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무의 기원을 찾아서 <橋本 實 著. 朴龍求 譯 -慶北大學校 出版部>
1. 차의 식물지
# 차 학명과 종류
차는 기호음료류의 식물로서 인류가 이용하기 시작한지 이미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시는 차의 발상지가 중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가지지 않는다. 그 넓은 중국 안에서 어느 곳에, 누구가, 언제부터 야생식물에서 재배식물(작물)로 이용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문제는 민족학이나 역사학의 분야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지만 흥미 있는 문제이다.
일본의 차 재배 역사도 매우 오래되어 1191년[겐큐(建2久년)] 에이사이(榮西)선사가 중국에서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서 사가켄(佐賀縣)의 세부리산(背振山)에 심은 것이 재배의 시작이였다. 오늘날에는 재배 범위도 넓어져서 북쪽에는 아끼타켄(秋田縣) 히야마(檜山)에서부터 남쪽은 오끼나와켄(?繩縣)의 여러 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와 같이 차는 예로부터 잘 알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물학적 연구는 최근에야 시작되었다.
차(Camellia sinensis)는 동백나무과의 식물이지만 그 속명에 대해서는 차나무속과 동백나무속의 두가지 학설이 있으며 식물학자들 간에도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어 혼란을 겪어 왔다. 차나무 속으로 분류하는 학자는 차나무 꽃은 집산화서(集散花序)로써 1-3개를 가지고 있으며 꽃받침은 5개로 오랫동안 남아있다. 그러나 동백나무의 꽃은 꽃자루가 없으며 한 개씩 정생(頂生) 또는 액생(腋生)하며 꽃받침은 나선형으로 중복되어 탈락한다. 이러한 차이가 차를 동백나무와 같은 속으로 분류하면 안된다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백나무속 가운데에서도 희산다화(姬山茶花; Camellia sasanqua)는 옆액에서 꽃이 2-3개 나오며 꽃받침이 오래 남아 있다. 홍콩에 자생 동백나무는 꽃이 1개씩 피는데 꽃받침은 나선상으로 붙어있으며 오랫동안 남아있다. 또한 이엽산다화(二葉山茶花)는 꽃이 가지의 끝에 2개씩 핀다. 그러므로 차와 동백나무의 속명을 구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높아져서 최근 들어 차나무도 동백나무와 같은 속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차를 분류학적으로 나누면 온대지방의 소엽종(중국종 var. sinensis)과 열대지역의 대엽종(앗삼종 var. assamica)의 두 변종으로 대별한다. 그러나 그 중간형도 많이 있으며 잎의 형태와 크기, 또는 나무형태나 형질변이가 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차 학명 하나를 가지고도 분류학상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나서 분류학상의 종, 변종, 품종, 동의(同義)등을 포함해서 차나무의 학명은 백여종에 달하고 있다. 단 한 종의 식물에 대해 세계의 많은 식물학자들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학명을 붙인 것을 볼 때 차나무가 얼마나 많은 잡다한 형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용 면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주목해온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혼란상태에 있던 차나무 학명을 최근 정리한 사람은 인도에서 차나무 연구를 해온 영국의 식물학자 Watt(1907년)이다. 그는 차를 1종 4변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그 분류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Cohen Stuart는 Watt의 분류법을 변경하여 역시 4개의 변종으로 분류했다(1919년). 그 기록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중국종 - 잎은 작고 길이는 4-5cm, 엽신은 단단한 혁질로 색은 농록색, 선단은 뾰족하지 않다. 6-8대의 측맥이 있다. 중국 남부에서 동부를 거쳐 일본에까지 분포하고 있다.
(b) 중국대엽- 잎은 크고 길이는 12-14cm, 폭은 5-6.5cm 수고 5m에 달한다. 옆선단은 뾰족하지 않다. 측맥은 8-9대으로 중국의 사천, 운남에서 자생한다.
(c) Shan종 - 엽장은 16cm, 수고는 4-10m에 달한다. 통킹, 라오스, 타이 북부지역 및 버어마 북부지역등에 자라며 앗삼 지방에도 자란다.
