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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공공복지 연구소 (公共福祉 硏究所) 황순형
 
 
 
카페 게시글
┃----쉬어가세요┃ 스크랩 전통 가옥이 보존되어 있는 안동 하회(河回)마을
임마누엘 추천 0 조회 21 07.09.27 15:0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안동 하회(河回)마을은 풍산(豊山) 류씨(柳氏)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동성(同姓) 마을로써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사대부집으로부터 가랍집(서민 집)까지 고건축물(古建築物)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122호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 유학자 류운용(柳雲龍)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닌 유성룡(柳成龍)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며, 1999년 4월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 마을에는 하회별 신굿탈놀이, 줄불놀이 등이 전승되며 이때 사용하는 하회탈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또한, 대종택(大宗宅)인 양진당(養眞堂)과 함께 서애종택(西厓宗宅)인 충효당(忠孝堂)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河回)마을의 집들의 배치는 마을 중심부에 큰 기와집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가랍집들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배치되어 있다.

 

 

 

 

 

 

 

 

 

 

 

 

 

 

 

 

양진당(養眞堂)은 보물 제306호로 150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류운용(柳雲龍)이 살던 집으로 풍산 류씨 대종가이다

이 건물은 하회 북촌(北村)를 대표하는 가옥으로 안채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이 건물은 ㅁ자형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 그리고 ㅡ자형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높은 축대 위에 건물을 세우고 주위에 난간을 둘러

마치 누각과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랑채 앞에는 넓은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있는 ㅡ자형 행랑채는 출입문의 역할을 하며,

안채는 큰 안방과 안대청이 있으며 사랑채와는 마루와 연결이 되어 있다.

 

 

 

 

 

 

 

 

 

 

 

 

 

 

 

 

충효당(忠孝堂)은 보물 제414호로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후손과 문하생들이 그의 덕을 기리는 뜻에서 1600년대에 지은 가옥이다.


이 집은 류원지(柳元之)가 처음 건립하였고 그후 그의 증손 류의하(柳宜河)가 확장한 목조건물로써 집 앞에 행랑채가 길게 가로 놓여있고, 그 뒤편에 ㅁ자형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 뒤쪽에는 따로 사당이 마련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는 유성룡(柳成龍)의 유물들을 보관 전시하는 영모각이 있다


 

 

 

 

 

 

 

 

 

 

 

 

 

 

 

 

 

 

 

 

 

 

 

 

 

 

 

 

 

 

 

 

 

 

 

 

 

 

 

 

 

 

 

 

 

 

 

 

 

 

 

 

 

 

 

 

 

 

 

 

 

 

 

 

 

 

 

  

 

 

 

 

 

 

이 마을은 낙동강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고 있어 하회(河回)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花山)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강에 싸인 마을까지 뻗어서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하회의 집들은 이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坐向)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을 향하여 각 방향으로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본 아름다운 자연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면서 느낀 아쉬운 점이라면

이곳에 우리의 전통 가옥은 존재하고 있으나 전통문화는 엿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회마을은 이제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옛 마을이 아니라 외형만 우리의 전통 가옥을 유지한 채,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과 구멍가게로 생계를 꾸려가는 조그만 농촌마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하여 왠지 씁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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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9.27 15:51

    첫댓글 어린시절 친구 집에 놀러 많이 갔었는데......지금도 어릴적 모습 그대로 입니다. 친구들은 거의 객지에 살고 어른들만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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