이 장강변 높은 곳에 둘러서 있다. 바위절벽 산 사이로 장강은 구불어져 흐른다. 절경이다.
* 백제성 고성과 시인들 동상
백제성은 그야말로 곳곳에 시인들의 족적이 남아있는 유적지다. 하산한 끝에서 우람한 건물을 만나고, 그 주변에 두보를 비롯한 시성들의 동상이 생시의 생생한 동작으로 세워져 있다. 우리 부부는 문인 부부다. 나는 시인이고, 남편은 수필가다. 그래서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이고, 감동 또한 크다. 우리도 많은 글을 남겨 후세에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백제성 제갈량 동상과 출사표
백제성에서 하산하여 양자강 다리를 건너기 전 제갈량의 출사표를 보았다. 제갈량의 커다란 동상과 출사표가 웅장한 규모로 세워져 있다. 출사표는 출병하면서 올리는 표문이다. 제갈량(181년 ~ 234년)은 동한 말 낭야군 양도현 출신으로 촉의 승상을 지냈다. 자는 공명이고 시호는 충무이다. 일찍이 형주의 융중에서 난리를 피해 있을 때 ‘와룡(臥龍)’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유비를 도와 삼국 정립을 이루었고, 유비가 죽자 후주 유선을 보좌하면서 여러 차례 위를 공격하였다. 위장 사마의와 대치하다가 오장원의 군중에서 병사하였다. 출사표의 작품내용은 갈량이 촉한 건흥5년(227년)에 위를 정벌하려고 출병하면서 후주 유선에게 올린 글이다. 이 글은 ≪삼국지, 촉지, 갈량전≫에 보이는데, 편명이 없던 것을 소통이 ≪문선≫을 편찬하면서 붙인 것이다. <출사표(出師表)>는 원래 전후 양편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전출사표>를 가리킨다. 문장이 유창하고 뜻이 간절하여 역대 산문 가운데 명문으로 꼽힌다.
출사표의 내용은 '선제께서 왕업을 닦으신 것이 아직 반도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중도에 돌아가시고,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익주는 피폐하니, 이는 진실로 위급하여 존망이 걸린 때입니다. 그러나 모시고 지키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을리 하지 않고, 충성스런 뜻을 지닌 군사들이 밖에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선제의 특별한 대우를 추모하여 폐하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니, 진실로 성스러운 들으심을 열고 펴시어 선제의 남기신 덕을 빛내며 뜻있는 선비들의 사기를 키워주셔야 하며, 함부로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시고 이끌어 비유하시는 것이 도리를 잃어 충간하는 길을 막지 않아야 합니다. 궁중과 부중이 모두 한 몸이니, 상벌과 포폄을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간사한 짓을 하고 법을 어기는 자와 충성스럽고 착한 일을 하는 자가 있거든 마땅히 담당자에게 맡겨 그 상벌을 논의하여 폐하의 공평하고 분명한 다스림을 밝게 하실 것이며, 치우치고 사사로이 하여 안과 밖으로 법을 다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시중과 시랑인 곽유지, 비의, 동윤 등은 모두가 선량하고 진실하여 생각이 충성스럽고 순수합니다. 이 때문에 선제께서 가려뽑아 폐하에게 남겨주셨으니, 제가 생각건대 궁중의 일은 일이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그들에게 자문하신 뒤에 시행하신다면 반드시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유익함을 증가시키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실이 착하고 공정하며 군대의 일에 밝게 통하여 지난날에 써보시고 선제께서 잘한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여 상총을 천거하여 도독으로 삼았으니, 제가 생각건대 군중의 일은 일이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 자문하신다면 반드시 군대를 화목하게 하고 뛰어난 자나 부족한 자가 제자리를 얻을 것입니다.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 한 것이 전한이 융성했던 이유이고, 소인을 가까이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 한 것이 후한이 기울어져 무너진 이유입니다. 