(d) 앗삼종- 옆은 매우 크며 길이는 20-30cm에 이르며 교목성이다. 잎은 얇고 약간 연한 녹색, 12-16대 측맥이 있다. 인도의 앗삼, 마니푸르 지방에서 자란다.
또 한편으로 여러 가지 중간형이 많이 있는데 이들 중간형은 과거에 무역, 교통 등에 의해 중국종과 앗삼종이 서로 교잡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크게 2가지로 대별하는 학자들도 있다. 일본의 식물학자인 기타무라(北村, 1950)는 Cohen Stuart가 분류한 중국대엽종(별명 고로종)은 중국종을 자가수정(차는 타가수정식물)을 시키면 1/3 비율로 고로형의 차나무가 출현하기 때문에 중국종 중에 있는 하나의 품종(forma)으로 격하시켰으며 Shan종과 앗삼종은 극단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여 같은 종으로 분류하였다. 기타무라(北村)가 두 가지로 대별한 분류는 영국의 원예학자 Sealy(1958년)를 시작으로 많은 분류학자들이 지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서남지방에서 차의 근연종(近緣種; ?)이 여기 저기서 발견되어 중국의 식물학자에 의해 신종으로 계속 보고 되고있다. 이들은 차와의 유연관계가 세포유전학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차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단지 차나무 절에 속하는 식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다음은 분류학적으로 품종으로 나누어진 차나무에 대해서 살펴보면 중국의 절강성이나 일본 큐슈나 시코쿠(四國)의 산간지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잎 길이가 1-3cm정도인 극단적으로 작은 parvifolia종(속칭 핀까)라고 부르는 타입이 있다. 이 종은 차를 수확하는 1심(芯)2엽(葉)이 극단적으로 작아서 수확량이 적지만 차를 만들 때 손으로 비비기가 쉬워 절강 용정차의 최고품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품종이다. 또한 잎의 쓴맛이 강해서 싫어하는 macrophylla(皐蘆種)는 일본 각지의 야마차(山茶)분포지역에 여기 저기서 보이지만, 이종이 차나무 밭에서 나오면 뽑아 버렸기 때문에 그 양은 별로 많지 않다. 이런 형태는 고로종(皐蘆種)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중국차 사료에 많이 나타나는 고로(皐蘆), 호로(瓜蘆), 과라(過羅)...등으로 최근까지 같은 종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중국의 차 전문가들에게 별종이 아닌가하는 지적을 받아 그 연구를 의뢰한 결과 1984년에 중국 사료에 나타나고 있는 고로는 현재 대엽동청(大葉冬靑; 감탕나무과의 Ilex latifolia)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말하는 고로종은 중국에서 말하는 불수종(彿手種)과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차나무의 꽃과 종자와 수명
차나무 꽃은 꽃잎이 보통 5매로 홑꽃이지만 꽃잎이 퇴화된 것도 있어서 6-8매인 것도 적지 않다. 최초로 차나무 학명을 명명한 스웨덴의 식물학자 Linne는 그의 저서인 [식물종](1753년)에 [꽃잎이 6매와 9매를 가진 것이 있는데 이것은 별종인지도 모른다]고 기록하였다. 곧 이어서 발간된 제2판에서는 별종으로 취급하여 기록하였다. 차나무 학명에 대한 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꽃잎에 대한 매수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수술의 수도 천차만별로 200개에서부터 300개까지 나타난다. 그리고 기부는 융합해져 있다. 암술은 한 개로 주두 부분이 3 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나 가끔 4개로 갈라져 있는 것도 있다. 꽃색은 백색으로 꽃잎은 연한 홍색를 나타내는 것도 있으며 이것을 분홍색 차나무 [베니바나차]라고 하여 관상용으로 중요한 품종이다. 일반적으로 가을이 깊어지면 여러 가지 초목의 꽃이 사라지는 계절로 이때 차나무 꽃은 만개를 하게 된다. 개화기는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9월부터 12월까지 길며 늦게 피는 것은 1월의 추운 한풍에도 견디며 개화하는 것도 있다. 꽃눈은 4월경에서 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가을에 개화한 후 약 5일 만에 꽃잎이 떨어진다. 자방의 외부는 털로 쌓여 있으며 내부에는 3개 방이 있으며 각실에는 3-6개의 배주가 있다.
