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복지와 문화의 십자가
박몽구
세모를 앞둔 지난해 12월 10일 국회의원관 소회의실에서는 ‘문인복지, 실태와 대안’이라는 주제를 내건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민주당 소속 도종환 의원과 새누리당 소속 김장실 의원이 공동 주관하는 등 여야가 보기 드물게 한마음이 된 자리였다. 현역 시인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출신이라는 문화 전문 의원들이 뭉친 셈이다. 또한 한국문인협회와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작가회의가 공동 주최하는 등 모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인 기회이기도 하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150여 명의 문인들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는 등 오늘 한국 문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욕구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설가 김모(56세) 씨는 서울 성수동의 한 월세방에서 10년 이상을 기거하며 작품을 써왔으나 뾰족하게 발표와 출판의 기회를 얻지 못해 고생하던 중, 2013년 2월 영등포역에서 노숙자로 발견되었다. 이후 또 알콜성 치매 증세를 보이며 행려자로 떠돌다가 제기동 동부시립병원에 유치되게 되었다. 그런데 4월에 기간이 만료되어 그곳에서 나왔으나 가족도 친지도 연락이 모두 단절된 상태에서 결국 현재는 영주 소재 모 알콜성 정신질환 전문병원에 강제 입원되어 있다.
역시 소설가 박모(53세) 씨는 대학의 문창과를 졸업한 이후 1년여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전업작가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순수 소설 창작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부업으로 출판사 등지에서 외국동화 번역 등으로 겨우 연명해 오는 처지였다. 그러나 1년 반쯤 전에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은 모든 기억을 잃고 육체적, 정신적 자립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야 말았다. 발병 직후에는 요양병원에 후송되어 의료보호 대상자 신분으로 치료지원을 받았으나 지금은 강제 퇴원되어 가택에서 고작 팔순 노모의 간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두 문인들의 경우, 정상인으로서 생계곤란 정도가 아니라 중증환자로서 생존 위협의 상태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인, 문인의 신분에 따르는 아무런 국가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어찌 보면 죽음보다도 나을 것이 없는 하루하루의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문인이라는 사람들이 아직도 얼마나 벼랑 끝 생계 및 복지실태에 놓여있는가, 그 암흑 속 현주소를 나타내주는 극명한 예이다.
이날 세미나의 발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선 필자가 오늘 한국 문인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모두에 내세운 말이다. 최근 한 젊고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가 글쓰기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나머지, 차가운 셋방에서 굶어서 절명한 사체로 발견되면서 예술가의 처한 현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었다. 그 결과 세칭 ‘최고운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고, 지난해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문화예술복지재단이 출범하였다. 또 국회에서는 세칭 ‘영화인 노동조합 설립법’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시인과 소설가 등 순수문학 창작자들의 경우에는 이에 못지않은 열악한 삶의 현실이 일반화되어 있다
63.8%의 문인들 월수입 30만원 미만!
한국작가회의에서는 이처럼 계속해서 증대되는 문인복지의 사회적 의미에 주목하여 지난 해 9월과 10월에 걸쳐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문인복지실태에 대한 설문지 설문조사를 시행한 바 있다. 그런데 307명의 응답자 가운데 무려 73.9%가 월평균 소득 100만 원 이하로 표기함으로써 문인들의 생계가 얼마나 열악한 수준인지 그 실태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하겠다. 보건복지부 고시 4인가구 기준 최저생계비가 월 163만 원임에 비추어 볼 때, 문인들 생계의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대목이다. 압도적인 비율의 문인들이 국가가 정하는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입으로 생활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다른 여타의 소득원은 차치하고 순전히 글과 책을 써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월 30만 원에도 못 미치는 문인들이 63.8%라는 사실은 글쓰기, 책쓰기라고 하는 문학창작행위가 얼마나도 배고픈 일인가를 보여주는 참으로 서글픈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30만 원은 고사하고 단 한 푼의 고료나 인세도 벌지 못하는 문인들도 솔직히 상당수에 이를 것이다. 아울러 이와 유관한 문항으로써 문예지 원고료 수령횟수를 묻는 질문에서도 83.1%가 평균 1년에 2번도 못되는 수령횟수로 결과가 나타난 것은 너무나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창작현실을 드러내주었다.
