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성 화백이 그린 국회의사당의 백두산 천지도
장우성이 그린 대형작품으로는 세종대왕기념관의 ‘집현전 학사도’, 고려대학교 도서관 벽화 ‘군록도(群鹿圖)’, 국회의사당의 ‘백두산 천지도’가 있다. ‘백두산 천지도’에는 스토리가 담겨있다.
당시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다. 국회 사무총장이 장우성에게 국회의사당 벽화 제작을 의뢰했다. 국회 벽면의 크기는 길이 7m, 높이 2m였다. 장우성은 통일을 대비한 전민족적인 국회의사당의 이미지를 그려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백두산 천지 그림이었다.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백두산을 등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백두산 흑백사진도 구했다.
그리고 남북회담 때 평양을 다녀온 사람이 갖고 있던 백두산 천지 천연색 사진도 보았다. 그림이 워낙 커서 홍익대 강의실 한 개를 통째로 빌어 제작했다. 꼬박 다섯 달 동안 작품을 완성했다.
서울대 김원룡 교수는 “‘백두산 천지도’는 장우성의 평생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회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물임이 틀림없다.
세상에 이렇게 맑고 티 없고 큰 그림이 또 있을까. 천부(天賦)의 재(才)와 노심각고(勞心刻苦)의 산물이며 작가 월전의 정진과 노력, 청순불염(淸純不染)의 인품과 예술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세기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고 찬탄했다.
월전 장우성 ‘백두산 천지도’
한국일보 기사 입력 : 1997.02.04. 00:00
최진환 기자
꿋꿋한 민족정기 시 서 화로 묶어 국회 터줏대감으로/
75년 국회주문… 6.3m×2.1m 대작/
제작가 1,000만원 당시 최고가/
장기영 본사 창간발행인의 컬러사진 구해 스케치작업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2층 의원휴게실 왼쪽벽면에는 백두산 천지를 그린 대형벽화가 걸려있다.
월전 장우성(85) 화백의 「백두산 천지도」다.
가로 6.3m, 세로 2.1m인 이 초대형 그림은 20년 넘게 민의의 전당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면서 외부방문객의 기념사진촬영배경으로 활용되는 명물. 한국화단의 최고원로이며 시·서·화의 삼절로 통하는 월전은 이 천지도를 필생의 역작으로 꼽는다.
월전은 75년 새로 짓는 여의도의사당의 벽화제작을 의뢰받았다. 국회가 발주한 최초의 환경조형물인 셈이다. 의사당건물이 남북통일을 대비한 규모로 지어진다는 설명을 듣고 소재는 우리민족의 발상지인 백두산으로 잡았다. 그러나 스케치하기 위한 실물사진을 구하는 일부터 벽에 부딪혔다. 그때만해도 중국과의 국교가 열리지 않아 천지를 가본 사람은 물론 제대로 된 사진 한장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제때 다녀온 사람을 만나고 관련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었으나 천지의 모습은 막막하기만 했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남북적십자회담때 평양에 다녀온 장기영(77년 작고) 한국일보사 창간발행인이 컬러사진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몇차례 간청끝에 사진을 복사할 수 있었다.
그림재료를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국내에는 6m가 넘는 화선지도 없었고 보존성이 좋은 채색재료도 찾기 힘들었다.
일본에 직접 건너간 장화백은 순닥으로 만든 대형종이와 광물질 석채를 구입했다. 홍익대교실을 빌려 작업에 들어간지 꼬박 5개월이 걸려 작품을 완성했다. 액자는 동산방 박주환 사장이 특별주문한 수입원목으로 만들었으나 대형유리는 구할 수 없어 끼우지 않았다. 당시 월전이 제작비로 받은 돈은 1,000만원. 그때까지 거래된 근현대미술품으로는 최고가였다.
짙푸른 천지물빛과 삐죽삐죽 솟아오른 연봉, 솜사탕같은 흰구름, 황갈색의 언덕배기 등을 묘사한 천지도는 치밀한 사실을 지향하는 북화계열의 작품.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담담하게 이끌어가는 필치에는 오랫동안 문인화를 통해 터득한 문기와 꿋꿋한 선비정신이 배어있다. 또 배달민족의 모태가 된 백두산의 위용을 찬양하는 한시까지 지어넣음으로써 「삼절화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월전은 팔순을 맞던 92년 중국을 거쳐 백두산 천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 지 17년만이었다. 노화백은 지난달 29일 기자의 부탁을 받고 시집 보낸 딸자식을 보러 가는 심정으로 의사당을 찾았다. 「상봉」의 기쁨과 흥분도 잠시였다. 담배연기와 먼지에 찌들어 곳곳이 얼룩지고 변색돼 가는 그림을 보고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월전은 일제 때부터 한국화의 의연한 화풍을 현대적 양식으로 발전시킨 거목이자 서세옥 박노수 안동숙 박세원 화백 등 쟁쟁한 작가를 키워낸 탁월한 교육자. 요즘도 서울 종로구 팔판동 월전미술관에 매일 출근하고 일주일에 두차례 골프를 칠 정도로 건강이 좋다. 그는 『틈틈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풍경을 화폭에 옮겨놓고 있다』며 『힘이 닿는 데까지 그려 미수전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백두산천지도], 국회의사당,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