과실은 빠른 것은 8월말에는 성숙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10월이 되어서야 과실 껍질이 벌어져 그 속에서 1-3립의 종자가 나온다. 1과 1립의 과실은 구형이다. 과실 하나에 수개의 종자가 들어 있는 것은 편평(扁平)한 모양을 나타내며 종자 수는 1과실에 8개까지 들어 있는 것도 있으나 전부 발아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보통은 과실 하나에 종자 하나를 가진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종자 수명은 매우 짧아서 채종후 건조 상태에 따라서 약 10일정도 지나면 발아력이 떨어진다.
차나무의 수명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지만 현재까지 확실히 단정 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사가켄(佐賀縣)의 세부리산에 있는 큰 차나무 근주를 파내 조사한 적이 있는데 중심부는 썩어서 없어지고 분지가 많이 합쳐서 큰 둥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일부의 연륜에서 50년정도 밖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조사에서 차나무는 계속하여 근부에서 새로운 줄기를 발생시키며 또한 옆으로 퍼진 뿌리에서 다시 새로운 줄기가 나와 전체가 죽지 않는 포복성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열대지방에서는 교목성이므로 연령을 추정할 수가 있다. 대만의 미원산(眉原山)의 야생차 조사에서는 직경 20cm로 연륜이 98년인 것을 발견하였다. 거의 150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차나무도 발견 되었다. 인도의 앗삼지방에는 파종후 100여년 된 근주가 많이 남아있다. 열대지방 식물의 특징으로는 연륜을 육안으로 식별하기 곤란하였으나 다른 나무와 비교 관찰하여 보면 직경 45cm정도 되는 것은 대략 120 - 140년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이보다 상당히 큰 근주들이 고사하여 있기 때문에 이것을 미루어 보면 차나무의 수명은 150년에서 200년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 재배차의 한계분포
영국이나 화란의 동인도회사가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식민지에 차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현재 세계각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게 되었다. 최북단의 재배지는 소련남부 코카사스지방의 구루지아공화국으로 북위 42-43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 흑해에 면하고 있는 아시리아지역에는 476헥터의 차밭이 있으며 일본식의 재배기술을 그대로 도입하여 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이상하게도 차 이외에도 온주밀감, 부유감등이 재배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들도 꽤 많이 있다고 한다. 그루지아공화국의 수도 도비리시의 년평균기온은 이과년표(理科年表)에서 보면 섭씨 12.9도인데 이보다 남쪽인 흑해에 면한 앗시리아지역은 약간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차 재배가 가능한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11도 이상이기 때문에 재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경우 경제적으로 재배가 가능한 지방은 크게 보아서 이바라기(茨城), 도치기(?木), 군마(群馬) 및 니이가타(新瀉)의 각 현 이남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니이가타켄 무라가미(村上)는 최북한의 재배지이다. 그러나 식물학적으로 볼 때 최북한의 재배지는 아끼타켄 노시로(能代)의 희야마차(檜山茶)라고 할 수가 있다. 희야마(檜山; 북위40도10분)는 위도에서 볼 때 앗시리아지역 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년평균기온은 섭씨 11도 정도로 낮고 겨우 재배 가능한 북한지라고 할 수 있다.
