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문학의집에 도착을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안내데스크에서 여자 안내원이 방명록을 내밀면서 3명중 1명만 대표로 쓰라고해서 방명록에 서울 종로구 황운재로 기재를 하고 문학관에 들어섰다. 문학관은4층으로 되어있었는데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안내를 했다. 그곳에는 박경리선생의 태어난때부터 운명하기까지의 일대기를 벽면에 사진과 함께 게재해놓았고, 가운데 유리관 테이블에는 작품을 썼던 원고지,만년필, 생활용품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4층에서 3층,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와 관람을 한다음 밖으로 나왔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12월2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41년 통영초등학교, 1942년 진주여자고등학교입학, 1945년 진주여고졸업 하고 졸업을 한 후 다음해인 1946년 남편 김행도와 결혼하고 딸 김영주( 추후 김영주는 저항시인 김지하와 결혼)를 출산, 1948년 인천으로 이사, 자그마한 책방운영, 아들 김철수 출생, 1949년 서울 흑석동으로 이주,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졸업, 1952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후 행방불명으로 은행원으로 일을하면서 2자녀를 키우면서 생활 하던중 1956년 아들 김철수가 사고로 병원치료중 사망을 한다. 이일을 소재로 한 자서전 단편소설“불안지대”를 김동리선생이 “계산”이라는 제목으로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작가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결혼에서 남편의 사망, 아들의 사망으로 가슴에 많은 아품을 간직한 여인으로 인고의 시간이 토지(1969~1994년 완결)라는 대하소설을 남기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문학관을 나와 박경리선생이 살던집을 둘러본 후 점심을 먹으러 예약을 해놨던 원주추어탕집으로 출발했다.
박경리문학관에서 차로 10여분 이동해서 도착을 했는데 밖에서는 허스름한 기와집으로 조그마한 식당이려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사자 옛집을 고쳐서인지 공간도 넓었고, 방도 많아 족히 100여명이 식사를 해도 남을 공간에 다시한번 놀랬다. 이곳은 60년이 넘은 식당이라 그런지 곧바로 음식이 나오지 않고 나온 재료를 끓여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조금 흠이었지만 추어탕의 맛은 기다림의 지루함을 금방 잊게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몰아 소금산출렁다리를 보러가기로 하고 그곳을 향해 출발했다.
소금산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에 우뚝솟은 소금산(해발 343M)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이름난 명산이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소개될만큼 기암괴석과 맑은 강물, 울창한 숲과 넓은 백사장이 일품이다.
소금산 등산은 주차장이 마련된간현관광지에서 시작되는데 원주시에서 서쪽으로 17KM떨어진 섬강과 삼산천 강물이 합수되는 지점에 자리해 검푸른 강물 주변으로 40~50M의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관광지를 감싸고 있다.
원주시내에서 약 30여분간 달리다 보니 소금산 주변인 섬강이 나오는데 이곳 가로수길은 아직도 벚꽃이 만개를 해서 우리를 맞이했다. 서울은 벌써 벚꽃이 다 떨어져 지고 있었는데.....
소금산 입구부터 차량정체가 시작되었다. 간현관광지 주차장은 꽉차있어 임시주차장으로 이동을 해야하는데 임시 주차장으로 가는길은 거북이 기어가는 속도로 30여분을 지나서야 섬강 벌판에 불도우저로 다져서 임시로 만들어 놓은곳인데 이곳 또한 관광버스와 자가용으로 꽉차있어 빈곳이 없는가 찾으면서 가다보니 강가 맨 끝에쪽에 비어있는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추자를 했다. 차량을 주차하고 소금강입구 섬강다리까지 걸어나오는되도 20여분간을 걸어나와야 했다.
소금강출렁다리로 가는쪽은 인산인해로 갈수가 없었고, 안내인이 지름길로 안내를 했다. 출렁다리로 올라가는길은 테크로드 계단으로 약 500여 미터를 올라서야 하는데 사람들로 꽉차있어 가만이 서있어도 뒤에서 떠밀리다시피 올라갔다. 사람이 없으면 계단을 오르려면 땀좀 흘렸을텐데, 한계단 오르고 기다렸다가 또 한계단 오르고하다보니 힘드는줄 몰랐고 사람들 구경하느랴 힘든줄도 몰랐다.
테크로드 계단은 한줄에 4~5명이 줄을 서다시피 올라갔지만 계단이 없는 곳에는 한줄이 10~15명이 되어 한마디로 병목현상이 났는데 바닥은 어제 비가와서 질퍽질퍽했다. 이렇게해서 출렁다리를 구경해야되나하는 후회스러운 마음도 생겼지만 1시간정도 밀리다시피 오르다보니 눈앞에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발판이 철망처럼되어있어 바닥이 훤히 보여 나이 많이드신 분들이나 고소공포증이 있는사람은 밑을 쳐다보지 않고 눈을감고 건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소금산출렁다리는 야간에도 건너게 하려고 하는지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 소금산출렁다리는 17:00까지 입장이 가능하고 아직까지는 요금을 받지 않는데 앞으로는 요금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출렁다리를 건넜고 그냥 내려가기 아쉬워 우리들은 소금산 정상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출렁다리를 건너30여분을 올라가다보면 소금산 정상이 나오는데 그다지 경사도 높지 않았고 평소 산 정상에 오르다보면 능선이 나타나는데 그냥 능선을 오르는 정도로 힘을 들지 않았다. 정상에서 철계단이 있는쪽으로 해서 유원지 쪽으로 내려가는 코스이지만 철계단 경사도가 거의 80도정도에다가 바람이 세게 불어 내려가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 우리들은 다시 올라오던길로 되돌아 내려왔다.
관광객들이 다 빠져나간 시간이라 출렁다리는 한가해졌다. 출렁다리주변 스피커에서는 17:00까지 입장이 된다면서 속히 내려와 달라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우리들은 옆 우회로로 해서 하산을 했다.
주차장까지 가는 시간은 다리를 건너 임시주차장까지 40여분을 걸어갔다. 그렇게 많이 주차된 차량은 거의 다 빠져나갔고 우리차량을 비롯해 10여대만 그 넓은 주차장에 썰렁하게 주차되어있었다. 차량을 돌려 원주시내로 들어왔다. 30여분간을 달려 원주의 신도시인 혁신도시에는 공공시설이 많이 들어와있고, 고층의 아파트로 둘러싸여있었다. 저녁은 양꼬치를 안주로 삼아 술한잔을 하면서 지친몸을 달랬다.
원주에서 청량리행 무궁화열차는 21:04이다. 식사를 하고 처제의 숙소에 들러 커피한잔을 하고 나니 열차시간이 다되어 그곳을 빠져나와 원주역으로 도착했다.
다른기관의 기관장이라면 정부가 내어준 관사가 28평에서 33평으로 컸지만 11평의 오피스텔이 지방환경청장의 관사는 격에 맞지 않느냐고 하자 큰곳이 필요없어 이렇게 해달라고 했다면서 이제 4~5개월있으면 본청으로 들어갈건데... 하면서 애써 대답을 회피했다.
무궁화열차에 몸을 싣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잠깐 감은 것 같았는데 벌써 청량리역에 도착했따. 시간은 밤 10시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첫댓글 친구 덕분에 구경 한번 잘했네,,,, 그런데 인파들이 우찌 그리 많은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