선제께서 생존해 계실 때 매번 신(臣)과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일찍이 환제와 영제에 대하여 탄식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시중상서 진진과 장사 장예와 참군 장완은 모두 곧고 성실하여 절의에 목숨 바칠 신하들이니, 원컨대 폐하께서 그들을 가까이 하고 믿으신다면 한나라 왕실의 융성을 날짜를 세면서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본래 베옷을 입고 남양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난세에 그저 목숨이나 보존하면서 제후들에게 명성이나 영달을 구하지 않았는데, 선제께서 신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직접 몸을 굽히시어 초가집으로 세 번이나 신을 찾아주시고 신에게 당시의 일을 물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온힘을 다하겠다고 하였는데, 뒤에 기울고 엎어지는 때를 만나 패전의 즈음에 임무를 맡고 위태롭고 어려운 가운데 명을 받든 것이 이후로 21년이 되었습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어 돌아가실 때에 신에게 대사 맡기시니, 명을 받은 이래로 밤낮으로 근심하고 탄식하여 부탁하신 것이 효과가 나지 않아 선제의 밝음을 손상시킬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5월에 노수를 건너 깊이 불모지에 쳐들어갔는데, 이제 남방은 평정되었고 무기와 갑옷도 충분하니, 장차 삼군을 독려하고 인솔하여 북쪽으로 중원을 평정하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노둔한 재주를 다하여 간악하고 흉악한 자들을 없애고 한나라 왕실을 회복하여 옛 도읍으로 돌아가는 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에게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일을 헤아려 덜고 더하며 충성의 말씀을 극진히 올리는 일에 있어서는 곽유지, 비의, 동윤 등의 책임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고 왕실을 회복하는 일을 맡기시어 공을 이루지 못하거든 신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전에 고하시고, 곽유지, 비의, 동윤 등의 허물을 책하시어 그 태만함을 밝히십시오. 폐하께서도 또한 스스로 계획하시어 올바른 길을 물으시고 바른 말을 살펴 받아들여 선제의 유언을 잘 따르신다면 신은 은혜를 입은 감격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멀리 떠나게 되어 표문(表文)을 대하고 눈물이 흘러내려 아뢸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참으로 기긴 장문의 글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앞뒤에 빼곡이 새긴 출사표의 글들이 현재도 빛나고 있다. 비가 흩뿌린다. 만고풍상의 세월을 말하듯 바람도 분다. 우리는 삼국지의 애절하고도 출중한 현장을 탐방하고 떠난다. 다시금 삼국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대목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 백제성에서 나오며 본 장강 다리
백제성에 갈 때도 자나간 다리다. 아래로는 장강이 흐르고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다리가. 무엇보도 장강 안에 백제성이 놓여 있음이 비경이다. 다리 난간에는 삼국지 관련의 글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잇다.
* 구당협 비경
크루즈 배에 재승선하여 제1협인 구당협을 선내 관광한다. 장강삼협의 제1협으로 총 길이 8Km 구간의 협곡으로 삼협 중 제일 짧고 좁으며 험하기로 유명하다. 삼협의 막내라 불리지만, 삼협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험준한 협곡이다. 5층 갑판에서 수신기를 착용하고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조망한다. 서쪽 봉절의 백제성에서 동쪽 무산현의 대계진에 이르는 총 길이 8㎞의 협곡으로 삼협 중 제일 짧고 좁아 삼협의 막내라 불리지맊 삼협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험준한 협곡이다. 구당협은 명승고적과 문화유산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구당협의 북안 고봉은 적갑산, 남안 고봉은 백염산으로 마주 선 두 산 사이를 세차게 흐르는 강물윾 장강삼협의 상징인 천하 제1문인 „기문‟을 형성했다. 이 풍경은 중국 위안화 지폐 중 10위안에 실려있다. 서쪽 봉절의 백제성에서 동쪽 무산현의 대계진에 이르는 총 길이 8km의 협곡으로 삼협 중 제일 짧고 좁아 삼협의 막내라 불리지만, 삼협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험준한 협곡이다. 중국 화폐 10위안 뒤면에 그려져 있는 풍경도 구당협이다. 높이 솟구쳐 오른 바위절벽산이 장강을 따라 우람하게 늘어 서서 비경을 선사한다. 바람도, 강물도, 산도 덩실덩실 내게로 온다.