통계청이 작년 3월 발표한 <인구, 가구 구조와 주거특성 변화(1995~2010)>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자가주택 거주비율은 54.2%로, 전세와 월세 거주 비율은 각각 21.7%, 21.5%로 조사됐다. 이에 비하여 조사 대상 문인들 가운데 자가주택 거주비율은 29%, 전세의 경우는 27.1%, 월세의 경우에는 38.4%로 나타났다. 조사 시점의 년차가 다소 있긴 하되, 문인들의 소위 ‘내집 마련’ 비율은 국가 평균의 거의 1/2 수준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나 주거환경 역시 열악함이 드러났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전세계 국가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부국에 속하는 20여 개 국가들이 모인 OECD에 속해 있고, 한류(韓流)를 비롯하여 대중문화가 세계의 무대와 안방을 무시로 넘나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은 시인과 작가 신경숙의 작품이 속속 외국어로 번역되고, 고 시인의 경우에는 벌써 10여 년 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문학과 문화를 우리나라를 널리 알리고 국격을 높이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도 실상 국내에서의 문인에 대한 예우는 형편이 없을뿐더러, 문인들이 국민의 정신적 위상 제고와 국격을 높인 데 기여한 것과는 반대로 문인 연금 제도나 문화복지카드 등 제도적인 장치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어려운 창작 여건 돕는 선진국들 본받아야
이날 세미나에서는 우리와 국민소득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프랑스 등 선진외국의 문인복지 사례도 소개되어 관심을 끌었다. 프랑스 문화통신부(部) 산하 국립도서센터(CNC)는 일정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프랑스어로 쓰인 최소 1권 이상의 저작물을 인허가출판사에서 500부 이상 출판한 저소득층 저작자에게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에밀 시오랑 장학금은 수필가가 철학적·역사적·문학적·정치적 수필 저작계획(projet die、criture)을 가지고 있는 경우 국립도서센터(CNC)의 심사 후 지급되는 장학금이고, 금액은 12,000유로이다. 뿐만 아니라 국립도서센터(CNC)에서는 저작자가 저작 계획을 제출할 경우, 심사를 거쳐‘탐험 장학금’(Bourse de de、couverte, 3,500유로), ‘창작장학금’(Bourse de cre、ation, 7,000~14,000유로), ‘안식년 장학금’(Bourse d'anne、e sabbatique, 28,000유로) 등 각종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작품이 완성될 동안 평균 월 2,000 유로의 거주지 보조금도 주고 있다. 지원금을 받은 저작자는 최대 30%의 시간을 작가와의 만남, 대화, 산책 등의 문학행사에 참여함으로써 그 의무를 다하게 된다.
또 영국의 경우 각종 문인단체들이 작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조합 형태를 운영되는 한편으로, 어려움에 처할 경우 문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의욕을 고취시켜 가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1884년 시작된 영국의 문인협회(The Society of Authors, SA)에서는 평시에는 다양한 문학상(Roger Deakins Award, Michael Meyer Award) 등을 운영하여 역량있는 작가들을 지원하지만, 작가들이 갑작스러운 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는 작품만이 문인들의 자활 지원에 나사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며, 그 같은 기금을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출연 지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SA의 기금중 하나인 The Author's Foundation을 통해, 출판사의 선불 지급 외에도 조사, 여행 경비 혹은 일반적인 생활에 있어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 그가 작품을 출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이처럼 선진외국에서 문인단체를 중심으로 창작지원 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문인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따르고 있다는 점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즉 어려움에 처한 문인들을 지원함으로써, 문인들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되살려 창작에 매진하도록 한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1875억 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 비해 53.3% 늘어난 규모다. 예술인복지사업에 투입하는 돈은 10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4대보험, 실업급여는 빠진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 계획에는 프랑스 등 선진국 예술인복지의 핵심으로 꼽히는 실업급여,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이 빠져 있다. 그런데 문학 분야에 지원과 문인 복지 현실은 더욱 열악해져 있는 게 현실이다. 올해 들어 순수문학 작품집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우수문학도서 선정지원사업’이 출판문화진흥위원회로 이관되면서, 전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산 가운데 문학 분야 예산은 예년의 4%에서 2%로 대폭 줄어들었다.
문인복지, 현안 해결 넘어 제도적 장치 마련으로!
『2012―문화예술정책백서』에 따르면 ‘문화는 인간 상호 간의 소통의 핵심이자 인간의 삶의 질과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무형의 환경이자 활동입니다. 맑은 공기가 없이 숨 쉬거나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삶과 의식 또한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들어 문화는 복지, 지역 교류, 평생교육, 국제 외교, 산업 진흥의 필요 조건으로서 우리 사회의 통합과 성장을 위한 중심 동력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정부에서는 문화를 복지와 평생교육의 필요조건이자 사회 통합의 반려로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그 주체가 되어야 할 예술인, 특히 문인들에게는 그 같은 역할 수행을 위한 기반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부는 매년 40여 명의 문인들에게 1인당 1천만 원씩 주어지는 문예창작기금을 대폭 확장함은 물론, 나아가 현재 약 5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문인들이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건강 악화 등 어려움에 처했을 경우 제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예산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일시적인 부조를 넘어 문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고, 지속적으로 소득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학교와 공공도서관 및 사회보호시설 등에 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문인 교사’ 파견 제도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나라의 국격을 위해 헌신해온 문인들이 노후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도록 ‘문인 연금’ 제도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문인들이 마음놓고 창작에 임할 수 있음은 물론, 경제적 위상을 넘어 우리의 국격을 한층 드높이는 데도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인당 구민소득 2만불 시대에 5% 내외의 문인만이 창작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생존위기에 처해 있다. 문화시대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문인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대책은 미흡한 바, 문화산업에서 고부가가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문학인을 밀어내지 말고 문학이 장기적인 사회적 자산이라는 인식과 사회적 공공성이라는 인식하에 문인복지정책 펼쳐야 할 것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부의 문인 정책에 대한 문제 지적 및 바람직한 문인복지의 방향에 대한 제시도 이루어졌지만, 아울러 문인단체들 역시 어려움에 처한 문인들을 위한 예산 확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 등으로 제기되었다. 모처럼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세 단체가 공동추최한 문인복지 세미나는 여러 면에서 우리 문인들의 현실을 일깨우는 한편,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번 세미나가 우리 문인복지의 현실에 대한 일호적인 관심을 넘어, 문인들이 제도적으로 안심하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