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5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17장 14절 - 27절 -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우고 연합되어 주의 뜻을 이루는 능력인 참 믿음을 소유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은혜 가운데 하루를 시작하며 주께 나아갑니다.
주님 앞에 서기까지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짐이 되며 걸림돌이 됨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서면 그 모든 것이 긍정이 되고 기쁨이 되며 감사로 바뀝니다.
연약한 인생의 모습에서 벗어나 주와 함께 함으로 강건한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육신의 고단함을 이기고 주를 향한 마음을 다시 바르게 세우는 시간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먼저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주의 나라와 뜻에 합당한 모습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영생의 길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예수님과 3명의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온 시간은 산에 올라간 다음 날이었고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고 누가는 기록한다.(눅9:37) 이때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이 간질로 인해 심히 고생하고 있었기에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으나 고치지 못하고 있었고 이에 서기관들이 그 일에 대해 변론하고 있었다.(막9:14)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간질을 앓고 있는 아들의 상태는 심히 좋지 않았고 이에 그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자기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병을 고치지 못했는데 이는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였기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패역한 세대는 당시 논쟁을 하고 있던 서기관들과 제자들과 무리들 모두를 의미하며 예수님은 병자를 놓고 논쟁만 벌이는 모습에 대해 책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으시고 귀신이 나가자 아이는 온전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묻게 되었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작기 때문임을 말씀하신다. 마가는 예수님이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선포하셨다.(막9:29) 이러한 예수님의 선포는 믿음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21 (없음)
본절은 막9:29절의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구절이 몇 몇 사본에 기록되었으나 원본에는 기록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하여 없음으로 표시하고 있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갈릴리에 머물고 있을 때 다시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내용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매우 근심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갈릴리의 중심지역이었던 가버나움을 방문하신다. 반세겔 받는 자들은 성전세를 거두는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성전세를 내도록 요구했음을 보여준다.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연이 성전세를 내실 것으로 생각하고 대답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세금을 내실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성전 세금으로 반세겔을 내시게 된다.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지 않음으로 인해 이 사실을 악용하여 자신들도 성전세를 내지 않거나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배척의 태도를 가지지 않도록 성전세를 내도록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방법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게 하셨고 이것으로 베드로와 자신의 성전세를 내도록 만드신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3명의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신 후에 다시 산에서 내려오셨고 이때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이 서로 변론하고 있었음을 발견하신다.
이는 한 사람이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 왔고 마침 예수님이 없자 제자들에게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했지만 고치지 못하여 변론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당시 아들의 상태는 심각했으며 예수님을 보고는 거품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등 영과 육이 많이 상해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아들의 심각한 모습을 보고 당시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가지 못한 9명의 제자들은 겁을 먹고 마음에 확신이 아닌 두려움으로 아들을 대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결국 담대한 믿음이 아닌 흔들리고 연약한 믿음을 가지게 만들었기에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사람들의 지탄과 훼방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온전한 믿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친밀감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대한 신뢰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 믿음 안에는 하나님을 아는 영생의 삶이 담겨져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영적 성장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받았으며 실제로 전도하러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기도 했다.(마10:1, 눅9:6)
결국 그들이 간질병에 걸린 아들을 치유하지 못한 이유는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이며 마음 가운데 주님과 온전한 신뢰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주님과 온전한 신뢰가 세워지지 않는 가운데 행하는 모든 일들은 믿음의 행위가 되지 않고 자기의 의를 이루는 행위가 되어 세상에서 조롱당하는 이유가 된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바른 관계를 통한 열매를 제시했음을 증거 한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4~7)
믿음은 주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있으면 자연스럽게 세워지고 강해지며 열매 맺게 된다.
그 열매에 대한 내용으로 예수님은 제자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얻는 것으로 나타나게 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주의 복음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당시 제자들의 믿음은 한계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 후, 즉 복음의 온전한 성취와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온전한 믿음으로 많은 능력을 행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믿음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것이며 주님과 교제함으로써 주님을 알아가며 주와 연합되어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어제 인천에서 지내시는 한 성도님과 교제하다 그분이 교회를 옮기신 이유를 듣게 되었다.
그분은 청년때부터 약 20년 간 다니던 교회를 나오시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목사님이 교회를 사유화하고 노골적으로 헌금만 강조하는 분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젊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감리교의 감독이 되고 난 후부터는 너무 많이 변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정치적인 이야기와 행사를 하면서 정치편향적인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다른 교회로 가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왜 이렇게 세속적이며 정치에 편향하여 망가져가고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물질적 부요함만을 위해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한 두 교회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결국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온전한 관계가 깨어지고 스스로의 의를 위해 거짓과 타협하며 세상적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직분과 상관없이 모든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복음을 통해 바른 관계를 세워나가는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함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그 복음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자로, 주와 교제함으로써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지는 일에 동참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참 믿음과 삶의 열매에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일깨워 주십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출발하며 기도함으로 주와 교제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를 드러내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며 세상 부귀영화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으로 향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참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주와 연합되어 살아감이 성도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도록 친히 이끄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의 모습에서도 여전히 믿음이 아닌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 안에서 온전한 믿음, 주와 연합되어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이끄시고 선한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지체들을 기억해 주시고 강건케 하시고 연약한 육신을 강하게 세우시고 온전히 치유하시는 손길을 경험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오늘도 믿음 가운데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