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수) 말씀 묵상 (갈라 2,1-2.7-14) (이근상 신부)
형제 여러분,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디아 2,1-2)
사도 바오로의 행적은 다른 사도들에 비하면 그래도 상세하게 시간순으로 배열이 가능하다. 서간들과 사도행전과 같은 자료들이 도움을 준다. 해서 오늘 우리는 그의 1,2,3차 전도여행을 가늠해볼 수 있고, 로마에서의 생의 마지막도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적 중에 빈구멍이 있는데 먼저 예수님을 갑작스럽게 만난 뒤 아라비아로 내려가 보낸 3년의 시간이다.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14년. 우린 그의 첫 3년, 그가 찾아가 은거한 곳이 아라비아의 어디인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서간도 사도행전도 그에 대해서 전해주는 바가 없다. 그저 추측컨데, 아마도 나바테아 왕국, 그 중에서도 페트라에서 머물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페트라는 지금도 요르단 관광을 가면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다. 그 때 아라비아라고 하면 그곳을 뜻할만큼 크고 융성한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사람이 있어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 여하튼 그리고 보름을 예루살렘에서 지낸뒤, 또 한번의 긴 시간이 있다. 그건 오늘 독서가 말하듯, 14년이다. 그 시기 그는 고향 지방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이게 또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다. 뭘했는지 우린 잘 모른다. 오히려 그 뒤의 선교지에서의 활약은 서간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정작 회심 후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고향에서의 선교에 대해서는 우린 잘 모른다.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그저 막연하게 첫 3년의 완전한 침묵과 달리, 이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갈라디아1,21-22) 이게 14년이다. 그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때만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때의 그를 모른다.
여하튼 그의 생애, 바오로의 회심후 공생활의 거진 반은 이렇게 뭔가 빈구멍같은, 우리가 모르는 시간들이다. 그러고보면 그때만이 아니다. 틈틈이 그의 생은 구멍이 많다. 우린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아는 것같지만, 대부분 그의 생은 참 외로운 시간들이다. 우린 그를 모른다. 우리만 모르는게 아니라 그 역시 어둠 속에서 눈이 감겨진 날들이 많았으리라 감히 추측할 뿐이다.
그가 일어나 주님을 증언하는 날이란, 해서 늘상 해오던 일, 해야 할 일이라 철썩같이 믿고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일들, 익숙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조심스럽게 짐작한다. 그의 마음같아서는 아무도 없는 세상의 저 끝에서 주님의 허리춤을 붙잡고 묻고 또 물으며 숨고 또 숨으며 자신을 더 날카롭게 벼리고만 싶었을 것 아닐까. 사명도 자신감도 이미 그에게는 너무나 허황한 삶의 짐들. 믿는 이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 믿었던 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없어, 할 수 없어 나서야 하는 길들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바오로는 소리치듯. 외마디 비명처럼 그리 외쳤을 것이라... 오늘 독서, 십 사 년이란 숫자가 눈에 밟힌다. 그는 숨었던 사람이다. 부끄러운, 나설 수 없는, 할말도 없는... 감히 우리도 숨고 싶은 날이 있다. 그 때가 바로 나서야 하는 날이라고, 바오로가 눈으로 말하는 것같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ruQ3Bz8B1E8FBhrYeg6JGPVRv9owne4hLGQFpD53859vyNmai77jAD6pDkcQKnEV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