* 소삼협으로 가는 유람선에서 본 강변 풍경
중식 후 하선하여 300인승 작은 배로 바꿔 타고 소삼협 관광을 하기 위해 이동한다. 배가 정박한 부두 주변의 마을이 장강변에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그리고 부두 곳곳에 소삼협에 대한 안내글과 사진이 설치되어 있다. 가이드는 수신기로 여러가지를 설명해준다. 이제 소삼협에 서서히 진입한다.
* 소삼협 다리 통과 진입
중식 후 하선하여 300인승 작은 배로 바꿔 타고 소삼협 관광을 하기 위해 이동한다. 배가 정박한 부두 주변의 마을이 장강변에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그리고 부두 곳곳에 소삼협에 대한 안내글과 사진이 설치되어 있다. 가이드는 수신기로 여러가지를 설명해준다. 이제 소삼협에 서서히 진입한다.
* 소삼협을 지나는 고속도로 다리
소삼협에 진입하여 들어가는데 다리가 또 하나 보인다. 중경에서 상해로 가는 고속도로 다리다. 소삼협의 협곡을 산과 산을 이어 지나가는 아주 아름다운 조형의 다리다. 저 다리로 인하여 많은 시간을 단축하였단다. 웅장한 다리를 통과하여 배는 점점 소삼협 깊은 협곡으로 간다.
* 소삼협 비경
배가 지나가는 소삼협 협곡마다 기막힌 바위 비경이 이어진다. 비도 안 오고, 구름만 끼어 서늘하다. 장강삼협의 지류로서 마치 삼협의 경치를 축소시켜 놓은 듯 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문협, 파무협, 적취협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 길이가 50㎞이다. 협곡지대는 산이 높고 골이 좁으며, 물 또한 맑다. 배를 타고 자연과 야생동물을 감상할 수 있는 중국의 명소다. 산, 여울, 강물, 바위 급류의 풍광이 하나되어 예부터 삼협이 아니지만 삼협보다 낫다고 칭송 받고 있다. 가파른 절벽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주민들이 약초를 캐러 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가끔씩 수위표식도 있다. 그리고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는 곳에 팻말을 세워 놓았다. 실제로 배가 지나갈 때 원숭이가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놀라운 것은 아득한 절벽산 바위에 구멍을 내어 무덤관을 넣어둔 것이다. 산 옆구리 바위를 갈라 수평으로 길을 내어 무덤관에 이르도록 연결시킨 모습도 보인다. 바라보는 것만도 아찔한데 저곳을 어찌 왕래하였을까 놀랍다. 장강의 지류인 강폭이 넓은 곳에 이르자,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유람선이 오가는 모습도 보인다. 물고기가 튀어 오르기도 한다. 소삼협은 그렇게 눈과 가슴을 소슬한 비경으로 채우며 경이로운 풍광을 선사하고 있다.
* 소소삼협 비경
소삼협 유람을 1시간 30분 동안 하고 40인승 더 작은 배로 바꿔 타고 소소삼협 관광하기 위해 이동한다. 왕복 40분 소요된다. 수신기는 여전히 착용해야 한다. 비가 온다. 토가족 남자가 배를 이끌고 소소삼협으로 들어간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더니 더욱 비에 젖는다. 그러나 좋다. 토가족 모자를 쓰고, 대나무 장대를 잡고 토가족이 되어 기념사진도 찍었다. 선원인 토가족 남자는 노래 3곡을 불러준다. 열쇠고리를 몇 개 팔았는데 그 보답이란다. 소소삼협의 신녀계곡은 장강 남안에 자리잡고 있다. 발원지는 중경 무산현의 관도구이다. 하유 하천구간이 험준한 지리환경 제약 때문에 지금까지 원시적인 자연경치를 보존하고 있다. 배는 목조선으로 아주 작아서 마주 앉아 가는데 창문이 없어 천막을 내려 비를 가리다가, 거두어 올리다가를 반복하며 간다. 토가족 선원은 최선을 다하여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며 기쁨을 선사한다. 산과 협곡의 강물이 참으로 아름다운 절경이다.
