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ㆍ유릉 산책] 정병경.
ㅡ금곡으로ㅡ
일교차가 심한 날씨가 이어진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은 우주가 내린 문화유산이다.연일 코로나 확진자가 3천명 가까이 늘어나 전국이 긴장상태다.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집에서 점심 먹고 나선다.
남양주 금곡을 향해 핸들을 잡는다. 주말 교통 사정은 원활한 편이다. 다산 신도시는 대도시의 일부를 떼어다 놓은 모습이다. 별천지로 바뀐 땅을 가로지른다. 네비 덕분에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다.
반시간만에 도착한 홍ㆍ유릉 입구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받고 능으로 들어선다. 먼저 우측의 유릉裕陵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붙여진 황제 순종. 첫번 째 부인 순명황후(민태호의 딸)와 순정황후(윤택영의 딸)의 합장능으로 향한다. 다른 능에 비해 재실의 규모가 제법 큰편이다.
ㅡ유릉ㅡ
순종효황제(1874~1926)는 고종과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이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겨(경술국치) 이왕李王으로 강등된 장본인이다. 국가는 민족과 함께 슬픈 운명의 길에 들어선다.
왕세자빈에 간택되어 황태자비가 된 순명황후는 순종보다 두 살 위다. 황제보다 22년이나 먼저 세상을 떠난다. 국권이 일본에 강탈 당하기 6년 전 떠났다. 마음에 부담이 적은 상태여서 편히 잠들고 있다.
72세를 장수한 순정황후는 순종보다 20세가 어린 나이다. 일제 강점기와 6ㆍ25까지 산전수전 겪다가 창덕궁에서 세상을 마감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 기록된다.
향로보다 어로가 좁다. 양옆에 같은 크기의 석물(말.낙타,사자,코끼리,기린,양,해태) 열 네 기가 홍살문에서 침전 앞까지 배치했다. 보통 능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웅장하다. 마지막 황제에 대한 배려로 생각된다. 능침은 먼발치 홍살문 주위에서 능침 윗부분만 보일 정도다. 어느 왕릉도 마찬가지로 능은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 유릉은 황제와 두 비妃가 함께 묻힌 조선 왕릉 중 유일한 동봉삼실 합장능이다.
ㅡ홍릉ㅡ
숲길을 따라 고종이 누운 홍릉洪陵으로 향한다. 커다란 연지에 연꽃이 지고 잎만 남았다. 왕은 릉陵이다. 왕 가족은 원園으로 부른다. 후궁들이 묻힌 묘墓까지 함께 있는 홍ㆍ유릉엔 넓은 숲이 자랑거리다. 지나던 구름도 쉬어 가게 하는 장송숲은 능의 지킴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합장해 누운 홍릉의 향ㆍ어로 옆 석물들이 유릉에 비해 작은 편이다.
능침의 모습을 멀리에서 겨우 눈에 담는다. 침전 옆에서는 능침이 않보인다. 우측 비각 옆의 노송이 땅에 닿일 듯 누워 세월을 보낸다.
홍릉과 유릉은 대한제국 선포 후 명나라 능을 본딴 형태다. 정자각 대신 침전을 짓고, 석물도 종류와 개수가 많다. 내 상식으로 분간이 어렵다.
M 방송사에서 행사 촬영 준비하느라 무대 설치에 주위가 어수선하다. 홍릉을 뒤로 하고 우측 담장 밖으로 나선다. 숲이 울창해 가을 매미와 풀벌레들의 천국이다. 새소리까지 합창으로 계곡이 울린다.
ㅡ영원과 회인원ㅡ
영친왕과 영친왕비가 묻힌 '영원'은 왕릉을 축소한 모습이다.
황세손 이구의 '회인원'은 숲에 가려 습도를 느낀다. 보수중이어서 무덤이 파란 포장으로 덮여 있다. '영원'과 달리 석물은 없다.
영원英園과 회인원懷仁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묻혔기에 무덤의 명칭을 원園으로 칭한다.
우측 숲길엔 조선 1대부터 27대까지 왕릉의 내력을 한자리에 모아 아홉 개의 안내 간판을 만들어 놓았다.
미처 못가본 능의 모습을 한곳에서 모두 볼 수 있다.일일이 보고 지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ㅡ묘지로ㅡ
숲으로 해를 가려 능길 걷기가 좋다. 얕은 언덕에 덕혜옹주의 묘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는다.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딸(1912)이다. 조현병(정신질환)으로 고달픈 생을 마감하고 새소리 들리는 금곡의 땅에서 132년째 영면에 들었다. 그의 어린 시절 모습과 서예 작품이 눈길을 끈다. 예술의 소질이 다분하다.
바로 아래에는 의친왕(1877)의 묘가 있다. 의친왕비와 합장이다. 고종과 귀인 장씨의 소생이다. 수관당 정씨와 수인당 김씨가 그의 후실이다. 독립운동으로 생을 보내다가 79세(1955)로 안국동 사동궁寺洞宮을 떠난다. 상석에 향로석, 장명등과 망주석이 전부다. 조선의 마지막 왕가 인물들이 누운 땅에서 흙내음을 맡는다.
"조선은 어디 가고
제국도 사라졌다
지키지 못한 조국
누구를 원망할까
소 잃고
외양간 고쳐
우리 땅을 지키자."
고종황제 후궁 귀인 장씨(의친왕 생모)와 후궁 광화당 귀인 이씨, 삼축당 김씨의 묘가 왕릉 아래에 이웃해 있다.
의친왕 후실 수관당 정씨와 수인당 김씨의 묘가 후궁의 묘지에 함께 안장되어 있다. 지척이어서 서로 외롭지 않을 것이다.
조선이 사라지고, 대한제국도 역사에 묻혔다. 6ㆍ10 만세를 부른지 95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이 오늘에 있기까지 피흘린 열사를 생각해본다.
내일은 하늘이 열린 날이다.
어제는 성북구에 있는 정릉貞陵에 다녀왔다. 고려 왕국이 사라지고 조선의 문을 연 태조의 제2계비 신덕왕후의 능길을 돌았다.
오늘은 홍ㆍ유릉에서 대한제국이 파란만장 우여곡절을 겪은 지난 역사를 더듬어 본다. 묵묵히 강처럼 세월은 흐른다. 언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까! 노심초사다.
홍ㆍ유릉에 묻힌 황제 가족과 후궁의 묘지를 마감하고 발길을 돌린다.
2021.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