최남쪽의 재배지는 아프리카 남부(남아프리카, 로데시아등) 및 남아메리카(브라질)로서 양 대륙의 거의 남회귀선(남위 23도27분)을 한계로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나 로데시아 등의 재배지 기온은 일년중 온난하고 변화가 적으며 차재배의 중요한 고온다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북반구에 있는 일본의 재배조건을 생각해 보면 남반구의 남위 40도에 중심 위치한 뉴질랜드에서도 충분히 재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차나무 재배 적지는 여러 가지 기후조건이나 토양조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재배되고 있는 최북단과 최남단 사이의 어느 곳이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도의 앗삼지방과 같이 년평균기온 23도씨를 넘는 더운 곳에서는 차밭에 햇볕을 가리기를 위해 해가림 나무를 혼식 해주어야 한다. 또한 토양조건도 약산성이나 약알카리성 토양은 재배 적지가 아니다.
# 야마차(山茶)의 도래설
일본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 한 것은 헤이안(平安)초기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온 유학승(留學僧)들에 의해 전례되었다. 그러나 차의 원료인 차나무가 원래 일본에 없었던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서는 그 주장이 각각 다르다. 즉 일본에 원래 있었다고 주장하는 고유설과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도래설이 팽팽히 맞서 있다. 일본의 시코쿠이나 큐슈 산간벽지에는 야마차(山茶)라고 부르는 자생차가 있으며 꽤 많은 면적에 분포하고 있다. 이 야마차는 예로부터 이들 지역에 자생하고 있었다는 보고도 적지 않다. 야마차에 대해 자세한 연구를 한 다니구치(谷口; 1936년)는 [야마차가 분포하고 있는 지형, 지질 등을 조사한 결과 유사이전에서부터 일본에 자생하고 있는 고유식물이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보고가 있은 후에 일본의 식물학자나 차 전문가들 간에는 고유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유설과 도래설 주장에 대한 논거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고유설
1. 다니구치(谷口熊之助, 1936년) 야마차 調査報告 [茶業組合創立50周年紀念論文集] 第1集 [山茶의 광범위한 분포와 지형, 지질를 보면 유사이전부터 일본에 번성했던 고유식물이다.]
2. 미야치(宮地鐵冶, 1940) 日本茶史 [茶] 昭和 15年 5月號 [야마차가 일본 원산이라고 하는 것은 마땅하다.]
3. 마끼노(木野富太郞, 1949)[日本植物圖鑑] 北隆館 東京 [차는 중국 및 일본원산의 상록관목으로써...]
4. 나까이(中井猛之進, 1950), 동백나무(耐冬), 춘백(茶梅), 차나무(?, 苦余)에 대해서 [自然科學과 博物館] 17권 1호 [차나무는 산요우(山陽, 역자주: 오까야마, 히로사마 및 야마구치켄의 세토나이까이를 포함한 지역), 큐슈에 자생하고 있으며 옛날 중국에서 고승이 가지고 돌아와서 증식한 것이라고 전해져 내료오고 있으나 그것은 과장된 것이다.]
5. 소네(曾根俊一, 1976) 茶의 傳來와 그 歷史 [食의 科學] 제28호 [에이사이 선사의 [끽차양생기(喫茶養生記)]에 의하면 자연에서 자라난 차나무를 가리켜, 산야에 자생하는 차나무가 있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있다]
이상이 고유설에 대한 보고들이다. 이들 중에 마끼노(木野)씨는 식물도감에 일본원산이라고 기재하고 있지만 도래설을 지향하면서도 단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보고에 근거하고 있다.
마끼노도미다로(木野富太郞: 1949): 다우차와 차나무에 대한 약설 [마끼노식물혼혼록(木野植物混混錄)] 제10호 [다우차는 일본의 어느 곳에도 야생하지 않는다. 큐슈에서 야마차라고 부르고 있으며 곳에 따라서는 제다에도 사용하고 있지만 단지 산에 심은 것에 불과하며 순수한 자연생이 아니다. 일본 차나무의 자생 문제는 앞으로 좋은 연구과제로 남두고 있는 것이다.]