* 다시 소삼협을 자나는 유람선
다시 처음에 타고 왔던 배의 승선장으로 와서 300인승 배를 바꿔 탔다. 다시 온 물길을 따라 크루즈 배가 있는 부두로 이동한다. 비가 온다. 모두 잘 보고, 돌아가는 길에 비가 와서 우린 축복을 받았다. 약간 서늘한 날씨다.
* 크루즈 배 재승선
소삼협과 소소삼협을 탐방하고 크루즈 배에 재승선 했다. 몸이 피곤하지만 행복한 여정이다.
* 무협 비경
회선 후 크루즈 배에 재승선하여 제2 무협을 선내관광으로 조망한다. 5층 갑판에서 수신기를 착용하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조망한다. 서쪽에 있는 무산현의 대녕하 어구에서 동쪽에 위치한 호북성 파동현의 관도 어구에 이르는 46km 길이의 협곡이다. 무협은은 대협이라고도 부르는데 깊고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협곡구역이 기봉, 기석, 절벽으로 이어져 한 폭의 구불구불한 화랑을 방불케 한다. 삼협 중 가장 길고 정연한 협곡이며, 깊고 그윽한 경치로 유명하다. 골이 깊고 굽이가 많아 구불구불핚한다가 안개 구름이 휘돌아 변화가 무궁하다. 무협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산 12봉인데, 12봉은 장강의 남북쪽에 각각 6봉씩 있다. 그야말로 바위를 화폭에 명화로 그려낸 듯하다. 이런 그림을 전시한 듯한 비경이 계속 이어진다. 높이 솟구친 바위절벽 산이 절경의 바위 봉우리를 하늘과 잇고 있다. 이런 풍경은 그리 오래 가진 않고 일정 구간만 있다. 바람이 불어 서 있기조차 힘들지만 무협은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기막힌 비경이다.
* 2층 뷔페식당 선장 만찬 석식
오늘 저녁식사는 2층 식당에서 선장 주최로 만찬 석식이다.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테이블식으로 돌아가는 음식을 퍼다 먹는 뷔페식사다. 선장이 나와서 감사의 인사를 한다. 맛있는 식단으로 만찬을 베풀어주는 정성에 감사했다.
* 삼협댐 옛모습 사진 전시
6층 뷔페식당에서 4층 룸으로 돌아올 때면 4층 복도에서 삼협댐 옛모습 전시사진이 시선을 이끈다. 사진과 책의 자료를 상세히 보여준다.
* 승무원 민속쇼 공연
석식 후 5층 바에서 승무원들이 펼치는 민속쇼를 관람하였다. 남편은 오늘밤 12시~1시까지 크루즈 배가 5개의 관문 중 첫 갑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기 위해 승무원 민속쇼를 보지 않거 일찍 휴식에 들어간다. 나 혼자 가서 관람했다. 남자 승무원 6명, 여자 승무원 6명 총 12명이 여러가지 공연을 한다. 사회자는 여자다. 무대에 자막도 있고 정성어린 공연이 참 좋았다. 8시 40분부터 9시 40분까지 1시간 공연했다.
* 삼협댐 갑문 통과
크루즈 배의 삼협댐 갑문 통과시간이 늦어서 원하는 사람만 콜을 제공한다. 오늘 밤은 자유관광으로 하고 다음 날 삼협댐 현장을 관람할 때 상세하게 설명해준단다. 우리 부부는 콜을 신청했다. 배가 갑문앞에 도착하는 밤 12시에 콜을 받았다. 나는 2시간 정도 잤는데 그 시간에도 갑판에 갈 복장으로 누워서 잠시 잤다. 화장도 안 지우고 잤다. 피곤하지만 밤 12시의 콜은 매우 반가웠다.남편과 일어나 갑문 통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참 행운이다. 우리 부부는 맨 정상의 6층 갑판으로 나갔다.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나와 있다. 양쯔강 중상류인 중국 후베이성 이창의 협곡을 잇는 댐, 이 댐을 통과하려면 길이 1750미터의 수로에, 높이 113미터로 만들어진 5개의 갑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선박이 첫 번째 갑문으로 들어서면 열려 있던 갑문이 잠기면서 그 안의 물이 빠져나가 두 번째 갑문내의 수위와 같게 된다. 한 갑문당 소요되는 시간은 약 45분으로 총 소요되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1차 갑문은 그대로 열려 있어서 배가 그냥 들어왔다. 배가 1차 갑문 계단으로 진입한다. 우리 배 앞에 화물선 2척이 나란히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2차 계단 진입의 갑문이 양 옆으로 장엄하게 열린다. 그리고 아주 서서히 배가 넘어서 간다. 우리 배가 진입하고, 잠시 뒤 갑문이 닫힌다. 2차 갑문 통과 후 게단에 진입하자 왼쪽에 공원이 보인다. 오른쪽은 갑문 야경이 장관이다. 갑판에서 새벽 1시 40분쯤 내려왔다. 몸이 매우 피곤하다. 오늘 아침은 새벽 5시 50분에 모닝콜이다. 4시간 정도 우우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장엄한 세계 최대 댐인 삼협댐의 갑문이 열리는 비경, 25개 계단식 갑문을 통과하는 크루즈 배의 비경을 보았다는 보람과 흐뭇함에 큰 행복으로 피곤은 접혀진다.
* 의창 부두 하선 준비
모닝콜이 5시 50분에 울렸다. 조식은 6시 45분~7시 45분에 해야 한다.. 조식 후 하선하여 삼협댐을 탐방할 것이다. 2층 로비에서 하선을 기다리며 입항하는 풍경을보았다.
* 의창 부두 하선
의창의 오늘 날씨는 비, 21도~24도. 하선하여 수신기 착용. 의창 부두 앞에 제갈량 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소사원이라고도 부른다. 오늘은 버스로 15분 이동 후 삼협댐에 간다.
* 삼협댐 다리
삼협댐 다리가 매우 육중한 규모다. 줄이 늘여져 잇는데 독일제로 한 개당 1억원이란다. 저 다리로 댐건설의 물건을 실어 날랐다. 엄청나게 강한 다리다. 돈을 많이 들여서 건설했다.
* 삼협댐 갑문
크루즈 배의 삼협댐 갑문 통과시간이 늦어서 원하는 사람만 콜을 제공한다. 오늘 밤은 자유관광으로 하고 다음 날 삼협댐 현장을 관람할 때 상세하게 설명해준단다. 우리 부부는 콜을 신청했다. 배가 갑문앞에 도착하는 밤 12시에 콜을 받았다. 나는 2시간 정도 잤는데 그 시간에도 갑판에 갈 복장으로 누워서 잠시 잤다. 화장도 안 지우고 잤다. 피곤하지만 밤 12시의 콜은 매우 반가웠다.남편과 일어나 갑문 통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참 행운이다. 우리 부부는 맨 정상의 6층 갑판으로 나갔다.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나와 있다. 양쯔강 중상류인 중국 후베이성 이창의 협곡을 잇는 댐, 이 댐을 통과하려면 길이 1750미터의 수로에, 높이 113미터로 만들어진 5개의 갑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선박이 첫 번째 갑문으로 들어서면 열려 있던 갑문이 잠기면서 그 안의 물이 빠져나가 두 번째 갑문내의 수위와 같게 된다. 한 갑문당 소요되는 시간은 약 45분으로 총 소요되는 시간은 약 4시간이다. 1차 갑문은 그대로 열려 있어서 배가 그냥 들어왔다. 배가 1차 갑문 계단으로 진입한다. 우리 배 앞에 화물선 2척이 나란히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2차 계단 진입의 갑문이 양 옆으로 장엄하게 열린다. 그리고 아주 서서히 배가 넘어서 간다. 우리 배가 진입하고, 잠시 뒤 갑문이 닫힌다. 2차 갑문 통과 후 게단에 진입하자 왼쪽에 공원이 보인다. 오른쪽은 갑문 야경이 장관이다. 갑판에서 새벽 1시 40분쯤 내려왔다. 몸이 매우 피곤하다. 오늘 아침은 새벽 5시 50분에 모닝콜이다. 4시간 정도 우우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장엄한 세계 최대 댐인 삼협댐의 갑문이 열리는 비경, 25개 계단식 갑문을 통과하는 크루즈 배의 비경을 보았다는 보람과 흐뭇함에 큰 행복으로 피곤은 접혀진다.