# 도래설
1. 마쯔시다. 하시모토(松下智. 橋本實, 1961) 日本에 있어서 山茶에 대해서는 [茶業技術硏究發表會講演要旨] 1961년 10월 [구마모토켄(熊本縣) 이즈미무라(泉村)지구에 있어서 고로종의 분포를 확인했으므로 야마차도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함]
2. 마쯔시다(松下智, 1970) 日本에 있어서 茶의 系譜 [季刊 人類學] 1卷4號 [대만의 고유종과 도입종이 형태학적으로 다른 것과 같이 (하시모토(橋本; 1967-69), 일본에 있어서도 야마차와 재배차의 상이점을 찾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간에 차이를 밝혀 낼 수 없는 것은 야마차가 바로 도입종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의 근연식물인 동백나무나 산다화(山茶花:춘백)는 동아를 형성하지만 차나무는 동아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것은 야마차가 남방에서 전래된 식물이기 때문이다.]
3. 하시모토(橋本實, 1973) 日本茶의 傳來에 關한 知識 [植物과 文化] 第8號 [고로종의 형태학적 특징은 1개의 열성유전자에 의해 표현이 되는 형질이다(미에바라; 蓬原, 1966). 일본의 야마차가 일본 고유식물이라고 한다면 야마차 분포지역에, 중국남부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로종의 유전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4. 하시모토(橋本實편, 1975)[지방차의 연구] 아이찌켄(愛知縣) 鄕土資料刊行會, 나고야(名古屋) [야마차의 분포는 마을 주변의 경지나 목초지로 이용하는 장소, 또는 화전 적지(跡地)로 이용한 지역등 인공이 가해진 지역에 한해서 야마차가 자생하며 일차림(一次林) 지역에는 생육하고 있지 않다. 또한 야마차가 분포된 지역은 전통적으로 차를 제조하던 곳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고유종인가 도래종인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이 우량형질을 가지고 있는 육종재료의 탐색을 목적으로 야마차를 조사하기 사작하였다. 그런데 야마차와 재배차의 형태에 전혀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야마차 가운데 많은 고로형의 차가 발견되었다. 일본의 야마차가 고유식물이라고 한다면 야마차의 분포지역에 중국 남부에 자생하고 있다는 고로종(皐蘆形: f. macrophylla)의 출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를 가지고 고유종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차나무는 타가수정의 식물로써 자유롭게 교잡이 되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돌연변이가 어디서나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즉 자연교잡에 의한 유전자교환이 자유롭게 일어나므로써 여러 가지 종류의 연속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야마차의 분포는 국소적으로 마을주변의 경작지나 목초지로 이용하고 있던 곳, 또는 화전적지와 같은 인공적인 힘이 가해진 지역에 한해서 분포하고 있으며, 일차 삼림지대에는 전혀 분포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생태계적인 측면에서 고찰해 볼때 자연적인 상태라고 볼수 없기 때문에 야마차는 재배차에서 나온 하나의 escape종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다음은 야마차가 중국에서 온 도래종이라고 한다면, 중국종과 비교해 봐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소화(昭和) 53년 8월(1978년), 중국의 절강, 강서 및 광동 각성의 차산지를 시찰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 절강성 항주(杭州)의 차원을 보고 매우 놀란 것은 일본에서 핀카(야마차 가운데 많이 있음)라고 부르는 잎이 매우 작은형의 차(f. parvifolia)나무가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였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현관인 항주와 일본간에 왕래가 빈번했기 때문으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중국 각지에서 채집한 잎을 말린 표본의 형태학적 측정치는 야마차와 비교해 봐도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단지 측정치의 비교만으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보다 객관적인 유사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다변량해석 분야인 군집(cluster)분석을 시도하였다. 공시재료는 시코쿠(四國)와 큐슈의 야마차 각 10개체 및 절강성과 강서성의 차 각 10개체씩 합계 40개체를 공시하였으며 유사성의 척도로서 상관계수를 이용하여 군집분석을 하였다(그림3). 이 군집분석에서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운 것일수록 유사성이 높다. 그 결과 야마차와 중국차는 몇 지역에서 높은 유사성을 나타냈으며 거의 대부분이 차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분석결과에서도 일본의 야마차는 중국에서 들어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보여 주고 있다.