* 삼협댐 모형 전시관
삼협댐 관광시 안전검사를 하는데 검색대를 통과한다. 모든 술종류, 칼종류의 휴대를 금지한다. 삼협댐 안내소 건물인 모형 전시관에 들어가서 삼협댐에 대하여 미리 공부를 했다. 모형도를 보고, 사진 자료도 보았다.
* 삼협댐 전망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른다. 오늘 2Km정도 걷는다. 한참을 오른 후 전망대에 다다랐다. 전망대에서 여러가지를 보고 조망했다. 삼각돌이 놓여 있는데, 저 돌은 댐 건설시 사용하던 돌이다. 분수가 아름다운 물줄기를 분무한다. 계단으로 걸어서 전망대 정상에 올랐다.그곳에서 삼협댐을 조망했다.
* 전망대에서 본 삼협댐
우리 부부가 어젯밤 크루즈 배로 넘어온 삼협댐과, 갑문 등을 조망한다. 양쯔강 중상류인 중국 후베이성 이창의 협곡을 잇는 댐. 높이는 185m, 길이는 2,309m, 너비는 135m이며, 최대 저수량윾 390억 톤, 최고 수위는 175m, 총 시설용량은 1820만㎾, 연간 발전량은 847억㎾으로 세계 최대 용량의 에너지를 발전한다. 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니 삼협댐이 보인다.
* 삼협댐 위 공원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삼협댐 위의 공원을 걸어서 이동한다. 삼협댐 위의 400m 공원 길이다. 공원 끝에서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이동한다.
* 삼협댐 185 전망대
삼협댐을 더 가까이에서 보는 185 전망대다. 즉 팻말에 새겨진 185란 숫자는 해발 185m 높이의 전망대란 뜻이다. 그 문을 지나 조금 내려간 곳에서 댐을 조망했다. 거대하고 장엄하다. 사람들이 많다.
* 크루즈배 5층 갑판에서 본 서릉협
회선 후 양자강 3번째 협곡 서릉협을 자유관광한다. 자귀의 향계하구에서 의창의 남진관에 이르는 총 길이 75㎞의 구간이다. 이곳은 장강의 삼협 중 가장 긴 협곡이다. 서릉협은 동서 두 구간으로 나뉘며, 중간은 길이 약 31㎞의 묘남관곡이다. 서릉협에는 여울이 많고 물살이 세다. 지금은 정비를 거쳐 이러한 험탄은 모두 사라졌다. 험란한 협곡이어서 강의 수위 변화에 따른 크루즈선 운항 일정 변화로 서릉협 관광 일정은 제외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배가 운항한다. 서릉협 양안은 수많은 계곡, 샘, 동굴 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백거이, 굴원, 구양수, 소순, 소식, 소철 등 많은 명인들이 시구를 남겼다. 제갈공명이 병서를 숨겨 두었다는 병서보검협, 중국의 4대 미인중 한명인 왕소군의 고향, 장비가 군사 훈련을 지휘했다는 장비고적대 등의 관광지들이 있다. 5층 갑판에 나가서 조망하였다. 강변으로 주택도 보인고 산자락에 군락을 이룬 우아한 주택단지도 보인다.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함께 모두 비경이다. 중식을 11시 30분부터 하는데 그 전에 각자의 짐을 본인의 방문 밖에 11시 30분까지 내놓아야 한다. 포터가 우리 전용버스로 운반할 것이다. 서둘러 방으로 와서 가방을 정리하여 방문 앞에 내놓았다.
* 크루즈배 2층 뷔페식당에서 본 서릉협
오늘 중식은 2층 식당에서 테이블식으로 한다. 창가 테이블에서도 서릉협이 보인다. 서릉협은 긴 구간이어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풍성한 식사와 비경이 절창이다.
* 크루즈배 중경 방향으로 회항
중식을 마치고 선실에 와서 발코니에 나가 보았다. 우리를 태운 크루즈 배가 방향을 다시 중경 방향으로 돌리며 회항하고 있다. 이 배는 우리를 의창 부두에 내려주고 다시 손님을 싣고 중경으로 간다. 아주 멋진 풍경을 보았다.
* 의창 하선 대기 크루즈배 2층 로비
중식 후 방키를 2층 카운터에 반납하고 2층 로비에서 모여 하선을 기다린다. 로비에는 컴퓨터가 있다. 사진사가 찍은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어 꺼내 보며 기다렸다. 낮 12시 30분에 하선할 것이다. 크루즈 배와의 이별은 다가오고 모두가 아쉽고 그리울 순간이다.
* 의창부두 입항 하선
낮 12시 30분에 하선한다. 승무원들이 나와 항상 그랬듯이 오늘도 나와서 마지막 인사를 친절하게 한다. 중국어로, 영어로, 또는 한국어로 다정한 음성들이다. 우리도 고마웠다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하선하여 언덕진 길을 올라 버스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 의창 부두에서 버스 승차
의창 부두에서 하선하여 버스를 탔다. 조금 이동하니 양자강 하류 끝의 바위가 보인다. 양자강의 바위는 저것으로 끝이란다. 바위는 저것으로 마지막이고 그다음부터는 평원을 흐른단다. 고속도로를 잠시 통과하여 40분 이동 후 의창시의 기차역에서 중경행 고속열차를 탈 것이다.
* 의창역 도착
의창역에서 하차하여 지나온 의창 시가지를 조망했다. 우람한 아파트와 건물들이 가득찬 시가지다. 의창역은 엄창난 크기다. 어느 공항이 연상될 정도의 규모다. 의창은 인구가 6700만 명이다. 인구수도, 면적도 모두 중경의 2배다. 놀라운 규모의 도시이며, 놀라운 크기의 기차역이다. 기차역 대합실에 들어갈 때도 비행기를 탑승하듯 검색대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대합실을 나오는 것은 자유지만 다시 들어갈 때는 또 그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 부부도 의창시가지와 역 주변을 돌아보가 위해 나왔다가 그런 절차를 거쳐 다시 들어갔다.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는 현대식 기차역이다.
* 의창역에서 중경행 고속열차 탑승
의창역 14시 31분 출잘하는 중경행 고속열차에 탑승했다. 중경까지는 4시간 30분 소요다. 2004년에 개통되었다. 포설거리는 12000Km다. 고속열차는 8량이며 600면 정원이다. 시속 200~350Km로 달린다. 우리 부부의 좌석은 3호차 13D, 13F로 나란히 앉는다. 좌석이 2, 3제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2석제인 좌석이 둘이만 배정을 받았다. 일행 중 더러는 떨어져 앉는 부부도 있다. 열차가 출발한다. 중경시 도착은 18시 57분이다.