# 부기 1. 유학승(留學僧)이 가지고 온 차종자가 발아를 했을까?
사료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원으로 오우미(近江), 사까모토(阪本)의 히요시다원(日吉茶園)은 엔리야쿠(延曆) 24년 (805년) 사이죠(最澄)가 덴타이산(天太山)에서 종자를 가져와서 심은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구우까이(空海)도 당나라에서 종자를 가지고 와서 히젠(肥前)의 나가사끼(長崎)에 심었다고 한다. 또한 고우닌(弘仁) 6년(815년)에는 에이츄(永忠)가 차를 다려 천황에게 헌상하였으며 같은해 기나이(畿內) 및 오우미(近江), 단바(丹波), 하리마(播磨)의 여러 지방에서 차의 재배를 권장하였고 했다. 분지원년(文治元年; 1185년) 에이사이(榮西)는 송나라에서 가지고 온 종자를 도가노오(梅尾)의 묘에쇼닌(明惠上人)에게 진상하였으며 재배법도 같이 전했다. 다시 송나라에 갔다오면서 종자를 가지고 와 히젠(肥前)의 세부리산(背振山)에 파종했다고 전해온다.
소화(昭和) 54년 1월 9일부터 11일까지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개최한 심포지엄 [차의 문화](代表. 모리야다케시(守屋毅)氏)의 보고와 토론석상에서 이들 유학승들이 가져온 차종자가 정말로 발아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대개의 논자들이 차나무는 종자 수명이 짧기 때문에 건조 상태에서는 발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묘목을 가져 왔다면 재배에 성공하였을 것으로 믿을 수 있으나 여러 가지 사료를 찾아 보아도 묘목을 가지고 온 기록은 없다. 옛날 유용식물의 인위적 전파, 특히 목본성 식물은 살아있는 상태로 전파된 사례가 대부분이였다. 무라이(村井; 1979년)는 [차의 문화사] 가운데서 에이사이는 두번째로 송나라에 갔을 때 보리수 묘목 한 주를 상선에 부탁하여 일본으로 보냈다는 점에서 에이사이가 가지고 왔던 것이 차나무 묘목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도 할수 있게 한다.
소화(昭和) 53년 8월7일부터 27일 까지 중국을 방문할 때 동행한 오가와히데끼(小川英樹)씨는 에이사이가 일본에 차종자를 가져 왔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종자 발아 가능성을 시험해 보았다. 에이사이(榮西)는 두번 송나라에 갔는데 두 번째는 겐큐(建久) 2년 7월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해 7월은 태양력으로 고치면 8월이거나 9월이 된다. 8월 11일에 절강성 항주의 다원에서 완숙되었다고 생각되는 차나무 열매를 따서, 열매가 급격하게 마르지 않도록 하여 일본으로 가지고 와서 9월에 들어 과피가 벌어지게 되었을 때 파종하였다. 가지고 왔던 약 20립의 종자 중에서 다음해 3개가 싹이 텄고 여름에 관리가 부실하여 2개가 죽었으나 1개는 순조롭게 자랐다. 그러므로 8월말일지라도 과실의 상태로 가져왔다면 충분히 발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확인 된 셈이다. 에이사이가 차종자을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하여도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 부기 2. 차나무와 헤이게오찌우도부락(平家落人部落)
사이츄(最澄)나 구우가이(空海)가 가져온 차나무 종자는 낀기(近畿)지방을 중심으로 식재되었으며, 귀족사회에 차 마시는 습관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간도우(關東)에는 가와고에(川越)의 호시노산(星野山) 끼다인(喜多園)의 지까쿠(慈覺)대사가 덴죠우(天長) 7년(830년) 사원을 건립할 때 히에이산록(比叡山麓)에서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경내에 심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이다마켄(埼玉縣)의 이루마가와(入間川)연안을 따라 전개되는 차밭은 사야마차(狹山茶)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분세이년간(文政年間; 1818-1829)에 다원을 일으킨 것이 기초가 되었다. 그러므로 간도우(關東)지방에서 생산되는 야마차는 거의 대부분이 이들의 escape종이라고 생각된다.