* 중경 가는 길에 본 풍경
양자강 다리를 건너서 간다. 기차가 산중으로 달린다. 산정에 터널이 매우 많다. 마을이 저 아래로 보인다. 기차는 거의 산정의 철로로 달린다. 4시간 30분 소요예정이다. 한국 인솔자가 컵라면을 사와서 나누어 준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귀가 멍멍해진다. 기차 안이 약간 서늘하다. 에어컨이 센 편이다. 중경 가는 동안 석주, 풍도, 성도 등 네 군데의 역을 거친다.
* 중경역 도착
저녁 7시경 중경역에 도착했다. 중경역 플랫홈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대합실로 들어와서 밖으로 나가려 하니 비가 세차게 내린다. 참으로 희한한 날씨다. 비가 오는 길을 걸어가서 한식으로 석식을 맛있게 했다. 중경은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아래에 있다. 날씨는 우리나라보다 한 달 정도 뒤로 보면 된다. 지금 중경은 한국의 7월 말 정도다.
2017년 9월 2일 토요일 중경 출발, 중경 지앙베이 공항 출발, 인천공항 도착
* 중경 호텔 35층 객실에서 본 양자강
양자강 주변의 호텔에서 숙박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머문 객실은 35층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긴 양자강과 다리가 보인다. 비가 오는 관계로 안개도 자욱하여 그윽한 풍경이다. 주변에는 고층건물이 많다.
* 중경 호텔 출발
호텔을 출발하여 중경을 떠난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중경이다. 이제 공항으로 이동한다.
* 중경공항 가는 길에 본 풍경
중경 가릉강 다리를 건너서 공항으로 이동한다. 중경 다리는 4천개다. 공항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380m의 산마을을 지난다. 밑은 방공호가 설치되어 있다. 중겨은 동서로 5천Km, 남서로 5700Km다. 여기는 북경과 -1시간의 시차가 있다. 중국은 북경의 시간을 정시로 한다. 중국은 넓어서 윗쪽은 영하 40도, 아랫쪽은 영상 17도로 기온 차이가 50도 정도다. 땅은 모두 국가 소유다. 개인은 50년~70년 임대만 가능하다. 중국은 10억 부자, 한화로 2천억 부자가 4만 6천명이란다. 부자들이 많아서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국민소득이 10만 달러로 국민소득 세계 8위 국가다. 나라로 보면 세계 12위 국가인데, 개인당 소득은 8천불이다. 한국은 2만 불이다. 7천만 명이 아파트와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다. 돈이 여유 있는 사람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이다. 중국말로 소강수준이라고 부른다. 중국인의 희망은 1.아파트 소유, 2.자가용 소유, 3.돈을 모아 결혼하는 것이다. 이곳의 아파트는 평당 400만원으로 2억 정도 있어야 20~30편대 집을 살 수 있다. 아파트가 상승세다. 남녀가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남자가 결혼하려면 1.집, 2.자가용, 3.동이 있어야 한다. 여자가 그렇게 요구한다. 이 세 가지가 안되면 결혼을 못한다. 가이드로부터 중국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공항으로 가고 있다.
* 중경 지앙베이 국제공항 신청사 출발
새 공항 건물로 깨끗하다. 한산하다. 검색을 철저히 한다. 12시 30분 인천행을 탑승한다. 게이트는 20번이다. 보딩은타임 12시 10분이다. 우리 부부의 좌석은 22A, 22B로 창가 좌석이다. 이제 내 조국 인천 공항으로 날아간다.
* 대한민국 인천 영종도 국제공항 도착
비행기가 내 조국 상공에 진입하였다. 인천 상공은 아름다운 섬들로 절창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 못지않은 비경이다. 아름다운 강산의 내 조국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공항에 도착하니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가 반긴다. 리무진을 타고 건너가는 인천대교에 바다를 보니 섬과 배와 바다를 채우고 있어 풍요롭다. 보람되고 뜻깊은 중국 여정을 마치고, 눈부신 내 조국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바다와 들녘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흐뭇한 미음으로 행복한 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