귀족사회에 보급된 차 마시는 풍습은 얼마되지 않아 헤이게(平家)가 멸망(1185)하여 헤이게(平家) 일족이 도시를 떠나 살곳을 찾아 다른 곳으로 갈 적에, 그들이 가지고가는 물건 속에는 그곳에서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농작물의 종자를 가지고 갔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농작물 종자와 섞이어서 차종자도 가져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마모토켄(熊本縣)의 고가노요(五家莊), 미야자끼켄(宮崎縣)의 시이바쵸(椎葉峽), 도꾸시마켄(德島縣)의 이야(祖谷)지방등 헤이게(平家) 집안이 도망가서 산 곳에는 항상 야마차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도꾸시마켄(德島縣)의 나까가와(那賀川)중류지역에 있는 아이오이빡(相生町)는 아와반차(阿波番茶) 산지로 알려져 있으나 여기에서 재배되는 차는 이 강의 상류인 기자와무라데와(木澤村出羽)부락에서 가져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데와(出羽)부락도 헤이게(平家)의 오찌우도부락(落人部落)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선조 대대로 손 작업으로 만들어 집에서 사용하는 자가용 차(茶)를 제조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큐슈나 시코쿠(四國)의 산지에 야마차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헤이게오찌우도(平家落人)들의 손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추정 할 수가 있다.
#부기 3. 고이시차(碁石茶)와 해적(海賊)
고지켄(高知縣)의 후루노가와(吉野川) 유역에 있는 오오도요쵸(大豊町)는 특이한 차인 고이시차(碁石茶)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도산센(土讚線)의 도요나가역(豊永驛)에서 차를 내리면 요시노가와(吉野川)를 사이에 둔 산의 양사면에 야마차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요시노가와 반대쪽 산의 사면에 농가들이 점점이 산재되어 있는데 근처에 있는 모모바라(桃原)부락에서는 이 야마차를 이용해서 고이시차를 만들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만든 차를 맛이 없다고 하여 결코 마시지 않는 점이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위탁제조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고이시차의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고이시차의 생산은 이 부근 일대에서 상당한 량이 나오고 있으나 요즈음에는 수요량이 급감하여 앞으로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차는 세토나이가이(瀨戶內海)에 산재되어 있는 섬 소위 소금기가 들어 있는 짠 음료수를 사용하는 섬사람들이 주로 사서 마시는 차다. 염분을 포함하고 있는 음료수에 이 차가 가장 적합하다고 해서 그 수요량이 적기는 하지만 아직 생산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섬사람들에게도 간이상수도시설이 완비되면서 매년 그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몇일 전 본인이 쓴 [지방차의 연구]를 읽은 한 독자에게서 고이시차와 비슷한 한국의 전차(錢茶)는 배타는 사람들이 마시기에 적합한 차로써 이 차를 해적들이 마시는 차라고 쓴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옛날 세토나이가이(瀨戶內海)를 쓸고 다니던 해적들이 좋아해서 이차를 마셨을 것이며, 대륙연안을 휩쓸고 다녔던 해적들이 중국남부에서부터 시코쿠(四國)지방에 이 차의 제조법 전해 준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지리적으로도 대륙연안을 노략질하던 해적선이 구로시오(黑潮)를 따라 기항하던 곳이 시코쿠 남부지역 항구였을 것이다. 이곳에 와서 특별히 고이시차를 만들게 하였을 것이다. 요즈음 말하는 위탁가공방식이다. 이러한 추론은 고이시차의 제다법이 시코쿠에 만 있으며 결코 이곳 사람들이 이 차를 마시지 않는다는 점에 기초하여 추론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야마차 한가지 문제만이 가지고 조사해 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범벅이 되어서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앞으로 흥미진진한 연구 분야로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